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경제 생태계 만들기 - 채이배가 말하는 한국 경제 위기의 유일한 해법
채이배 지음, 주준형 인터뷰어 / 헤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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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노력하지만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회가 무한 경쟁으로만 성원들을 몰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살인적인 경쟁을 거치고도 정작 엉뚱한 이들에게 성과가 배분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는 지나친 경쟁을 강요하고도 결과가 정의롭지 못하기에 많은 국민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앞장 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민중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시스템이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채이배 전 의원은 재벌기업 내부의 오랜 폐단을 자세히 비판합니다. 예컨대 기업에는 시스템 통합(SI) 업무라는 게 있는데, 그룹의 각각 계열사(물론 모두 독립된 법인이죠) 내부에서 처리되어야 할 이 업무를 모두 뽑아내어 별개 회사로 또 설립하고, 이 회사에다 SI를 몰아주기라도 한다, 그리고 그 회사가 총수 일가의 사유물이 되게 한다, 이러면 아주 쳬계적이고도 망라적으로 "오너 가문에 일감 몰아주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젊은 경영인들이 의욕적으로 SI만 전문으로 삼는 스타트업을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이런 문어발의 첨병 때문에 이들은 아예 자신들의 장기가 될 수 있는 분야에 발도 못 들여놓게 되죠. 명백한 불의(不義)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채 전 의원은 IBM(물론 우리가 잘 아는, 전에는 컴퓨터 제조 회사로만 유명했던 그곳입니다), 오라클, SAP(요즘 빅데이터 관련으로 일반인들도 잘 알게 된) 같은 SI 전문 기업이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성장하지 못한다고 하며, 심지어 재별 계열사가 물류 섹터도 과점하는 통에 중견기업의 씨가 마른다고 합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런 듯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저를 포함) 잘 모를 이가 많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물류 섹터를 재벌이 독점하는 폐해로 저는 H 택배, C 택배 같은 곳을 떠올렸지만 사실 이런 곳은 자영업자를 관리하는 센터 비슷한 체제이기에 상대적으로 그리 심각한 건 아니죠. 채 의원이 드는 예는 현대글로비스로서, 현대차(화주)와 일반 차주를 연결, 주선하는 데 (많은 투자 없이도) 분명 기존의 유리한 위치만 활용하여 업계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땅짚고 헤엄치기에 다름 아닙니다. SI 센터도 가상의 위험이 아니라 SK C&C가 이미 그 큰 그룹 내의 전산 용역을 독점하는 중입니다. 이래서야 공정경쟁이 될 리가 없고, 청년 창업 같은 게 꽃필 수가 없습니다.

재벌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이유는 상속세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런 일감 몰아주기의 가장 근원적 문제는, 야심찬 젊은 업체들을 결국 재벌가의 하청사로 계열화한다는 것입니다. 창의력 발휘의 대가가 딱히 이유 없이 대기업 오너 가문으로 그 상당 부분이 빨려 들어간다면 이는 전근대적, 봉건적 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농노나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와중에서 젊은 개혁 성향 국회의원으로서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 온 채 전 의원은, 그런 노력을 통해 정의선, 정경선 같은 현대가(家) 후계자들이 보다 전향적으로 스탠스를 전환하기도 했다고 스스로 뿌듯하게 말하는군요.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도산법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p74), 이는 이른바 기촉법 등 당시로서는 새로운 입법이 순기능을 발휘한 바 큽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관치 주도(혹은 책의 표현을 빌리면 "가장 보수적인 기관인 은행" 위주)의 시스템이며 채 의원 같은 젊은 개혁 성향 의원들이 주장했던 건, 이런 법제가 보다 민간 주도가 되어 작동해야 한다는 쪽이었습니다. 여기서 민간이라 함은 아마 그가 몸담았던 참여연대 등의 단체를 가리키는 것 같다고 지레짐작했으나, 책을 꼼꼼히 읽어 보니 그렇지도 않더군요. 이게 좀 놀라웠습니다(솔직히 좀 부끄럽기도 했고요).

회사가 파산지경에 도달했을 때 가진 잔여재산 다 팔고 그나마 채권자들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청산이 우선이냐, 아니면 노동자들에게 일단 밀린 임금을 지불(이들 노동자들도 분명 채권자이며, 다만 정부, 특히 노동부에서는 임금 채권의 만족 순위를 낮추지 말자는 취지입니다)해야 하느냐. 후자의 근거는, 임금을 지불 받은 근로자들은 의욕을 찾고 열심히 근로에 복귀하여 노동을 계속하겠으며, 이는 기업의 생산을 재개하여 진정한 의미의 "회생"을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에 있습니다. 남은 채권자들도 낡은 집기나 건물, 혹은 부지를 팔아 얻는 몇 푼 안 되는 변제를 받느니 이 편이 낫지 않겠냐는 뜻이겠죠. 설득력이 대단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현실론으로 회의를 품는 이들도 있겠습니다. 성과, 가치 창출의 원천이 노동이냐, 아니면 다른 요소의 기여가 더 크냐에 대한 오랜 의견 대립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입니다.

채 전 의원은 모험 자본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신산업을 육성하고,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통한 일자리를 지키고, 나아가 제조업을 몰락시키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p79). 회생 절차에서 이런 모험 자본에 우선 순위를 주면(심지어 임금 채권보다도), 앞선 청산 절차에서 모든 일자리가 완전 없어질 위기를 일단 막은 기여에 대한 보상 아니겠냐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과거에 정부가 그저 모태 펀드에 대해 지원한다거나(개별 기업을 찾으려는 노력을 않고), 은행 팔 비틀어서 돈을 대는 식의 "격화소양"식 처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성과물이 바로 20대 국회에서 멋지게 통과된 "채무자회생법"이란 거고요. 글쎄 사람마다 진보다 보수다 하여 입장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이런 개혁은 노선이나 세계관의 차이 불문하고 모두가 긍정할 수 있는 해법 아닐까요? 더군다나 이런 방안은 기본적으로 민간 자본(이윤 추구가 최우선인)에 주도권을 준다는 점에서 효율성을 해하지 않고(오히려 제고하고) 시장 친화적이기까지 합니다. 관이 개입하지 않고 민간 기업의 문제(또한 노동 문제)를 민간 안에서 찾아 해결하는 셈이지 않습니까.

대기업과 (한국인 대부분이 일하는)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서는 어떤 인센티브가 있는 제도적인 틀 마련이 중요하며, 이게 꼭 경제적인 것일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경영 자율성 존중만으로도 기업은 크게 만족할 것이라고 하네요. 이는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스튜어드십코드와도 색깔이 다른 입장 같아 보입니다. 한국이 이제 질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주장을 여러 면에서 곱씹게 되는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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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35-2055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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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건 역사상 언제나 우리 인류에게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앞으로 발생할 일을 정확히 내다보는 사람은 집단의 존경을 받았고, 미럐 예측에 신경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진화를 촉진했습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스케일의 위기라 해도 발생 시점과 진로를 정확히 예측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또 성공적으로 그래 왔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번영을 누리며 살 고 있는 거죠.

코로나 19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에 시달리며, 그렇지 않은 이들도 걱정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과연 이 질병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근심이지만, 설령 극복이 된다 해도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never be the same)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특별한 다른 전략이 필요한지도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뜩이나 한국 독자들에게 그간 큰 도움을 줘 온 이 시리즈가, 이런 시국에 더 반갑고 더 각별한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변하지 않은 질서가 무너지다(p67)." 사실 그 이전에도 예컨대 30년 전 소련이 붕괴했다든가, 12년 전 금융위기로 미국의 위상에 큰 손상이 생겼다든가 하는 일로 기성 질서는 심상치 않은 요동을 맞아 왔습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엄청난 수의 사상자가 생겼고, 이들 나라가 세계를 향해 리더십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심지어 자국의 사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점을 특히 지적합니다.

반면 중국은 (진짜 내막이 어떠했든 간에) 뭐 엄청난 희생을 통해 초기에 사태의 확산을 막았다느니, 현재 확고하게 사태를 통제하고 있다느니 하며 적어도 자국 내 리더십이 선명이 작동 중임을 대외적으로 선전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의 헤게모니가 바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세계사는 이보다 더 어이없어 보였던 사소한 계기로도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던 사례가 드물지만도 않았으니 말입니다. 또 그 결과가 인류에 행운이 될지 그 반대가 될지도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통제의 시도로 그 신뢰가 떨어졌다"며 중국을 비판하는데 일종의 중립 기어 박기로 보입니다.

큰 시련이 닥치면 예전 사람들은 어떻게 현명한 대처를 보였는지(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지표를 디디고 서 있지도 못하겠죠)를 참고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도 유익한 대처입니다. 저는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가, 저자들이 그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에 기대어 과거의 유용한 사례를 언제나 적절히 리뷰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고, 잘 알려진 예와 그렇지 않은 예를 두루 섞어가며 독자들에게 설시합니다. 이런 건 그저 이야기로만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책은 특히 전반에 걸쳐 미래학자 제이미 메츨의 연구 결과와 진단을 광범위하게 인용합니다. "결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p80)"도 특히 이분이 한 언급입니다. 대체로 이 매츨이란 분은 (1990년대부터 지속되어 온) 세계화 트렌드에 대해 비판적이고, 그 훨씬 이전에 설립된 각종 국제 기구의 효율성과 정당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긍정적 역할도 있다며 부분 긍정의 스탠스를 취합니다.

흥미롭게도 예전 공산주의 이론가인 그람시는 "구질서는 무너져 가나 신질서는 아직도 태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는 괴물의 시간"이라 했다는데, 이 말을 반 세기가 지난 지금 메츻이 다시 인용(p81)합니다. 메츨은 "우리가 이 싸움에 가져 가는 도구는,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다"고 하는데, 책의 저자들도 이 점에 공명합니다. 예전 같으면 전파, 내면화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을지 모르는 지식과 정보 들이 지금은 발생 후 수 초만에 공유되기도 합니다. 저자들은, 지금이 "우리가 함께 모일 시간(p86. 메츨의 말 재인용)"이며, 어느 때보다도 높은 문해율, 강한 인맥(=네트워크), 성취 동기 등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가뜩이나 무의미한 직업일수록 급여가 높았던 풍조가,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만연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해할 이들이 많겠는데, 금융인이니 광고업자니 컨설턴트니 하는 직업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직업이 아니며, 농부, 공장 노동자, 쓰레기 청소부 등은 그것이 없어질 시 개인과 공동체가 즉시 생존 위협을 맞닥뜨리게 될 직업이라고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체계는 정반대로 책정되었죠). 물론 사회에 이런 양극단의 분류만 있는 건 아니며 그 중간지대도 폭 넓게 존재할 것입니다. 또, 저 "무의미한 직종"이 과연 의미가 없기만 하겠냐며 저자들과 (저자들이 인용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무엇이 본질인지"에 대한 성찰은 한번 시도해 볼 필요가 있겠죠.

일찍부터 애덤 스미스 같은 이들은 가치의 양분화를 지적하며, 사용가치와 교환 가치가 따로 노는 현실의 모순을 짚었습니다. 이 관점을 "교환 가치 중심이 된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 발전시킨 이들도 많으며, 저자들이 이 책에서 취하는 문명 성찰 스탠스는 주로 이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영국, 스페인, 덴마크 등은 "국가 자본주의"의 예로 파악하며, 그 예를 명시적으로 들지는 않으나(중국이라고 명언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국가 사회주의"의 패턴도 거명하는데, 단 후자의 경우 권위주의를 내세우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합니다. 이 둘(혹은, 그에서 비롯한 현실)이, "두려움에 대한 근거 못지 않게 희망의 근거도 남겨 놓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p102)

위기는 물론 많은 구성원들을 불확실성 속에 몰아넣지만,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내게 하고 낡은 체제의 유효성에 대해 집단적 회의를 부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능도 수행합니다. 자급자족 산업이 부상하고(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 책은 교환가치를 대체로 부정하고 사용가치 중심 사회로 복귀하자는 쪽입니다) 태양광 발전 도입이 촉진되며, 드론 기술의 발전, 기본 소득 지급 확산, 원격 산업, 분산형 프로토콜(인터넷 등에서), 지도자에 대한 불신, 코로나 베이비 붐, 노 코드 웹 플랫폼 등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특히 한국의 경우라면 태양광 도입은 이미...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어느 부자의 이야기가 엊그제 기사로 나왔는데, 저자들이 벌써 이 책에서 "외로움에 대한 재평가"를 거론했네요. 그래서 로봇 산업이 크게 발달하며, 인간이 그리움과 정을 무생물에게까지 투사함에 따라 환경 보호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진단, 예측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는 게 좀 놀라웠습니다.

스마트 시티 테크놀로지는 이미 수 년, 십 수 년 전부터 논의가 이뤄졌고 발달도 빨라지는 경향입니다. 특히 책에서는 한국과 싱가포르를 모범 사례로 듭니다. "개인 정보는 보호하고 위치는 추적(p185)"한다지만 이런 분별과 자제가 어느 단계까지 잘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적지 않죠. 

"과학이 매번 1년씩 당신의 삶을 연장한다." 최근 장수 시너지 세포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가 예쁜꼬마선충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이제 노화는 치유 가능한 질병 정도 수준으로 여겨지기 시작(p214)했으며, 노화가 만병을 초래하는 만큼 노화 하나를 잘 공략하여 만병을 다스리는 식의 획기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또 이제 질병의 치유보다는 빅데이터나 IoT를 통해 예방의 관점에서 의료 서비스가 이뤄지며, (이 책 전체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원격 진료도 관련 규제의 벽을 넘어 전향적으로 접근됩니다. 과연 그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더 나이 먹기 전에(이 책 p283에서는 "그저 20년만 더 살라"고도 합니다).

트랜스휴먼, 즉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없어지는 건 예전 사이버네틱스에서도 널리 암시되었고 십 수 년 전 커즈와일 같은 사람이 대담하고 구체적인 가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기계와 인간의 작동기제와 언어가 다르며, 칩 등을 인간의 신체에 심을 때 부작용이나 위화감 없이 얼마나 일체적으로 작동하겠냐에 있겠는데, 이른바 신경 인터페이스 이슈 역시 최근에 큰 발전을 보았다고 하는군요.

단백질 접힘 현상은 "슈퍼컴퓨터로도 에측할 수 없"기에(p281) 연구에 장애를 더합니다. 요즘은 항암제도 표적형이 대세이며, 정확한 지점에, 적시에, 해당 물질을 전달할 수 있다면 모든 과제가 풀리는 셈입니다. 코로나 19 백신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도 결국 이 이슈와 연관이 있다는군요.

항생제의 발견은 인류에 큰 축복이었지만 이는 우연의 산물이었고,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은 사실 이 정도를 큰 난관으로 여기지 않는 듯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니 인류는 성급한 승전보를 울린 셈입니다. 그러나 빅데이터, 또 이를 이용한 인공지능이 (개발자들도 채 예측 못한 방법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으며, 결국에 더 맞춤형의 효과를 내면서 부작용도 적은 물질이 나오리라고들 본답니다.

3D 프린터의 개발로 만인 생산자의 시대가 열렸다는 전망이 예전부터 나왔는데, 이제는 이 장비가 음식도 "인쇄"한다는군요. 농업은 이를 통해 더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화하며 동시에 친환경의 과제까지 달성합니다. 비행 자동차는 교통 정체와 환경 파괴라는 악재를 동시에 돌파하며, 저자들은 "그저 규모의 문제가 남았을 뿐 이미 실현 단계에 접어들었다(p333)"고까지 말합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집속과 이용의 시대 도래"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p381). 이것이 소유 패턴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자동차 소유를 기피하고 공유 트렌드를 이끄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 가능합니다. 그래서 미래는 "구독(,subscription) 경제"가 될 것이라고 하며, 넷플릭스는 이의 서막을 열었고, 로봇 역시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일부에게는 혜택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에는 일자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생계는 기본소득 지급으로 이뤄지며, 일은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로 변화한다고도 합니다(p385). pp.391~495에서는 새로 탄생하는 일자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이들 일자리들이 과거 인간소외를 낳았던 고강도의 비인간적인 노동이 아닌, 자아 구현에 기여하는, 보다 인간적인 일거리가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비건인들이 늘어나는 건 체질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육식을 위해 벌어지는 동물에 대한 가혹한 처우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하겠죠, 그래서 최근에는 배양육이라 하여, 고기의 특정 부위를 먹기 위해 동물을 사육하지 않는 분야가 발달한다고 합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고기"인 셈인데, 어느 정도나 인간의 식감과 취향을 만족시킬지는 두고 볼 일이며 GMO 이슈는 어떻게 피해갈지도 관심사입니다.

양자컴퓨터는 인류의 오랜 불가능성 한계였던 "동시에 두 곳에 존재" 이슈를 극복하게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건 "무엇이 인간 존재와 본성의 실체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배신하지 않게 돕느냐"의 고민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술과 인도주의는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발전했고, 이 둘의 괴리가 모든 비극을 낳았습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소외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이 영역의 상호 통합을 지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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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눈뜨게 하라 - 한국신협운동 선구자 평전
신협중앙회 지음 / 동아일보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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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열심히 살려 노력합니다. 어떤 이는 나의 생계와 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떤 이는 자아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경쟁 체제에 몸을 맡깁니다. 때로 좌절을 맛보지만 대개는 남들처럼 열심히 사는 게 뿌듯하며 이런 질서에 몸 담는 게 당연하다 여깁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옳을까, 이런 경쟁에서 설령 이긴다 한들 이웃의 아픔과 좌절감을 돌보지 않고 무자비한 질주에만 몰입하는 게 과연 도의적으로 올바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나아가, 소모적인 경쟁을 지양하고 처음부터 내 몫과 이웃의 권익을 구별해서 서로 협력하고 오손도손 사는 성숙한 지혜를 발휘할 수는 없을까에까지 생각이 머물 때도 있습니다. 아닐까요?


내가 돈이 부족하면 금융기관에 가서 빌릴 수 있습니다. 이자는 당사자의 신용과 자산 보유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개는 이런 이자 부담을 버겁게 느낍니다. 금융기관도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좀 싸게 안되냐고 물으면(물론 현실에서 그런 걸 물을 수도 없지만) 우리가 자선 사업 하는 곳이냐고 대뜸 퉁명스런 대꾸가 날아올 겁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 주는 곳은 과연 항상 이윤을 추구해야만 하나, 공동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이자는 최소한으로만 받을 수는 없을까?" 같은 의문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고려 시대, 조선시대에도 저리(低利)로 서민에게 곡식을 빌려 주는 곳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런 공적 기관이 제대로 그 취지대로 운영된 적은 거의 없고, 오히려 서민의 수탈 주체로 나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많습니다. 농협, 수협 등도 본래는 이런 취지지만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이제는 여타의 금융기관과 다를 바가 거의 없습니다. 


신협은 무려 1849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경제적 곤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심 없는 개인이나 기관이 도와 주면 잠시의 어려움을 딛고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선 사업"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주체도 서민들이고 받는 대상도 서민들입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평소에 내가 여유 있을 때 조금씩 돈을 모아 어려운 이에게 보태 주고, 나중에 내가 어려워지면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받는 것입니다. 물론 전혀 인센티브가 없으면 선뜻 출연(出捐)할 이가 없을 테니 소정의 이자는 지급합니다. 그런데 이 이자도 그리 작지 않으면서도 차입자에게 큰 부담도 안 주게 할 수 있는 것이, 애초에 중간에서 누군가가 이익을 취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동체조합원들만을 위한 조직이면 이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신협이며, 이 책에서는 그런 감동적인 신협 운동에 앞장섰던 선구자들을 조명합니다.


"가브리엘라 수녀는 자신의 말을 잘 따르고 맞춰 주는 비서가 아니라 자신만큼이나 뚝심이 있는 사람을 원했다(p90)." 이런 공익 추구 운동을 펼치는 건 철저한 애타심, 이타주의에 기반한 것이지만 불모지에서 이런 운동을 펼치며 온갖 난관, 이해관계자들의 방해를 뚫고 나가려면 여간 뚝심이 필요한 게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사업 추진에만 뚝심과 배짱이 필요한 게 아니란 뜻이고, 자신에게 한 푼 이익이 돌아올 게 없는 이런 일에 헌신하는 게 더 강단 있고 더 독한 마음을 품는 지도자가 요구됩니다. 


마침 그녀에게는 외국어도 잘하고 업무 추진력도 출중한 강정렬이라는 젊은이가 곁에 있었으며, 이어 박희섭이라는 청년도 합류했는데 그는 대한민국 농림부 장관 비서였습니다. 이상호, 박성호 등도 모두 젊은 열정에 불타는 인재들이었으며, 확실히 난제를 추진할 때에는 열정과 개인 역량이 겸비되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능력 출중하고 앞날 창창한 이들이, 눈 앞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이처럼 뜻 깊은 사업에 나선 건, 아마도 1950년대 같은 낭만시대라서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여튼 성인(聖人)에 가까운 헌신, 희생정신이 없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소명입니다.


혹시 이들이 모두 특정 종교의 신앙을 가졌기에 이런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운동에 뛰어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전도 유망한, 오늘날 기준으로 금융 스페셜리스트에 가까운 입장이었는데, 그 막대한 이익과 자아 실현 기회를 포기하고 낯선 대의에 동참할 수 있었을지. 오늘날의 각박한 세태에 비추자면 더욱 놀라운 결단입니다. 처음에 이들 젊은이들이 신앙을 바로 갖지 않아 아쉬웠으나 운동의 추진이 더 급했기에 구태여 강요하지 않았다는 수녀님의 지혜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가브리엘라 수녀님은 한국인들의 정(情)을 믿었다고 합니다. 냉혹한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서양인들에게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특징이죠. 수녀님의 생각엔, 이 올바르고 반듯한 젊은이들에게 신협 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 그리고 추진 주체인 자신에게 어떤 사적인 동기도 없다는 점을 강하게 설득하면 젊은이들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측은 멋지게 들어맞았습니다. 


"가난한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원조에 기대어 사는 건 국가 발전에는 좋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결국 어떤 나라를 빈곤에서 탈피하게 하는 방법은,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자조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리석게 고리대업자의 배를 채우는 손쉬운 방법을 택할 게 아니라, 너도 쓰고 나도 쓰게 곳간을 만들고, 평소에 아껴 써서 이 곳간을 채우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당장 절약하고 부지런해지는 건 어렵고, 고리대업자에게 내일을 생각 않고 돈을 빌리는 건 쉽습니다. 수녀님과 세 젊은이는 물질적인 난관도 극복해야 하지만, 서민들에게 이런 정신을 함양하고 일깨우는 과제, 어찌 보면 훨씬 어려운 작업까지도 맡아 나가야 할 처지였습니다. 


안티고니시에서 설령 대성공을 거둔 방법이라 해도, 머나먼 한국에서까지 성과를 거두리라고는 쉽게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수녀님과 멋진 협업을 이룬 분이 장대익 신부님이었습니다. 두 분 모두 사심 없이 대의를 위해 정열을 불태우는 분들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수녀님이 엄격하고 깐깐한 스타일인 반면, 장 신부님이 보다 포용적이고 유연하다는 점에서 두 분은 대조를 이뤘는데, 오히려 이런 대조적인 스타일이 창과 방패처럼 멋진 조화가 되었고 상호 보완이란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리더들이 신협 운동 초기에 선봉으로 서신 점도 한국에는 확실히 행운이었습니다. 


p204에 보면 장대익 신부님의 어린 시절이 소개되며 이때 같이 나오는 분이 윤공희 대주교님, 훗날 광주대교구장이 되며 5. 18 민주화운동에서 큰 기여를 하신 그분입니다. 이 영향으로 광주에는 유독 천주교 신도의 비율이 높다고도 하죠. 활발한 말썽꾸러기 기질도 가득했던 소년 장대익은 성장하여 정의감 충만한 신부님이 되었고 신협 운동에 대해 알게 됩니다. 안티고니시는 그 낯선 어감 때문에 어디인가 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소재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외방 전도회 소속 신부님들이 이미 먼저 와 운동의 기반을 닦아 놓으셨는데, 하나같이 빈곤 타파와 자립, 그를 통한 자존의 확립을 추구하는 소명에 불타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대목을 읽으면서, 오늘날과는 달리 교통도 미비했던 그 시절 많지도 않은 돈만을 소지한 채 목표지인 안티고니시까지 찾아가는 일 자체가 엄두가 안 날만한 난관이었겠다 싶었습니다. "키는 작지만 발걸음이 재고 성큼성큼 걸으며 남들을 이끄는" 장대익 신부님에 대한 묘사를 보며 그 모습에 대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을 거치며 사회가 혼란스럽고 빈곤이 만연했을 때 이 가난한 나라에 가장 먼저 구호의 손길을 뻗은 곳이 천주교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가톨릭은 세계적인 조직을 갖췄고, 이 무렵 밀가루 등 구호품을 전달하여 빈민의 마음을 어루만진 것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이 와중에서 비리를 취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도 운전수들이 이른바 "삥땅(책에는 그런 저속한 용어가 안 나오지만 그 시대를 산 어른들은 흔히 본 풍속이죠)을 치고"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관행임을 억설하는 한심한 행태가 나옵니다. 


강정렬 박사는 이런 탈법에 대해 원칙대로 단호하게 맞서기보다, 그들의 딱한 처지를 알고 급여의 일부로 전환 지급하는 놀라운 관대함을 보여 줍니다. 마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미리엘 주교가, 은촛대를 훔쳐 경찰에게 잡혀 온 장발장을 옹호하며 "이는 내가 선의로 준 것"이라며 그를 감싼 장면과 비슷하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신에게 이처럼 너그럽게 대한 주교에 감동하여 장발장은 인간 막장에서 위인으로 거듭납니다. 


강정렬 박사님의 거룩한 삶은 그 밀도도 높았지만(대의에의 헌신), 그 폭도 넓었습니다. 이 책에 감동적으로 서술된 한 편의 영화 같은 박사님의 삶을 보면 필리핀에서 온 젊은이를 만나 소통하는 장면도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1960, 70년대 필리핀에 만연했던 공산주의 게릴라의 한 단면도 엿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킬링 필드"를 초래했던 크메르 루즈 이야기도 간접적으로 언급됩니다. 정치색이 배제된 채 오로지 민중의 삶을 구제하고 가난을 타파하는 데만 전념했던 강 박사님의 노선이 이들과 마냥 맞을 수 없는 게 당연했지만, 강 박사님의 소신이 워낙에 강직하고 한 점 먹구름이 없는 청신한 것이라서, 그 웅대하고 순일한 그릇에 마치 현대사의 얼룩이 다 녹아드는 느낌입니다. 선(善)과 헌신, 이웃에 대한 사랑, 연대 정신 같은 숭고한 미덕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한 번뿐인 인생을 그를 위해 불사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이런 거인들의 발자취를 보면, 내 자신의 비루함과 인색함, 소견 좁음과 이기주의가 너무도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나요? 읽으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 개인적으로 근래 드물게 겪은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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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의 눈으로 보라 - 주식.채권에서 M&A.LBO까지 단숨에 이해되는 금융의 논리
김지훈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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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이라고 하면 사실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수학, 통계 쪽이라면 고급과정에서 그 배우는 학생이 머리가 딸려서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죠. 반면 상업(예금)/투자은행이다 모기지다 OTT다 선물이다 하는 건 그저 제도에 대한 설명일 뿐인데, 가르치는 이들의 설명이 부실해서 학생들이 이해를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가르치는 사람의 잘못인데, 한국에 없는 제도를 억지로, 경험도 못 해 본 걸 자기 식대로 이해해서 가르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없죠. 그래서 이런 항목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이에게 배워야 하며, 가르치는 이가 좋은 커리어까지 갖춘 분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죠.

예금(상업)/투자은행의 구분은 전형적인 교과서식 앙상한 설명으로 끝나는 항목인데, 그 중에서도 대체 투자은행이 뭔지는 대부분이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의 증권회사와 비슷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특히 이 책이 "(그것은) 잘못된 것(p20)"이라고 아주 콕 집어서 바로잡습니다. 후자는 듣는 사람도 이상하게 느끼는 게, 아니 그럼 왜 구태여 그걸 투자은행이라고 부르며, 왜 한국에는 굳이 증권회사라고 하는 게 발달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을 평소에 가져 온 이들이라면, 아마 이 책 한 권 읽고 싹 해결되지 싶습니다.

일단 투자은행은, 한국에서도 몇 군데의 증권회사가 약간 포맷을 달리하여 이제 명색이 "투자은행"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특히 증권 섹터에서, 보다 제고된 전문성을 발휘하리라는 기대인데 우리 일반 소비자들은 본격 가동된 투자은행이 (원래는) 뭘 하기로 된 곳이었는지, 나아가 선진 금융이 나래를 펴면 현재의 환경이 어떻게 바뀌겠으며 바뀐 환경에서 나의 투자 전략이 어떤 변신을 꾀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적어도 저는 평소에 갖던 의문이 대부분 해소되었습니다.

주식이란 무엇이냐? 보통 한국인들은 "도박 비슷한 것.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특히 p28에서, 이런 가치투영적 관점, 나아가 무슨 선악을 가르는 듯한 이해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취지로 말합니다. 주식이란 그저, "소유권에 대한 지분"을 표창하는 게 원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증권 형태로 되어 있으니 유통이 자유롭고, 유통이 자유로운 건 그저 부차적인 모습일 뿐인데 이걸 메인으로 착각해서 "도박꾼들의 장난감" 같은 누명을 씌우는 거죠.

그러면 회사의 지분 소유에 중점을 두고, 가치 있는 회사에 내 돈을 투자하여 적당 시기에 배당을 받게 해 주는 수단인가. 물론 그렇죠. 책에서도 이와 같은 원칙론, 원래의 모습에 포커스를 둡니다. 그런데 원래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의 부차적 기능인 "투자 수단,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모습도 덩달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 책 제목을 보죠. "투자은행의 눈으로 보라" 뭘 보라는 걸까요? 주식의 실체? 혹은 성공적인 투자 방법? 투자 섹터의 작동 원리? 그 모두입니다. 투자은행이 본래 금융의 본고장에서는 증권 발행과 유통의 중심에 놓여 있으니, 투자 은행만 칼같이 정확히 이해해도 이 분야 전반에 걸친 눈이 새로 띈다는 소립니다.

어떤 사업자가 무슨 사업을 론칭한다, 혹은 이미 론칭된 사업을 보다 큰 덩치로 키운다, 이걸 위해서는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다른 회사에 흡수되거나 흡수를 하거나, 아니면 일정한 비율로 합치거나 할 수 있겠죠. 투자은행은 이 모두에 간여하는 전문가들의 집단입니다. 특히 저자는 투자은행이 하는 일 중 "인수합병"을 강조합니다. 인수합병은 1990년대 이래 M&A라 하여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적어도 그 이름만큼은) 사항입니다.

왜 M&A가 그리 중요한가? 당사자(회사)끼리 일을 추진하면 본래의 목적이 잘 달성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이 잘 마무리되면 서로가 윈윈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세하게나마 자신만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신경전이 벌어지며, 이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으로 일이 틀어지기 쉽죠. 뭐 거기서 그치고 없던 일로 돌아가기나 하면 좋은데, 이 과정에서 상대 회사의 기밀이라도 누설되면 걷잡을 수 없는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내다봤다면 "저 회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아예 일이 추진되지도 않을 수 있죠. 이건 당사자들에게도 손해이며, 신뢰가 구축되지 않아 바람직한 결과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듯) 빚어지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내 회사와 상대 회사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작업은 애초에 당사자들끼리의 협상만으로는 합의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중간에 나서야 하며, 그 실사(가치 측정)도 쌍방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기관의 사회적 공신력과 전문성이 매우 높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건설적 M&A가 잘 안 벌어지는 이유는 이런 명망 있는 투자은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이 과연, 어느 한쪽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불공정하게 일을 추진할 동기는 없을까? 경제학에서는 이를 모럴 해저드 이슈로 다루죠. 사실 모럴 해저드(함정)는 괜히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게 아니라서, 어떤 부패의 유인이 있으면 좀처럼 이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되듯, "사회적으로 공신력 있는 투자은행"이 떡하니 있고 활발히 가동되어야 하는 겁니다. 투자은행에서 커리어를 키워 가는 스페셜리스트(예를 들면 이 책의 지은이 같은)는, 내가 어느 투자은행에 근무하며 이 (유명한) 거래를 성사 시킨 사람이다 라고 경력 사항을 만들어나갈 "유인"이 충분히 존재하며, 이런 유능하고 명예욕 넘치는 이들이 또한 기존 저명 투자회사의 평판을 계속 이어나가는 겁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건, 미국에서는 상업(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의 준별이 아주 엄격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책에도 나오듯이, 1990년대 후반에 그 오래된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어, 한 기관이 투자은행과 상업(예금)은행 업무를 혹 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선 시기에 보험과 은행이 겸업 가능해지는 등 이른바 방카슈랑스가 등장하기도 했죠. 이 모든 추세는 특히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가 내세운 "규제 완화, 폐지"와 맞물려 급속하게 추진되었고 경제 활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짙기 마련이라, 2008년에는 이런 거품이 드디어 부실의 누적과 더불어 터져 버렸습니다. 글래스-스티걸 법이 오래 전에 제정된 취지는, 일반 서민의 저축을 취급하는 은행이 "위험성 다분한 기업 투자"에 나서면 결국 서민 살림, 나아가 국민 경제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결과였고,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어떤 과정을 통해 파국으로 치달았는지가 이 책에 소설처럼 아주 자세히 설명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한데, 책에는 이를 위해 파악해야 할 여러 개념들이 잘 설명됩니다. p186에서 저자도 재미있게 설명하듯, 아니 왜 "현금"이 회사 가치 파악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어려워할 이들이 있겠죠. 답은, "회사의" 가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집에 주택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누가(은행이라든가) 실사를 왔는데, 집주인이 "내가 가진 현금이 이 정도요" 라며 금고를 보여 주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되겠죠(집에 저당권을 설정한다든가 할 때를 생각해 보면). 건물 자체, 혹은 회사 자체의 가치를 알아야 하니까요.

"비지배주주지분"도 별게 아닙니다. 회사의 가치에는 "그 회사를 믿고 빌려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린 부채도 들어갑니다(자산에 부채가 포함되듯이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지배하는 회사가 갖지 않은 다른 지분도 부채와 결국은 유사한 개념이니 포함되는 게 당연합니다(회계상으로야 엄연히 다르지만). 반면 "지배주주지분"은 거꾸로 내가 다른 회사를 믿고 빌려 준 부분이나 마찬가지이니 "그 회사의 가치"에 들어가야지 내 회사의 가치에 포함되면 안 되는 거죠. 이거는 사실 영어로 읽으면 아무 헷갈릴 게 없는데 한국어로 번역이 저리 되어서 이해에 혼란이 오는 겁니다. 이 저자의 잘못은 아니고 한국 학계의 관행이 그런 거죠.

한국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분히 따르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제 한국 고유의 특성보다는 이런 보편성에 모든 게 수렴해 가는 과정입니다. 여태 한국에 없던 "투자회사"의 개념을 속속 파악함으로써, 역으로 투자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이 지평선을 통해 다져 나가는 게 이 책의 취지이겠습니다. 요즘은 거의 전 국민이 주식하는 세상인데, 금융깨나 잘 안다는 분들도 이 책으로 (말 그대로 투자은행의 관점에서 풀어낸 설명을 통해) 모르는 부분, 이해가 미진했던 부분을 명쾌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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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AI 비즈니스 모델 - 비즈니스 캔버스를 만들기까지
정두희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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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조경으로 활용할 수도, 열매를 얻을 수도, 목재로 활용할 수도 있다. ... 애플리케이션이 사용자에게 어떻게 활용되게 할지, 이를 통해 기업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게 할지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다(p24)."

"사고하고 학습하고 발전하는 인간의 방식을 구현해 놓은 정보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이며, AI 혁신은 바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혁신(innovation)을 하는 것이다(p21)."

2016년 알파고가 인간 바둑 고수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생활 속에 AI가 부쩍 잦은 빈도로 침투해 들어왔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SF영화에서나 보듯 똑똑한 로봇의 시중을 받기는 고사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번역 서비스조차 그리 큰 만족감을 주지는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AI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방향성의 수익을 창출하거나 기존 사업의 혁신을 꿈꾸는 건 소비 섹터가 아닌 생산자들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일반 소비자는 트렌드에 무심하다 해도, 경쟁자들보다 한 발 두 발 앞서가야 내일의 생존이 가능할 비즈니스맨들은, 4차 산업 혁명으로 게임 체인징이 이뤄지는 가까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사업 분야와 전혀 관계 없어 보이던 AI를 이제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단계인 듯합니다. 새로 창업하려는 젊은 도전자들이라면 AI를 도외시한 스타트업이 애초에 불가능하리라는 현실 정도는 당연히 자각헤야겠고 말입니다.

p33에서 저자는 말합니다. "과거에는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how to solve)가 중요했던 반면, 앞으로는 어떤 문제를 푸느냐(what to solve)가 중요해진다." 즉, 우리는 수많은 문제들에 휩싸여 전전긍긍하지만 애초에 잘못 설정된 과제를 붙들고 비능률적인 싸움을 벌여 온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의 적극적 활용은, 아예 처음부터 올바르게 설정된 문제 개념 자체를 잡아 주며, 이를 통해 쓸데없는 시행착오나 비효율적인 우회 경로를 모두 피해갈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AI는 그만큼이나, 기존 사업의 판도와 구조 모두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혁신의 tool입니다. 제대로 정의도 되지 않은 문제는 애초에 잘 풀릴 수가 없습니다.

p48에는 AI의 5대 기능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5요소는 기능이기도 하고, AI가 어떻게 가치 창출을 하며 스스로를 진화시키는지 보여 주는 과정의 다이어그램이기도 합니다. 인식, 예측, 자동화, 소통, 생성의 5단계인데, 사실 그 하나하나가 기존 컴퓨터의 수동적, 기계적 장점으로는 완수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특히 마지막 기능인 "생성"은 인간의 창조적 본성을 따라한 것으로, AI의 본원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예측 중에서 특히 중요한 건 맥락의 예측입니다. 다른 예측은 구세대 컴퓨터에서 그저 CPU 성능만 개선해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었으나, "맥락의 해석"은 본격 인간의 고등지능에 도전하는 과제이겠기 때문입니다. 자동화 역시, 기존의 컴퓨터는 인간이 설정해 놓은 규칙 아래에서의 수동적 최적화인 반면, AI는 인간도 채 알 수 없었던 단계로의 자율적, 자가최적화입니다(p55). "자동탐색"의 좋은 예는 이미 알파고의 대국에서 우리 모두 잘 감상한 적 있죠. p60에는 기계적 생성이 아닌 심미적 생성(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 온)이 나오는데, 이 AI 화가 오비어스는 "생성적 적대신경망"을 탑재했다고 책은 설명합니다(GAN에 대해서는, "생성적 대립 신경망이라는 번역어도 쓰이는데, 이때 "대립"은 생성모델과 판별모델 사이의 대립을 뜻합니다).

"알고리즘의 정교함은 데이터의 부재를 구제해 주지 못한다(p105)." 아무래도 현대 AI의 발전은 빅데이터가 확보되고부터 그 든든한 기반 하나를 마련한 게 사실입니다. 다만 구세대 프로그래밍에서는 데이터가 빈약해도 정밀하게(사실은 그렇지도 못해서, 한국에서는 "돌아가기만 하면 프로그램"이란 잘못된 상식이 널리 통했었죠) 고안된 알고리즘이 더 중요히 여겨졌고, 데이터는 운용 후에 차차 확보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목도하는 AI는 방대한 데이터 안에서 자체 알고리즘을 AI 자신이 생성해 나가는 구조입니다. 이게 안 된다면 그건 이미 AI가 아니며 4차 산업혁명 양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구세대 IT 전문가라면 "데이터가 우선이고 알고리즘은 다음 문제"라는, 완전히 뒤바뀐 패러다임에 쉬이 적응하기 힘들 것입니다.

어떻게 데이터를 확보할 것인가? 개발자(혹은 더 넓은 의미로 생산자, CEO)가 모두 무슨 포털 사이트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입수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가는 구글 같은 곳에서는 다양한 API를 마련하여 이용자들이 자신의 편의에 따라 요모조모로 활용할 수 있게 이미 게시해 두고 있습니다. 윈윈을 추구하는 진정한 플랫폼 사업자임에 틀림없죠. 반면 IT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타벅스 같은 기업도 고객의 취향에 대한 심층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 플라이휠"을 활용한다고 합니다(p108). 이것만 봐도, 빅데이터의 활용과 AI 중심의 사업 구조 구축이 몇몇 소수 뱅가드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이미 모두의 과제임을 알 수 있죠.

가장 골치아픈 일은, 효율적인 AI의 작동에 방해가 되는 이른바 "더티 데이터"를 어떻게 걸러냐느냐 하는 이슈입니다. 실제로 며칠 전 어느 신문기사에서도, 이런저런 데이터만을 잘 학습한 AI가 느닷 인종차별적 언사를 내뱉어 관계자들을 당황시켰다는 사건을 다뤘죠. 더티 데이터에 오염되어 그로부터 잘못된 학습을 하고 바람직하지못한 사고 패턴을 생성한 AI는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테크놀로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소양이 있어야 사업 모델 형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일단 주변의 사소해 보이는 자료, 자원부터라도 최대한 활용할 것을 권하며, "최소의로데이터도 전혀 없는 기업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데이터로 유용한 소스로 바꿔 주는 API도 적잖게 나와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가치의 경로"를 시급히, 그러나 정확히 그려낼 것을 조언합니다. 기술에 대해 깊은 소양이 없더라도, "절실한 경험을 통해 자신도 미처 몰랐던, 그러나 대중이 간절히 원해 온 니즈를 발견"하면 가치 경로 역시 어렵지 않게 완성됩니다. 이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모든 세부 기술에 능통한 엔지니어는 아니었던) 故 스티브 잡스이겠습니다. 평생 스마트폰에 대한 컨셉 하나만 붙들고 산 그였기에 (자신이 아닌) 남들이 발견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누구보다도 빨리 상용화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AI의 5대 기능 중 첫째 순번에 놓였던 "인식(의 정확성)"은 종전 전문가들이 수행하던 많은 작업을 대체합니다. "인식"은 물론 다른 네 가지 기능과 서로 융합하여 AI를 완성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의학 등 핵심적 분야에서 인류에 큰 혜택을 이미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가정의, 주치의 제도가 (예를 들어 미국에) 있다 해도 로컬 전체의 주민을 커버하기란 한계가 있는데, AI는 거의 완성에 가까운 "개인화"를 이루어 효용을 극대화합니다(p151). 책에는 프로 스포츠 구단에 "존 세븐"이란 시스템을 도입하여 부상 선수를 크게 줄인 사례가 나오는데, p151뿐 아니라 저 앞 p40에서도 언급됩니다. AI의 "개인화" 서비스에 크게 성공한 극적인 케이스입니다.

아마 개인화의 가장 절실한 니즈는, 온라인에서 골라 본 옷 등이 막상 배송 후 착용시 나에게 잘 안 맞았다든가 하는 당혹스러운 경험에서 잘 나타날 것입니다. p165에서는 "엘리먼트퓨어"라는 AI 시스템을 예로 들어 이런 고충을 말끔히 해결한 모범 케이스를 보여 줍니다. p186에는 아마존에서 시행 중인 프라임 퍼스널 쇼퍼가 나오는데, 퍼스널 쇼퍼(shopper이며, chauffeur가 아닙니다)는 쇼핑 갈 시간도 없는 바쁜 부자들을 위한 심부름꾼 비슷한 거죠. 이 아마존 서비스는 소비자가 뭘 주문하기도 전에(!) 그의 취향을 잘 파악하여 미리 상품을 배달해 주는데, 마음에 안 들면 그대로 반품하면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로 가치를 창출"한 예로 평가하는데, 이 책에서 염두에 두는 모든 사업 모델은 "탁월함"을 구현하며, 탁월하지 못한 건 미래(아니 현재)에 이미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암시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물론 (사업가가 완벽히 이해하고 개인화한) AI입니다.

저자는 책 내내 "네트워크 선순환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양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교한 알고리즘을 구축하여 사용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마련되면, 이에서 서비스를 소비하고 다시 체험을 공유하는 유저들의 (무의식적인) 기여 덕분에 다시금 양질의 Db가 높이를 쌓아가고, 다시 서비스는 좋아져서 소비자는 만족하고... 뭐 이런 식입니다. 이를 통해 AI의 5대 기능 중 하나인 "소통"이 더욱 내실화함은 물론입니다.

유능한 개발자는 기업 안에서 우대되어야 합니다. 파이썬, 텐서플로, 케라스 등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하며, R을 능숙히 이용하고, 기본적인 수학, 통계 지식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p202). 어떤 경우에도 인력 확보가 가장 중요한 준비임은, 뒤 p213에서도 다시 강조됩니다. 매뉴얼이나 훔쳐 보며 서투른 발걸음을 듬성듬성 떼는 사이비 인력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이런 기술 지식도 필요하지만, 산업 자체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며, 어쩌면 가장 중요할 "고객 지식" 역시 필수입니다. 사업이란 기본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며, 혁신도 최소한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가능하므로 ROI 전략 수립(p208)도 필수입니다.

AI 전략이 비즈니스 전체 전략과 통합이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에 "하나를 위한 전체, 전체를 위한 하나" 같은 말이 유행했는데, 책에서는 이것과 비슷하게 "비즈니스를 위한 AI, AI를 위한 비즈니스"란 말이 나옵니다(p224).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전 부서의 협력 체계(p225)이며, 또한 리더십(p229)입니다.

AI의 경이적 기능은 누가 뭐래도 "예측"에 있습니다. AI와 무관해 보이는 할리데이비슨 같은 제조업체도 "AI 기반 마케팅 플랫폼인 '앨버트'를 도입하여, 세일즈 리드 고객을 무려 2930%나 확장시켰다"고 책에 나옵니다(p235).

일본에서는 AI가 사회 전반에 확산할 경우, 고대 신탁 관습처럼 아무 근거도 없이 "상서로운 새, 무당, 천체의 조짐 따위가 신의 뜻을 대신 전했다"며 정체불명의 권위가 이성과 논리를 대체할 결과를 몹시 우려한다고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p238 이하에서, "AI의 최대 단점 중 하나는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엔지니어, 개발자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실, 앞에서 강조한 대로 뛰어난 개발자, 연구 인력을 확보하여 결국엔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을 구명해 내야 할 문제라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법적 책임을 가릴 때 결국은 법원과 소비자 앞에 설명을 해야 할 기업의 책무를 지적하네요. 현재 자율주행의 전면 도입이 늦어지는 것도, 기술적 완성도 문제보다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법적규율을 어찌 마련할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미비한 탓이 크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이 책도 결국은 기업이 매순간 직면하는 선택의문제를 빼놓지 않습니다. AI와 무관한 시대에도, 기업은 결국 비용을 최소화할지, 아니면 수익을 극대화할지가 문제였고, 이는 AI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재미있게도 연구조사결과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기업일수록 수익 창출에 무게를 두며, 후발주자일수록 비용을 아끼며 소극적 혁신을 한다고 결론냅니다(p262). 물론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건 전자입니다. 애초에 AI 자체가 혁신을 그 본성 중 하나로 삼지 않겠습니까.

책 말미에는 "독자의 회사에서 어느 정도 AI 친화, 내면화를 이뤘는지" 테스트할 수 있는 항목이 나와 있고, 간단한 용어 설명이 정리됩니다. 아 그럼 "회사"를 갖지 못한 나와는 무관하고나 하며 안이하게 넘길 수 있지만, 미래는 대부분의 시민이 어느 특정 직장에 소속되기보다,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AI 시스템 하나를 끼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파는 생산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신문 방송 등은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며, 컨텐츠가 있는 개인들은 유튜브 등 플랫폼을 통해 나를 봐 달라며 1인 방송을 하지 않습니까. 이를 통해 올리는 수익도 일급 유튜버의 경우 엄청나죠. 모두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만인 생산자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일단 이 책을 통해 마인드셋을 하나 만들어놓아야 할 듯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코딩도 배워야 하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기술 소양도 쌓아야 하겠죠. 다시 강조하지만 "비즈니스(사업)는 이제 모두의 비즈니스(관심사)가 되어 가는 중"입니다. 사업가 아닌 사람은 못 살아남는 세상이 곧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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