마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엽서북 100 마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MARVEL 지음 / 아르누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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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북입니다. 엽서북이라는 포맷은 저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해 봅니다. 형식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엽서 100장이 들었고, 그 중 열 장은 홀로그램을 입힌 것입니다. 말이 엽서지 이런 고급품을 누가 우표 한 장 붙여서 엽서로 소비하겠습니까(제 생각일 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안부를 그렇게 전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포카(=포토카드)로 여겨도 될 굿즈입니다. 예쁩니다. 또 내용물뿐 아니라 풀컬러 컨셉 케이스가 전체 가치의 절반 정도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마블은 현재 엑스맨 연작도 접고 어벤저스 크루들의 이야기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원래 마블은 라이벌 DC의 캐릭터들에 비해 영상물에서는 좀 밀리는 추세였습니다. DC의 대표 주자인 슈퍼맨 프랜차이즈가 워낙 인기가 좋았으며, 원더우먼 시리즈도 린다 카터의 압도적인 비주얼 덕에 세계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21세기 들어 마블의 엑스맨이 인기를 끌고, 2008년에 (로다주까지 회생시킨) 아이언맨이 빅히트를 쳤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가 약간은 애매한 평가를 받으면서 양사의 우월이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독특하게도 아이언맨은 솔로 연작을 3편에서 접었는데, 스파이더맨은 앞에 두 번이나 영화판으로 대형기획이 나왔었는데도 세계관을 다 갈아엎어 21세기 후에만 세번째로 리부트를 하고 지금까지도 계속 나옵니다. 스파이더맨에 다른 캐릭터들까지 끼워넣어 어벤저스 일부가 이리로 이사를 온 느낌입니다. 세번째로 리부트한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의 원맨쇼 진행이 아니라, PC 가치를 대변하는 다양한 친구들을 주변에 배치하여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런 스파이더맨이, 영화판 아니라 애니메이션 버전에서는 더 과감한 혁신을 꾀했습니다. 피터 파커뿐 아니라 모든 인종, 모든 성별, 모든 연령대, 심지어 모든 생명체들에까지 스파이더맨의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제 흑인, 여성, 어린이, 강아지까지 스파이더 수트를 입고 특유의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시대나 공간도 다양하게 바뀌기까지 합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란 그냥 비유적으로 자주 쓰이는 관용구인데, 이 기획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이 우주 저 우주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마음대로 넘나드니 그게 바로 멀티버스(multiverse)이며 스파이더맨 고유의 개방성 때문에 이게 더 확실하게 구현되었다고 하겠네요. 개방성, 포용, 톨레랑스, 그 다음에 올 말은 자유와 평화입니다. 

스파이더맨 수트는 다른 초능력 히어로 코스튬과는 달리 얼굴이 안 보입니다.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2편을 보면 닥 악(Doc Oc)과 갖은 사투 끝에 옷은 다 찢어지고 얼굴이 드러난 스파이더맨을 보고 대중들이 깜짝 놀라("뭐야, 어린애잖아?") 우리가 그를 지켜줘야 한다며 분기탱천하여 빌런과 맞서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이 점, 즉 얼굴이 평소에 안 드러난다는 점에서 스파이더맨은 외형으로 사람, 혹은 생명체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의 가치, 그리고 참여의 미덕이 구현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엽서북을 보면, 아티스트가 작품의 이런 메시지, 교훈을 깊이 이해하고 난 후, 선 하나 배색 하나 캐릭터의 동작 하나까지,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여 형상화한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스파이더맨(들)의 우주(들), 아름답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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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캐나다 : 밴쿠버·토론토·몬트리올·퀘벡·로키 - 최고의 캐나다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최신판 ’23~’24 프렌즈 Friends 35
이주은.한세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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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일찍부터 한국인들이 이민을 자주 갔던 나라였으며, 같은 북미 대룩에 속했으나 미국과는 또다른 사회 분위기가 있어 선호도가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학 연수 목적으로도 자주 찾아지며, 개성 있고 차분한 풍광 덕분에 여행지로도 널리 사랑 받습니다. 익히 잘 아는 나라라고 생각들 하지만 의외의 면들이 있어서, 꼼꼼하고 체계적인 여행서 한 권이, 사전 계획을 위해서건 현지에서의 참고용으로건 꼭 필요합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은 나라입니다. 그래서인지, p54에 나오듯 기후도 다양하며, 사람이 살기 어려운 한대, 냉대 지대가 있는가 하면, 지중해성 기후까지 두루 분포합니다. 크게 다섯 부류로 나뉘며, 북극에 인접한 곳은 당연히 한대(寒帶)이지만 중부는 대륙성 기후라서 연교차, 일교차가 큽니다. 느낌상으로는 작고 조용한 나라만 같지만 이렇게 영토가 광대한 만큼이나 풍토가 천차만별이란 점이 재미있습니다.  

밴쿠버는 태평양에 접한, 캐나다 서부의 대표 도시이며 미국의 시애틀과도 거리가 가깝습니다. 프렌즈 시리즈의 일관된 장점이기도 한데, 밴쿠버까지 이르는 다양한 방법, 또 밴쿠버 시내를 이동할 수 있는 전철 등 대중교통편도 보기 좋게 인쇄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버스에서만 쓸 수 있는 1회용 종이 승차권도 있다는 점입니다(p75). 마치 예전 세대가 쓰던 회수권처럼 말입니다. 한국과는 달리, 버스에서 거스름돈을 내어 주지 않으므로, 미리 잔돈을 준비하라는 실용적인 조언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통한 친환경 이동은 일찍부터 캐나다에서 발달했었습니다. 관광객 역시 이런 편리한 수단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조이 사이클" 등의 업체를 추천하는데 읽어 보면 역시 이곳의 사정에 밝은 저자분이라서 이런 적합한 이유를 대시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겨울 스포츠를 위한 리조트로 휘슬러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데, 책에도 나오듯이 이리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죠. 밴쿠버에 일단 떨어졌다가 오는 수밖에 없고, 밴쿠버 관광을 마치고 뭔가 약간 심심하면 당일치기로 들를 만합니다. 프렌즈 다른 시리즈에서도 그랬지만 메인 코스 외에, 옆에 바로 붙은 다른 명소 하나를 곁들여 소개해 주는 센스가 너무 좋습니다.    

캘거리는 원래 인지도가 아주 높지는 않았으나 1988년에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고 유명해졌습니다. 서부(태평양 연안)에서 큰 도시는 대부분 해안에 면했으나 캘거리는 내륙에 있습니다. 책에 나오듯이 여기는 로키 산맥 기슭이라서 거칠고 험한 자연의 풍광이 그대로 살아있는 지역이 많죠. 밴프, 쿠트니, 요호 국립공원도 죽 이어져서 볼거리가 붙어서 가는 지형이기도 합니다.  

이제 동부로 이어져서 온타리오 주 토론토가 소개됩니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는 비(非) 미국 연고 팀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토론토 블루제이스이며 류현진이 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퀘벡 주 몬트리올에도 엑스포스라는 팀이 있었는데 현재는 DC로 매각되었습니다. p340에는 CN타워가 소개되는데 토론토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겠습니다. 

마릴린 먼로 주연의 흑백영화 <나이아가라>도 있고, 슈퍼맨 영화판 2편에서도 클라크 켄트가 로이스 레인에게 정체를 들키는 장면이 이 폭포를 배경으로 전개됩니다(p376). 이 명소는 캐나다, 미국 양쪽에 걸쳐 있으므로 소개는 두 나라 접근 양면 모두에서 이뤄지며 이 역시 책의 자상한 배려입니다. p396에 보면 일만(一萬) 불(佛) 사리탑이 소개되는데 사실 나이아가라에 왜 이런 불교 시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재미있는 지점입니다. 

어느 나라이건 수도 관광을 빼놓을 수 없으며 오타와에는 국회의사당, 컨페더레이션 스퀘어, 자연사 박물관 등 딱 수도의 품격에 맞는 명소와 시설들이 있고 이 책에도 깨끗한 사진들과 함께 소개됩니다. 이어 몬트리올이 나오며 이곳 역시 1976년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곳입니다. 책에는 초보건 여러 차례 관광을 해 온 경험자에게건 유익할 여러 정보가 나옵니다. 

프렌즈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그저 여행서가 아니라 인문서를 읽는 느낌인데, 책의 대미는 애틀랜틱 캐나다 지방의 소개로 채워지며 무엇보다 루시 몽고메리 여사의 고전 빨간머리 앤의 배경으로도 한국인에게 아주 친숙한 곳입니다. 여행은 그저 지역에의 무미건조한 이동이 아니라 순간순간 깨달음과 감동이 이어져야 하며, 그런 벅찬 체험을 잘 짜여진 여행서가 돕습니다. 역사가 짧고 심심한 캐나다일 것 같아도 이 책과 함께할 때 환상여행이 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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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 -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
존 서덜랜드 지음, 강경이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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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주옥 같은 문학 고전을 읽고 자란 아이는 커서도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 속 운동장에는 라스콜니코프, 싱클레어, 베르터, 아드리안 레버퀸, 안나 카레니나, 달타냥 등이 뛰놀며, 척박하고 비열한 심성이 채 자리할 틈을 주지 않고 잔디를 가꿉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지평선 너머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해도 하늘 높이 뜬 달이 천 갈래로 흐르는 강의 표면을 일일이 아름답게 비춰 줍니다. "웃고 울고, 상상하고 공감하(이 책 앞표지)"게 하는 문학의 힘은 이처럼 놀랍습니다. 

영국 문학의 비조로 꼽히는 제프리 초서는 그 이름만 들어도 약간은 비(非)영어적입니다.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도 우리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그 이름이라도 한 번 들어 본 고전입니다. 이 책 p48에 나온 대로, 그의 본성(本姓)은 드 초서(de Chausseur)이며 이는 프랑스어로 제화공을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조상이 제화공이었든 뭐든 간에 그의 집안은 왕실과 연결되는 좋은 기회를 잘 잡아 성공했고, 제프리 초서의 대에 이르러서는 유럽 쪽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큰 부를 일궜으며, 그에 따른 자유로운 향락의 삶이 작품에 잘 배어납니다. 사실 초서뿐 아니라 초창기 고전 문학에는 말초적 쾌락에 대한 우아한(때로는 노골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뒤 p225도 참조하십시오). 

셰익스피어는 어떤 저자가 어떤 관점에서 문학사를 쓰든 반드시 한 챕터를 차지해야 하는 위대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풍기는 게, 시적인 운율이라는 건 번역을 일단 거치면 그 상당수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다른 언어의 옷을 걸쳐도 그 특유의 박력과 아름다움, 기발함을 여전히 풍깁니다. 책에도 서술되듯이 그의 작품은 "결코 쉽지 않고 편안하지도 않지만 그 위대함의 일부가 그런 점으로부터 나온다(p74)"는 사실 역시 놀랍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새로 들어선 스튜어트 왕조가 국력을 기울여 완성한 영역본이며 그 이전에도 영어 번역은 간간이 있었으나 이처럼 내용이 정확하고(당시 기준) 최고의 두뇌들이 한곳에 모여 정력을 기울인 역작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종교적 권위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아름다운 문장이라든가 풍성한 비유와 상징(원전 자체의 힘에도 기댄) 덕분에 영문학사에서는 그 의의를 결코 가볍게 둘 수 없는 이정표요, 어느 시대에도 문학적 영감의 원천 노릇을 했습니다. "책 중의 책"이라는 저자의 평가는, 그리스어 비블리아(바이블의 어원)가 원래 "책"이란 뜻이었다는 사실을 떠나서도 지극히 타당합니다. 

구 민사소송법 용어 중에 "채무명의"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 말은 전형적인 일본식 번역어로서 말만 들었을 때에는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집행권원"이라는, 겉과 속이 보다 일치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이 책 p106(제11장 中)을 보면, 영국에서 출판사가 저작권(판권)을 가진 작품 하나하나를 title이라 불렀다고 하는데(물론 지금도 같습니다), 이 타이틀이라는 단어가 원래는 "권리"를 뜻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왜 집행권원의 독일어 원어가 Schuldtitel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래 영미법계와 대륙법계가 생각만큼 그리 선명한 대조만 서로 형성하는 영역이 아닐뿐더러, 이런 몇몇 용례는 그 근원이 프랑스법이고, 후진국이었던 영국과 독일이 각각의 방법으로 다른 시기에 이를 계수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힘든 곳이며, 역경은 (결국) 개인이 헤쳐나가야 한다. 개인주의는 소설 문학의 핵심 요소가 된다. 그래서 소설 제목에는 개인의 이름이 든 예가 많다. 사일러스 마너, 톰 존스의 일대기, 에마...(p119)" 역으로 생각하면, 소설에 개인주의가 덜 깃들면 제목에 개인(캐릭터)의 이름이 떡하니 들어가는 경우가 적어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예로 들지는 않았으나 가장 극적인 케이스로는 <로빈슨 크루소>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국 문학처럼, 사람 이름만 떡하니 제목으로 내세우는 관습이 파다한 나라가 없지 싶습니다. 테스(p228), 주드 디 옵스큐어, 올리버 트위스트... 아닌 걸 찾기가 더 어렵네요. 

제15장에는 "낭만주의 혁명가"들이 소개되는데 바이런 경, 월터 스콧, 존 키츠, 윌리엄 워즈워스, (이 장에는 언급이 없으나) 예이츠 등이 그 대표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낭만주의자들은 다른 나라처럼 그렇게 대책없이 낭만으로만 치닫거나, 현실의 쓰디쓴 모순에 대해 외면,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실의 완강한 족쇄가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시니컬하게 인식하는 태도를 작품 속에서 자주 드러내곤 하죠. 대신 이 "혁명가"들은 말보다 행동을 통해 보여 주는 바가 많았습니다. 

제20장에서는 문학과 어린이에 대해 다루는데 앞에서도 말한 워즈워스의 공헌에 대해서도 언급이 됩니다.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유명한 구절을 그의 시 <Ode>에서 읊은 바 있고, 이 점은 책 p189에서 저자가 직접적으로, 또 자세히 분석합니다. 사실 문학사를 개관하며 저자가 따로 어린이 문학, 혹은 문학에서 어린이가 특히 주제로 부각된 대목을, 따로 챕터 하나를 할애하여 짚는 예는 좀 드물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학은 어렵든 쉽든 유년 시절에 충분히 향유할 필요가 있으며, 성인이 되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범죄자, 괴물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의 주제 중 하나가 "불멸하는 문학"인데, 세상에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으려면 후속 세대가 계속 건전한 유산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계관시인 하면 대뜸 떠오르는 사람이 앨프리드 테니슨 경인데 p212에 나오는 <경기병대의 돌격>이 유명하고 이 작은 20세기 중반에 들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반전 패러디물이긴 하나). 공적이냐 시적이냐, 둘 중 시인은 어떤 미덕을 택해야 하느냐에 대해 저자는 동시대의 제라드 홉킨스를 그와 대비시켜 독자에게 고민해 볼 것을 권합니다. "변절"이라는 단어도 쓰이는데 아마 한국 같으면 "어용"이라는 단어도 등장했을 법합니다.  

히틀러 같은 이들은 무척 불만이 많았으나 1차 대전 후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브레히트 같은 작가의 활약에서 알 수 있듯 검열로부터 대단히 자유로웠습니다. 반면 밀(JS Mill)의 <자유론>이라든가 더 예전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 등이 발표(p235)되어 애독되었던 영국은 의외로 엄숙주의가 오래 지배했기에 예을 들어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자유로운 영혼이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검열의 지옥이었을 러시아에서 체홉 같은 이가 어떻게 활동했는지에 대해서도 책은 짚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고독, 살만 루슈디의 신성모독, 귄터 그라스의 휴머니즘과 고발정신, 폴 오스터와 제임스 밸러드, 로렌스 스턴의 트릭(기법)은 우리 삶의 이면을 엿보게 돕는지혜를 제공합니다. 20세기 들어 새로 등장한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이런 비전은 새로운 통로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문학은 인류가 호모 루덴스로 남는 한 영원히 그 핵심 도구로서 우리와 함께 갈 것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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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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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에서도 수학한 후 도미니크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신 김인중 신부님의 그림과, 일생을 두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탐구해 오신 조계종 사회부장(前) 원경 스님의 시, 산문이 함께했습니다. 하드커버 올컬러 백상지 책이라서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좀 화려한 외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와 불교는 그 사제직을 맡은 분들이 평생토록 비구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닮은 데가 있습니다. 순결을 지키며 오로지 영혼의 부름과 질문에만 반응하시는 분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청정한 경지라는 게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충청남도 청양군 역촌리에 소재의 빛섬아트갤러리는 김인중 신부님이 작년(2022)에 개관한 문화시설입니다. 올해 83세이시며 그의 작품은 높은 예술적 완성도와 심오한 종교적 깊이로 인해 프랑스를 비롯하여 전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통일과 조화, 사랑과 진리를 논하십니다. 러시아 대문호의 저 명언은, "인간은 구제불능"이라는 안타까운 현실 진단을 전제로 삼습니다. 구제불능으로 타락하고 시도때도 없이 물어뜯고 싸우는 인간 사회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게 마지막으로 버티게 해 주는 든든한 방어막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 앞에서 어떤 악당도 그 추함을 일단 멈춥니다. 

우현장주(雨絃長奏),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有朋自遠方來 不亦悅乎). 원경 스님이 빛섬아트갤러리에서 김 신부님을 처음 뵈었을 때 그 감회란 한편으로 존경스러움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오래 그리워하던 벗을 만난 기쁨이었습니다. 원경 스님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절창 <승무>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김 신부님에 대해 "'빛' 그 자체였다"고 술회하시는 원경 스님이신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스님의 시에 대해 정리된 독자의 감정이야말로 "승무"의 벅찬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원융담적(圓融湛寂)이란 말씀도 울림이 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엇을 제조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는 것(p44)." 이 말씀과, 김 신부님이 인용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연결해 보십시오. 플라톤은 그의 철학 전(全) 논고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어딘가에 놓고온 이데아의 이상(理想)을 환기했습니다. 완전체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고 비루한 우리들의 현실, 그러나 이상을 망각하고 현실의 척박함에만 지나치게 적응하면 우리네의 삶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짐승의 몸부림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왜 예술가들은 비실용적인 가다듬음, 터치, 색고름에만 집착하는 걸까요? 그런 노력을 통해 낙원과 천국에 한 걸음, 반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괴테도 죽어가면서 "더 많은 빛"을 되뇌었다고는 하지만 원경 스님도 빛이란 단어 하나만을 제목으로 삼고 p72에서 빛과 꽃과 마음결과 기도에 대해 노래합니다. 짧은 시이지만 이 구도자의 마음 속에 얼마나 깨끗하고 신성한 아름다움이 깃들었는지를 우리 속인(俗人)들이 엿볼 수 있습니다. 해동(海東)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를 일컫는 말이었으며, 하동(p84)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터잡은 고장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초춘(初春)과 심춘(深春)을 노래합니다. 삶이란 삼세(三世)의 공간이라고도 하십니다.  

예전 교과서에 조병화 시인의 <해마다 봄이 되면>이라는 시가 있었다고 하죠. 우순풍조민안락(雨順風調民安樂)이라는 말을 통해 원경 스님은 무엇이 과연 뭇 땅의 백성이 제 분수를 알고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십니다. 햇차를 마심은, 몸과 마음에 깃든 여러 때와 삿된 상념을 말끔히 씻어냄입니다. "소박함으로 이웃의 곁을 넓혀주고 만족함으로 제 삶의 기쁨을 삼는다(p127)"는 구절을 읽으며, 과연 우리네 삶이 무엇을 바라보고 품어야할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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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에 헤어졌습니다 - <혼찌툰>의 이별 극복, 리얼 성장기
남아린 지음 / 마시멜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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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남은 설레고 벅찬 감정으로 시작합니다. 하필이면 그 소중했던 사람과 (내) 생일에 헤어졌다면, 그래서 지인들에게서 발송되는 수많은 축하 톡을 무방비 상태로 받아내어야 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나는 죽고 싶었습니다(p13)." 책을 보면 그 만남은 여태 6년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사람은 아끼던 전자제품이 고장 나서 스티커 부착 후 갖다버릴 때에도 뭔가 마음이 아픕니다. 하물며 남친(여친)입니다. 젊은 시절 그 깊은 감정을 교류했던 상대는 평생 동안 기억에 남고 그래서 여성들이 구글 드라이브 등에 끝까지 그 흔적들을 간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여성들의 마음을 남자들은 이해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쉽게 말하기엔 뭔가 좀 마음에 걸리긴 하네요. 

"이렇게 달려와 준 고마운 사람들을 제가 평생 잊지 않게 해 주세요.(p19)" 누구라도 그 곁에 누가 있어도 있어 주기 마련이며 정말로 아무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 "있어 줌, 달려와 줌"을 너무 자주 쉽게 잊으며, 그 이유는 배은망덕함이나 건망증이 아니라 대개는 "편안함, 익숙함"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의 고마운 이들을 그저 펀안하게만 여기지 않기, 이런 자세만 유지해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주변에 나쁜 사람으로 찍혀 손절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는데, 웬만해선 이런 일은 잘 안 생깁니다. 평범한 우리들은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는 걸 무척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추억이 계절마다 있어. 짜증나게(p92)" 재채기가 날 때 양쪽 콧볼을 누르면 멈추나요? 일단 재채기를, 어떤 엄숙한 자리나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멈추려고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참아 줘야 할 상황에서는 써야겠다 싶어서, 책의 이 가르침(?)을 기억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재채기는 그냥 나도록 놔 두는 게 기분도 시원하고 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추억도 마찬가지라서 갑자기 감정이 왈칵 나를 덮쳐 와도 이를 응급처치로 억제할 방법은 (아마) 없고, 또 그럴 이유도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센치해진다고 죽을 지경까지 가진 않습니다. 다만 당장은 몹시 힘들긴 합니다. 

"풍요롭게 사는 사람은 그 자체로 빛이 납니다(p153)."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 바쁠 때 혼자 자판기 커피 앞에서 가오 잡는 사람은 대개 얄밉더라는 기억입니다. 그 사람의 느긋함이 내 똥줄 탐으로 이어진다는 피해의식 때문일까요? 내가 발악(책에 나오는 표현입니다)할수록 그 사람은 빛이 더 나더라... 이게 저자의 고백입니다. 모두가 어떤 합의(?) 하에 잠시의 간격을 갖는다면, 근거없는 피해의식은 동시에 청산되고 모두가 여유를 풍기는 멋쟁이가 될 수 있겠습니다. 

안전장치(p204)라는 게 있습니다. 더 큰 일로 번지기 전에 멈춰 주는 장치입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의 감정에만 너무 충실해서 안전장치를 무시하고 폭주합니다. 이 폭주의 난장판은 결국 남이 치워줘야 합니다. 자기 말에 책임을 못 지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내 욕구가 나를 결국 지배한다느니 뭐니 한심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무책임한 인간, 안전장치가 고장난 인간입니다. 시한폭탄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런 민폐덩어리는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결국 잘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p268)" 참 슬픕니다. 처음에 그 설레는 순간, 보기만 해도 너무 좋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더 슬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감정은 더 성숙해지고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나는 나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나 혼자서도 잘살았어(p306)." 혼자 보냈던 크리스마스가 대체 몇 번이었나요? 그만큼 더 튼튼하고 성숙한 내가 되어 가는 겁니다. 

사실은 다 심각한 이야기들인데 그림이 귀여워서 마치 별 것 아니었던 상황처럼 잘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매우 슬펐던 순간들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었던.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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