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타라
조정은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 매혹적인 수필의 세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 뒤 편에 솟아있는 험난한 봉우리.
 
 
  학창시절에 읽었던 수필들이 떠오른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으며 맑고 향기로운 마음을 배웠고, 피천득님의 『인연』을 통해 소박하고 꾸밈없는 순박한 마음과 일상 속 아름답게 빛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윤오영님의 수필에 스며있는 한문학의 빼어난 지식과 철학의 깊이가 묘하게 어우러진 품격도 기억에 남는다. 깊이 있는 수필들도 있었지만,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이 묶인 에세이도 많았다. 쓸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그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평범한 속의 비범이라는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야 한다. 인터넷의 인터넷 만화가와 비슷하다. 누구나 인터넷만화를 그려 자신의 공간에 올릴 수 있지만, 주목받고 인기있는 만화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을 받고, 3년의 마감을 꼬박 채운 책이다. 저자의 글에서 그는 파택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각이 구축하던 관념의 집을 허물기 위해 글을 쓰고,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천도제의 의미로 에세이를 완성했다 한다. 소중했던 어머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인생의 험난했던 시기를 지나온 과정이 생생히 살아있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깊이와 흥미를 만족시키는 에세이이다. 평소에 읽던 수필과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가 더욱 흥미를 끌었던, 읽고 난 뒤, 묵직하게 다가오는 생각거리가 진한 여운이 인상적이었다.
 
 
#  마음의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글쓰기.
 
 
  부도가 났지만, 이겨낼 수 있다며 힘을 실어주는 남편이 새벽 3시에 피우던 담배와 관련된 에피소드, 부도로 인한 설움을 감추다 결국 어머니께 고백했을 때, 호통과 한탄할 거라는 예상과 달랐던 어머니의 이야기, 청소부 일을 나갔을 때 겪은 청소부들의 오해, 고가의 보석을 파는 일과 팍팍한 일상사이의 괴리감, 고통과 험난함으로 원망이 극한까지 차올랐을 때, 하늘에 내리는 눈을 보며 생각한 마음의 변화 등 일상에서의 격변의 순간,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이 생생한 이야기의 힘이 실려 전해져 온다. 한 편의 소설이라 하기에는, 개인의 경험과 철학이 깊이 반영되어 있고 수필의 문법을 지키고 있다.
 
  누가 이야기를 하는가와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수필에 끌리는 매력을 두 가지로 생각한다면, 소재와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먼저 떠오른다. 유년시절의 경험과 가족들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소재가 많기에 흔하다. 흔한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수필의 깊이가 달라진다 생각한다. 서울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걸인과의 에피소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타인의 호의(비 오는 날, 받은 우산 선물)에서도 작가는 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상 속의 또다른 삶의 이면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지닌 작가의 시선이 독자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만들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게마련인 자식과의 갈등에서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자식을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를 회상을 통해, 애틋한 마음이 생생히 드러난다. 저자의 고민을 통해, 우리사회의 모순이 드러나고, 모순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답이 없는 관계의 문제에서 저자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저자의 순박하다 못해 바보처럼 보이는 따스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그녀가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세상을 사는 이들이 바라보는 생의 다양한 관점을 곱씹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글을 풀어가는 독특한 형식과 후반부의 반전이 살아있는 구성, 독자와 같은 걸음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친근함 등 내겐 배울점이 많은 책이었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수필 이외에는 읽을만한 수필이 없다 생각했었다. 저자의 에세이집을 읽고나니, 매력적인 수필을 찾으려는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소설과 여행기 등 주목받는 장르와 달리, 수필은 큰관심이라는 조명과 거리가 먼 장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높고 푸른 나무를 쳐다볼 때, 발밑 낮은 자리에서 작은 풀잎들이 꾸준히 오랜 세월동안 자신들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야생의 힘으로 홀로 살아내는 수필의 세계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저자의 나이대인 50대에게는 공감의 힘을, 젊은 세대에게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생을 산 이가 겪어낸 삶의 진주같은 생각의 덩어리를 느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3-0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님, 반가운 리뷰에요.
저와 같은 동인의 작가라서 더욱요. 저도 저 책을 구입했지요.
글맛이 상당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쿨앤피스 2009-03-05 03:54   좋아요 0 | URL
앗! 네, 글을 읽다보면 이야기의 힘에 푹 빠져버리는 책이였습니다. 같은 동인의 작가라니. 인연이 이렇게 닿기도 하네요. 작가님께 책 잘 보았다고 대신 안부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