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의 완벽한 탈출 하늘을 나는 조랑말 케빈의 모험
필립 리브 지음, 사라 매킨타이어 그림, 신지호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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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케빈의 활약상을 지켜 본 독자들도 솔직히 말해서 그의 행보를 마냥 마음 편하게 구경하고 동참한 건 아닙니다. 이 녀석은 뭔가 사람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밉상은 아니고 우리는 여튼 케빈을 끝까지 응원하고 감정 이입하게 됩니다. 케빈이 사람 마음을 이끄는 이런 비결이 무엇일지 저는 이번 편을 보고 어느 정도 알게 되었네요.

엄마, 버즈, 맥스, 데이지, ... 이들이 케빈을 대하는 태도? 혹은 살가움? 이런 건 조금씩 차이가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닮은 구석도 하나는 아주 뚜렷하죠. p24를 보면 엄마의 말,

"우리는 케빈을 팔지 않아요."
가 있습니다. 이 말에 저는 약간 뭉클해지기도 했는데, 그렇죠. 우리 케빈은 누군가가 그 존재를 대신할 수 없는 녀석입니다. 어떤 뜻에서건 "얘를 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늘을 나는 말, 그 심상의 원천은 페가수스입니다. 페가수스는 페르세우스가 아끼던 천마인데, 신으로부터 이 날개 달린 말을 선물 받은 후 그는 인간의 자식(반인반신)으로서 할 수 없던 과업까지 멋지게 해 냅니다.

어찌 보면 이 조랑말 케빈은 징구에게 찾아온 도라에몽 같기도 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그저 무력하고 때로는 또래보다 더 무기력한 느낌에 젖는 건 사실 어린이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갖는 공통적인 기분일 겁니다. 그런 때에 초능력 비슷한 걸 가진 한 어깨를 빌려 주어 문제를 해결하게 도와 주는 친구. 이런 존재를 두고 돈 몇 푼, 혹은 무슨 대가를 치르건 간에 "판다"는 건 있을 수 없죠.

"누가 알겠니? 지금 이곳에는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p58)

그렇습니다. 도라에몽이 찾아 도와 준 진구의 세계에도 그저 착한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었죠. 아니 원래는 착한 이들만이 관계와 공간을 채우는 세상이었을 겁니다. 그러던 게 나쁜 친구, 친구들을 괴롭히는 친구, 자기 욕심만 채우는 친구, 나쁜 어른들... 이런 게 진구의 시야와 세상에 서서히 들어오는 거죠. 세상에 그저 엘프나 천사만 가득하다면 고민할 일도 없고 머리를 쓸 일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악한 존재들 덕에 우리는 성장하고 더 성숙해지며 바른 마음도 다지는 것입니다.

케빈도 감정이 (당연히) 있습니다. 케빈도 "남들이 나를 이런 쪽으로 봐 주었으면" 하는 에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목에서 미소를 머금게 되죠. 약간의 자뻑은 케빈도 차마 떨칠 수 없고 이런 약점? 개성? 때문에 우리는 케빈을 사랑하게 됩니다.

"어린이는 계약서에 사인을 못해. 누나는 어른이 아니니까 그 계약은 효력이 없어."(p73) 여튼 못된 인간들은 무엇을 손에 넣기 위해 잔재주를 부립니다. 어린 누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 줄도 모르고 나쁜 어른의 마수에 놀아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케빈도 만능이 아니기에, 마치 예전 미드 <전격 Z작전>의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처럼 나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꼼짝도 못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구해 와야 합니다. 우리들이요.

여튼 이런 뜻밖의 전개에서 저는 작가 필립 리브가 혹시 <전격 Z, 작전>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이 편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마이클이 키트를 구하러 악당들의 "회사"에 잠입하여 결국은 구해 내죠. 만능일 것 같아도 의외의(사실은, 우리 독자들이 일찍이 혹시 이렇지 않을까 하고 의심은 해 본) 약점이 있어서 이처럼 한번 걸렸다 하면 답이 없을 것 같은 그런 함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뽀빠이 아저씨가 시금치를 먹고 힘을 내듯, 혹은 렉스 루서의 마수에 걸린 슈퍼맨이 클립토나이트 목걸이를 떨쳐 내고 제 기력을 찾듯, 케빈은 잎사귀를 우걱우걱 먹으며 힘차게 발을 내딛습니다.

인생에는 이처럼, 비밀 통로와 같은 어떤 미궁이나 곤경이 반드시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날개는 신(혹은 부모님의 DNA?)이 준 선물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지혜는 우리 스스로가 짜 내고 실행에 과감히 옮겨야 합니다. 우리 케빈의 성공적이고 "완벽한 탈출"은 이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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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가합니다 - 분주한 일상에 충만한 기쁨
아카네 아키코 지음, 김윤희 옮김 / 미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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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어떤 친구가 저와 함께 요가하러 같이 다니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다른 친구가 저더러 "뇌호흡"도 같이 해 보자고도 했는데 그건 좀 찜찜해서 거절했습니다만). 결국 못 나갔지만 여튼 체형이 바로 잡히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 데에 요가는 확실히 효과가 있긴 하겠으며, 적어도 한국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본디 이처럼 육신뿐 아니라 마음을 바로잡는 첩경이 요가이긴 합니다만, 이 책은 본격적으로 "마음 요가"를 가르치고 있더군요.

책은 모두 84개의 이야기 꼭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84라는 숫자에 어떤 뜻이 담겼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그 한 마디 한 마디 제목이 독자의 차분한 공감을 유도합니다. 재목만 잘 읽어도 마음이 절로 정돈되는 듯한 느낌이나, 본문은 그보다 더 명징한 언어들, 마음이 착해지는 언어들로 이뤄집니다. 참 책이 제목 그대로다 싶었고, 읽기만, 아니 눈길을 주기만 해도 기도나 명상이 이뤄지는 것 같았습니다.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에 바람이 통하는 일상(p64)" 말은 쉽지만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죠. 왜냐면 이미 우리 마음 속에는 못된 욕심 주제 넘은 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모든 잡된 개념, 개념 같지도 않은 개념이 썩 사라지게 할까요? 저자는 이를 두고 요가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요가의 요체는 쓸데없는 동작을줄이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데에 있습니다. 개념,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개념은 그보다 더 간단한 다른 개념으로 대체되며(이른바 오캄의 면도날), 어떤 개념은 아예 건설적인 사고에 필요 자체가 없습니다.

불교에는 제법무아, 제행무상이라는 가르침이 있는데 우리가 일상이건 일에서건 집착하는 이른바 "에고"라는 게 실상은 아주 부질없으니 즉시 버리고 더 큰 세계로 자연스럽게 합일하라는 거죠. 특히 서양 문명의 경우 남과 구별되는 내 자신의 개성을 찾고 나의 욕구에 충실하여 이익을 도모하라는 분위기가 주조인데, 이게 다 쓸데없는 집착이라는 겁니다. 내가 내 이기적인 욕구를 안 내세우면 잡된 분쟁도 그치겠지만, 구태여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단 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그것만 해도 어디겠습니까. 책 p82에 이에 대한 자상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p95에는 "새장 속에 갇힌 새"라는 말이 나옵니다. 새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죠. 만약 우리가 중력이라는 새장이 없다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능력의 부족도 결국 새장입니다. 우리가 지적 능력을 어디서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다면 회사에서 칭찬도 받고 승진도 하며 자영업자라면 세상 손님을 모두 모을 수 있겠으나 "새장" 때문에 그게 안 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세상에 새장 따위는 없다는 겁니다. 그럼 왜 우리는 우리의 뜻을 못 펴는 걸까요? 답은 p95 이하에서 스스로 찾아 보십시오.

p104에는 우주의 바나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주의 바나나가 대체 뭔가요? 저자가 요가 수행을 위해 인도 모처에 머무를 때, 어느 원숭이가 냉큼 저자 손에 든 바나나를 나꿔 채 가고 사람들은 박장 대소를 하더랍니다. 이때 요가 행자가 "저건 선생님의 바나나가 아닙니다. 우주의 바나나입니다." 라고 하더라는 거죠.

우주의 바나나! 성경에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가는..."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흙이 본디 속할 곳인 흙으로 돌아갈 뿐이나 허무할 것도 아니고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내 것을 원숭이녀석에 뺏겼다고 비통해할 것도 없습니다. 내 손도 원숭이 입도 모두 우주의 한 자락이고 우주 그 자체입니다. 부분도 전체도 경계가 없습니다. 생각과 마음이 이에 미치면 무엇이 서럽고 무엇이 아프겠습니까?

사람을 가장 지치게 하는 건 인간관계입니다(p33). 나도 에고 덩어리이며 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없이 많은 에고와 에고가 맞붇잊고 진창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판에 전쟁이 벌어지고, 누군가 하나는 땅바닥에 맞아 뒹굽니다. 저자는 여기서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옳다는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기서 저자는 "당신이 틀리고, 타인이 옳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무대리"란 만화에선 직장에서 치이고 박살 날 때마다 "그저 내가 못난 탓이거니"로 돌리라고도 했습니다(다분히 반어적, 자조적). 물론 맞습니다. 내가 잘나면 안 터지죠. 그런데 그렇게 자기 부정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내세우는 게, "나도 옳지만 더 차원을 넓혀 '우리'가 옳다"라고 생각을 고양, 승화시켜 보라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허상을 극복하고 자연스러운 본성에 다다르게 됩니다(p80).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갖가지 집착을 가지며, 요행히 얻은 행운을 두고 나의 참모습이라며 타인에게 강변하게도 됩니다. 이런 게 쌓이다 보면 자신이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과대망상을 갖게 되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한 현대이다 보니 망상이나 허세가 거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최대 피해자는 이런 허세를 견뎌 줘야 하는 옆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품을 걷어 내고 자신, 정직한 자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남도 편해지고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분량이 짧은 책이지만 마치 요가를 잘 끝낸 날씬한 몸을 보듯, 필요한 가르침만 오롯이 담긴 착하고 지혜로운 책, 아니 스승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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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 침묵으로 리드하는 고수의 대화법
다니하라 마코토 지음, 우다혜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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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우리나 사람 사는 모습, 사회 구조가 닮은 구석이 많다 보니(닮은 만큼이나 그 차이점도 엄청나긴 하지만) 이슈에 따라 일본 분이 쓴 책에서 해답을 딱 맞게 얻는 수가 많습니다. 이 책도 제게는 그런 책이어서, 그간 꼬이고 얽힌 관계에 대해 좋은 시사점을 얻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특히 유튜브 등에서 TED 컨텐츠를 종종 보시나요? 저자는 여기서 특히 프레젠테이션의 달인들을 보고 많은 걸 배운다고 합니다(p32). 여기서 저 달인들은 그저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떠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청중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일정 지점에서 공감을 유도하고,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더 깊은 몰입도 도모합니다. 예전에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연설 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되묻는 화법을 자주 구사했고, 지금은 심X정 대표가 자주 쓰는 방법인 듯도 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프레젠테이션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말라, 그것은 바로 '설득'이다."입니다.

"토킹스틱(p96 이하)"은 예전에 저도 이 주제 하나만을 다룬 책을 한 권 읽은 적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자들이 부족의 소통과 그를 통한 평화를 끌어내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죠. 저자는 한때(대략 12년 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스티븐 코비의 자계서 <성공하는...>에서 이 토킹스틱 이야기를 다시 끌어냅니다. 분쟁이 극에 달하면 우리는 보통 "말이 안 통하는군."이라며 침묵의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 침묵이 이후 더 발전적인 소통으로 승화할지, 아니면 "갈데까지 가"게 되는지는 다양한 변수가 좌우합니다. 토킹스틱은 말하자면 후자의 길로 이끄는 일종의 도구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이 책의 진짜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니 그래서 결론이 뭔데?(p101)" 부부싸움이 더 나쁜 단계로 치닫는 중 남편이 보통 보이는 반응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남편들이 종종 잊는 점이 있다고 하는데, 아내는 이런 상황에서 그저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 자체를 조성하려고 한다는 거죠. 그 의도를 모르고 남편은 "상대, 즉 아내의 의도, 혹은 결론"만 성급하게 알아내려고 합니다. 남편을 두고 무조건 단세포라며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들이 깨닫지 못하는 건, 애초에 이런 싸움에 무슨 "결론"이라는 게 있기가 힘들다는 겁니다(아내에게건 남편에게건 말입니다). 만약에 만약에 아내가 "결론"이 있다면, 그럼 뭐 남편은 그에 무조건 따를 작정이었겠습니까? 만약 마음에 안 들거나 비합리적인 구석이 있다면 바로 불복하고 또다른 싸움으로 접어 들었을 거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이 뭔데?"라고 묻는 건 그냥 싸움을 이어가자는 거밖에 아니죠. 이런 점에서 "일단 같이 해법을 모색하게끔 분위기부터 만들자"는 아내의 암묵적인 제안은 남편의 그것보다 타당합니다. 이건 뭐 입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성격이 아닙니다. 애초에요.

남들 앞에 서면 일단 몸이 배배 꼬입니다(p120). 사람들, 수많은 청중들이 쏘아 대는(꼭 적의 어린 게 아니라 호기심, 호의도 있지만 말이죠) 시선의 힘을 배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이겨내야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은 물론, 달인까지는 가지 않아도 PT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성과를 만드는 조직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발표자는 상대의 눈을 일단 바라보고(사람들이 많으면 그들과 일단 일일이 눈을 맞추고)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지면서, 몸짓과 손짓은 크게 하라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사실 이게 주관적인 자신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상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확실히 서면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더군요.

저자는 현직 변호사인데 실제로 상대와의 물리적 거리를 조절함에 따라 다른 소통의 요소, 즉 메시지라든가 태도라든가 분위기가 조절된다고 합니다. p131 이하에 이 말이 자세히 나오는데 어찌 보면 이 책 제목이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내용 본체이기도 하겠습니다. 무조건 우호적인 소통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상대를 제압헤야 할 필요가 있을 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효과적이며, 상대를 압박하려면 실제로 거리를 바짝 좁히라고도 합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물리적 거리를 통한 관계성까지의 조절(p133)"이라 정리합니다.

"개방형 질문"과 폐쇄형 질문은 제가 지난주에 읽은 어떤 책에도 나온 주제인데 이 책(p170)에서 또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청중을 어느 정도 자신의 공감대 영역 안에 끌어들이거나 묶어 둘지에 따라 화자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말이 그렇다 뿐이지 사실 개방형이니 폐쇄형이니 하는 건 일도양단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독자인 저 역시 과연 책에서 설명하는 모든 개념이 과연 현실에서도 칼 같이 적용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많았습니다만 저자 역시 그런 태도였네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이는 말 듣는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는지에 따라 자연히 따라나오는 "지혜, 융통성, 유연함"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자세한 건 p173 이하에 저자의 처방이 나옵니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성현의 시 구절에도 나오지만 우리는 이성을 가진 인간, 또 그 이전에 사람으로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회인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거리와 힘 조절이 가능합니다. 그게 안 되는 건 이기적이고 유아스러운 자기 욕심이 앞서서입니다. 힘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힘을 조절하는 게 어려우며, 그 "거리"의 조절이야말로 소통뿐 아니라 인간 관계의 달인, 아니 달인까진 아니라도 최소한 남 하는 것만큼은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도리임을 잊어선 안 되겠습니다. 평균도 못 하는 사람이 꼭 달인 어쩌구를 입에 쉽게 담기 마련이고, 공감은 죽어도 못 하는 인간이 남더러 자신에 공감 못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며 입에 거품을 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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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인, 아마조니언 되다 - 삼성, 아마존 모두를 경험한 한 남자의 생존 보고서
김태강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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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삼성을 다닌다, 혹은 경력 중 한 줄로 이력서에 들어간다고 하면 최고의 인재로 평가 받습니다. 그런데 삼성뿐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성장세를 보이는 아마존닷컴에서도 근무했던 분이라면, 더군다나 요직을 맡은 경력이라면 정말 돋보이는 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분의 조직 분석서입니다.

삼성과 아마존은 여러 모로 구별 되는 조직입니다. 일단 삼성은 기업 문화가 빡세기로 유명한 한국 기업 중에서도 특히나 직원 문화가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율뿐 아니라 업무 강도도 세계 어느 기업에 뒤쳐지지 않을 만큼 강합니다.

그에 반해 아마존은 일단 이런 한국 기업들에 비해서 직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폭 넓게 보장됩니다. 물론 아무리 형식이 자유롭다고 해도 생각 없는 멍청이가 무슨 봉이나 잡은 듯 날로 먹을 분위기는 아닙니다(아마존 아니라 세상에 그런 회사는 없죠). 널널한 듯해도 직원이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독특한 그들만의 비결이 있겠고, 이런 점은 두회사를 모두 다녀 본 분이라야 우리 독자들에게 정확히 일러 줄 수 있겠죠.

책 p67에는 의외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마존은 다른 테크 회사들과 다르게 삼성과 굉장히 비슷한 회사다." 즉 부하 직원 몇 위에 이들을 관리하는 이가 있고, 이들 위에 다시 상위 관리직이 있어 피라미드를 쌓아 올린 것과 비슷하다는 소립니다. 그런데 저자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고 하네요.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삼성과 같은 결재 시스템이 없다"는 겁니다.

예전 신문 연재 만화 <무대리>에서는 상사한테 깨질 때마다 "내가 그저 못난 탓이거니 여기라"는 주문이 독자들에게 호응 아닌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대부분 "깨진다"는 게 결재 과정에서 깨지는 겁니다. 상사에게 칭찬 받고 기안이 다 승인되면 회사 다니는 게 회사 다니는 게 아니라 고차원 놀이터에서 즐기는 겁니다. 결제를 못 받고 면박을 당하니까 회사 다니는 게 죽을 맛이라는 건데, 아마존에는 세상에 이 결재 시스템이 따로 없다는 거죠.

요즘 회사의 트렌드는 바로 창의성입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신이 나서 즐겁게 일을 해야 그 일의 성과가 양질이 됩니다. 죽지 못해 일하고 밤낮으로 모멸을 겪고 까이는 회사 직원들 머리에서 나온 성과는 전근대에나 알맞은 판에 박힌 진부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모토는 첫째도 최대 자율, 둘째도 자율입니다. 물론 이런 자율과 재량을 부여 받으려면 그 직원 자체가 충분한 능력을 지닌 인재라야 가능하겠습니다. 저질의 멍청한 꾀쟁이한테 재량을 줘 본들입니다.

"내 자리가 없는 아마존(p133)" 우리 나라 회사에서 이런 일 생기면 그날로 죽는 겁니다. "짤렸다"는 말의 제유법은 바로 "책상이 사라졌다"입니다. 그런데 아마존은 본래 직원 개개인의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군요. OUR PLACE라고 해서 일정 영역에서 자기가 적당히 앉으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새벽에 무리지어 버스로 출근하시는(사실은 그냥 새벽 마실) 할머니들 보면 버스에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종의.... 기득권? 혹은 고정된 포지션에 대한 강박은 현상 타개를 심리적으로 어렵게 만들죠. 아무것도 아니고 사무실도 그 자리인데 때론 다른 자리에 앉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고 새 착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워 플레이스 안에서 내 자리를 유동적으로 정한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팀웍을 공유한다는 겁니다. 마이가 아니라 아워인 공간에서, 나는 다른 팀원과 자리를 바꿔(비유적으로건 물리적 의미 그대로이건 간에) 앉아 봄으로써 그와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팀웍인들, 팀 스피릿인들 고양되지 않겠습니까? 아마존의 자리 배치는 이런 것 하나도 세심하게 고려한 것입니다.

저자는 아마존에서 시니어 제품 담당 매니저로 봉직한 분입니다. p149의 일정 대목을 잠시 그대로 인용하면 "... 삼성에서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제품 성능 평가를 통해 양산 여부를 결정했다"는 건데, 이는 사실 예사 능력으로 감당 가능한 직분이 아닙니다. 여튼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경력으로 지원 가능한 게 그 분야뿐이라서"인데 일반 독자의 기를 상당히 죽이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여튼, 아마존에서 구태여 대학 전공을 보지 않고, 오히려 MBA 코스 수료자(엄연히 문과)를 우대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술적 지식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어떤 비전을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보고 높이서 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재의 본질입니다.

삼성이건 아마존이건 동료의 신뢰를 얻는 건 무척 중요합니다. 이는 사람의 심성, 인성 따위에 대한 신뢰일 뿐 아니라 능력에 대한 신뢰이기도 합니다. 삼성, 아마존에서 근무할 기회를 갖는 행운(혹은 타고난 능력)의 인재가 과연 우리 나라에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이런 조직에서 성공한 인재의 충고를 듣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자기 회사 안에서 성공할 수 있고, 요즘은 첫 출발이 안 좋아도 이직을 통해 자기 경력을 처음보다 훨씬 알차게 가꿔 나가는 게 가능하더군요.

p204에는 그런 신뢰를 얻기 위한 저자만의 비결이 나옵니다. 첫째는 소통입니다. 저자는 일단 회의록 자체를 충실히 작성하면서 혹 자신이 잘못 알아들은 부분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했다고 하는데 말은쉬워도 상사에게나 동료에게나 이렇게 워딩의 정확성을 확인 받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 문제도 있고 번거로워서라도 못 하죠. 다음으로는 솔직한 매너인데 이는 앞선 1번 항목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셋째로 저자가 꼽는 건 메일 회신을 비롯해 가급적이면 시간에 맞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겁니다.

Step out of your comfort zone. (p230) 사람은 자신의 익숙한 알을 깨고 나오는 게 무척 어렵습니다. 어떤 자는 자신이야말로 더러운 요람 안에 머물러 나올 줄을 모르면서 남더러 자신의 한계 안으로 들어오라며 적반하장격 헛소리를 합니다. 이런 것 역시 미숙한 인격체가 보이는 퇴행의 반응이죠. 반면 자신이 이미 익숙한 틀을 깨고 더 넓은 세상을 활개치는 사람이라면 그런 헛소리에 이미 신경이 쓰이지조차 않습니다. 이 책을 읽고 무엇보다 깊이 새긴 가르침이라면, 자신의 좁은 틀 안에서 벗어난 경험을 한 사람이 멀리서, 높이서 내다 볼 수 있는 여유와 "비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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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뱅크가 온다 - 2025 미래 금융 시나리오
다나카 미치아키 지음, 류두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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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쪽으로 바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편의의 모습이 어떨지는 아무도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그의 인적 정보를 스캔해 내어서는 관심사에 따른 광고를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의 쇼핑 패턴도 과연 그 정도로 편하게 바뀔까요?

"아마존 고"라는 혁신적인 상점은 이미 미국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점포에는 점원이 없고, 상품을 산(?) 후 가게를 나설 때 따로 값을 치르는 절차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그들은 "노 체크아웃 스토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이런 혁신이 가능했을까요?


놀라운 건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건 살 돈이 부족한 고객들에게 적정선에서 돈을 꾸어주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이후 상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평가를 그들은 "귀신 같이", 기존의 덩치만 큰 채 우둔한 은행보다 정확히 해 낸다는 뜻입니다. 개인의 취향을 (아마도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확히 파악한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니즈를 알고 적절한 상품을 선제적으로 추천해 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아마존이 가까운 장래에 도달하기 위해 애 쓰는 하나의 이상상이며, 벌써 한 걸음 한 걸음 무섭도록 현실화하는 중인 목표입니다. 물건 파는 백화점이 고객 주머니 사정까지 정확히 꿰뚫고는 나중에 받아낼 수 있을 만큼만(혹은, 자신들의 물건을 살 수 있을 만큼만) 빌려 주고, 정확히 원하는 물건을 배송까지 마쳐 주는 똑똑하고도 무서운 소매점. 아마존이니까 꿈꿀 수 있는 야심찬 미래입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아마존 경제권의 확대이다(p114)." 과거 한 가지 시장을 단일 기업이 다 손에 쥐면 독점으로 규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여러 시장을 똑똑하게 지배하는 행태는 아직 법의 단속 대상이 아니며, 무엇보다 소비자를 편하게 해 주는 혁신이 회초리를 맞아야 할 이유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없습니다. 물건 팔아 이익도 남기고 물건 살 돈도 꾸어 주면서 이자까지 챙기는 영리하고 무서운 백화점을 상상해 보십시오.

일본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공부했고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저자는, 이런 아마존의 혁신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선 같은 동양권의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놀라운 도약에 주목합니다. 결제의 편의성을 꾀하고 자신들의 결제 플랫폼을 어느새 사회 인프라 수준으로 도약시킨 공은 이들 중국 기업이 먼저였다는 겁니다. 이 점에 한해서는 아마존도 그들의 후발주자에 불과합니다. 또, 알리페이나 위챗 등도 이미 결제수단을 넘어 금융의 영역에 몇 발을 들여 놓고 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학자들, 애널리스트들은 "금융 디스럽터"라고 말합니다. 일본어로는 "金融破壞者"라고 부른다는 걸 p111의 책(사토 모리노리 저) 제목 소개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한국식으로도 뜻이 통하는 건 물론이고요). 훌륭한 제도라면 애써 파괴할 이유가 없고, 잘 가꿔서 유지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일본의 금융이 아주 실망스러울 만큼 저조하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일본인인 저자는 이 점을 신랄하게 꼬집는데, 이는 아마 한국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 더했으면 더했죠).

금융이 금융 구실을 못 하고,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니 누군가가 나서서 이들을 갈아 치워야 합니다. 바로 이 역할을, 온라인 스토어에서 시작한 IT 기업들이 자처하고 나선 겁니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 메신저로 전 국민의 스마트폰 안에 자리잡은 (주)카카오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 많이들 이용하시는 인터넷 은행이 바로 그것입니다.

개인의 신용을 정확히 평가해야 은행 측에서도 효과적인 대출이 가능합니다. 대출은 은행 입장에서 (당연히) 장사이므로 상환 능력이 있는 고객이라면 최대한 찾아내어서 대출 상품을 안겨야 합니다. 이 상환 능력이라는 걸 종전 전통 금융 기관은 그저 보유한 담보 재산만으로 평가했습니다만, 아마존 등은 소득의 흐름, 특정 재화를 갖고 싶어하는 취향 등이 상환 의사로 연결되는 과정까지를 포착하기에 이릅니다. 능력 있는 사람한테 돈을 빌려 주는 건 그 사람 좋은 일 시키고 마는 게 아니라 은행 자신이 바로 남는 장사를 하는 겁니다. 이 일을, 그동안의 구매 이력 등을 통해 고객의 성향과 능력을 정확히 평가한 IT 기업이 해 내는 거죠.

이런 우량 고객 한두 사람 발굴(?) 한다고 해서 장사가 될 리는 없는데, 이들 IT 기업들은 빅 데이터의 정밀한 발굴을 통해 그간 기존 은행이 실패해 온 과업을 멋지게 달성해 냅니다. 이러니 (건설적 의미에서) 금융 파괴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상류(商流)"라 부릅니다. 상류라는 단어는 일본어에서 원 의미는 좀 다른데 여튼 이 책에서 저자는 그리 개념 규정을 합니다.

p55에서 저자는 금융 파괴자가 자신이 개발해 낸 플랫폼을 통해 운용하는 3대 기능을 상류, 물류(物流), 금류(金流) 셋으로 요약합니다. 이 세 가지는 종래 다른 기관이 제각각 맡았습니다만 현대 경제 체제가 만족스럽게 느낄 만큼 효율이 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건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하나의 기업이" 시너지를 내며 결합시켰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크겠냐는 겁니다.

여기서 아마존의 지향하는 가치가 등장합니다. 고객은 최대한의 편의를 누려야 하며, 결제 과정은 물론이고 어떤 상품을 골라야 할지, 골라서 결제한 상품을 집에 배송받기까지 "그런 줄이 일어난 줄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마칠 권리가 있다는 거죠. p91에 이런 아마존의 지향점이 잘 정리되었습니다.

1. 인간이 지닌 본능과 욕구에 응답하는 것
2. 테크놀로지의 진화를 통해 고도화한 문제와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
3.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헤아리는 것
4. "OO거래를 하고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도 않게 하는 것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금융 파괴자의 성패를 가르는 건 플랫폼의 개발에 달렸으며, 그 플랫폼은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혁신적이라야 합니다. 이런 플랫폼이라야 "서드 파티"의 참여가 쉬우며, 우리가 이미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 등에서 보듯 서드 파티가 얼마나 바글바글하게 모여 드느냐에 따라 플랫폼이 성하고 망하고가 결판납니다.


서드 파티는 앱 안의 앱을 개발하는 데 참여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에 이어 두번째로 각광 받는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경우 어플리케이션 안에 온갖 에드온(add-on)을 다 끼워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웹 브라우저 시장의 강자였던 파이어폭스가 한때 잘나갔던 것도 이런 타 개발자의 애드온에 폭 넓게 융통성을 보였던 덕이었으며, 요즘 1인자인 크롬도 "익스텐션"의 매력이 점유율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톨게이트"가 아닌 "플랫폼"의 본질입니다.

야후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p225 이하에서는 야후와 소프트방크(손정의 회장의)의 제휴에 대해 설명합니다. 야후는 일본 외에서는 이미 죽은 기업 취급되지만 유독 일본에서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는데 이는 경영진의 혁신 의지가 강하고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미래를 보는 선명한 비전을 지녀서입니다. 그 비전은 예외 없이 "금융과 결합한 소매" 기능을 향합니다. p229에 이들 두 기업의 포지셔닝에 대한 도해가 나오는데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야심찬 그들의 전략을 잘 요약합니다.

파괴적 혁신은 그 자체로 길이 절로 열리며, 테크놀로지에의 천착이 모든 목표를 절로 달성시켜 주는가? 저자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더 필요한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바로 "소비자의 신뢰"입니다. 당연하고 기본적인 말 같지만, 앞에서 얘기한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결제, 배송, 구매"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무서운(?) 쇼핑, 마치 꿈 꾸는 사이에 절로 이뤄지는 듯한 구매가 신뢰할 수 없는 상대방에 의해 이뤄진다면 혹시 그 사이에 어떤 트릭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요. 이 맥락에서 신뢰라 함은 정곡을 찌른 지적입니다.

혁신은 언제나 자신을 부정하고 극복합니다. 아마존은 본디 "종이책을 보다 싼 가격에 판매"한다는 단순한 전략에서 창업되었습니다. 어떤 소매상, 도매상에게도 재고 관리가 골칫거리입니다만 책은 그 중에서도 보관과 이송이 가장 까다롭습니다. 만약 물류 창고를 여러 곳에 두고 중앙에서 통제한 채 필요할 때마다 연결하여 고객에게 팔 수 있다면 기존의 원가가 가장 큰 폭으로 절감되는 게 바로 도서 판매 사업입니다. 이랬던 아마존이, 킨들을 내놓으며 "기존 종이책 관련 종사자를 모두 실업자로 만들 각오를 하고(p288)" 새 사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게임 규칙이 바뀌면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p335)" 책은 1968년 설립된, 이제는 세계 최강의 디지털 은행이라 불리는 DBS를 소개합니다. DBS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표준을 지난 세기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다시피한 전통의 최강자지만 현재는 디지털 분야에서 또다른 파라곤을 규정하는 중입니다. 저자가 보기에 (역시 1980년대 세계 최고였던) 일본 은행들은 결코 넘지 못할 벽처럼 군림하는 이들 디지털 시대의 패권자들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갖습니다.

1. 가능한 한 조기에 "1) 디지털화할 분야"와 "2) 유산으로 남길 분야"를 구분해야 한다.
2. 1)은 중요한 경영 전략으로 설정해야 한다
3. 2)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한층 첨예화하여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니 참 욕심꾸러기입니다. 잘 보면 레거시 분야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나죠. 아직 빅데이터 마이닝이 그리 정밀하지 못하므로 손으로(매뉴얼로) 다루는 분야는 그대로 튜닝을 수동으로 하겠다는 뜻입니다. 요즘 AI 섹터는 모두 기계 학습에 맡기다시피 하는 것처럼들 광고하지만 정말로 그랬다가는 큰일납니다. 사람이 수시로 튜닝을 안 해 주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책의 마무리는 프레더릭 랄루의 연구를 인용하여 "오렌지색 조직에서 틸 조직으로 탈바꿈"할 것을 권합니다. 전자는 상명하복식 구조이며 관리자가 모든 걸 통제하는 반면, 틸 조직은 하부에서의 자율성이 고도로 중시됩니다. 인체에서도 물론 머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신체의 작은 말단이 고장나기만 해도 결국엔 머리까지 아파오는 게 상식이죠. 사람의 몸 같은 유기체가 콘트롤 타워와 지체의 작용이 조화를 이루듯, 금융의 혁신도 하부에서의 창의성과 활기가 조직 전체의 리빌딩까지를 도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업이 강자가 됩니다. 아마존의 자유로운 기업 분위기를 떠올리면 이 비전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그림이 그려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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