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있는 캐릭터 일러스트 그리는 방법
우타보 지음, 고영자 옮김 / 정보문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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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있는 캐릭터? 캐릭터 뒤에 배경 그려 넣으면 되지 않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접하는 만화, 웹툰, 일러스트에서 캐릭터 뒤에 아무것도 없이 덩그러니 백지인 경우는 거의 없죠. 뭐가 있어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 배경이 아무 의미 없는 공백 메우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배경은 "만드는 사람의 명확한 의도가 전해지는" "스토리가 느껴지는 장치"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극에서 소소한 도구로 의미심장한 효과를 빚는 미장센의 기능과도 닮았습니다.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가르치는 건, 어떤 배경을 캐릭터와 함께 구성해야 작품의 구조가 더 촘촘해지며 독자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선사하느냐는 것입니다. 

p38을 보면 주관과 객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작품 안에서 주관이란,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나 개성적인 요소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럼 객관이 무엇일지는 우리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건,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 필요한 사실적인 정보를 뜻합니다. 주인공이 학교로 아침에 걸어가는 건 객관입니다. 골목길에서 낯선 남자애와 내 여친이 즐거워 보이는 대화를 나누는 걸 목격하고 마음에 엄청난 동요와 당혹감, 분노로 발전하기 전의 흥분이 밀려오는 건 주관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더 중요시해야 하는 건 주관이라고 합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표현이며, 표현이 아닌 건조한 사실만을 전달하는 건 잘 봐 준다고 해도 다큐 장르이며, 심지어 다큐라고 해도 주관이 들어갑니다. 그림을 처음 배울 때는 피사체를 정확히 재현하는 데에 치중합니다. 실물과 똑같이 그려내면 그 일치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친구나 선생님께 칭찬받습니다. 그런데 예술가로서 어느 단계 이상으로 올라서려면 모사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자신만의 개성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아니라면, 이건 이발소그림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가 없죠. 저자도 사람들에게 더 큰 환호를 받을 때가, "자기 재미로 자유롭게 표현한 그림(p38)"을 그렸을 때였다고 회고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세상에서 나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렸을 때였다." 예술의 본질을 다시금 곱씹게 만드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한 그림은 사람들이 뭔지 잘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물론 어떤 예술가의 미감이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가서 나중에서야 관객들이 진도(?)를 따라오는 경우도 있겠으나 가능하면 당대에도 대중적 인정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겠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과 주관의 교차점, 교집합을 최대한 찾아나가야 하겠습니다. 반대로 객관만이 강조된 그림은 트렌드에는 잘 맞아떨어지겠으나 뭔가 개성이 없어 보일 수 있는데, 이럴 때에는 작가 자신만의 "애착 (오브제)"를 하마 추가해 넣으라고 조언합니다. 읽으면서 과연 그렇겠다 싶은 수긍이 든 대목이었습니다. 

배경도 캐릭터 못지 않게 선명한 이미지로 독자에게 다가와야 합니다. p80 이하를 보면 레이아웃을 통해 그 깊이를 느끼게 하는 기법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 뒤에 창문을 그릴 때, 커튼으로 꽉 가려진 창을 그리는 것과, 창이 열려 바깥의 풍경이 보이게 하는 건 완전히 다른 효과를 냅니다. 그 풍경은 이제 평면상에 새로이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또 저자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이 창 밖 풍경이 완전히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까지를 낸다고 합니다. 캐릭터 뒤 뿐 아니라 앞에다가 작은 소품(쌓인 종이, 책)을 놓되, 약간 흐리게 처리하면 캐릭터에 더 주의가 집중된다고 하네요. 

모든 회화 제작 과정이 그렇겠지만 여기서도 일단 러프하게 초안을 잡고 앞에서 배운 기법들을 적용시켜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우리 독자들에게 자세히, 천천히(=단계를 잘게 나눠), 친절하게 가르칩니다. 빛과 그림자 모양을 레이아웃으로(앞 페이지에서 가르친 내용들입니다) 넣고, 필요에 따라 고유색도 넣습니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게, "그림 전체의 빛이나 그림자 모양은 후공정에서 크게 수정하기 어려우므로 러프 시점에서 대략적인 방향성을 정해 두라(p85)"고 나옵니다. 여기서 [곱하기]로 그림자를 넣었는데 그 방법도 앞에 나왔죠. 이렇게 6단계까지 온 후에, 혹시 최초의 구상과 뭔가 위화감이 생긴다면, 최초의 그 느낌을 최대한 다시 떠올려 조정 작업을 통해 마무리지으라고 합니다. 물론 거꾸로, 여기까지 해 놓고 보니 이게 더 그럴싸해서 아예 다른 컨셉으로 완성하는 경우도 있겠죠. 

예술은 그저 정확성만을 추구하는 기계적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예술가만의 혼과 개성이 드러나는 터치가 무척 중요합니다. 이 책에는 그런 예술가의 기본 스탠스가 책 곳곳에서 배어나서, 단순한 어떤 테크닉 뭉치 이상의 것을 배운 듯해서 뿌듯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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