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이제 석 달간 지내던 아파트를 떠나 새집으로 들어간다. 

라고 적고 뭐라뭐라 말을 이어가다가.. 죄다 지웠다. ㅋ 

아무리 생각해도 아파트로 이사온 날짜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대충 석 달이라고 적고 글을 써내려가는데 뭐가 영~찝찝하다. 오늘만해도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더랬다. 우리, 여기서 얼마나 살았지요?  조카들은 두 달이라고 했고, 엄마와 언니는 석 달을 꽉 채웠다고 했고, 공사를 지켜보던 컴퓨터 사장님은 석 달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대충 석 달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달 전부터 석 달이라고 한 것 같단 말이다..

ㅋㅋㅋㅋ 5월 12일날,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왔다. 내가 5월 11일날, 그러니까 이사오기 전날 밤에, '쥐잡기'란 제목의 포스팅을 했던 기록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럼, 내일이 9월 7일이니까..어익후..석 달이 아니고 거진 넉 달이네? 와..시간이 이렇게나 오래 되었구나.. 알라딘의 용도에 이런 것도 있다니..ㅋㅋㅋ 

  

저번 주에 휴가를 내어 어딘가를 가던 중에 '안개마을'을 만났더랬다.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입자처럼 움직여 마을을 휘감고 내가 탄 차를 휘감고 창문을 살짝 열어놓은 틈으로 내 코로 들어왔다. 안개입자가 아련한 냄새를 상기시킬 때 나는 좀 '황홀'했다. 그때 나는  여기가 '무진기행' 속의 '무진'과 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여기 지명이 '무주'니까 근처에 분명 '무진'이 있을거야, 라고 막무가내로 생각해버렸다. 

'무진'과 '무주'가 그리 가깝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그날따라 무진과 무주를 걸쳐 아주 길게 안개가 펼쳐졌을거야, 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봤던 그 안개들이 흐르고 흘러 아직 가보지 않은 무진까지 가서 무진을 감싸고 돌았을거야, 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싶었지만 책이 어느 박스에 포장되어서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기형도의 '안개가 나오는 도시..'가 있는 시를 음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다못해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보고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감지했다던 김훈의 아버지 이야기가 들어간 책을 읽고 싶었지만 역시나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이사를 가서, 새로운 내 책장이 생기고, 여기저기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던 내 책들을 모두 찾게 되면, 나는 이들과 만날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그들을 다 읽고 아주 배부른 표정으로 배를 퉁퉁 치며 페이퍼를 작성할 수 있겠지. 어쩜, 여행기를 쓸 수도 있을거야.

읽은 책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요즘, 책과 책 사이를 이렇게 연결해주는 내 기억력이 기특해진다. 아는 작가의 이름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 중 하나고 말이다.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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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0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색다른 용도, 재밌네요 ㅎㅎ
저도 책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배를 퉁퉁 치며 배부른 표정으로, 아주 느긋하게 페이퍼를 작성하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어떤 맛난 음식을 잔뜩 먹은 것보다도 편안한 느낌일 것 같아요! (지나가다 들렸어요 ^^)

달사르 2011-09-08 09:40   좋아요 0 | URL
ㅎㅎ 알라딘의 '사적 이용' 이랄까요? ^^
책을 읽고 배를 퉁퉁 치는 느낌은 정말 책을 씹어먹어서 배 부른 느낌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지요. 아주 느긋하게 책 읽고, 아주 느긋하게 페이퍼 작성하고..그런 여유로운 시간이 좀 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말없는 수다쟁이님도 그러시군요. 히. (앞으로도 종종, 지나가다 자주 들러주세요. 헤~)

다락방 2011-09-07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새 집으로 들어가서 책장에 달사르님만의 방식으로 책을 꽂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 기분, 그때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책을 꽂는 중에는 짜증이 날지도 몰라요. 제가 그랬거든요. 이사와서 책정리 하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서 이 책들 다 태워버리겠어 하는 짜증이... 하하하하.
나중에 책장정리가 끝나거들랑 책장 인증샷 찍어 보여주세요, 달사르님. 타인의 책장을 보는건 참 신나요. 훗

달사르 2011-09-08 10:24   좋아요 0 | URL
넹~ ㅎㅎ 접때 우리가 댓글로 대화했던 책들을 꽂는 일을 이제 제가 실지로 하게 되어요. ^^
ㅎㅎㅎㅎ 맞아요 맞아. 책을 꽂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ㅋㅋㅋㅋ 다 태워버리겠어..ㅎㅎㅎㅎ 저도 그럴지도요? ^^

책장은 SOF 꺼로 주문을 넣어봤어요. 조립식 책장이어서 다음에 분해하기도 쉽고 내 맘대로 인테리어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왔던 책장 인테리어 수준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볼께요. 다락방님께 자랑해야지요. 불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