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 직접 만나서 들은 여성 과학자들의 생생하고 특별한 도전 이야기
막달레나 허기타이 지음, 한국여성과총 교육홍보출판위원회 옮김 / 해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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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경계는 전혀 달라서, 여성들은 중요한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서 걱정이죠." (p193) 위의 말은 이 책 중 마리아 괴퍼트메이어(=괴페르트마이어)를 다룬 챕터에 실려 있습니다.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는 괴팅겐 대학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낸젊은 학자였고, 그녀의 장래성에 주목한 컬럼비아 대학 물리학과가메이어 부부를 미국으로 초청한 시점에서도 해당 학과 소속 이시도어 라비 교수가 이런 견해를 여전히 가졌던 거죠. 


과학자는 아니고 수학자였지만 러시아의 소피아 코발렙스카야, 독일의 에미 뇌터 등도 당대의 편견 때문에 그 찬란한 재능을 발휘할 때 여러 장애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미들마치>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도 본명이 따로 있었는데 그저 출판의 편의를 위해 마치 남자처럼 들리는 저런 필명을 내걸어야 했죠. 어떤 시대, 사회, 문명이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유지한 탓에 직장과 조직에서 배척한다면, 이는 오롯이 그들 자신의 손해로 돌아오며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성에의 평등한 채용은 윤리적 의무 따위가 아니라 조직과 공동체의 생존 전략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괴팅겐은 독일에서도 대학 도시로 유명합니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에서 퇴임한 박상기 교수도 괴팅겐에서 형법학 박사를 딴 분이죠. 책에도 역시 나오지만 양자 역학에 대한 유력한 해석 중 하나를 발전시킨 곳이기도 합니다(코펜하겐, 뮌헨, 레이던, 취리히와 함께). 이처럼 첨단 물리학의 심장부였던 곳에서 "교수보다 더 양자역학을 잘 알았던" 뛰어난 젊은 여성이 두각을 나타낸 사실도 놀랍고, 그런 여성이 남편과 함께 발디딜 터전을 찾아 기어이 신대륙으로 건너와야 했던 사실도 놀랍습니다. 왜 사실과 진리 앞에 겸손해야만 할 과학자들조차 (20세기 전반까지도) 이처럼 고루해야만 했을지. 


지은이인 막달레나 허기타이(Magdolna Hargittai) 교수 본인이 여성 과학자이기도 하며, 1945년생으로 올해 73세이니 꽤 고령이십니다. 이 책은 그저 여성 과학자들의 일대기를 간략히 편집, 소개한 책이 아니라, 허기타이 교수가 직접 만나 본 분들에 대한 개인적 상념과 평가까지 곁들였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습니다. 원자핵 껍질 모형에 대한 업적으로 노벨상까지 받은 저 마리아 괴퍼트메이어를 직접 만났다면 꽤 연로한 분이라는 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마리아 괴퍼트메이어 말고도, 부부가 함께 소개된 챕터가 많습니다. (제1장은 그 유명한 퀴리 부부부터 시작해서 전부 부부 이야기이며, 이후에도 십 수 명의 경우가 더 나옵니다) 아무래도 여성 과학자를 아내로 맞아 충분한 이해와 배려를 베풀고 나아가 "외조(?)"까지 가능하려면 동종 업계 종사자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전이었다면 말이죠. 이를테면 달렌 호프먼- 마빈 호프먼 부부입니다(p203 이하). "미안하지만 우리는 그 부서에 여성을 채용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이미 2차 대전이 끝난 지 6년이나 지난 시점인데도,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인사과에서 그녀는 이처럼 냉랭한, 어이없는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때쯤이면 미국은 소련과 함께 치열한 무기 개발 경쟁을 벌일 시점이라 한가하게 성차별 스탠스를 유지할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p119부터는 이다 - 발터 노다크 부부의 사연이 나옵니다. 이 두 분은 특히 그 유명한 엔리코 페르미의 로마 실험과 "다른 설명"을 제시한 사실로 잘 알려져 있죠. 저자 막달레나 허기타이는 이를 가리켜 "통찰"이라 부르는데, 천재들만이 가지는 신기한 특징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형식 논리를 동원하여 왜 A라는 사실에서 B가 나오는지 낑낑거리며 연결 고리를 찾아나가는데, 천재들은 C, D를 건너뛰어 H, I까지 직행하는 겁니다. 이런 천재들은 그저 직관으로 결과를 앞서 볼 뿐 아니라 증명까지도 능숙합니다. 이런 천재 부부들도 대공황의 여파로 제대로 된 직위를 얻지 못해 젊은 시절 긴 시간을 고생했을 뿐 아니라 무식한 나치의 검열까지 받아야 했던 점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p82이하에는 결정학자 부부 이저벨라 - 제롬 칼 부부의 사연이 나옵니다. 특히 막달레나 허기타이 교수는 이들 부부를 가리켜 "친구"라 부릅니다. 이 챕터에서 허기타이 교수는 자신의 남편 이스트반(헝가리인에게서 흔히 보는 이름이며, 저자 허기타이 교수 역시 헝가리 국립대에 재직 중입니다)을 언급하며 "기체상 전자회절(원, 외계어가 따로 없네요)" 분야를 같이 연구하는 학자로서 큰 친밀감을 표시합니다. "과학자 부부의 자질"이라니 대체 뭘까요? 같은 대학에서 젊은 시절 만나고, 실험을 좋아하는 기질을 공유하고, 그 많은 기체 분자 중 특히 이산화탄소를 좋아하고(?)... 사실 톨스토이의 유명한 말처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으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법입니다. 이처럼 이 책에는, 그저 성공한, 그러나 고독했던 여성 과학자들의 다소 어두운 이야기보다는, 자신을 잘 이해해 주고 업적의 높이를 더욱 북돋워 준 유능한 "동료이자 남편"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다들 깨가 쏟아지게 금슬도 좋았던 편이라 우리 독자가 읽기에도 재미 있습니다. 세상은 본디 불공평한 볍이지요(?).


이 책에는 동양인 과학자도 여럿 나옵니다. p412부터 40페이지 가까이 이어지는 부분은 아예 인도인들로만 채워졌고, 중국의 우젠슝(吳健雄. 특이하게도 끝 글자가 수컷 웅입니다), 일본의 구로다 레이코(?田玲子)도 있습니다. 특히 구로다 레이코의 경우 젊어서부터 영국에 유학하며 많은 업적을 내었고, 이후 귀국할 때 "너무 오랜 동안 외국 생활하면 일본에 적응하기 힘들 수 있으니.." 같은 이상한 이유로 조기 귀국을 종용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분은 첫째 여성이라는 핸디캡(!), 둘째 외국물을 너무 먹은 부적응자라는 당치 않은 선입견까지 이중고와 싸워야 했던 셈이죠. 


발견은 탐정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p206)

상을 받는 게 일하는 것만큼 재미있진 않아요! (p197)


이처럼, 사실 재능, 천재성이란 워낙 압도적인 장점이어서, 설령 어떤 난관, 애로가 있다 한들 그런 게 그 재능을 꽃피우는 데 결정적인 좌절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특히 젊은 여성 천재들에게는 만만치만은 않은 장벽이었을 텝니다. 이 책에는 당연 예전 사람들만 다뤄진 건 아니라서, p154 이하의 이본느 브릴의 경우 그 옆에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버락 오바마가 서 있는 사진도 있습니다. p290에는 미리엄 로스차일드란 분이 나오는데, 물론 동명이인 아니고 나폴레옹 시대부터 세계사를 무대 뒤편에서 주무른 바로 그 가문 출신입니다. 뭐 유전자 자체가 우수하다 보니 저런 재능을 가진 이도 배출하는 거죠.


책을 다 읽고 보니 우리가 부족했던 건 그저 여성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기대어야 할 "과학"에 대한 열정이라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릴 때만 해도 과학 도서 읽기를 장려해서 방학 숙제 목록에 특별히 끼워 넣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수능 점수 높은 인재가 의사 선생님, 아니 미용실 원장님만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판에 제대로 된 "여성 과학자"가 양성될 수 없죠. 이 책에는 따로 한국어판 서문도 실려 있으니 꼼꼼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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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요기의 자서전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지음, Self-Realization Fellowship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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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청마 유치환은 그의 시 중에서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오타 아님)"라 읊은 바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 존재를 초극하여 지극한 도,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과연 극한의 사막, 높디높은 산악, 혹은 인도 곳곳의 성지와 같은 특정한 환경에서라야만 가능한 걸까요? 


이 책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자서전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그 신묘한 환경과 기후 속에서 살다 보면 절로 득도한 선인이 될 것만 같은 인도에서 여태 얼마나 많은 구루, 리시(rishi), 스승 들이 출현했겠습니다까만 특히 이분은 크리야 요가를 구미에 전파한 업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안타까운 건, 본고장에서 위대한 스승으로 현지인들에게 널리 추앙받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꼭 이처럼 서양에서의 유명세라는 통로를 거쳐야 마치 어떤 검증이라도 받은 양 비로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책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처음에 비웃으려고 책을 접했던 이들이 읽고 나서는 찬사와 감탄을..." 공중 부양이니 득도니 하는 말들이 현대의 각박한 삶 속에서는 그저 허황되게 들리기가 십상입니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로 "비웃음"의 대상까지는 아니지만, 요가라고 하면 그저 미용 체조 정도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듯도 합니다. 하물며 요가의 스승이 트레이너 레벨을 넘어선,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 받는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게 보통이죠. 실제로 책을 읽어 봐도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란 분이 엄청난 세속적, 정치적, 혹은 사업적인 성과를 거두는 대목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양, 내면에의 탐구, 그리고 마침내 얻은 영혼의 평화와 안식 뿐입니다. 


바로 이 점이, 성공한 기업가의 표본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일컬어지는 스티브 잡스에게 큰 영감을 준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잡스는 사업가로서 시련도 많이 겪었지만(실제로 1990년대에는 애플 사, 그런 애플에서 한때 축출된 그의 행적이 경영학 커리큘럼에서 비웃음의 사례로 더 자주 언급되었죠. 1990년대 후반에 와서야 그의 명예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여튼 최종적으로 비즈니스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속에서 이룰 만한 걸 다 이룬 그에게도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허전한 갈증이 여전히 자리했던 것입니다. 


잡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을 바쁘게 사는 평범한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 시리즈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우화처럼,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뛰지만 결국 제자리에 머무를 뿐인 현대의 살인적인 경쟁.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전신에 몰려오는 허무감(성취감이 아닌). 과연 무엇을 위해서 이처럼 정신 없이 나 자신을 몰아쳐야 하는가 같은 회의를 우리 모두는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종교를 믿어 봐도 결국 지도자가 신도들을 경제적 관점에서 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국에 불교 문화가 전래된지 1500년이 넘기 때문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어느 귀공자가 문득 생의 허무를 느껴 출가(혹은 가출. 책에서는 소년들이 가출하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주인공 자신을 포함)하는 테마는 꽤 익숙한 편입니다. 앞에서 제가 "꼭 인도나 아라비아의 사막이라야 사람은 영원에의 추구 동기를 갖게 되고, 수양의 동력을 얻게 되는가?"라고 자문했지만, 유독 인도에는 이런 성자가 드물지 않게 출현하는 편이죠. 이 책의 주인공 무쿤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청장년이 되어도 그의 집안 어르신에게 금전 지원을 받아 여행을 떠나는 대목이 나오듯, 사실 어렸을 때 양친이 일찍 돌아가신 것 말고는 딱히 아쉬운 점 없이 자란 게 그의 성장 배경이었습니다. 뭐 어머니를 일찍 여읜 사실 자체가 정신적으로 가장 큰 시련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p80 이하에 보면, 요가, 요기, 혹은 득도의 길에 딱히 관심 없을 법한 독자라도 눈 크게 뜨고 읽을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과연 사자,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만한 인간, 장사가 있을까요? 기독교 구약에 보면 삼손의 설화가 실려 있고, 우리도 도적 임꺽정이 괴력을 선보였다는 식의 기록이 전해집니다만 그저 반신반의할 뿐입니다. 요가난다의 큰 스승님 중 한 분인 스와미라는 분의 일화에 대해 책은 비교적 자세히 서술합니다. 증빙이라곤 요가난다 본인이 스승님께 직접 전해 들었다는 점 뿐이지만 이들의 언행에 거짓이 없기에 우리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진지해집니다. 저보고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를 믿냐 아니냐에 대해 잘라 말하라면, "믿는다" 쪽으로 기울어지겠습니다.


수련과 명상, 뒤이은 득도에 다다른다면 누구나 벵골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루 스와미처럼 강건한 체력과 단단한 체격을 타고나야 하며 이 점은 본인이 분명히 언명합니다. 당장 이 책의 저자, 주인공인 요가난다한테 시켜 봐도 그저 호랑이 밥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구루가 하는 말은, "나와 비슷한 조건을 갖고 태어난 장사라도 다 호랑이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호랑이가 무서운 점은, 자신 앞에 놓인 상대를 노예로 만드는 능력이다. 약한 자는 물론, 강한 자마저도 이미 호랑이 앞에서 모든 자신감을 잃고 패배자로 지레 굴기 마련이다."입니다. 무식한 자신감만 갖고 만사가 성취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노력과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친 후 최종적으로 일이 성사되게 하는 건 바로 정신의 무장과 확신임을 그는 강조하고자 했던 거죠.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념과 깨달음이 마련된다면, 애초에 안 될 일도 차근히 준비할 마음조차를 먹게 해 줄 소중한 출발점 노릇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안 될 일이라는 게 꼭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기"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요.


처음에 "꼭 인도나 아라비아의 극한 환경에서라야만 득도가 가능한가?"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책은 오히려 정면으로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p185에서 청년 무쿤다는 오래 자신을 이끌어 주신 스승을 떠나 히말라야로 향하겠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때로부터 오래 뒤에 쓰였으므로, 어조는 다분히 "어리석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농후하게 배어납니다. 그는 심지어 "참 스승을 버리고 흙덩어리(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겠죠)에 의존하려 들었다"며 신성한 자연에 대한 (온당한) 폄하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처럼 참다운 수련자는 환경이나 우상, 특정한 지표를 물신화하지 않습니다. 믿고 따를 건 오로지 마음, 오염 없는 깨끗한 의식 뿐입니다. 히말라야를 두고 한 점의 주저도 없이 "흙덩어리"라 규정하는 그의 호쾌한 선언을 보십시오.


이 책에는 유독 "과학"에 대한 언급이 잦습니다. 기존 현미경의 배율을 몇 만 배 개선한 분 이야기도 나오고, p209에는 노벨 상을 받은 샤를 리셰의 진솔한 고백도 제법 길게 인용되며, p335에는 고대 힌두 경전 베다와 현대 물리학의 연관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명상과 사고와 깨달음 등의 실체는 무엇인가. 요가난다는 한마디로 "성능 좋은 수신기"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라디오 주파수만 잘 맞추면 한 채널에서는 클래식 음악도 나오고, 다른 채널에서는 연예인들의 수다도 들을 수 있듯,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온갖 (좋은) 생각은 우주와 자연이 인간을 향해 보내는 끊임 없는 진동과 같다는 것입니다. 구태여 사고, 깨달음 등을 물리 개념인 "진동"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1950년대 같으면 동양 사상과 문화를 "과학적"인 서양의 그것과 대비하여 다루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점을 고려해야 할 듯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오해와 편견이 극복되었고, 그에는 바로 이 요가난다 같은 선구자의 공헌이 컸을 줄 압니다.


p130에는 요가난다가 그의 스승 발치에 앉아 온화한 표정을 짓는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본디 "우파니사드"라는 말 자체가 "가까이 앉다"란 뜻이라고 합니다. p57에도 그의 사진이 있는데, 확실히 어느 위인을 그저 텍스트로만 접하는 것과 실물을 (흐릿하나마) 관찰하는 건 차이가 있다고 여깁니다. 


이 책은 SELF-REALIZATION FELLOWSHIP이 인정한 정본입니다. 예전 1980년대에도 모 출판사에서 이 자서전을 펴내어 많은 한국인들이 읽은 적 있었고, 저는 책장을 여러 장 넘긴 후에야 전에 읽었던 그 책이었음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과거의 그 번역본과는 그만큼 차이가 많다는 뜻도 되는데, 그만큼 이 책은 권위 있는 분들의 치밀한 검증을 거친 흔적이 역력합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낸 기독교의 성경을 보면 "역자(들)"의 구체적 인적 사항을 책 표지에 명기하지 않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꽤 두꺼운 분량이고 폰트도 작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오타가 거의 없고, 번역은 명징하고 뚜렷한 한국어로 이뤄졌습니다. 신은 대체로 "하느님"이란 일반 용어로 옮겨졌는데, "무엇을 믿어도 결국은 나를 믿는 것"이란 힌두이즘 특유의 통 큰 관용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기독교 성경도 여러 대목에서 인용되는데 예를 들면 p183의 잠언서, p210의 마태 복음, p604의 이사야서 등이 있습니다. 역주도 많이 달려 있어서 이 책뿐 아니라 인도 문화 전반, 지리에 대한 지식을 확충할 수 있습니다. "~지"는 존칭 접미사라는 점이 p127 각주에 나오는데, 이 점을 알면 p210 이후에 자주 나오는 "구루지"등의 호칭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타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p23 밑에서 네번째 줄에 보면 "하퍼 앤 콜리스"는 "~ 콜린스"의 오기입니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p176 이하에 보면 갑자기 믿음의 모임에 합류하게 된 쿠마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스승의 애정을 독차지했는데, 행간을 잘 읽어 보면 그런 쿠마르에 대한 요가난다(물론 그 역시 젊었던 시절)의 은근한 질투가 느껴져서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인용은 생략합니다만 마치 중국 고전이나 인도의 에피소드 중심 편집 일화집에 나오는 풍이라서 재미도 있고 느끼는 바도 많았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꼭 이 책을 성인의 자서전으로 읽을 게 아니라, 단편 단편으로 끊어서 교훈집 모음으로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편이 어떤 독자들에겐 오히려 부담이 적을 듯도 합니다.


여튼 라이벌(?) 쿠마르는 결국 깨달음을 얻는 데 실패한다는 건데, 명시적으로는 안 나오지만 결국 여색, 유흥 등의 유혹에 굴복해서였던 듯합니다. 이 쿠마르가 비중 있게 회고되는 이유는, 산스크리트어 학습에 곤욕을 치른 만큼 그렇게 공부를 잘 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책 초반 고등학생 시절 회고에 나옵니다) 무쿤다와 달리, 쿠마르는 꽤 총명했던 제자인 듯하기 때문 아닐지 저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여색을 멀리하라는 건 옛 구루들의 거의 공통된 훈육이며 중국 유가의 공자도 예외가 아닌데, 요가난다의 스승님은 이 대목에서 놀라운 언급을 합니다. "아마도 그 말을 한 스승께서, 젊은 시절에 아픔을 겪은 탓이 아니겠느냐?" 현자의 가르침이라 하면 일점일획도 의심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고루한 태도가 전혀 없습니다. 쉽게 말해 "그게 어디 여자 잘못이겠어? 마음이 흔들리고 욕구가 충족 안 된 채 뒷정리도 잘 못한 남자 탓이지." 뭐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여성을 그저 객체, 대상 정도로 인식하지 않고 엄연히 대등한 인격체로 파악한 데서도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깁니다. 


p608에는 타계 후에도 20일 가까이 부패하지 않은 그의 시신에 대한 증언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보면 독실한 정교회 신자였던 알료샤(알렉세이)가, 그가 스승으로 섬신 스승, 사제의 시신이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남들보다 더 빠르게, 지독하게 부패하는 걸 보고 크게 믿음이 동요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과거 성철 스님이 입적했을 때 엄청난 양의 사리가 나온 과정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가 이뤄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물리적 이적(異跡)이나 그 강도가 아니라, 스승이 남긴 가르침의 진정성이겠습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뭘까요? p286에 나오듯, "소년 무쿤다가 스승 요가난다로 탈바꿈하기까지"의 재미나고도 가슴 아픈, 때로는 뿌듯한 여정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구루의 득도기라면 따분하고 막막한 사연 가득이겠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 책은 꽤 유쾌하고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가오 잡는" 엄격한 스승의 말투가 아닌, 인간적이고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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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케일 -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헤먼트 타네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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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ze does matter." 한때는 그저 규모가 커야 시장이든 어디에서든 승자가 된다는 철칙이 통하기도 했습니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오랜동안 "규모의 경제"라는 영역이 따로 존재하여, 어느 정도 체격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의 진입도 어렵고 채산성도 맞추지 못한다는 냉엄한 규칙이 지배하기도 했죠. 1990년대 한국 경제는 재벌들이 영역을 가리지 않고 문어발식으로 활동 반경을 확장했기에, 정부가 따로 나서서 "업종 전문화"를 유도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대마 불사론"이 널리 신봉되어 이리저리 덩치만 키운 기업은 정부 차원에서도 못 죽인다는 나쁜 믿음이 만연했습니다.

현재는 그렇지 않아서, 실속도 없이 덩치만 큰 기업은 급변하는 시장을 흐름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전략을 고민하는 기업들은 덩치를 줄이고 보다 선명한 목표에 주력, 집중하게 되는데 이런 추세를 일러 이 책 저자들은 "탈규모화"란 뜻에서 언스케일이라 명명합니다. 규모를 "보유"하지 말고 적절히 빌려 쓰(rent)면, 별 효용도 유지 이유도 없는 스케일을 내 어깨에서 덜어낼 수 있습니다. 규모에의 집착에서 과감히 벗어나자는 저자들의 주장은 그가 실제로 창투회사를 통해 여러 스타트업에 결정적 도움을 주고 놀라운 성과를 낸 실적이 있다는 이유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습니다. 

탈규모화를 촉진하는 트렌드는 예전부터 이미 징후를 드러냈습니다만 저자들이 주장하는 탈규모화, 언스케일은 특히 근자에 들어 발전을 본 여러 실물 기술상의 발전을 통해 훨씬 뚜렷한 동력을 갖습니다. 예를 들면 p68 이후부터 잘 설명되는 증강현실, 가상현실 같은 것입니다. "... 5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스타디움을 짓는 대신 가상 현실을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틈새 리그들이 생겨날 것이다..." 틈새 리그까지는 몰라도(왜냐면 미국에서도 아직은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올해 초 프로야구가 막 개막했을 때 모 통신사의 광고에서 우리는 이미 방구석, 사무실에서 환호를 내뱉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실생활에 성큼 파고든 가상현실(기술)의 위력을 어느 정도 실감했습니다. 다른 예를 들 것도 없이, 도심 한복판에서 몇 평 채 되지도 않는 공간을 활용해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는 (몇 년 전의) 혁신 사례(실내골프연습장)를 보면 "탈규모화"의 생생한 현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공유 경제 역시 현대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데요. 이 역시 "탈규모화"와 밀접히 닿아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개개인은 모두 사적인 공간, 이동 수단으로서 차량이 필요 했습니다. 1990년대에 카풀 운동이 소규모로 일었습니다만 이는 교통 정체에 대응하기 위한 소극적 몸부림에 불과했죠. 지금은 모바일과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애초부터 그렇게 많은 양이 필요 없었던", 따라서 적정 규모로만 생산되고 운행되는 자율 차량이 우리의 기존 수요를 대체합니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경기 침체를 부른다기보다, 오히려 자원의 배분과 소비의 최적화를 야기합니다. 자동차 제조 회사들은 종전처럼 무조건 덩치만 키워 시장 셰어를 높이려 드는 게 아니라, 알맞은 규모의 플랫폼을 알뜰하게 갖춰 이를 유능한 파생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블록체인은 그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만 연계된 기술이 아닙니다. 현재 대부분의 거래는 종이 문서에 문구를 작성하고 인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남기는 식으로 증빙이 이뤄집니다만, "전자 거래"는 이 모든 과정에 논란, 분쟁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 식으로 진화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몇몇 강소기업이 이런 전자 결재 솔루션을 개발하여 정부, 지자체, 다른 기업에 판매를 위해 열심히 홍보 중인데 아마 이 책 저자들도 한국의 현황이 그 정도로까지 발전한 줄은 모를 겁니다(뭐 우리들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저자는 이를 가리켜 "블록체인은 자동화된 상업의 또다른 형태"라고 말합니다. 자동화란, 이전 단계에서도 여러 불필요한 잉여, 슬랙을 줄이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블록체인 역시 경제 각 분야의 "스케일"을 감소하는 쪽으로 동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탈규모화가 진행되면, 불필요한 에너지 생산, 특히 탄소 연료를 사용한 발전 등이 상당 정도 줄어 들어 결국 환경 보존에도 이바지합니다. 우리 현대인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환경의 아젠다에도 이 언스케일이 기여하는 것입니다. 책은 "탈규모화"가 에너지 생산에도 적용되어, 멀지 않은 미래에 각 가정이나 기업이 소규모 발전을 영위하는 식으로 완전히 대체되리라고 전망합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빼놓지 않고 가르치는 항목 중 하나가, "전력 산업 등은 한계비용과 한계수익을 맞추는 지점이 워낙 높아서 엄청난 설비, 자본을갖추어야 진입 장벽을 넘을 수 있고 이 때문에 자연 독점이 이뤄진다"인데, 이제 이게 석기 시대 타령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의료비와 의료 서비스 문제는 여전히 해결 안 되는 딜레마를 갖습니다. 무작정 의료인 배출을 늘리자니 질(質)의 이슈가 우려되고, 공공화를 강화하자니 건보공단의 재정 고갈이 불을 보듯 뻔하고...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의 발달은 의료인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족할 뿐 아니라 데이터 퀄리티의 향상으로 인해 맞춤형 진료가 가능해지리라는 전망을 낳습니다. 채산성의 악화는 기본적으로 과잉 투자, 낮은 효율성에 기인하는데 이 역시 기술의 발전과 "언스케일"이 척척 톱니를 맞춰 가는 조짐이 보이는 거죠.

한국도 그런 추세에 접어든 지 오래되었지만 금융기관이라는 게 중하층 소득 수준을 향해서는 획일화한 금융 상품을 팔고 이를 위해 점포 수 증가 등 뻔한 전략을 취합니다. 반면 고소득층 상대로는 이른바 PB로 접근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비효율과 "규모의 증대"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소비자 금융의 혁신은 이를 지양하여, 일종의 뱅킹 클라우드 같은 개발하여 소비자와의 직접 관계를 포기하는 쪽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p191). 과거 규모화 시대에는 은행이 획일적으로 정한 상품 라인업에 고객이 애써 모색, 적응하는 편이었다면, 빅 데이터 관리, 해석 기술의 발전과 인공 지능의 도입은 고객의 니즈에 은행이 세밀히 맞춰 가는 식으로 진화하리라는 게 저자의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반드시 거대 자본을 갖춘 금융 기관을 필요도 없고, 부도의 위험이 적절히 회피되면서도 P2P처럼 맞춤형 대출, 창입이 일상화할 것입니다.

데이터를 잘 모으고 해석하는 기업은 구태여 많은 돈을 들여 획일화한 상품을 개발한다거나, 엄청난 재고 비용을 들여 가며 한방을 노릴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그저 규모만 키워 큰 시장에서 홈런을 치고 경쟁자들을 일거에 제거할 생각만 품었다면, 지금은 데이터만 잘 핸들링해도 수없이 많은 "1인 시장"을 내 품에 안아 예전보다 더 큰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의식 구조,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효율화이고 최적화입니다. 현재 지적되는 모든 기술상의 발전 트렌드를 놓고 공교롭게도 "언스케일, 탈규모화"란 키워드 하나로 이처럼 꿸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결국 알고 보니 한 방향으로흘러가는 뚜렷한 흐름이었다는 거죠. 군살은 빼고 영리하게, 기민하게, 맞춤형으로 움직이는 게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살아남을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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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사전 - 우주와 천체의 원리를 그림으로 쉽게 풀이한 법칙, 원리, 공식을 쉽게 정리한 사전
후타마세 도시후미 지음, 토쿠마루 유우 그림, 조민정 옮김, 전영범 감수, 나카무라 도시히 / 그린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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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다 펴는 체험이란 꼭 외가 등을 시골에 둔 이들만의 특권은 아니겠습니다. 도시에서도 운 좋게, 쏟아지는 듯한 별무리의 향연을 어쩌다 볼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동경의 타겟으로 삼을 수 있는 별, 별, 별을 보고 자연스럽게 천문학 개론서 등에 손을 뻗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한테도 어느 고등학생이 책 한 권을 빌려 달라고 한 적 있는데, 반응은 거의 100%로 "엄청난 좌절"입니다. 별 이야기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전부 미적분 수식이고 따분한 광물 타령에 무슨 광학에 상대성 이론 따위의 장대한 전개입니다. 이런 체험 후에는 아마도 도시의 젊은 영혼은 다시는 밤하늘을 쳐다 보지 않을 듯합니다.

중세 이래로 여러 똑똑한 두뇌들이 그저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많은 지식을 쌓아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이 모니지 않고 둥글다는 점도 알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뿐 그 반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이해합니다. 그런데 지동설 등이 사실로 입증된 후에도, 뛰어난 천문학자, 우주 물리학자들이 학문적으로 많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문제는 이후의 소중한 성과가 일반 대중에게는 쉽고 친숙하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대 천문학의 성과뿐 아니라, 사실 케플러, 뉴턴 이후의 고전 천문학 내용도 잘 모르는 이들이 90%가 넘습니다. 중국이 달의 뒷면에 우주선을 보내 그 은밀한 광경(지구인들에게는)을 찍어 오는 시대이지만 달이 어떻게 해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고 달마다 차고 기우는지 어린이들도 알 수 있게 설명해 보라면 어른이라 해도 뭐 어림 없습니다. 어른은커녕 해당 분야의 전공자에게도 사실 뭘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일본인 저자들(전부는 아니지만)의 책을 읽어 보면 항상 느끼는 게, 꽤 어려운 내용을 무척 쉽게 설명하거나, 적어도 그런 쉬운 설명에 엄청 큰 사명감을 느끼고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텍스트를 쉽게 쓰는 건 해당 분야에 달통한 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일러스트를 곁들여 1) 본문과 잘 밀착하고 2) 개념과 내용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또 별개의 과제입니다. 이 책은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낸, 참 쉽고 재미있게 쓰인 책입니다. 좀 과장하자면, 이 책의 장점은 텍스트도 텍스트지만 보기 좋게 잘 그려진 도해에 첫 방점이 찍힌다고 해도 과언 아닙니다.

유명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보면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을 지시하는 (그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앙에 그려집니다. 보편과 추상, 완전한 이상태를 중시하는 전자, 반대로 개별과 현상, 현실을 더 지향하는 후자의 대립은 이후 서양철학과 과학을 내내 주도해 온 굵직한 트렌드이며 프레임이었습니다. 사실 별, 그리고 천문 현상은 하늘을 응시해야만 보이는 게 아니며, 저 두 사람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우리 자신을 똑바로 성찰할 때도 그 숨은 이치가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아득한 예전 빅뱅 이후 하나의 먼지로 시작해서는 이처럼이나 덩치를 키운 지구를 면밀히 지켜볼 때, 수만 광년 떨어진 천체에 대해서도 그 내부, 표면이 어떻겠거니 하고 유효한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런 짐작은 이후 관측과 실험을 통해 최종적 검증이 가능해진 후 최종 진리의 세계로 편입됩니다.

티코 브라헤는 생전에 거의 광적이라 할 만큼의 열정과 엄정성으로 온갖 데이터를 모은 학자입니다.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과학의 발전이 멈춘 게 "(기후 변화 등 재앙 외에도) 더 이상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사정이었습니다. 이걸 먼 미래(라기보다 다른 차원)에서 부친이 모스 부호를 통해 (책장 뒤에서) 전송하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된 현재의 연구진이 시공간을 자유로이 콘트롤할 수 있는 끝판 공식을 찾아냅니다. 데이터 없이는 사실 어떤 것도 불가능하며 모든 건 그저 SF의 영역에 머물 뿐입니다. 이 스승(이라기보다는 선배?) 티코 브라헤의 데이터를 활용해, 케플러는 엄청난 법칙 세 가지를 정립합니다. 이 공식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세계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 내용도 너무도 단순, 명쾌하여 과연 그 아득한 천체들의 운동을 모두 설명할 수나 있을지 의심이 갈 만큼입니다. 하긴 궁극의 법칙은 복잡하지 않고 가장 순수하게 명징한 모습이라야 할 것 같습니다.

단주기 행성 중 유일하게 눈으로 관측 가능한 게 핼리 혜성이고 최초 관측자의 이름을 불멸로 만든 녀석이기도 합니다. 그저 혜성 하나에 이름을 붙여 준 데서 의의가 끝이 아니라, 우주 공간을 돌다 주기적으로 이 땅을 방문하는 천체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을 찾게 된 중요한 계기라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 20세기의 아인슈타인이 놀라운 건, 기존의 고전 물리학으로도 현상을 설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불구, 아무도 아쉬워 않았던 그 빈틈(있는 줄도 몰랐던)을 파고들어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말이 혹 맞다면 앞으로 이러이러한 현상이 관측될 것이다." 보란 듯이 입증이 이뤄진 후 그는 천재(genius)의 정의를 새로 쓰게 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데이터와 지식이 축적될수록 우리는 기원에 대해 궁금해하며 동시에 우리의 귀착, 미래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불안한 탐구를 이어가려 들 수 있습니다. 가모브는 사실 철자를 저렇게 읽어냐 하나 싶을 만큼 이름부터가 좀 특이한 분이고 행적도 기인에 가까웠는데, 이분의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역시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의 역사를 다시 정립하게 도왔습니다. 일반 대중들도 첨단 과학의 성과 그 결론 정도는 정확하게 알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호기심과 창의적 사고의 발판입니다. 어려운 주제를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는 이런 책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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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터[709]번째 책이야기

픽스호크 드론의 정석 / 공현철, 한기남, 김지연, 서동훈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픽스호크 드론의 정석 / 공현철, 한기남, 김지연, 서동훈
■ 책 소개
특수목적형 드론을 픽스호크로 개발?활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
아두파일럿의 오픈 소스 픽스호크 프로젝트에 대한 입체 분석!

픽스호크 드론의 정석
무인 항공기 드론에도 리눅스같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있다. 바로 ‘픽스호크’다. 이번에 픽스호크 드론의 표준과 활용법을 소개한 책이 첫 출간되어 드론 교육과 개발, 활용 분야에 종사하는 드론 개발자와 매니아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픽스호크(Pixhawk)’는 교육, 취미와 개발 용도로 누구나 쉽게 저비용 고품질 자동 조종 장치 하드웨어 설계의 표준을 제공하고자 무인항공기(드론)을 위한 개발 결과를 오픈 소스 플랫폼으로 공유하는 프로젝트 독립적인 공개 하드웨어 프로젝트의 이름이자 드론을 위한 오픈 소스 자동 조종 장치(FC, Flight Controller)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픽스호크는 취리히의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Swiss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약관 32세의 로렌츠 마이어(Lorenz Meier)가 개발했으며 상표 등록도 마쳤다. 로렌츠 마이어는 픽스호크 프로젝트의 주요 멤버인 오픈소스 드론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오터리온(Auterion)의 공동 설립자이자 PX4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픽스호크는 다시 말하면 리눅스 재단이 지난 2014년 10월 발표한 아두파일럿(http://ardupilot.org/)을 기반으로 한 드론코드 프로젝트(Dronecode Project)가 전신이 된 오픈 소스 프로젝트의 다른 이름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3DR(3D로보틱스), 바이두(...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픽스호크 드론의 정석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복사, 붙여넣기)로 본 모집글을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텍스터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texter.co.kr 메일로 주시거나 텍스터에 북스토리와 대화하기에 문의사항을 적어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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