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과 갈등없이 잘 지내는 대화법
강지연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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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어린 사람들과 잘 소통하면서 지내야 "꼰대"라는 소리를 안 듣습니다. 꼭 "꼰대" 소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거나 시니어로서 속한 조직, 집단이 잘 운영되려면 원활한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1990년생들에 대해 일단 저자가 서문에서부터 지칭하는 단어는 "요즘 애들"입니다. 사실 199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31,, 32 정도이기 때문에 어느 관점에서도 "애들"은 아닙니다만 저자분부터가 1970년대 후반생이라고 밝히시고 그 정도 연세라면 1990년생이 "애"로 보이는 건 당연하죠. 또, 조직, 단체라면 1990년생들이 이제 갓 대리 꼬리표를 떼어갈 무렵이므로 젊은 세대에 속합니다. 여튼 97학번(저자분)이 본 90년생의 특징은 "당차고 직설적이다"인데, 사실 저자분이 속한 X세대도 당시에는 어른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고대 문명 어느 흔적에도 "요즘 애들은 말을 안 듣는다"란 말이 적혔다고 하니 세대 간의 갭과 갈등은 인간 사회의 영원한 숙제 중 하나겠습니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냐?"는 말은 핀잔이지만 사실 자신이 이해 못 할 대상을 책으로라도 배우는 건 최소한 차선책 정도는 됩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면 백승수 단장 입으로 "모르면 책으로라도 배워야지 모른 채 계속 버틸 겁니까?"라고 하는 말이 있죠. p37에서는 90년생을 책으로라도 이해하는 게 한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책으로 이해할까? 저자는 2030이 고른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았는데, 대부분이 수험서였고 소설가 김영하의 책이 한 권 끼어 있는 정도였다고 하네요.

90년대 학번이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뭐다 해서 겉멋만 잔뜩 부리고 공부는 등한히한 세대일까요? 저자는 여튼 스펙쌓기에 찌든 게 불쌍하지만 여튼 공부는 열심히하는 애들 정도로 규정합니다. 미래 세대가 그 앞세대보다 공부를 파고들며 직장 업무건 무엇이건 대비를 하는 습관이 들었다면 그 사회는 확실히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저 역시 확실히 요즘 20대가 더 분석적이고 더 냉철하며 정치 이야기를 할 때에도 진영 논리에 덜 매몰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저자분이 전공이나 직분이 직분이라서 그런지 책 중에는 권위 있는 심리학자의 이론이 분석틀로서 자주 등장합니다. p50 이하에는 에이미 에드먼드슨이라든가 바에, 프레제 등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혁신적 생각을 낼 수 있게 장려되어야 한다"거나 "리더들이 유연하고 지원적이라야 하며, 구성원들은 자기 일에 통제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특히 70년대생(대부분 관리직일)에게, 절대 권위적, 강압적으로 굴지 말고 부하 직원들을 도닥이며 그들이 자발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요즘 직장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쳇바퀴를 돌리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직원이 신이 나야 양질의 성과가 나며, 사장이 어쭙잖게 자신의 복제품, 수족, 충견을 굴리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그저 자율성 강조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 안정"까지를 강조하는데 마치 누나나 엄마가 애들을 돌보는 듯한 마음씀이 느껴지더군요.

최신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물론이고 책에는 공자의 가르침도 논거로 인용됩니다. <논어>의 위정편에도 나오듯, 이순이 예순을 가리키는 나이라는 건 남의 말을 듣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64). 저자는 다시 학자 최현섭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순으로 소통 수단의 비중이 형성되는데, 듣기는 가장 취하기 어려운 태도이면서도 비중만큼은 가장 높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남의 말을 듣는 건 참 어렵지만, 젊은 세대 역시 나이 든 사람이 자기 말을 경청하면 고마워할 줄도 압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말을 듣기만 하면 체면이 상한다든가, 권위가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p74에는 "마틴 등의 학자"를 인용하며 그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유머의 분류를 시도합니다. 이에 따르면 관계지향(상대와 내가 모두 좋은), 자기고양(일단 자기 만족), 공격(타인 비하), 자멸 등 네 가지 패턴이 있다고 합니다. 후배들이 상사의 마음을 사기 위해 구사하는 "자기 비하 유머"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피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하는군요. 아무튼 저자의 결론은 "자기 스타일과 위치에 맞는 유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가 인용한 "마틴"은 아마 캐나다 심리학자인 Rod A. Martin 교수인 듯합니다. 뒤의 참고 문헌 목록에 안 나와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p297에 나오는 장원순, 이만제 박사 등의 연구도 한번 참고할 만하겠습니다.

"질문의 기법이 중요하며, 잘 제기된 질문은 성과도 높이고 관계를 향상시킨다"는 결론은 여러 책에서 일찍이 강조된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p133 이하에서 "질문 잘하는 방법"을 여럿 제시합니다. 저자가 주로 인용하는 책은 테리 파뎀의 <애스킹>인데 이미 읽어 보신 분들은 서로 비교하면서 이 책 저자분이 특히 90년생과의 소통에 어떻게 변형, 응용하는지 살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폐쇄형 질문은 여러 사람에게 던져서 한 가지 대답(혹은 정해진 대답 중 하나)이 나오는 것입니다. 개방형 질문은 답이 간단하지도 않고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책에서 강조하는 건 "단답형으로 나올 뿐 아니라 관계에 아무 진전이 없는 기계적 질문은 지양해야 한다"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드라마 같은 걸 봐도 "리액션 전문 캐릭터"가 조직(극중 가상의)에 따로 배치가 될 정도입니다. 사회에서 적절한 리액션이 매너임은 물론 자신의 의사를 다음 번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필수라는 점을 다들 자각한 결과라고 봐도 되죠. 그 리액션에 이를테면 "영혼이 담겨야 한다(p138)"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때 적극적으로 선호를 표시하되, "이랬어야 한다"는 식의 평가, 판단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도 하네요. 앞에서도 "성원들의 자신감, 심리적 안정감을 북돋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도 저자는 "그래? 잘했어!"라며 여튼 후배들 기를 살려 주는 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애들 키우는 식입니다. 헌데 그게 상급자, 선배, 시니어의 의무 중 하나죠.

무조건 칭찬이면 장땡이냐? 책의 취지는 일단 칭찬해서 나쁠 게 없고, 칭찬 안에 여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쪽입니다. 칭찬을 듣는 상대방은 기분이 우쭐해지거나 방심, 나태해지는 게 아니라, 이후의 성과에 대해 압박감(p141)도 느낀다는 거죠. 이런 결론은 아마 나이 든 세대가 크게 동의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떨까요, 그들이 사람 상대하던 세상, 세태가 지금은 많이 바뀐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대해 줘야 오히려 내가 기대하던 쪽으로 간다는 거죠.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어서 말이 안 통하는 젊은 X도 있긴 하더라구요.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싶어하며, 기본적으로 자기 주도적이다(p193)." 책에는 90년생을 상대할 때 유념해야 할 어떤 일관된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율성과 주도권을 주고 시작하라는 조언이라고 독자인 저는 이해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 건 가족을 부양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주변 동료들에게 기 안 죽고 떳떳한 사회 성원으로서 제 몫을 한다는 걸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이 그저 마지못해 고삐에 이끌여 밭을 가는 가축의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화로 상담을 할 때에도 "중소기업..." 이야기만 나오면 바로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데 이건 그만큼 자기 존중감이 낮다는 뜻입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지난 상담 이력을 살펴 보며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는데 이건 그만큼 우리 회사(중소기업이든 뭐든)가 구멍가게와 달리 쳬계 잡힌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겁니다. 당연히 상대방도 "이 회사 제대로 된 회사군."같은 인식을 하며 더 많은 존중을 보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부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고 더 많은 책임감을 갖고 창의성을 보다 발휘하는 건 다 위에서 어떻게 도닥거리냐에 달려 있죠. 전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전폭 공감했습니다.

90년생들과 잘 소통하는 건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내 일을 잘하고 내 의도가 보다 잘 먹혀 들고 성과를 더 내기 위한 수단도 됩니다. 사람과 소통을 수단으로 보라는 게 아니라, 이게 나와 아무 관계 없는 무슨 남의 집 아들딸 좋은 일 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 나 좋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90년생들은 분명 그 이전 세대와 다르며, 다른 만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이게 꼭 90년대생에 한정된 게 아니라 사람 일반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 애초부터 정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간 우리 사회가 고도 성장만을 추구하며 뭔가 왜곡된 부분이 있었는데, 합리적인 세대가 등장하며 그런 병폐가 하나 둘 고쳐지지 시작하는 거죠. 여튼 소통은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 되고, 상대를 이해하는 게 나를 결국 위한 거고 조직이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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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학 - 고광률 장편소설
고광률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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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세상에 설령 사기업이라 해도 순리와 합리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그 성원들이 온전한 협력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건 수십 년 전에나 통하던 사고 방식입니다. 하물며 기업체도 아니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시장바닥의 난맥상을 능가하는 게 바로 대학에서 펼쳐지는 복마전의 지옥도입니다.

복마전이라는 말은 <수호전>에 실려 유명해졌는데 말 그대로 악마들이 진을 친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대학을 일컫는 명칭은 "상아탑"이란 게 있는데 그 우아하고 숭고한 학문 탐구의 장을 아름답게 일컫는 취지죠. 그런데 21세기 한국의 대학은 아직도 비리와 세력 다툼과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는 수가 적지 않습니다. 이 소설 속의 "일대"가 그런 곳을 대표라도 하듯 픽션을 통해 자신의 치부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일광대는 지방 사립대인데 과거에는 향토사학인 인근 중명대(p58)에 빛이 가리는 초라한 위상이었으나 중명대가 비리로 크게 명예가 실추된 후로는 상대적으로 더 주목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디테일은 아마도 실제 모델이 있었기에 작가님이 이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려낼 수 있었겠거니 짐작도 합니다만 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반면, 일광대는 이름부터가 화투짝의 어느 패를 연상케 한다며 작명 과정에서 반대가 있었다느니 하는 후일담은 순전히 픽션이겠지만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핵심이 되는 사건은 의대 편입 기준 완화를 놓고 학생들과 학교 측 간에 벌어진 투쟁입니다. 투쟁이 투쟁의 정해진 노선만 가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학 내부의 온갖 해묵은 병폐가 드러나고 말썽이 몇 배로 커져 수습 불능이 되어 가는 과정에 소설의 재미, 혹은 풍자의 포커스가 놓입니다. 본래 의대가 어디 하나 신설되고 안 되고 하는 문제가 지방대의 사활, 아니 지방 자체의 큰 이해 관계를 좌우하기 때문에 이런 소동이 실감도 나거니와, 사실 지방에 살지 않는 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중대한 이슈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상의 의대생들은 어렵게 공부해서 학교에 들어왔고, 그런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이런 문제에 민감해지는 게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그런 의대생들은 같은 캠퍼스를 쓰는 나머지 "지잡대생"들을 우습게 볼 뿐 아니라, 심지어는 다른 단과대 교수들에게까지도 정당한 존경을 표하지 않습니다. 까까머리(삭발 투쟁 때문에)를 가리기 위해 쓴 모자를 끝까지 벗지도 않고, 심지어 투쟁과는 무관하게 씹던 껌도 그대로 질겅질겅 씹어 제칩니다. 학생 대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걸로 나오는데 아직 순수해야 할 젊은이가 벌써부터 기득권 논리에 물 들어 추태를 떤다는 암시가 곁들어진 대목이겠습니다.

부패 사학 재단과 학생들 사이의 대결 구도뿐 아니라, 교수진 안에서도 암투가 횡행합니다. 총장은 설립자의 아들인데 설립자는 건설업으로 큰 재산을 일군, 지성과 교양과는 꽤 무관한 위인입니다. 그 아들은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을 나왔다는 말로만 묘사되다, 소설 중반쯤(p190)에 가서 대화 중에 "하바드"를 나왔다고 나옵니다. 재미있는 건 대화가 아닌 본문 중에서는 하"버"드라고 표기되는 곳(예컨대 p196)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이야기인데, p195에서 "갓대잇"은 아마 "갓댐잇"의 오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님의 말투가 구수해서, 한숨이 푹푹 나오는 개탄스러운 사학 비리 이야기가 주는 재미 외에도 다른 흥밋거리가 많았습니다. 대머리를 묘사하던 중 "아이스링크처럼 번들거리고 횅한" 같은 우스운 푷현도 있고, p33에 보면 "교주(校主)"와 "敎主"를 이용한 말장난(동음이의어)도 나옵니다. 요즘 특정 교단의 행태가 이슈가 되기도 하는 터라 이런 대목이 더욱 심상찮은 느낌도 던져 주고요.

이런 사학에서 대개 총장직 등이 가문 내 세습이 이뤄지는 게 보통인데 이사진뿐 아니라 총장 등의 측근으로 수십 년 동안 암약한 측근들이 나중엔 실세로 군림하며 "교주"들도 어쩌지 못할 세력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주시열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주시열을 비롯한 네 명의 보좌진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비리의 중핵으로 나오는데 이들을 일러 극중에서는 (성씨를 따) "주고박고"라는 별명(p109)을 붙입니다. p56에 보면 이런 사람들을 일러 "무능하거나 양아치"라고 규정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실 양아치들이 그 나름 유능하게 착시를 유발할 때가 있지만 알고 보면 무능한 자들입니다. 무능하니까 남들 합법적으로 할 일을 구태여 불법으로 하는 거죠.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어서 어느 선에서 멈출 줄을 모름을 비꼬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말 탄 주인 못지 않게 (저 "주고박고" 같은) 경마잡이들의 탐욕과 추태가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경마잡이"라는 말이 p26에 그대로 나옵니다. 어원은 한자어 "견마"지만 현재 표준어로는 "경마"가 사용되며, 물론 경마(競馬)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말입니다. p100에는 "모노륨"이란 말이 나오던데 참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은 건조하게 메시지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듯 생생한 디테일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생들이 시위를 할 때 외치는 구호 중 "학생이"에서는 길게 빼고, "주인이닷!"에서는 짧게 끊는다는 등 시위 현장에서 직접 관찰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설령 관찰을 해도 잘 모르고 넘어갈) 세부 묘사가 많아서 재미있었네요. p156에서 사무처장이 어떤 때는 말투가 고어투가 된다거나, 끝에 괜히 "요"를 붙인다든가 하는 대목이 그랬습니다.

비리 사학은 평소에 담당 공무원들과 잘 지내야 한다든가, 접대를 소홀히해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운명적 애환(?)이 있지만 그 외에도 지역 언론사와의 관계가 돈독해야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비리 사학 못지 않게 이른바 사이비 언론인들의 작태가 자세히 나옵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피상조"인데, 그는 고작 보험영업사원이었으나 탁월한 수완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언론인 대접을 받는 위상에까지 오릅니다. 하긴 과거에 호텔 지배인(아, 물론 대단한 직입니다만)에서 국가 정보 기관 2인자(사실상 1인자)까지 한 분도 있었지요. 여튼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촌철살인의 풍자가 들어 있는데,

"작은 글로 큰 돈을 어떻게 버시는지...(후략)"
"칭찬으로 들었는데 비아냥으로 들리는군요?"
"갑에게 비아냥대는 멍청한 을도 있던가요?"

같은 대화가 그것입니다(p177). p187에 보면 특히 이런 지방 비리 사학에서 이른바 "자활단"을 꾸려 저항하는 교수들은 비주류 언론사(책에는 "통신사"라고 나오는데 통신사는 더 특정한 곳만을 가리키므로 좀 어색합니다)에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이유는 "주류" 언론사는 이미 비리 사학의 편이라서 그렇다는 거죠. 이런 대목을 보면 지방 소규모 언론사의 역할도 분명히 따로 존재한다는 점 확인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가 소중한 거겠고요.

작가님의 이야기가 구수하다 보니 온갖 분야의 어휘가 신명나게 동원되기도 하는데 군사용어인 중심, 종심을 거론한 대목(p162)도 그렇고, 아랫사람들을 교묘히 이간질시키라는 뜻(부친의 노하우)에서 "분할 통치"를 언급한 대목도 그렇습니다. p155에는 "시건 장치"라는 말이 나오는데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쉽게 말해 잠금장치라는 뜻입니다.

교육이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아주 안 될 건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교육의 본 취지가 무색해지고 천박한 돈벌이, 돈놀이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작품 p190에 보면 대화 중에 "니네 총장, 아니 사장"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사장, 그 중에서도 악덕 사장인지 총장인지 모를 위인들이 교육계를 더럽힌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p105에 "사업체"라는 말로 직접 풍자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p127에 이른바 "정성평가, 정량평가"를 각각 "엿장수 맘대로, 구색으로 숫자만 맞추기"로 신랄하게 후려치는 대목은 독자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소설은 처음에 공민구의 부친상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에피소드가 생각 외로 의미심장한 것이어서 중반 p170 이후에도 "고등학교도 채 못 나온 분이 자격증 다섯 개나 땄다는 건...." 같은, 죽은 부친을 애틋이 기리는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 그 조부는 부친과 달리 교육에 무관심한 위인이었는지 이를 특별히 언급하기도 하는데, 여튼 이런 디테일이 그저 풍자, 고발 일변도로 가기 쉬운 전개에 일종의 휴머니티를 더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어떤 대목에서 "차라리 1980년대, 선과 악이 분명히 갈려 투쟁하던 때가 좋았다"는 곳도 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머리 빡빡 깎고 시위하는 젊은 의대생 대표, 그리고 이들을 필사적으로 막는 비리 사학 간의 대결 구도에서도 과연 누가 완전히 나쁘기만 한 건지 쉽사리 판단이 안 된 채 그저 난장판으로만 돌아가는 모습이 씁쓸하죠. 현실이 이 픽션과 매우 닮았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더 답답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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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로버트 치알디니.더글러스 켄릭.스티븐 뉴버그 지음, 김아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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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의 중요성은 그 무엇보다도 앞에 놓입니다. 관계가 틀어지면 조직 안에서 개인의 성공과 승진도 불가능합니다. 2차 집단이 아닌, 가족과 같은 정과 의리가 앞서는 곳에서도 관계에 멍이 들면 감정에 상처를 입고, 나아가 아무 일도 못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얼핏 보아 비이성적이고 이해 못 할 일도 그 원인을 "관계"에서 바로 찾기도 합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할 이런 관계에 대해 그러나 속 시원히 해명해 주는 가르침은 매우 드물게나 접할 뿐입니다.

관계의 본질을 안다 해도 이를 일상에 바로 적응할 수 없다면 모처럼 알게 된 지식이 큰 쓸모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로버트 치알디니와 동료 학자 두 분이 함께 쓰신 이 책은 학자가 아닌 우리 같은 일반인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필치로 쓰여졌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정확성과 권위, 가독성 등이 모두 중요한데 이 모든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책은 한 해에 손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쉬운 방법으로 어려운 지식, 지혜를 터득하는 건 분명 큰 행운이겠습니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대중을 위한 교양서와 교과서는 하다못해 생긴 모습(속을 들춰 보면)부터가 다른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는 누가 봐도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분야를 어려워할 걸 고려해서 예를 많이 들어 주고 최대한 쉽게 쉽게 써 주는 걸 보면 또 대중서 같습니다. 교과서를 읽어 가며 한편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한편으로 무릎을 치게 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체험 같았습니다.

몇 년 전에, 한참 게임에 몰입해 있는 PC방의 몇몇 어린 유저들을 대상으로 갑자기 전원을 내린 후 그 감정적 반응을 다룬 TV 뉴스가 큰 화제가 된 적 있습니다. 관계에 "공격성"이 얼마나 깊이 끼어드는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재미있게 따져 볼 만한 문제이겠는데요. 책 p106에서는 "사람과 상황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었지만, 같은 일을 맡겨도 어떤 사람은 잘 해 내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분명 서투르게 대응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에게 다른 일을 맡겨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이러니 어떤 사람을 어느 상황에 어떻게 쓰느냐가 모든 성패의 갈림길이라는 진단이 타당성을 갖습니다. 앞서 PC방 실험(?)의 예를 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학생은 대뜸 욕부터 내뱉지 않고 분명 침착하게 대응했을 겁니다. 왜 같은 상황인데도 (같은 사람들이) 다르게 반응하느냐에 대한 의문은, 이 책 곳곳에서 다양하게 해명됩니다.

이 책의 특징은 "A의 답은 B!"라며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러면 더 헷갈리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대단히 미안하게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관계에 서툰 사람들(따라서 이 책을 꼭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딱 하나만 고정될 것 같으면 사람 사는 세상에 관계가 그처럼 꼬일 이유가 애초에 없습니다. 이 책은 과연 그 점을 통찰했는지, 비슷한 상황(어떤 경우에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해법을 (일찍이 연구와 실험을 통해 증명된 대로) 제시합니다.

문제가 하나라도 답은 여럿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열 길 물 속보다 복잡한 사람 마음이기에, 어떤 경우에는 해법 a, 다른 경우(라고는 하나 사실은 거의 같은 경우)에는 해법 b를 우리가 융통성 있게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상황과의 관계로 치환하여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이 책을 읽고 얻은 소중한 가르침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빚는 상황은 결국 상대의 심리에 대한 통찰로 이어집니다. 우리 동양에서 공자, 맹자 등은 군자의 처신 덕목중 하나로 겸손을 꼽았는데, 미국 사회심리학자들이 쓴 이 멋진 책에서도 결론은 여튼 같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랑쟁이"를 싫어하고, 기본 룰에 어긋나는 걸 알면서도 자랑쟁이를 때로는 비겁한 방법으로 협공하는 게 용인됩니다. 룰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자신의 감정적 이슈를 공론화하는 게 공동선 추구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자랑쟁이"는 응징되는 게 보통이라는 점은 확실히 흥미롭습니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문제를 이론적, 실증적, 과학적으로 짚어 보며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독자가 가장 속이 시원한 건 자신이 여태 알던 상식과 "학문적 결론"이 일치할 때입니다.

열심히 사회 속에서 룰에 따라 목표를 추구하는 건 사회적 동물의 숙명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성공(명예)의 사다리"를 타는 건 야심 있는 젊은이들의 열띤 경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p348이하에서 책은 성공을 위한 경쟁과 집단 내 관계의 우호성 사이에 놓인 묘한 상관관계를 파고 듭니다. 동성 내 관계에서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더 서열 우위를 뚜렷이 정하려 들고(따라서 긴장이 더 커집니다), 반면 여성은 (여성들끼리만 있을 때) 더 평등 지향적이며 우호적입니다(그래서 여자 동성 친구들끼리 떠는 수다가 더 즐겁다는 거죠). 그러나 이성을 두고 각축이 벌어질 때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적대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우리 속담이 있죠. p406에서는 :사랑 싸움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는 제목 아래 커플 관계에 주의해야 할 점 여러 개가 제시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는데 "피곤해!"라고 답하기보다는 "내일이 어때?"라는 식으로 최대한 상대의 요구와 자신의 것에서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의 부부, 오래된 연인들은 마치 오래된 관계인 만큼 나의 이 정도 직설적 반응은 상대가 이해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듯, 본심보다 더 과장되고 퉁명스러운 표현으로 거절합니다. 그러니 상대는 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실망은 최초 발화자에게 몇 배는 배가된 채로 전가되는 것입니다. 죽어라 하고 싸우는 파탄의 갈등이 이런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건 한편으로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 너무도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누가 누굴 돕습니까? 자기 위치에서 자기 할 일이나 제대로 해야죠." 이 대사는 최근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극중 백승수 단장이 인상적으로 빚은 구절입니다. 책 p442에는 "도움(자선)은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나를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열등감, 원한 따위를 품는 경우가 꼭 있고, 그래서 "인간 못된 건 잘해 준 이에게 역으로 앙갚음을 한다"는 말도 있나 봅니다. 책에서는 내들러 등의 연구를 통해, 성별, 상황, 자존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자선에 대한 거절, 상처"의 양상을 재미있게 분석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더러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어이없는 패악질에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윌리엄 골드만의 어느 소설을 보면 주인공 중 한 명이 감금되어 극한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생각의 조절만으로 이런 고통을 극복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설령 인간에게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전체의 0.00000...1%도 안 될 것입니다. 책 p502에도 그저 생각만으로 어떤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거나 고통의 조절이 가능할지를 놓고 정말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논의를 더 흥미있게 이해하려면 그보다 좀 앞 p460 이하에 나오는 "공격성 있는 성원"에 대한 파트를 심도 있게 읽을 필요가 있더군요.

우리가 직장에서 "꼰대" 때문에 피곤해들 하죠. 이른바 꼰대 스타일은 대개 권위주의적 성격에 의해 발현되는데, p540 이하에는 어떤 조직에서도 나타나곤 하는 "권위주의"에 대해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위주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있는데 혹 권위주의가 절대악이라고 쳐도 조직에서 일거에 없애기란 매우 힘들 겁니다. <스토브리그>에서도 재송그룹 권일도 회장의 권위주의를 추방하는 건 아마 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고, 그 유능한 백승수 단장도 결국 현실과 타협했던 게 이런 이유입니다.

이 책은 관계의 미묘한 점과 그 배후에 깔린 사회 성원들의 "심리"에 대한 책이지 무엇의 선악과 당부를 재단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단죄하기보다(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까다로운 상황과 관계를 잘 핸들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바른 소통을 해야 합니다. 책의 과제는 주로 여기에 놓여 있고, 괜히 명작이다 고전이다 칭찬하는 게 아니라서 어떤 단정을 자제하면서도 결국은 독자가 답에 대햔 "감"을 잡게 쓰여졌더군요. 두고두고 곁에 두고 읽을 책이며, "아 그래서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구나"를 연구하게 돕는 책이지만, 결국은 "타인이 아닌 내 자신이 이래서 이런 거구나" 같은, 자신을 먼저 성찰하게 돕는 책이라서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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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테라피 - 서민금융연구원장 조성목이 전하는 금융 치유서
조성목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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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란 병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방법론을 말합니다. "머니 테라피"란 그럼 무슨 뜻일까요? 아마 돈이 없어 곤궁을 겪는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마구 퍼다 주는 식으로 그 병이나 상처를 깨끗이 낫게 할 수 있겠으니 이보다 더 쉬운 치유법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안이한 처방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만큼 엄혹하고 팍팍합니다. 관계가 파탄 나고 싸움을 벌이고 사람을 죽이고 몸에 병이 나는 모든 비극이 알고 보면 다 돈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도 아마 어디서 큰 돈이 생겨 그간 생긴 근심걱정이 해소된다면 물리적 증상까지 차도가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니 어쩌면 머니 테라피야말로 죽어가던 사람도 일으켜 주는 궁극의 처방인지도 모릅니다.

여튼 돈을 퍼붓는 식으로 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옛 속담이 있는데 요즘 나라는 이런 걸 해결해 줘야 진짜 나라 대접을 받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돈을 마구 찍어내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그랬다가는 문제를 몇 배는 악화시킵니다) 어디에선가는 아무 이유 없이 놀고 있는 돈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급히 융통해 준 후 나중에 그 대가를 받는 식으로 수혈이 유효하게 이뤄지는 편이 낫습니다.

이 책은 이른바 "서민 금융 전문가"이신 조성목 선생이, 한국의 제도와 시스템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 감으로서 "돈 때문에 죽어가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구해 내는 처방전으로 쓴 책입니다. 과연 그런 문제에 처방전이 있기나 할까 싶었으나 읽어 보니 우리의 현실이 이런 심사숙고의 산물로 크게 개선이 되겠다 싶어서 놀라웠습니다. 우리들 서민들보다는 국가의 정책 당국자들이 먼저 유념해야 할 바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1993년작 영화 <데이브>(우리 나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이걸 표절했다는 논란이 한때 크게 일었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에 보면 온 국민의 영웅이 되는 "가짜 대통령"이 그런 인기를 얻은 비결이 고작 "전국 직업 소개 시스템 구축"입니다. 상상의 빈곤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결국 국가가 하는 일은 자원의 수급을 잘 맞추는 과제로 요약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는 남아돌고 어디서는 크게 모자라는 걸 서로 연결시켜 주는 일이 그리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며, 이런 것만 잘 해결되어도 사회가 훨씬 나은 곳이 된다는 게 놀랍습니다. 하물며 "돈"의 문제야 길게 말해 뭐하겠습니까.

돈이 없으니까 서민들은 사채를 끌어 씁니다. 사채는 급할 때 돈을 꾸어 주니 일단은 그것도 고마운(?) 일을 합니다만 그 대가가 너무도 큽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나중에는 일가가 번개탄을 피우고 목숨까지 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일만큼은 정말 근절되어야 하는데 불법사채업자만 단속한다고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이 책 저자께서 한때 "저승사자"로 불렸다는 사실입니다(p135). 누구에게? 사채업자, 금융 사기범 등에게 그랬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에 계시면서 특히 이런 악질 경제사범에게 철퇴를 내리는 조치에 앞장 서셨는데, 여튼 결론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태생부터가 교화 불능인 인간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 역시 상황의 산물이었습니다. 서민 금융 시스템이 부실하거나 아예 부재하니까 희생자도 생기고 서민을 등쳐 먹는 못된 놈들도 생기는데 알고보면 이들 역시 광의의 피해자입니다. 저자님 같은 "저승사자"에게 걸려 전과자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근본 문제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딱 필요한 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돈을 쓸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얼마 전 박영선 장관의 주도로 P2P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무슨 파일 불법공유 프로그램도 아니고 금융에 웬 P2P냐 할 분들도 있겠습니다. p77 이하에 개인 간 금융 활성화에 대한 아주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성화된 제도라고 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소셜 미디어라고 하듯이 이런 시스템도 소셜 금융이라고 부른다면 훨씬 그 뜻이 쉽게 이해되겠습니다. 사실 금융의 실패는 기존 금융기관들이 노력 부족이건 무능이건 시스템의 근본 한계이건 간에 개인의 신용을 정확히 파악 못 하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을 못 해 준다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런가 하면 돈을 빌려 줘선 안 되는 불량 기업에게는 속아서 돈을 빌려 줬다가 떼이기도 합니다. P2P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간의 밀착관계가 보다 많은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게 돕기 때문이죠.

저축은행은 과연 쓰레기인가? 실제로 저자께서는 부실 저축은행 잡는 저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저축은행에 의심의 눈길을 보낼 건 아닙니다. 이 제도 역시 제1금융권이 해결 못하던 문제를 어느 정도 풀어 주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죠.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건, "우리 나라는 중금리 금융 시장이 부실해서 이 모든 문제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존의 저축은행은 물론, 몇 년 전 화제가 된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은행의 활성화, 나아가 핀테크의 여러 혁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DSR 규제는 양날의 칼입니다. 이를 방만하게 운용하면 가계의 부실만 커지고, 너무 강하게 조이고 들면 결국 불법 사채업자만 배를 불리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데 들어둔 보험이 있으면 여태 납입금이 꽤 될 경우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이 역시 보험사가 우선적으로 해 줍니다. 문제는 이런 DSR 규제에 보험까지 포함시킨다면, 즉 (논란이 되고 있는) 보험약관대출현황 공유가 이뤄진다면 가계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p221)합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발생하면 "때려잡아야 해! 전면 금지 시켜야 해!" 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극단적인 조치를 요구하곤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마땅한 문제도 있겠으나, 특히 시장 제도와 관련한 것은 보다 융통성 있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금융은 누군가에게 돈을 무상으로 퍼 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필요할 때 잠시 융통해 주는 것이며 이에는 적정한 대가의 지불이 반드시 따릅니다. 효율성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공정성까지 담보하게 되는 이런 멋진 정책적 대안에 대해 정부 당국의 전향적 태도가 꼭 필요해지는 시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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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포크스 : 플롯
윌리엄 해리슨 아인스워드 지음, 유지훈 옮김 / 투나미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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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포크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저항의 아이콘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브이 포 벤데타>이 큰 역할을 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17세기 영국에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들었던(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열정적인 활동가였고,요인의 대거 살상을 통한 국면 전환을 꾀했다는 이유로 삼백 년 넘게 역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테러리스트였고, 다르게 보면 조선의 홍길동이나 멕시코의 조로처럼 초인적인 면모, 의로운 협격의 개성이 있습니다.


가이 포크스 사건이 터지고 이백 년 가까이가 흐른 후, 영국에서는 가톨릭 교도의 공직 취임을 금지하던 심사율이 폐지되고 가톨릭 교도 해방령이 내려졌습니다(1829). 이 소설은 1805년에 태어난 윌리엄 H 아인스워스가 1841년에 완성한 장편으로서, 여태 역적으로 오명을 쓰고 있던 가이 포크스를 영웅,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대담한 태도로 유명했습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잘 나오지만 당시 영국이란 나라는 아직 국가 기반이 확고하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자베스(1세)가 훙서하고 나서 후계자는 엉뚱하게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지명되었습니다. 두 왕실, 또 저 두 왕이 나이 차가 나는 친척 관계이긴 하나(법적으로 계승권 주장 가능)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수백 년 간 앙숙이었는데 적국의 왕이 나라를 다스리러 왕으로 온다는 건 충격이었죠. 


그러나 제임스 1세(이제는 잉글랜드의)는 그런 난점을 잘 알고 새로 맡게 된 나라까지 잘 다스리는 통합 군주로서 존경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가톨릭, 잉글랜드=프로테스탄트 같은 공식은 일찌감치 깨어져서, 스코틀랜드 사회도 어느덧 주류를 장로회 신도들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여전히 가톨릭도 강함). 따라서 이 시기 브리튼 섬은 종교, 민족 등 여러 복합적 요소를 띤 고차원 본쟁을 암암리에 벌이고 있었습니다.


소설에는 제임스 1세 등 스튜어트 왕조의 군주들에 대해 부정적 묘사가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할 일 없는 스코틀랜드의 건달들이 왕을 따라 잉글랜드로 와선 현지인들을 뜯어먹으며 민폐를 끼쳤다는 서술이 있죠. 그런데 신교도들이야 잉글랜드의 지배층(아직 위상이 확고하진 않았습니다)이니 (가뜩이나 굴러온 돌 주제인 왕이)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만만한 게 가톨릭 교도였습니다. 이때로부터 백 년 전 헨리 8세는 브리튼 식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가톨릭을 혹독히 탄압했습니다. 이런 국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도들은 여전히 믿음을 고수했는데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recusant라고 불렀습니다. "거부하다"라는 라틴어 recuso, recusare 에서 온(정확하게는 그의 현재분사꼴) 단어죠. 이 책에서는 "거부자"라고 옮기고 있네요. 

 

p14를 보면 험프리 채텀의 대담한 언동이 나옵니다. 험프리 채텀은 책에 "맨체스터에서 거부로 유명한 장사꾼의 아들"이라 소개되는데 물론 여기서 거부는 巨富이며, 영국 국교회 신앙을 거부한다는 拒否가 아닙니다^^ 


<브이 포...>에서 주인공 브이(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활약하는 혁명가)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이 젊은 여성 이비(나탈리 포트만이 연기)인데, 여기서는 비비아나 래드클리프라는 젊고 당찬 여성이 등장하여 온갖 역경을 헤쳐가는 스토리가 작품 전체의 중요한 흐름 하나를 이룹니다. 물론 이 세상은 남자 위주로 짜여진 비정하고 폭력적인 곳이기에 비비아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 못 하며, 말그대로 홍길동처럼, 또는 저 영화의 "브이"처럼 신출귀몰하며 대의명분(그들 입장에서)을 구현하려는 영웅이 바로 가이 포크스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이 포크스는 이백 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역적 취급이었으며 (영화에도 나오지만) 리멤버 리멤버 더 핍스 오브 노벰버 라는 노래는 가이 포크스의 위대한 저항 정신을 기리자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저런 천하의 역적을 결코 잊지 말고 애국심을 다지자"는 취지의 동요였습니다. 아무리 이백 년이 지났다고는 하나 이런 논란의 인물을 소설 주인공으로 받들고 그 행적을 환상적으로 묘사하니 반발이 대단했을 겁니다. 



작가는 이 점을 다분히 의식하여 "기존 작품 중 하나를 고의로 왜곡 해석하고, 필자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의도와 목적을 작품에 끼워 맞춰 온 독자(에게)라면 (이 작품) <가이 포크스>는 또한 정당한 대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p6)."라고 서문에서 밝힙니다. 그러나 소설 창작 시점으로부터 다시 두 세기 가량이 흐른 현대 한국의 독자들은 영문 모른 채 홍길동 같은 이 협객의 활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겠죠. 우리가 소설의 박력 넘치는 무용담을 무협지처럼 받아들이기만 해도 이 소설은 이미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겁니다.


"케이츠비는 나이도 그렇지만, 방종하고도 자유분방하게 살아온 인생과는 걸맞지 않게 용모가 준수했다(p42)." 고전 소설을 보면 인물의 외양 묘사에 다분히 작가 자신의 인물관을 투영하는 대목이 많죠. 이때로부터 오십 년 뒤쯤에 쓰여진 코난 도일 경의 <빈 집의 모험>을 보면 세바스천 모런 대령을 두고 "호색한 특유의 턱"를 가졌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런 걸 읽고 나면 사람을 볼 때 길쭉히 자란 턱을 보고 "이분 어지간히 밝히고 살았나 보다" 같은, 근거 없는 혼자만의 생각에 낄낄거리게도 됩니다. 저는 역사물인 이 소설에서도 작가 특유의 그런 인물관을 행간에서 읽으며 이 작가분(아인스워드)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 분일까" 하는 점을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역자 서문? 같은 부분을 좀 둬서 작품 배경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아마 구태여 역사를 알지 않아도 그냥 로맨스 모험 소설로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신 걸 수 있겠죠. p174 같은 데를 보면 라이트가 형인지 동생인지를 밝히기 위해 괄호 안에 "형"이라고 따로 적고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the elder Wright라고 적혀 있는데, 번역에서 이렇게 처리한 게 오히려 가독성이 좋은 것 같네요. 물론 존이 형이고 크리스토퍼가 동생입니다. 


p158 중간쯤에 보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말을 할 수 없어.."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는 구약 시편 22:15에 있는 구절을 의식한 언급입니다. 이 무렵 소설들은 성경 구절을 적절히 인용하여 문학성과 권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썼습니다. p249 중간쯤에 보면 "끝장을 보던가"가 있는데 "보든가"로 바뀌어야 맞겠습니다. 


p62에 보면 "예수회 사제이자 반역죄..."라는 대목이 있는데 예수회 사제는 그 신분 자체가 형사 죄목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때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면 예수회는 프랑스 같은 구교국에서도 불온시되어 탄압당하는 일이 벌어지죠. 


역사를 전혀 모르는 독자가 보면 과연 "아씨" 비비아나와 그녀를 지키는 가이 포크스가 펼치는 모험 그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말이죠. 그런데 이 1부 중간쯤(p108)을 보면 수수께끼의 닥터 디(가이 포크스보다 40살 정도 나이가 더 많은 실존인물)가 수정구슬을 꺼내 공모자들(국회 의사당 폭파 음모를 꾸미는 이들)의 미래를 점치는 대목이 벌써 나옵니다. 


이미 불길한 징조가 여럿 나왔고 객관적으로도 가망이 없는 작전이지만 참다운 신앙(그들 입장에서)을 회복하고 자신들의 정당한 자존과 재산을 지키려 드는 주인공들의 눈물겨운 분투에 우리 독자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작가 서문에도 나오지만 비비아나는 이 소설에 매력을 더하기 위해 고안된 가공의 인물입니다. 조지 크뤽솅크의 원본 삽화들도 이 책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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