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피그마 -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책 한 권으로 따라해보는 UXUI 프로세스!
김시완.정현민 지음 / 정보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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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어려서 국어 교과서에서 동시(童詩)를 암송하고, 음악 시간에 동요를 부르며 성장했습니다. 물론 허세를 부리며 구태여 성인 가요를 따라하려 애쓴 애들도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건전한, 듣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동시, 동요를 읊조리며 벅차오르는 감동, 혹은 어릴 때에만 느낄 수 있는 환희 등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린이들은 아직 바른 자세를 몸에 배게 하며 손에 연필을 똑바로 쥐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기왕이면 그 텍스트가 티없이 맑은 동시라서, 그 순수한 마음에 정의와 용기와 수오지심이 가득 차서 어른이 되어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불의를 단호히 배척하는 영혼으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딱히 동시를 지은 분이 아닌데, 워낙에 그 마음에 티끌 하나가 자리하지 않던 거룩한 마음씀을 지녔던 시인이라서인지 그의 작품을 동시로 읽으면 동시처럼도 읽힙니다. 저는 어렸을 때 국어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의 작품 <새로운 길>이 아직도 입에서 맴도는데,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 길 새로운 길..." 이렇게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이 시가 분류상 동시에 속하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읽어서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듯한 그 느낌만은 분명합니다.

이 책 p34에는 시인의 작품 <눈>이 실렸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왼쪽 페이지에 작품이 제시되고, 오른쪽 페이지에 이를 따라쓸 수 있게 빈 노트 줄이 인쇄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들 초등학교 때 시화전(詩畵殿)이라는 걸 자체적으로 열어, 시도 지어 보고 자작시를 도화지에 그림과 함께 그려 솜씨를 뽐낼 기회를 가졌더랬는데 요즘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시의 배경에 예쁘고 담백한 그림이 실려, 마치 초등학교 시화전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p66에는 김소월 시인의 <부엉새>가 나옵니다. 간밤에 부엉새가 그리 울고 가더니 그 설움이 하늘을 덮어서인지 오늘은 내내 하늘이 흐려 해를 못 보고 날이 저문다는, 아이다운 감정을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부엉새에 오히려 강렬히 공감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새의 마음을 풀어 주어 같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속내가 아니겠습니까. 부엉새는 밤이 자신의 시간이니, 낮에도 그 시간이 내처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부엉새를 빨리 달래야 한다, 시인의 티없는 동심의 흐름은 이랬으리라 짐작합니다. 페이지 하단에는 어린 독자들이 읽어 보고 한번 생각해 볼 점을 짧게 노트한 문장이 있습니다.

<감자꽃>으로 유명한 권태응 시인은 마치 현대에 활동한 분 같지만 사실은 윤동주 시인과 생몰 연도가 거의 같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요절했다고 볼 수 있는 윤동주 시인과 사망연도까지 비슷하다는 건 권 시인 역시 요절했다는 뜻입니다. p86에는 그의 시 <앵두>가 실렸는데 역시 권 시인 특유의 청랑한 이미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담뿍 표현되었습니다. 살짝 주황에 가까운 앵두의 터질 듯한 싱그러움이 드러나는 그림도 아름답습니다. p94에 권 시인의 다른 작품 <한동네사람>이 실렸는데 그의 끈끈한 공동체의식, 이웃에 대한 소박한 신뢰가 드러납니다.

p110에는 정지용 시인의 <할아버지>가 실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작품인데, 평생을 자연과 벗하며 농사를 지어 온 그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서자 오래지 않아 비가 내리더라는 내용입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씀과 간절함이 온 우주에 닿으면 사실 어떤 기적도 이뤄질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책장을 넘기며 초심을 찾을 수 있는 예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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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로 책쓰기 - 책 쓰기를 위한 나만의 현명한 AI 활용 비법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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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는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바다의 강자입니다. 1974년 미국에서 상스럽지만 현실감 넘치는 스타일로 베스트셀러가 된, 피터 벤츨리의 장편소설 <조스>를 보면 인간이 미지의 바다에 대해 품는 모든 혐오와 전율이 상어라는 동물에 모두 은유, 투영되었습니다. 미녀의 늘씬한 다리를 한입에 자를 수 있는 이 난폭하고 잽싼 물고기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 걸 보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상한 동물인데 어른보다도 애들이 상어에 열광하는 걸 보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64를 보면 이 책의 저자 버즈 비숍(Buzz Bishop)의 사진과 약력이 나옵니다. 나이 지긋한, 사람 좋아보이는 중년 남성인데 그 인스타(@buzzbishop)를 찾아가보니 팔로워 1만의 인플루언서입니다. 저서의 표지가 게시되었는데 캐나다판 원서와 이 한국어판이 같은 디자인입니다. 차분하지만 열정을 뿜어내는 개성으로 보이는 저 방송진행자가 쓴 이 책은 어린 독자를 주로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지만 그 내용은 아주 꼼꼼하며, 게다가 정성들인 일러스트가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p1을 보면 상어는 지금으로부터 4억 년 전에 지구에 출현했으며 심지어 공룡보다도 오래된 동물이라고 합니다. 상어는 어류이며 공룡은 파충류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입니다만, 이 정보를 아이들에게 말해 주면 아니 그 공룡들은 벌써 몇 천만 년 전에 멸종했는데 어떻게 상어처럼 아직도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이 더 오래될 수 있냐고 놀랍니다. 이런 아이들은 우리 인간이 비교적 최근에 지상에 등장했다는 점도, 또 현생 동물들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는 똑똑한 애들입니다.

늑대나 개 등은 마치 사람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며 협동을 통해 사냥하는데 이 방식이 대단히 큰 효율을 발휘한다는 건 우리들이 잘 압니다. 늑대가 만약 혼자 다닌다면 다른 고양잇과 맹수에게 쉽게 포식당할 것입니다. 이 책 p6을 보면 마치 개떼처럼 무리지어 다니는 상어를 영어로는 dogfish shark라고 부른다는데, 우리말로는 이 상어들을 묶어 돔발상어목(目)이라 칭한다고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상어들은 혼자 다니거나 기껏해야 암수 한쌍이 같이 다니는 정도인데 늑대처럼 떼지어 다닌다니 신기합니다. 하긴 1983년작 <Never say...>를 보면 주연배우 숀 코너리가 상어 무리에 쫓기는 장면이 있기는 했네요.

심해에 사는 생명체는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특이한 생태를 가진 게 많습니다. p24에 나오는 그린란드상어는 역시 돔발상어목에 속하는데, 최대 400살을 산다니 대단합니다. 그런데 시력을 잃어서 앞을 보지 못하고, 대신 후각이 매우 발달했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눈이 안 보이는 대신 다른 뛰어난 감각이나 능력으로 보상한다고 했을 때 (무슨 데어데블도 아니고) 아무도 그런 제안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 밑이라면 빛이 부리는 조화가 육상만 못하니, 시각이라는 감각의 효용이 덜할 수도 있겠습니다.

p32에는 삿징이상어라는 종이 나오는데, 이게 영어로는 zebra bullhead shark라고 하네요. 목(目)으로는 괭이상어목인데, 몸에 저렇게 난 줄무늬를 보면 그런 이름이 붙을 만도 했겠구나 싶습니다. 크기는 대체로 작은 편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망치 모양으로 생겨 hammerhead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큰귀상어도 있는데(p43), 이런 머리 모양 덕분에 몸을 돌리지 않아도 뒤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말로는 뱀상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tiger shark라고 하니 특이한데 몸에 난 줄무늬가 역시 그 이유라고 나옵니다(p48). 한 번에 서른 마리까지 낳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영화에 자주 출연하여 아마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녀석이라면 p56에 나오는 백상아리겠습니다. 몸무게는 2.7톤, 엄청난 힘을 지닌 턱, 이빨, 꼬리까지, 정말 강력한 괴수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상어의 생태를 미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여,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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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가워 잘가
김미란 지음 / 주부(JUBOO)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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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간다는 하나의 징표입니다. 어려서 엄마, 아빠만 알던 아이가 또래들과 소통하고 긴밀한 정서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격도 성장하고 감정도 더 풍부해지게 마련입니다. 이 작은 책은 모두 13단계로 구성되었는데, 표현 하나에 9개 국가 언어가 같이 딸려옵니다. 예전 같으면 9개 국어를 배워 봐야 일생을 두고 어디다 써먹을까 회의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습니다. 물론 챗GPT 등이 있어 말을 번역도 해 주겠지만, 기왕이면 사람이 직접 자신의 영혼을 담아 정겨운 말투로 말을 건넨다면 사람 간의 마음이 더욱 도탑게 오갈 것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3챕터에는 QR코드가 달려 있어서 원어민들의 발음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원어민들의 발음을, 아직 선입견 없이 깔끔하게,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어른은 이게 안 됩니다) 어린이들에게 자주 들려 줘야, 나중에 발음기호나 다른 보조 수단 없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인사 "안녕!"은 아마도 모든 언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표현이겠는데, 프랑스어로는 봉쥬르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한국 제빵 브랜드인 "뚜o주르"도 tous les jours, all the days라는 뜻이라서 이 단어 jour가 들어가는 표현입니다. 정작 good day 같은 영어 인사 표현은 호주 등에서만 많이 쓸 뿐이니 재미있습니다. 이 책에도 hello!가 대표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챕터 4에서는 같이 놀자는 표현을 배웁니다. jouons ensembles라는 게 프랑스어의 표현인데, "쥬옹 앙상블"이라 발음합니다(책에 한글로도 써 놓았습니다). 동사 jouer의 1인칭 복수 명령형인데, 영어에는 명령형이 2인칭에만 있고 그나마 형태가 원형과 같습니다. 따라서 영어만 배운 이들은 복수 명령형 활용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let's 형태가 있을 뿐인데 이건 다른 사역동사의 힘을 빌린 것이지 자체 활용(conjugation)이 아닙니다. 독일어도 영어와 비슷하여, lasst uns zusammen spielen!에서, lasst uns는 영어의 let us와 완전히 같습니다. lasst는 lassen의 2인칭 복수형이며 예전 같으면 laßt로 쓰였겠습니다. 아무튼, 어린이용 책이므로 복잡한 문법 사항은 알 것 없고, 원어민들이 발음하는 바를 자꾸 듣고 표현이 상황에 따라 척척 나오게끔 연습하는 게 최고입니다. 

포르투갈어는 재미있게도 vamos jogar를 쓰는데, 스페인어로는 같은 페이지에 juguemos(후게모스)라고 책에 발음도 정확하게 나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스페인어로는 간략하게, jugar가 1인칭 복수 격변화하여 표현되는데, 포르투갈어로는 구태여 vamos를 조동사처럼 끌어들여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어가, 스페인어와 같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달한 언어인데도 이런 패턴은 영어와 비슷하게 생성되었다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기본어휘만 놓고 보면, jogar(포르투갈어)와 jugar(스페인어)도 얼마나 닮았습니까. 이것만 놓고 보면 방언의 차이 그 이상이 아닙니다. 

넌 할 수 있어! 아이한테 힘을 주는 멋진 말입니다. 영어로야 You can do it!이며, 요즘은 어린이들도 아주 유식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다들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책을 통해 다른 언어 표현도 함께 공부하는 건데, 이탈리아어로는 puoi farcela!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puoi는 potere의 2인칭 단수형인데, 이게 영어의 can과 같은 조동사입니다. 조동사이므로 뒤에 farcela라는 동사원형이 왔습니다. potere는 영어의 potential 같은 말과 어원이 같으며 possum이라는 라틴어의 직계 후손입니다. 스페인어로는 tu puedes라고 간단하게 표현하는데, 본동사가 따로 안 온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포루투갈어로는 conseguir라는 동사가 따로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tu consegues!라고 책에 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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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3.0, 내일을 위한 어제와의 대화
민은선 지음 / 라온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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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행만 추구하는 브랜드보다 철학을 가진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p54)." 브랜드는 그저 듣기에, 발음하기에 좋은 음소 몇을 모아 놓은 단순음향이 아니라, 창업자와 그의 승계자들이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를 압축해 둔 한 마디의 기업헌장입니다. 그러니 현대의 소비자들이 어찌 브랜드의 지향성을 간과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 민은선 대표는 말합니다. "유행은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니 유행에만 기대는 기업은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덧붙여 민 대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기업만이 영속할 수 있으며, 기업은 따라서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지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했는가? 저자는 자신이 업계에 데뷔할 무렵에는 열정, 감성 등의 요소가 높이 평가받았으며, 이런 요소들이 패션 그 자체로까지 여겨졌다고도 회고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진리라면, 그 브랜드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어야 했습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물론 열정은 소중한 요소이지만, 열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도 다시 확인 가능합니다. 이 책에서는 토종, 혹은 해외 브랜드의 많은 예들이 열거되는데, 무엇이 행동이고 무엇이 철학이며 또 무엇이 단순 열정에 불과했는지를 독자들이 읽으며 확인 가능합니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같이 정보가 흔한 사회에서는 일반 소비자들도 어떤 기업이 말뿐이며 어떤 기업이 행동에까지도 나서는지 얼마든지 검토 가능한 세상이라는 점도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 정부 예산이 대거 투입된 사업으로 밀라노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습니다. 대구 중심의 섬유 공업이 사양산업화하자 고부가가치 구조로의 전환을 꾀했던 건데, 이 책 p126 이하에서는 그 시도를 실패로 규정합니다. 한국도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제조업이 크게 일어났던 나라이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도 모두 그런 과거가 남긴 흔적에 크게 빚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덩샤오핑의 영도 하에 본격 부흥을 시작했었으며, 이 책에서는 경남 진주(한때 세계적인 실크 원단의 본산 중 하나) 역시 신화직물의 폐업을 계기로 완전히 명성을 잃었다고 진단합니다. 원단 산업이 근방에서 잘 지탱되어야 의류 섹터도 활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인사이트에 수긍하게 됩니다.  

외환위기 여파에도 알게모르게 생명력이 지속되던 곳도 있었습니다. 밀리오레, 두타 등이 흥했던 건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리모델링에 힘입어 쾌적한 쇼핑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몰(mall)들이 "자생적 컨텐츠 생산지가 아니라 수익형 부동산으로 변질되면 상가는 투자자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이라고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왜 바이어들이 떠났는가? 더 이상 새로운 디자인과 상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p136). 

원가 타령만 하고 중국에 운명처럼 먹힐 수밖에 없었다고 자탄할 게 아니라 원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아이디어, 창의력이 샘솟듯 솟아야 하는데 그게 더이상 안 되니 쇠퇴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동대문 업체들이 광저우에 가서 카피를 해 오는 현실이란 말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외국인들(특별히 눈 밝은 이들)이 서울 남대문, 동대문에 와서 싸고 질 좋은 디자인에 감탄했었습니다. 한국은 원래 이런 걸 잘하는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과거에는 동대문 주변의 봉제공장들이 있어 배후의 공급기지 역할을 했는데 현재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된 관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니어들을 시니어라고만 부르는 것도 일종의 편견입니다. p190을 보면 better, not younger라는 브랜드가 소개되는데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젊어지려고 발버둥칠 게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원숙미가 갖춰지면 충분하다는 철학의 압축이라고 하겠습니다. 패션+아트로 머추어한 콘텐츠를 만드는 도쿄의 긴자식스 예를 보며 우리 패션 산업이 나아갈 바에 대해서도 영감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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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 -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
막심 로베르 지음, 박영옥 옮김 / 인간사랑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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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문명이 유럽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핀 건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존중했던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이라고 나오는데 1677년은 벤투 스피노자가 40대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해이며 또한 그가 쓴 저작들이 출간된 연도이기도 하다고 이 책 뒷표지에 나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평전이지만, 그 형식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작품이 "역사에 기반한 허구"라는 점을 스스로 부인합니다. 그간 스피노자의 생과 사상은 다분히 추상적으로만 알려졌으며, 유명한 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피노자는 중고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과연 한 인간으로서 실제 역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한 자신의 신조나 가르침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였거나 크게 곡해되었다는 게 작가의 관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전하는 자료만으로 더 정확한 진실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의 형식을 통한 탐구"입니다. 꽤나 재미있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스피노자는 추상의 너울을 벗고 피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자를 만납니다. 프랑스어 원제 "le clan spinoza"는 직역하면 스피노자 무리라는 뜻인데, 영원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이들 모두가 "스피노자들"이란 뜻도 되며, 좁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모든 동조자들과 동료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다채로운 대사를 읊고 행동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실존인물들이며 가공된 캐릭터는 드물게 나옵니다. 

네덜란드는 상인들의 나라이며 특히나 암스테르담은 당시도 지금도 세계적으로 번성한 상업도시입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사건의 배경은 거래소들인데 거래소라고 해도 참으로 다양한 품목을 거래합니다. p107을 보면 한 노인이, 아직은 세상 물정에 서투른 젊은이가 저자를 기웃거리는 걸 보고 현물 거래는 여기서, 또 선물(先物) 거래는 저쪽에서 이루진다고 가르쳐 줍니다. 17세기라도 이미 현대의 금융파생상품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선물(future)이 거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선물은 일종의 위험 헤지(risk hedge) 수단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나쁜 일이 터져도 이 선까지만 피해를 입겠다고 미리 선을 긋는 거래행위입니다. 밀, 설탕, 향신료의 가격 동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얼마이고, 반대로 희망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신중함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현자들이 대중을 위해 고안한 파생상품이 바로 철학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하는 듯합니다. 

p242를 보면 데카르트는 논리, 기하, 대수라는 별개의 영역을 통합했다는 찬사를 받고 실제 스피노자도 자신의 시대에 데카르트 전문가로 꼽혀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위대한 좌절을 보면 알듯 이 세 영역의 완전한 통합이란 요원한 목표이며 다만 데카르트는 초급 해석기하의 발판을 놓았기에 상당수 도형 문제를 방정식으로 훨씬 명료하게 처리하는 천재적인 업적을 이뤘습니다. 예컨대 원은 천 수백 년 전 에우클레이데스의 언명대로 "특정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인 다른 점들의 집합"일 수 있지만, 데카르트의 좌표계에 기반한 방식이라면 (a,b)로부터 거리 r을 유지하는 (x,y)로 표현됩니다. 스피노자, 그리고 로데베르크 메이어르는 novum institium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이 세계관에서 기존 물리학이나 의학의 개념들은 일제 변혁을 맞습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는 수백 년 후 변증법의 근대적 변용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p379를 보면 판 벨타위선은 <철학이 성경을 해석한다>를 쓴 불온한 저자로 지목되어 재판관들의 엄혹한 추궁을 받기 직전입니다. 불온서적의 명단에는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도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필독서로도 꼽히는 이런 책들이, 그토록 자유로웠다던 암스테르담에서도 칼뱅주의 신정론자들의 엄혹한 심판대 위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냥 의견일치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p458 이하에서는 스테논 등이 이의를 제기하며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이 클랜 안에서 언제나 최상위의 제단에 고정된 덕목은 첫째도 자유, 둘째 셋째도 자유입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지구 최후의 날까지 자유와 동의어이자 그 상위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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