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러니까 이사 당일 날 결국 노약자인 엄마와 비리비리한 언니, 둘이서 이사를 했다. 공교롭게도 이사 당일 아파트 옥상 물탱크 정비 공사를 했고, 하필이면 공사차가 정차해놓고 공사를 하는 장소가 우리가 살던 아파트 바로 밑이었다. 결국 크레인도 무용지물이 되었고 커다랗고 무거운 돌침대부터 시작해서 모든 짐들을 죄다 이고 지고 끌어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와야했다. 게다가 짐조차 이삿짐센터를 부르기 애매한 짐이어서 아는 사람들, 친척들이 와서 많이들 도와주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저녁에 퇴근을 하면서 자전거를 탔다. 이제 집이 가까워져서 자전거로 오 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다. 바람을 느끼며 상쾌하게 자전거를 타고 물분수대도 지나고 신호등도 지나쳐서 집 근처에 도착하니 멀리서부터 환한 불빛이 나를 반긴다. 이웃분 여럿이서 우리 집 근처에 서성이는 게 보인다. "저 집, 그동안 공사하더니 오늘 이사 들어오나보네. 저기 저게 쇼파고, 저거는 식탁이네. 음..쇼파는 악어가죽처럼 보이는데 말야..그리고 말이지.."    헉..아직 커튼을 달지 못했기에 밖에서 집 안이 죄다 보이고 사람이 뭐하고 있는지까지도 보인다. 나도 지나가는 사람인양 그 사람들 틈에 끼어서 집 안을 잠시 살펴봤다. 엄마는 풍채로는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마나님으로 보였고,  입은 행색으로는 대궐집에 식모로 보였다. - -; 

자전거를 끌고 새로운 주차장에 갖다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봤다. 곳곳에 돈을 처발라놨다, 는 컴퓨터 사장님 말씀처럼 구석구석이 낯설다. 낯선 집에 잠시 구경 온 사람처럼 엉거주춤 거실에 있다가 내 방에 들어가보고 서재에도 들어가보고 구경을 하고 있으니 때르릉, 전화가 온다. 컴퓨터 사장님이다. 최종정산을 위한 모임을 하자며 부르신다. 

물주 언니와 중개 역할인 컴퓨터 사장님, 공사총감독인 철이 오빠, 나 이렇게 4명이서 컴퓨터 사장님 사무실에 갔다. 서로 흉허물없이 지낸 지 오래된 사이여서 금방 속이야기들이 나왔고 최종정산에 대한 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결정되었다. 그리고는 서로 잡다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지기 아쉬워 막창 집을 갔다. 근처 막창집은 개업한 지 한 달이 겨우 지난 새끈한 개업집이었고 음식은 맛있었다. 저녁도 배불리 먹고난 상태였지만 심리적으로 허기가 느껴졌기에 나는 구워지는 족족 먹어치웠다. 어쩌다보니 집게가 내 앞에 놓여있었고 나는 신나게 고기를 구워 사람들 앞앞에 놓아주었다. ㅎ 나이 들어 발견하는 나의 대견한 모습.ㅋ 

술이 들어가면서 컴퓨터 사장님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졌고 철이 오빠가 공사하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넉 달간이나 공사를 했지만 심리적으로 한 달도 안 지난 느낌이라며 너무 즐겁게 공사를 했다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오바되는 공사금액으로 인해 마음고생이 다들 많았을텐데 서로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하하호호 웃으며 공사를 진행했고, 마지막 마무리까지 예쁘게 하는 모습들이 기특해서 막내인 내가 고기를 더 열씨미 구웠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보니 뭐가 좀 이상하다. 그릇도 안 보이고 화장실에 수건들도 안 보인다. 아직 정리를 덜 했나? 싶었더니 어이쿠야..이삿짐을 부려놓고 집안으로 들이는 그 잠깐의 사이에, 이름모를 누군가가 꿀꺽! 얌냠! 하셨단다. 남 쓰던 그릇이며 수건을 가져가는 사연은 또 얼마나 기구할까, 생각을 해보다가 다들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게다가 이사 당일 그런 분실은 액땜이라며 오히려 호재, 라고 생각하잔다. 음..좋아좋아. 

그런데 말이지. 해바라기 샤워기라는 게 있네? 뭘 누르는 거야? 이건가? 아무거나 눌러보자.

꺅...머리가..홀딱 젖었다. 난,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안에서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녔고 거실에는 아빠가 늦은 저녁을 들고 계셨고, 형부는 지네 집인 2층으로 가지 않고 1층 거실에서 이미 잠이 들어 있었고, 집 밖 맞은편에는 다방 불빛이 환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차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누워 있는 공간이 낯선 곳이 아닌, 최근까지 살던, 오래동안 살던, 같은 대지 위에 지어진 집이라는 걸 인식했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고 매일 아침 일어나며 듣던 창 밖의 차소리가 기억 저 편에 숨어져 있다가 튀어나온 것이다. 아. 그렇구나. 나는 1Q84의 아오마메처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거로구나. 그렇지만 이전과 꼭같지는 않는,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느낌의 그 자리 그 곳에. 

내 몸은, 정신이 미처 놓치고 있던, 대지의 공간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발이, 매일같이 대지를 밟으며 대지의 감각을 발바닥으로 느끼듯이.  내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어도 그 그윽한 눈길, 그 애틋한 마음을 여전히 절절이 느끼듯이. 대지가, 자신이 품고 있는 인간 하나하나를 사랑하듯이.  

나는 왠지 대지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몇 달간 그 공간을 잊었건만, 대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 돌아온 나를 기뻐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아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고, 새 가구들에서 나는 새것 냄새가 바람결에 내 코에 묻혔고, 나는 나를 자신의 품 안에 안아주는 대지 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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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는 이미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조수석의 형부는 그득한 짐에 시야가 가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뒷좌석의 나와 조카 역시 한아름 안은 짐 덕분에 팔이 욱씬거려 신경이 온통 팔에 가 있었다. 운전대의 언니는 주차공간이 아닌 곳에 차를 임시정차하고 있었기에 오가는 차가 있는지 신경쓰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다들 빨리 차를 타고 가서 짐을 내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늦장쟁이 엄마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들 현재의 불편함만을 생각하고 있는 그때, 후다닥!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계단 쪽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다. 엄마일까. 모두의 시선이 엄마에게로 갔는데 정작 엄마는 보이질 않고 커다란 천덩어리가 떼구르르 굴러오고 있었다. 한복 저고리 고름이 이리저리 너풀거리고 있었고 꽃분홍 치마 자락이 넘실거리며 신나게 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제서야 자세히 보니 커다란 천덩어리 위로 사람의 얼굴이 보였고, 연지곤지를 찍은 듯 발그레한 볼을 가진 엄마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다리는 짐덩어리에 가려 보이지 않고 발만 보였는데 어기적거리며 뛰는 듯 보였다. 시각을 보니 밤 12시 정각이었다. 

미친 년 널뛰는 포스의 엄마에 모두 놀란 우리들은 엄마가 차에 타고서야 웃을 수 있었고 새로운 집으로 가는 동안 나머지 네 명은 대놓고 엄마 흉을 보느라 정신 없었다. 미친듯이 웃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들 또한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리들 제각각은 아반도주의 형색이었는데 각자 야음을 틈타 자신들의 옷가지를 한아름씩 안고 비밀리에 접선을 해서 모인 다음, 어디론가 튀는 현장 속이었던 것이다. 서로의 꼬라지를 보고선 또 꺄르르 웃어들 댔다.

집에 도착한 후 큰 방에 옷들을 내던졌고 작은 무더기가  여기저기 생겼다. 엄마의 옷무더기는 우리들 두 배를 넘었다. 엄마의 손을 봤더니 벌겋다 못해 부어오르고 있었다. 두 번이나 세 번으로 나눠서 옮길 짐들을 한 번으로 줄이느라 당신의 몸무게보다 더 나가는 짐들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엄마의 부은 손을 만져주면서 말했다.  

"잘했어요, 엄마. 엄마는 황소 한 마리도 들겠군요!"

 

엊그제 밤에 포스팅을 마치자마자 언니가 늦은 퇴근을 했다. 아파트 임시거처로 이사를 올 때도 평일이었는데 이번에 이사 가는 날 역시 평일이다.  평일엔 언니와 엄마를 제외한 사람들은 손을 보탤 수가 없었는데 그때는 비마저 소낙비처럼 주룩주룩 내려서 그 비를 다 맞으며 이사를 했더랬다. 그때 이사를 하고 근 일주일은 몸져 누워있는 그들을 보면서 새집으로 다시 이사를 갈 때는 묘수를 내야지, 내야지 맘을 먹었더랬다. 그런데, 또..평일이다. 평일이면 출근을 해야하는 아빠, 형부, 나. 그리고 학교를 가야하는 조카들의 고사리같은 손도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힘센 장정들과 자라나는 힘 솟는 청소년들을 빼고 늙은 노약자인 엄마와 힘없는 비실이인 언니 둘이 또 이사를 해야하다니.. 게다가 이사짐이 워낙에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사짐센터를 부르기도 애매했다.

몇 일을 고민 끝에 옷가지들을 미리 옮기기로 했다. 한 벌 한 벌 옷을 개어서 정리하지 않고 사람들 저마다 양껏 옷걸이가 걸린 채로 옷들을 팔에 걸치거나 가슴으로 안아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이중에서 내가 젤루 어깨도 굵고 팔힘이 세니까 내가 제일 옷을 많이 챙겨야지, 라고 생각하고 양껏에서 조금 더 옷가지를 챙겼다. 그런데 왠걸. 새집에 도착해서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무더기를 보니 내 무더기가 제일 작았다. 조카의 무더기는 내 두 배, 엄마의 무더기는 내 세 배는 되었다. 다들 힘자랑을 하시는건지. 다들 무식하게 힘만 세어서는, 원..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다시 장난을 걸었다.  "엄마, 아까 말이죠. 머리에 꽃을 꽂았어야 했는데..다음 번에는 꼭 꽃을 챙겨드릴께요. 카메라도 미리 챙겨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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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이제 석 달간 지내던 아파트를 떠나 새집으로 들어간다. 

라고 적고 뭐라뭐라 말을 이어가다가.. 죄다 지웠다. ㅋ 

아무리 생각해도 아파트로 이사온 날짜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대충 석 달이라고 적고 글을 써내려가는데 뭐가 영~찝찝하다. 오늘만해도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더랬다. 우리, 여기서 얼마나 살았지요?  조카들은 두 달이라고 했고, 엄마와 언니는 석 달을 꽉 채웠다고 했고, 공사를 지켜보던 컴퓨터 사장님은 석 달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대충 석 달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달 전부터 석 달이라고 한 것 같단 말이다..

ㅋㅋㅋㅋ 5월 12일날,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왔다. 내가 5월 11일날, 그러니까 이사오기 전날 밤에, '쥐잡기'란 제목의 포스팅을 했던 기록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럼, 내일이 9월 7일이니까..어익후..석 달이 아니고 거진 넉 달이네? 와..시간이 이렇게나 오래 되었구나.. 알라딘의 용도에 이런 것도 있다니..ㅋㅋㅋ 

  

저번 주에 휴가를 내어 어딘가를 가던 중에 '안개마을'을 만났더랬다.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입자처럼 움직여 마을을 휘감고 내가 탄 차를 휘감고 창문을 살짝 열어놓은 틈으로 내 코로 들어왔다. 안개입자가 아련한 냄새를 상기시킬 때 나는 좀 '황홀'했다. 그때 나는  여기가 '무진기행' 속의 '무진'과 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여기 지명이 '무주'니까 근처에 분명 '무진'이 있을거야, 라고 막무가내로 생각해버렸다. 

'무진'과 '무주'가 그리 가깝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그날따라 무진과 무주를 걸쳐 아주 길게 안개가 펼쳐졌을거야, 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봤던 그 안개들이 흐르고 흘러 아직 가보지 않은 무진까지 가서 무진을 감싸고 돌았을거야, 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싶었지만 책이 어느 박스에 포장되어서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기형도의 '안개가 나오는 도시..'가 있는 시를 음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다못해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보고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감지했다던 김훈의 아버지 이야기가 들어간 책을 읽고 싶었지만 역시나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이사를 가서, 새로운 내 책장이 생기고, 여기저기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던 내 책들을 모두 찾게 되면, 나는 이들과 만날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그들을 다 읽고 아주 배부른 표정으로 배를 퉁퉁 치며 페이퍼를 작성할 수 있겠지. 어쩜, 여행기를 쓸 수도 있을거야.

읽은 책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요즘, 책과 책 사이를 이렇게 연결해주는 내 기억력이 기특해진다. 아는 작가의 이름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 중 하나고 말이다.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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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0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색다른 용도, 재밌네요 ㅎㅎ
저도 책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배를 퉁퉁 치며 배부른 표정으로, 아주 느긋하게 페이퍼를 작성하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어떤 맛난 음식을 잔뜩 먹은 것보다도 편안한 느낌일 것 같아요! (지나가다 들렸어요 ^^)

달사르 2011-09-08 09:40   좋아요 0 | URL
ㅎㅎ 알라딘의 '사적 이용' 이랄까요? ^^
책을 읽고 배를 퉁퉁 치는 느낌은 정말 책을 씹어먹어서 배 부른 느낌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지요. 아주 느긋하게 책 읽고, 아주 느긋하게 페이퍼 작성하고..그런 여유로운 시간이 좀 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말없는 수다쟁이님도 그러시군요. 히. (앞으로도 종종, 지나가다 자주 들러주세요. 헤~)

다락방 2011-09-07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새 집으로 들어가서 책장에 달사르님만의 방식으로 책을 꽂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 기분, 그때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책을 꽂는 중에는 짜증이 날지도 몰라요. 제가 그랬거든요. 이사와서 책정리 하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서 이 책들 다 태워버리겠어 하는 짜증이... 하하하하.
나중에 책장정리가 끝나거들랑 책장 인증샷 찍어 보여주세요, 달사르님. 타인의 책장을 보는건 참 신나요. 훗

달사르 2011-09-08 10:24   좋아요 0 | URL
넹~ ㅎㅎ 접때 우리가 댓글로 대화했던 책들을 꽂는 일을 이제 제가 실지로 하게 되어요. ^^
ㅎㅎㅎㅎ 맞아요 맞아. 책을 꽂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ㅋㅋㅋㅋ 다 태워버리겠어..ㅎㅎㅎㅎ 저도 그럴지도요? ^^

책장은 SOF 꺼로 주문을 넣어봤어요. 조립식 책장이어서 다음에 분해하기도 쉽고 내 맘대로 인테리어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왔던 책장 인테리어 수준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볼께요. 다락방님께 자랑해야지요. 불끈! ^^
 

간만에 그에게 메일이나 보내볼까? 하면서 다음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알라딘에서 추첨이벤트에 당첨됐다고 메일이 날아온 것이다?  

꺅. 이벤 당첨!! 나는 이런거는 당첨 거의 안 되는 사람인데..이런 이벤에도 다 걸리다니..감개무량. 어디, 무슨 이벤이지? 하고 들어가봤더니 김영사에서 주관하는 에세이 도서를 구매하는 사람에 한해서 시행했던 이벤이란다. 근데 내가 김영사에서 뭘 주문했었지?  

주문목록을 뒤지다, 몇 개 뒤지다..말았다. 아직 안 읽은 책 목록에 있나부다. 담에 우연히 주문목록 중에 김영사 책 나오면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나 한 번 해줘야겠다. ㅎㅎㅎㅎ 

 

저런 이벤을 보게 되면, 꺅! 귀엽다!  생각보다 저 인형이 과연 얼마일꼬...생각부터 드는 건...내가 늙었다는 증거일까? ㅋ  

선물을 받으면 고이 모셔놨다가, 다음에 아름다운 사람에게 책선물 보낼 때 손편지와 같이 보내야겠다. 근데 누구에게 보내지? 하하하. 행복한 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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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8-28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좋으시겠어요, 녹음인형이라니~ 자장가를 불러야될까요? 아니면 유행가^^; 아리따운 목소리를 자랑할 기회네요~~

달사르 2011-08-29 20:11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좋아요. ^^
앗! 녹음해서 보낼 생각은 안해봤네요. 그냥 그대로 보내서 그 사람이 녹음하고프면 하라고, 보낼 생각이었어요. ^^ 우리가 또 낯뜨거운건, 아무래도..연식이 오래되다보니..ㅠ.ㅠ

마노아 2011-08-2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완전 좋겠어요.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송편이 정원이에게 녹음해준 그런 인형인가봐요. 축하해용^^

달사르 2011-08-29 20:12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정원이가 저런 인형을 선물받았었군요. 반짝반짝은 시간대가 안 맞아서 한 번도 보진 못했지만 내용은 거진 알아요. ㅎㅎ 힛. 고맙습니당~

2011-09-02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6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강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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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고 싶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서 어느날 문득 "당신 생각이 났어요" 라는 짧은 문구가 적힌 편지라면 한참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감동적인 시를 한 편 읽고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라며 시 한 편을 적어보내는 편지에는 답시를 보내기 위해 몇 날 밤을 끙끙댈 것이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사람을 오랫동안 생각할 것이다.  

아래의 작가들도 그러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을까. 보낸 년도도 다르고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도 제각각 다른 49편의 편지들 속에서 우연히 서로가 연결이 되는 편지를 발견했다. 릴레이처럼 꼬리를 물고 보내는 편지들을 보면서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릴레이 편지가 계속 돌고 돌다면 그 중 한 사람 쯤은 나도 아는 사람이 나올수도 있을테고, 그 사람이 나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나는 그 편지를 오랫동안 혼자만 간직했다가 몇 십 년이나 지난 호호할머니가 되어서야 슬그머니 자랑처럼 친구들에게 보여줘야지 , 라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아동문학가 정채봉이 소설가 정연희에게  보내는 편지>

선생님께서 글을 주실 줄은 실로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늘 원고청탁을 드렸다가 번번히 다음으로 미룸을 받았었으니까요. 선생님의 데뷔작이었던가요? 수녀님이 등장하는 그 단편을 고등학생 시절에 읽고 나도 나중에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고 앓은 적도 있었지요. 그때 본 선생님의 모습도 굉장히 이뻤어요...(중략)  1987.9

 

<정연희 선생이 김영태 시인에게>

보내주신 <섬 사이에 섬> 감사합니다. 신문에서 광고를 만났을 때, 혹시나......했었는데. 쉰여섯 중 하나 된 것이 역시 반가웠습니다. 한마디도 언급을 안 하신 일이 좀 서운하기도 했지만. 내게는 김영태 시인이 늘 따로 감춰진 지역처럼 느껴지는 분입니다. 도오하의 나라 같던 그 집 대문 안 풍경도 이따금 떠오르고요. 보일락 말락 하다는 것은 보고 싶게 만드는 일이어서, 내게도 김 시인은 정말 보일락 말락 한 분이라는 생각에 무릎을 쳤습니다. 새해가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지니고 계신 모든 것이 새롭게 비춰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982. 12 

 

<김영태 시인이 최정희 선생에게> 

아무 일도 못하고 한 해를 보냅니다. 저는 복생이를 사랑하는 재주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끔가다 시를 쓰는 재주밖에 없습니다. 아란이, 완석이, 채원이, 동일이, 조성각 형, 이경회, 서말지를 만나는 재주밖에 없습니다. 차를 마시는 재주와 설렁탕을 먹는 특기밖에, 그것밖에 없습니다.     1965.12 

 

최근에 고등학교 동창과 연락이 닿았다. 30분 거리의 지척에 살면서도 내 소식을 몰랐던 친구는 가게 이름만 전해듣고 114에 문의를 해서 내 연락처를 알았고 가게 전화로 전화가 왔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 후 퇴근길에 한 시간 가량 수다를 떨었다. 대화는 자연스레 고등학교때 좋아했던 남자들로 넘어갔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했었고 자기 역시 누군가를 좋아했다고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야, 나는 기억도 안 나. 니가 누군가를 좋아했었더랬어?" 

"그럼.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해서 오랜간 마음에 담아뒀었지. 난 그 선배 앞에선 두근거려서 말도 제대로 못했었어. 내가 결혼하고 몇 년 전에 선배랑 여럿이 우리 집에 놀러왔었거든? 그때서야 내가 고백을 했다니까는. 이제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어서인지 편하게 말이 나오더라. 더이상 두근거리지도 않고 말야. 고등학교때부터 오랫동안 선배를 좋아했었어요~~이렇게 말야. ㅋㅋㅋ" 

"어므나...난 왜 몰랐지? 그 선배는..그러니까..대학교때 찐~한 연애를 했었는데? 나하고 같은 학교였으니까 내가 잘 알지. 같은 동아리 여자애하고 오래 연애를 했었는데 말야, 물론 결혼은 다른 사람이랑 했지만..어므나...그럼 그 선배가 연애하는 동안 너, 마음고생 좀 했겠다? 와아~ㅋㅋㅋ" 

"ㅋㅋㅋㅋ 그러게나 말야. 암튼, 우리 둘이 고등학교 때 누구 좋아하고 이런거 고백한 거, 누구랑 싸우고 삐졌던 거, 화해했던 거, 이런게 죄다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편지 뭉치 속에 고스란히 적혀있다니까. 그러니 네 기억에는 없어도 '사실'인거지. 담에 우리 집에 놀러오면 내가 '증거'를 보여주도록 할께." 

 

신기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지만, 열여덟, 열아홉 시절의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편지를 누군가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나를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그때의 우정을 가끔씩 떠올린다는 말이기도 한 듯해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는 조만간 친구네 집에 들러서 내 기억 속의 '사실'과 실지의 '증거'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편지도 들고가서 친구에게 보여줄 것이다. 서로 옛이야기를 꽃피우며 술을 주거니 받거니 밤을 지새울 것이다.

시인들은, 작가들은, 특히나 글쓰기가 생의 한 의미인 사람들이다. 그 비율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비율이 최대치가 되기를 저마다 바라지 않겠나 싶다. 시는, 글은, 타인에게 읽혀지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서 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시를 지을 때,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할 테니까. 그런 그들에게 '편지'는 또 어떤 의미일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의 지난함과 고단함을, 가까운 가족보다도 더 잘 이해해주는 마음의 벗 같은 존재에게 쓰는 편지는 얼마나 절실하고 또 황홀할까. 또 그들에게 받는 편지는 얼마나 위안일까. 

이 책은 강인숙 씨가 영인문학관을 건립하면서 다양한 루트로 작가, 시인, 아동문학가, 화가 등 그들의 비밀스러운 '편지'를 모은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들의 생생한 필체까지 엿볼 수 있어서 그들의 작품 못지 않은 기쁨을 읽는 내도록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이 말처럼 말이다. 

“편지는 수신인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런 문학이다. 그것은 혼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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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8-2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주고 받는 사람이 드문 것은 편지를 받으려는 사람은 많은데 써서 보내기는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남이 연락 안 해준다고 서운해 하면서 정작 자신은 먼저 연락하지 않는 심리와 비슷하죠.

달사르 2011-08-28 16:52   좋아요 0 | URL
앗. 과연..그렇겠습니다. 저도 이 리뷰?(포스팅!) 쓰면서 나부터 편지 써야지~ 하고 반성했어요. 히.
저도 간만에 편지를 써봐야겠어요. 요즘엔 이메일이니 카톡이니 등의 대체물이 많아졌어도 역시 손편지 맛은 못 따라가는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11-08-28 21:29   좋아요 0 | URL
요즘은 손글씨가 없어지는 시대라고 하지만 한편에선 글씨체 좋은 사람에 대한 호감이 남아있어서인지 글씨교정을 받는 사람들도 꽤 있고...사실 악필 때문에 열등감을 지니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고 합니다.

달사르 2011-08-29 20:17   좋아요 0 | URL
저도 악필 때문에..에 한 표요!
글씨체 좋은 사람에게서 받는 편지가 아무래도 악필 편지보다는 좋을 거 같애요. 음..아니면, 악필이긴 한데, 가지런한 악필은 그나마 괜찮더라구요.

제가 만약 글씨체가 좋다면, 전 아마 편지를 여직 고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쬐금 들어요. 편지 보낼때마다 악필이 아무래도 부담, 이긴 하더라구요. 글씨교정 받는 데도 있군요. 흐음..괜찮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