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는 이미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조수석의 형부는 그득한 짐에 시야가 가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뒷좌석의 나와 조카 역시 한아름 안은 짐 덕분에 팔이 욱씬거려 신경이 온통 팔에 가 있었다. 운전대의 언니는 주차공간이 아닌 곳에 차를 임시정차하고 있었기에 오가는 차가 있는지 신경쓰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다들 빨리 차를 타고 가서 짐을 내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늦장쟁이 엄마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들 현재의 불편함만을 생각하고 있는 그때, 후다닥!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계단 쪽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다. 엄마일까. 모두의 시선이 엄마에게로 갔는데 정작 엄마는 보이질 않고 커다란 천덩어리가 떼구르르 굴러오고 있었다. 한복 저고리 고름이 이리저리 너풀거리고 있었고 꽃분홍 치마 자락이 넘실거리며 신나게 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제서야 자세히 보니 커다란 천덩어리 위로 사람의 얼굴이 보였고, 연지곤지를 찍은 듯 발그레한 볼을 가진 엄마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다리는 짐덩어리에 가려 보이지 않고 발만 보였는데 어기적거리며 뛰는 듯 보였다. 시각을 보니 밤 12시 정각이었다.
미친 년 널뛰는 포스의 엄마에 모두 놀란 우리들은 엄마가 차에 타고서야 웃을 수 있었고 새로운 집으로 가는 동안 나머지 네 명은 대놓고 엄마 흉을 보느라 정신 없었다. 미친듯이 웃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들 또한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리들 제각각은 아반도주의 형색이었는데 각자 야음을 틈타 자신들의 옷가지를 한아름씩 안고 비밀리에 접선을 해서 모인 다음, 어디론가 튀는 현장 속이었던 것이다. 서로의 꼬라지를 보고선 또 꺄르르 웃어들 댔다.
집에 도착한 후 큰 방에 옷들을 내던졌고 작은 무더기가 여기저기 생겼다. 엄마의 옷무더기는 우리들 두 배를 넘었다. 엄마의 손을 봤더니 벌겋다 못해 부어오르고 있었다. 두 번이나 세 번으로 나눠서 옮길 짐들을 한 번으로 줄이느라 당신의 몸무게보다 더 나가는 짐들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엄마의 부은 손을 만져주면서 말했다.
"잘했어요, 엄마. 엄마는 황소 한 마리도 들겠군요!"
엊그제 밤에 포스팅을 마치자마자 언니가 늦은 퇴근을 했다. 아파트 임시거처로 이사를 올 때도 평일이었는데 이번에 이사 가는 날 역시 평일이다. 평일엔 언니와 엄마를 제외한 사람들은 손을 보탤 수가 없었는데 그때는 비마저 소낙비처럼 주룩주룩 내려서 그 비를 다 맞으며 이사를 했더랬다. 그때 이사를 하고 근 일주일은 몸져 누워있는 그들을 보면서 새집으로 다시 이사를 갈 때는 묘수를 내야지, 내야지 맘을 먹었더랬다. 그런데, 또..평일이다. 평일이면 출근을 해야하는 아빠, 형부, 나. 그리고 학교를 가야하는 조카들의 고사리같은 손도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힘센 장정들과 자라나는 힘 솟는 청소년들을 빼고 늙은 노약자인 엄마와 힘없는 비실이인 언니 둘이 또 이사를 해야하다니.. 게다가 이사짐이 워낙에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사짐센터를 부르기도 애매했다.
몇 일을 고민 끝에 옷가지들을 미리 옮기기로 했다. 한 벌 한 벌 옷을 개어서 정리하지 않고 사람들 저마다 양껏 옷걸이가 걸린 채로 옷들을 팔에 걸치거나 가슴으로 안아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이중에서 내가 젤루 어깨도 굵고 팔힘이 세니까 내가 제일 옷을 많이 챙겨야지, 라고 생각하고 양껏에서 조금 더 옷가지를 챙겼다. 그런데 왠걸. 새집에 도착해서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무더기를 보니 내 무더기가 제일 작았다. 조카의 무더기는 내 두 배, 엄마의 무더기는 내 세 배는 되었다. 다들 힘자랑을 하시는건지. 다들 무식하게 힘만 세어서는, 원..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다시 장난을 걸었다. "엄마, 아까 말이죠. 머리에 꽃을 꽂았어야 했는데..다음 번에는 꼭 꽃을 챙겨드릴께요. 카메라도 미리 챙겨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