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매시슨 -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6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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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멋진 단편집입니다. 공포는 길고 긴 이야기에서도 절실히 느껴질 수 있지만, 대개는 짧고 강렬한 사연 속에서 우리 독자들을 사로잡게 마련입니다. 리처드 매시슨은 20세기 후반을 완전히 지배한 B급 장르를 예전부터 태동한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아득한 시기의 고전 작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타계한 지 얼마 안 된 분입니다. 그래도 그의 작품은 마치 오 헨리의 그것처럼 정교하고 고아한 정격성을 풍깁니다.

"리처드 매시슨이 누구야?"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겠지만,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 원작자라고 하면 누구나 무릎을 칠 것입니다. 그 작품 원작(장편)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는데 독자에 따라 지루하다고 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호러 문학은 누구에게나 진입 장벽이 낮고 보편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특히나 공포에 고유한 색깔을 꼭 입히는 취미를 가진 매시슨 같은 작가의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여튼, 장편 <나는 전설이다>에서 약간의 지루함을 느낀 독자라면, 리처드 매시슨의 입문용으로 반드시 이 단편집을 먼저 맛볼 것을 권합니다.

매시슨은 어렸을 때 영화 <드라큘라>에 지대한 영향을 입고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에 홀로 거주하는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는 "일상", 특히 현대 독자의 일상하고는 거리가 매우 멀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브램 스토커의 그 고전 역시 본격적인 공포를 풍기는 건 백작이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런던 거리를 활보하고부터입니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정상적인 가운데, 유독 몇 가지 요소가 질서와 노곤함에서 벗어나 사람을 놀라게 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공포가 시작됩니다.

반대로 거의 모든 게 상궤에서 벗어난 작위적인 환경에서라면 (결국 사람이 미칠 수야 있어도) 진짜 공포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테마파크 안에서, 혹은 한여름 애인과 함께 영화관에서 꺅 소리를 지르며 지레 공포에 질린 양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입니다. 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 사람을 놀라게 하네? 이런 반응은 크기에만 차이가 있다뿐 대부분의 우리들이 매일같이 겪던 것입니다. 이런 걸 문학의 경지에까지 이끌어낸 게 매시슨의 천재젹 역량이겠고 말입니다.

예전 KBS에서 방영하던 미국 드라마 <환상 특급>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개별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비슷한 테마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역시 놀라웠던 체험이었지요. 이 단편집은 역시 그것과 매우 비슷한 구성입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아직 어리거나 나이에 비해 미숙합니다. 그런 영혼에게 환경은 정말 어느날 갑자기 섬뜩한 배신을 가하며, 뭔가 살짝살짝 미심쩍다고 여긴 나날의 교란과 동요는 그예 주인공에게 "진실의 순간"을 쓰나미처럼 안깁니다.

어떤 에피소드는 초현실적 요소가 거의 없는데도 독자들은 등골에 소름이 돋습니다. 이처럼 공포란, 진짜 공포란 우리의 일상에 스며 있는 것들입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어?" 괴물이라든가 딴세상의 체험 같은 건 애초에 우리에게 닥칠 일이 없기에 일상은 그만큼이나 무서운 겁니다. 때로는 일탈 없는 일상이 더 무섭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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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서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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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서 일어선 국가의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흔히 미국을 일러 "축복 받은 땅"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한국의 어떤 시인은 "그X들 하는 짓을 보면 당장 망할 것 같은데 그 땅을 보면 천년 만년 이어질 것 같다!"고 탄식한 적 있습니다. 사실 "축복 받은 땅"은 맨입에 그들 백인에 주어진 게 아닙니다. 원주민들이 있었으나 대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했고, 사람이 살 만한 "인프라"가 깔리기까지는 엄청난 세월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미국인들은 그들의 성과와 터전에 자부심을 느낄 만하며, 그 과정에는 "비결"이 있을 만도 합니다. 물론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없을 수 없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따져야 하겠죠.

미국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각종의 혁신을 일구었기에(전기 최초의 상용화 등) 영국을 위협하며 제조업 대국으로 세계에 우뚝 선 바 있습니다. 그러나 건국 초기, 적어도 독립 초기에는 이 책 1장에 나온 대로 "상업 공화국"이었으며, 이 때문에 대서양 해안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협소한 무역 지대가 그 중추였습니다. 물론 더 남쪽의 버지니아, 더 남서쪽으로 들어가면 조지아, 앨라바마 등의 면화 농업 지대가 자리했습니다만 이곳 농업 주(state)들은 예의 동부 상업 지대와 구조적으로 유리되었다는 게 문제였죠. 이들 주는 오히려 바다 건너 영국과 경제적으로 더 밀착되었습니다.

또한 영국이나 프랑스(특히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짐은 곧 국가다"란 말이 잘 드러내듯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였죠)와 달리, 미국은 처음부터 13개 주의 연방제였습니다. 그러니 국가 중요사 결정에 있어 통일되고 신속된 모습을 보이기 힘들었습니다. 2장에서 "제퍼슨 대 해밀턴"이라 함은 이를 나타냅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조지 워싱턴을 도와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정치적 분쟁, 혹은 개인적인 다툼 때문에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국가를 하나로 묶는 건 "자본주의"였습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속성은 이익과 경쟁에 따라 국민을 사분오열시키기에나 딱 알맞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만은 예외였습니다.

만약 남부가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아마 미국은 하나의 국가로서 그토록 신속한 발전을 이어나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연방제는 느슨한 주들의 연합에서 강력한 중앙 정부의 등장으로 그 성격이 변화했습니다. 동시에, 전 국가를 하나의 법률 하나의 체제로 묶게 됨으로써 서부 "개척자"들이 안심하고 현지에서 이익 추구 활동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혹여, 성격이 완전히 다른 남부 체제가 국토의 중앙에 계속 자리했더라면 이런 동력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주식회사는 본디 독일에서 맹아가 싹텄고, 심지어 지금도 가장 완비된 형태의 주식회사 규율법은 독일에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건 역시 미국이죠. 지금 한국에서 이른바 "동학 개미 운동"이라고 해서 소액 투자자들 중심으로 우량주를 사 모으는 흐름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이에서도 알 수 있듯, 본래 소액 주주란 기업의 투자, 경영에 참여하기가 힘들고, 만약 주식회사 제도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불가능했을 겁니다. 주식회사 제도가 여전히 민주화할 여지가 많다고들 하지만, 그나마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스며든 곳이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입니다. 주식회사와 가장 가깝다는 유한회사를 보십시오. 지분을 갖기도 힘들고 투명한 경영을 감시하기도 어렵습니다. 자본주의란 그저 돈 가진 이가 "위너 테익스 잇 올"하는 제도일 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 혹은 진화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이, 바로 독과점 제도의 규제입니다. 엊그제 배달의 민족 수수료 인상 과정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개입"을 시사했죠.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나 이 일이 터지기 훨씬 전 저는 개인적으로 "배달 앱의 순기능은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이 흡수해야 하지 않나"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튼,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는 독과점이 생기건 말건 정부가 끼어들면 안 됩니다. 강자가 독식을 하든 말든 그건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를 뿐이니 말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가 멸망으로 치닫는다고 했죠! 그런데 마르크스의 예언과 아마 무관하게, 시스템을 관리하는 이들이 "이대로 가다간 망한다"고 판단하여 이런 독과점을 비교적 이른 단계에서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두고 공산주의식이라는 비판은 거의 없었던 게, 독과점의 가장 큰 피해는
소규모 기업들과 일반 소비자(노동계층과 직접 관계 없는)이 겪게 바련이니까요. "독과점'이란 비판보다는, "경쟁의 저해"가 규제의 명분이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 중 하나가 바로 "경쟁"이니 말입니다.

"본업"이란 영단어는 아마 business일 겁니다. 남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라는 표현이 mind your own business이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사업은, 이 역시 business입니다. 따라서 "아메리칸 비즈니스 이즈 비즈니스"라고 하면, 뭔가 동어 반복 같아도 알고 보면 심오한 의미가 깃든 셈이고 약간 웃기기도 합니다. 과연 아메리카는 딴 거 신경 안 쓰고 비즈니스에만 몰두했기에 오늘날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미국이, 저자 그린스펀 등이 역설하듯 왜 성장의 동력을 잃었을까요?

그 답은 갈릴 수 있습니다. 부유층의 탐욕이 극에 달해 사회가 정의를 잃어서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누군가가 중뿔나게 나서서 "부유층이 탐욕스럽다"니 뭐니 간섭하며 자본주의 특유의 장점을 퇴색시켜서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격도 없이) 호루라기만 빽빽 불어대면 어디 경기가 재미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강자의 반칙과 폭주를 마냥 방치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입니다. 20세기 록펠러(라키펠러)의 독과점을 그대로 놔뒀다면 아마 미국은 그때 망했을 겁니다. 허나 인간의 지혜는 언제나 위기에서 해법을 찾았기에, 아마 그들의 미래는 마냥 침체에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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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환 시대의 한국 외교 -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와 우리의 미래
이백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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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양대 강국이 패권을 다투는 G2 시대의 개막에 대해서는 여러 저자들이 일찍이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망에 대해서는 각론이 엇갈립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포(이른바 조선족)들은 "얼마 안 있어 중국이 패권국이 될 것이며 한국은 속국이 될 것"이라고 대담하게 의견들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전망이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 많은 걸림돌이 남은 것도 같습니다. 이번에 전염병의 창궐 과정에서도 중국은 미숙한 모습을 많이 드러냈는데, 무슨 초강대국이 저렇나 싶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사람이 많이 죽었으나 그건 경우가 다르고, 원인 제공은 누가 뭐래도 중국입니다. 여튼 패권이다 강대국이다는 우리 입맛에 맞춰 등장하는 게 아니므로, 만약 중국이 정말로(ㅋ) 패권국이 된다면 우리는 그에 걸맞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중국어 열심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당성을 위한 힘, 힘을 위한 정당성" 사실 정의다, 국제법이다, 이거만큼 허망한 구호가 또 없습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정의가 지구 구석구석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에서 살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지만, 적어도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힘이 곧 정의요 정의는 그저 힘의 다른 포장일 뿐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어떤 절대 불변의 정의라는 게 있어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지배했을 겁니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한때의 강대국은 반드시 그 힘을 잃고 다른 나라에 그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대국굴기> 같은 컨텐츠에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중국이 패권을 잡는다고 당당히 예언했던 겁니다. 문제는, 누군가가 앞으로 미국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중국이 되라는 법이 있냐는 것, 또 미국이 언젠가는 패권을 잃겠지만 그게 대체 언제냐는 것입니다. 만약, 아직 여전히 강성한 미국더러 "너 인제 아무것도 아냐!"라며 횡포를 부렸다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은 고사하고 오히려 경칩 날짜를 착각한 개구리처럼 엄동설한에 얼어 죽기나 좋습니다.

왜 국제 질서는 흔들리는가? 앞에서 저자가 말한 대로, 결국은 역학 관계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러시아 같은 나라는 "원유 거래 달러 결제"의 원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거래를 행합니다. 이란도 미국과 불구대천 원수이니만큼 마음이야 달러 무시가 아니라 달러 소각도 주저치 않겠지만, 아직은 미국의 힘이 여전히 강하기에 그리 하지를 못합니다. 사우디는 뭐 마냥 미국의 졸개 노릇이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힘에 굴복해서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겁니다. 어제 뉴스에 러시아, 사우디가 서로 싸우며 미국의 비위를 맞췄다고 하는데 이게 현실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들 두 나라가 서로 손을 잡고 미국 중심의 질서를 한번 흔들어 보려 했었습니다. 지금은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장래가 밝은 건 아닙니다. 미국은 철저하게 개인 중심으로 자기 생존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실한 면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의료 제도지요. 반면 한국은 웬만큼 걷다 보면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 있을 만큼 적어도 이런 분야에서는 국민이 살기 꽤 편합니다.

세상은 참 묘한 곳입니다. 1990년대 한국의 어느 대통령은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했으면서 "세계화"를 부르짖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대통령의 모 측근이 장관 세 개를 하는 게 "세개화"라며 그 대통령 특유의 발음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여튼 그 시절에는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으로 분업 체계를 완성하면서, 각국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만 생산하면 그만인 이상향을 꿈꿨습니다. 이는 사실 자본주의 태동 초기의 리카도 같은 자유무역주의자가 이미 꿈꾼 세상이며, 학자들은 아마도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지만)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에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경계하기도 했지만 완전한 자유 무역이 이뤄지면 결국 증대되는 게 소비자의 후생입니다. 그런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확고히 세워졌다고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도 그 믿음이 급격히 붕괴했습니다.

짝퉁을 팔건 뭘 하건 시장 질서에 끼워 주기나 해야 그걸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WTO에 사정사정하여 가입했으며, 이걸로 서유럽과 미국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여 한때 잘 살았습니다. 그 전에는 시도때도 없이 닥치는 불황과 공황 때문에 국민의 원성이 꽤 높았는데 WTO 체제 이후로는 십 년 넘게 그런 일이 없었죠. 그러다가 08년에 큰 일이 터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기술 탈취, 저작권 위반 등 반칙을 일삼고 군비 확충도 도모했습니다. 작은 이익을 얻으려다 미국 등 기존 질서의 지배자들은 더 큰 것을 잃기 직전까지 몰린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일어 "혼돈 엔트로피 증가"로 규정합니다. 엔트로피 자체가 혼돈의 밀도를 본질로 삼으니 동어 반복 같기는 합니다만 여튼 무슨 뜻인지는 우리 독자들이 바로 알아듣습니다. 오히려 지난 냉전 미국 소련 대립 시기가 긴장은 높았지만 혼란의 정도는 더 낮았습니다. 미국과 소련 두 맹주가 세계의 절반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는 했고, 소련 미국 양국은 서로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나 미국이나 경제적으로 너무 의존하다 보니, 싸우고 싶어도 경제가 무너질까 싶어 싸울 수가 없습니다. 이게 바로 혼돈 엔트로피의 증가입니다.

"어려울 때는 원칙으로 가라" 사실 이게 정답이죠. 이럴수록 국가의 책임 있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절제하고 양보하고 지혜를 짜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마다 이른바 스트롱맨이라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었기에, 그런 기대도 그 어느 때보다 갖기 힘들다는 게 또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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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지도로 읽는다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안혜은 옮김 / 이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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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다미디어의 책을 예전부터 즐겨 읽었습니다. 중국에서 펴낸 대중서, 자계서도 여럿 있었고, 일본인 저자들이 그야말로 독자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펴낸 깔끔한 책, "이다미디어"하면 저는 대강 이런 이미지가 생각납니다.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츠 씨의 책들도 이 출판사에서 번역된 게 많습니다. 그 중에 상당수는 "도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깔끔한 편집 위에 온갖 유익한 정보를 다 담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슬람 세계는 국제 분쟁의 한복판에 위치했으며, 동시에 산업 사회가 돌아가는 핵심 자원인 석유의 매장지이기도 해서 더욱 중요합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는 중이지만, 이란 같은 곳은 이슬람 혁명 이전부터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테헤란로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테헤란에도 한국인 사업가를 맞이하는 호텔을 운영하는 여성 사장님이 계십니다. 한국인들도 채 상상 못 할 만큼, 이슬람과 한국의 관계는 돈독합니다. 이런 이슬람에 대해, 그저 막연히 "두건을 쓴 광신도들의 집단 거주지" 정도로 편견을 가지면, 우리만 손해일 뿐입니다. 그들에 대해 잘 알고,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사업상의 이익을 얻고, 우리의 일상 편의도 더 단단히 다질 수 있습니다. 당장 일본만 해도 (트럼프가 그렇게 압력을 넣어도) 이란과 대번에 관계를 끊지 않기에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신기하게도 현재의 이슬람 세계는 세계 문명의 발상지를 둘이나 품습니다. 하나는 이집트고, 하나는 메소포타미아, 지금의 이라크 일대입니다. 물론 문명이 사막 한복판에서 자랄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나 이라크 역시 사막이 국토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문명이 태동한 곳은 강 유역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구 곳곳에 큰 강이 많이 소재하는데도 유독 사막을 같이 낀 지역에서 이처럼 문명이 발생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중동이 곧 이슬람은 아닙니다. 아득한 옛날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나 다신교를 믿었습니다. 우리가 책에서 보듯 라니, 이시스니 하는 다채로운 이름을 지닌 신들이 나오는 게 이집트 신화 체계입니다. 또 바빌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역시 현재의 이슬람과는 너무도 다른 종교를 숭상했습니다. 이러던 게 (문명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비교적 최근인) 7세기에서야 비로소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으로 신앙이 통일된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은 현재 형식화, 공허화한 지 오래입니다만 이슬람 신자들은 꼬박꼬박 의식과 의무를 지켜가며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합니다. 이 역시 놀랍고, 이런 그들을 이해 못 하면 애초에 소통이 될 리 없습니다.

기독교 문화권과 이슬람은 언제나 대립해 왔습니다만 7세기 전만 해도 로마 제국이 지중해 전반에 두루 패권을 행사했습니다. 그 제국의 서반부는 결국 게르만의 침공 등쌀을 못 이겨 동부로 이동했지만, 오히려 이 덕에 지중해를 더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고, 동로마가 결국 사산 조 페르시아를 멸했기에 로마 제국의 권위는 한층 높아졌습니다. 이러던 게, 사막 한복판에서 느닷 예언자라는 마호멧이 출현하여 그야말로 세계 역사의 판도가 바뀐 것입니다.

이 책에는 매 챕터의 끝마다 저자의 "칼럼"이 있습니다. 저자는 제가 이전부터 그의 책들을 여럿 읽었기에 성향? 스타일 등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선생님답게 관점이 표준적이고, 온건하며 무난하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편이죠. 여튼 이슬람 상인들을 분석한 그의 시각은 공정하고 바람직하기에 대부분의 독자가 그의 상식을 표준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합니다.

이처럼 7~8세기에는 이슬람 유일신 신앙으로 무장한 아랍인들이 놀라운 열정과 역량으로 지중해는 물론 아시아에까지 널리 침투했습니다. 오늘날 인도가 종교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지만 원래는 그들 토속 신앙으로 잘 살고 있던 것을 들쑤셔 놓은 게 바로 11세기 무렵의 이슬람 세력 침투였습니다. 이 세력은 널리 중국에까지 뻗었고, 우리 역시 고려와 그 이전 신라가 이 영향을 미미하나마 받은 바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토착 아랍인들이 주춤해지고 초원, 사막의 유목 민족이 득세하는데 주루 튀르크 인들이 활약했습니다, 우리도 잘 알듯 돌궐린인들은 이곳 동아시아에서 활약한 종족인데 당나라의 공격, 부(富)의 흐름이 중앙아로 이동하는 추세 등에 힘입어 널리 서쪽으로 옮겼고 이것이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을 낳았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무서울 게 없었던 튀르크의 위세도 잦아들어, 세상은 유럽 백인들이 좌지우지하게 되었습니다. 산업 혁명 이후 가장 효율적인 연료가 석유임이 판명되었는데, 얄궂게도 석유는 석탄과 달리 한 지역, 중동 인근에 편중되어 매장된 자원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기술이 발전하여 더 많은 부존지가 확인되고 경제성도 함께 담보합니다만).

중동도 민주화할까요? 대략 십 년 전에 자스민 혁명이다 뭐다 해서 많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아직 모릅니다. 러시아는 옐친이 공산주의를 엎을 때만 해도 민주화될 줄 알았지만 현재 푸틴이란 독재자가 종신 집권을 꿈꿉니다. 아랍도 한 독재자가 물러나니 다른 독재 세력이 발호하며, 국부 케말 파샤가 기반을 잘 닦아 놓은 터키에서는 현재 시대착오적인 독재자 에르도안이란 자가 나타나 세계 정세를 암울하게 물들입니다. 이럴수록 아는 게 힘이며, 우리는 중동에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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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 - 사람이 만드는 기업의 미래
강성춘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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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책입니다.

예전, 1980년대에도 예컨대 삼성은 "최고의 인재를 모아 우대하는 기업"으로 회사 방침을 정했더랬습니다. LG(당시에는 럭키금성)은 "국토는 세계 79위, 부존 자원은 거의 없는 나라이기에 우리는 사람을 중시합니다. 인재가 귀한 줄 알겠습니다." 같은 슬로건을 잡지 광고 지면에다 실었습니다. 이 두 기업이 지금까지도 그런 원칙을 지켜 나가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만 HR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조되는 요즘입니다. 직원 기를 못 살리는 회사는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게 요즘 트렌드입니다.

요즘 경영서는 많은 기업을 탐방하고 설문 조사를 돌린 끝에 실증 결과를 내놓는 형식이 많습니다. 이 책도 그런 형식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여느 책들이 그저 설문, 실험 결과의 나열만 늘어놓고 그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이 책은 뚜렷한 결론이 있습니다. 또, 어떤 책은 실험과 설문, 그리고 결론 사이에 논리적 비약이 있는 반면 이 책은 그런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징검다리가 촘촘합니다. 아무리 결론이 좋아도 그 결론이 나오는 과정이 다소 비약이다 싶으면 그 책은 큰 신뢰도를 갖지 못합니다. 이 책은 저자 강 교수님의 촘촘한 논증과, 그 사이에 독자가 생각할 여백까지 있어서 마치 우리 독자가 읽으면서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업사이드 다운, 인사이드 아웃" 이 구절은 미국 유행가 가사 구절로도 쓰이며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속속들이 파헤친다"거나,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역발상"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저자 강 교수님의 함의는 다릅니다. "인사이드"는 기업 내부의 인적 자원 역량을 가리키며, "아웃"은 그런 HR 자원을 철저히 분석하고 계발한 결과, 아웃풋을 말합니다.

우리 회사에 어떤 훌륭한 인적 자원이 있는지 먼저 그 포텐을 100%, 아니 1000% 발휘하게 하라, 그러고 나서 눈부신 성과를 노려라, 뭐 이 정도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사람이 먼저다"라고 한 적 있는데, 이 책이야말로 사람, 우리 회사 사람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창의적 역량을 최대화할 것을 주문합니다. 직원이 중요하다, 기 살려라 같은 주문은 여태 있었지만 아예 HR의 토대 위에서 모든 걸 결정하라는 식의 충고는 처음 보는 듯합니다.

사장님 입장에서 쓴 책은 직원들이 꼭 읽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은 "역지사지"입니다. 서로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실 분쟁이 일어날 여지도 없습니다. 물론 "역지사지"란 좋은 말이 가장 타락항 의미로 쓰일 때는 "너, 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봐!(본인은 전혀 그럴 생각 없음)"라며 당치도 않은 어떤 강요를 하고 들 때입니다. 애초에 저런 모자란 인간과는 상종을 하지 말아야 현명하겠습니다만 세상사가 그리 뜻대로 되지는 않죠.

여튼, 반대로, 경영자들 역시 "직원을 소중히 다루길 주장하는 책"을 좀 꼭 읽어봐야 합니다. 과거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은 해군을 이끄는 제독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등 사지로 몰아넣어 창의적 전술을 강제로 이끌어냈다고 하지만 지금은 16세기가 아닙니다. 부하 직원에게 CEO의 범죄 사실을 대신 뒤집어쓰게 하거나, 억지로 기획안을 짜내게 하는 식으로는 기업이 바르게 운영될 턱이 없습니다.

혁신이란 무엇입니까? 과거의 방법이 더 이상 변화한 환경에서 통하지 않기에, 특히 크리스텐슨 교수(명복을 빕니다)의 제언처럼 "기존의 모든 것을 들어엎고 새로이 창조하는" 파괴적 혁신을 도모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제도"입니다. 직원들이 최대한의 창의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당한 성과가 나오며, 그 성과는 다시 제도의 혁신을 부르는 선순환. 이것이야말로 인사이드아웃의 정신을 구현하는 21세기형 기업의 정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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