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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도보여행을 할 만한 길이 갖추어진 곳이 없는 한국의 현실.
어렸을 때만 해도, 두시간 내지, 세시간 걸어서 가는 곳으로 소풍을 떠났던 것 같다. 구멍가게도 없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떠나는 소풍이라고 할까. 단체로 움직이고, 차도옆 좁은 인도를 따라 걸어야 했기에, 불안하고, 길기만 했던 길이였다. 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기에 시간은 빨리 지나갔지만, 크게 기억이 남는 건 없었다고 할까. 우리나라는 도보여행을 하기에 좋은 곳이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은 학창시절부터 늘 있어왔던 것 같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에서 나온 한비야씨의 여행기에도 내가 사는 곳을 지나가지만,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매연때문에 목이 아팠다는 글에 마음이 아팠다. 인간을 위한 길보다, 차가 다니는 길이 더 중요한 사회의 인식이, 인간의 권리, 인권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옮겨간 것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 산티아고에는 아고보길이 있다고 한다. 800km가 넘는 이 곳을 순례를 나타내는 작은 표식을 가지고, 순례자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여행길을 나선다고 한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두 다리로 걷고, 오감으로 느끼면서, 자신을 둘러싼 일상과 벗어나 마음의 화두를 안고 떠나는 여행, 국내, 국외 저자들이 쓴 도보여행기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인의 강력추천으로 『제주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 시장통에서 자란 여자아이가 회색빛 도시로 건너가고, 그속에서 20년동안 치열하게 경쟁 속에서 살다가, 도보여행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과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떠나는 기록, 그리고 자신이 살던 제주도에 두발로 여행할 수 있는 올레길을 만드는 과정이 소개되어있다. 나도 행복해지고, 우리도 행복해지는 제주올레의 분투기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 나도 즐겁고, 다른 이도 행복하게 만드는 제주 올레.
시멘트와 인공적인 것은 들이지 않고, 오직 자연과 조응해서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는 필자의 여행길 만들기 노력은 동생과의 화해로부터 시작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동생과의 속상한 마음이 제주올레길을 만나면서, 서로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게 되고, 많은 에피소드끝에 한 마음으로 화해하는 되는 장면은 마음 속 촛불을 켠것처럼 훈훈했다.
혼자서 시작했지만, 주변 지인들이 한 두명씩, 코스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더욱 더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6코스까지 만드는 대장정이 소개되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1코스가 개장준비중이라고 한다. 아직 제주도를 한바퀴 다 돌지는 못했지만, 빠른 속도로 그 길이 넓어지고 있다고 할까. 제주도의 깨끗한 풍경이 담겨진 사진은 당장이라도 제주도로 날아가 걷기운동으로 산책하고 싶게 만든다. 느리게, 하지만 자기속도로 걷기를 원하는 필자의 철학이 함께하며, 제주올레는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모범이 되는 그런 운동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모든 일은 한 사람의 용기로 시작하는 것 같다. 그 한사람이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노력해나가면, 작은 불씨가 모여 횃불이 되듯, 도움의 손길을 따르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동생의 친구가 도와 만든 다리와 길, 그리고 해병대의 노고가 담긴 해병대 길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길이기에 더욱 뜻깊고 의미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많은 관광객을 모으려는 운동이 아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일이, 나도 즐겁게 하고, 남도 즐겁게 하며, 우리도 함께 즐겁게 만든다고 할까. 수학여행으로 한 번 제주도에 갔었지만, 민속촌과 감귤만 관광버스로 정신없이 돌아보다 끝났기에 제주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필자의 책을 보니, 제주도의 다양한 매력을 빨리 경험하고 싶어진다. 비단 제주도 뿐만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활동하는 주변도, 내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아름답고, 예쁜 길들이 많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눈을 돌려 바라보려 애쓰지 않아 안 보일뿐.
다양한 시각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도시생활에서 고향으로 돌아간 이의 고향예찬기로 읽을 수도 있고, 걷기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 이가 건네는 도보여행 권유서로 읽을 수도 있다.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는 그 연유와 에피소드를 모은 책으로도 읽을 수 있고,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다녀온 여행기로 읽을 수도 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전환점을 수필형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기에 도보여행의 매력에 대해 집중해서 읽었다. 20,30년이 지난 후 생의 전환기를 맞이했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도시생활에서 고향으로 전환기를 맞이한 그녀처럼, 이 책을 그때 다시 읽게되면, 그녀의 고민과 결정을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생각이 어려, 제주올레를 경험하고픈 마음만 가득하다.
해외여행을 하기 전에, 꼭 제주올레를 경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길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올레길 중간 중간 보이는 리본과 돌에 표시된 표식을 보며, 혼자가 아닌 우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인은 다음달에 떠난다고 한다. 지인이 다녀온 후, 여행기를 듣고나면, 왠지 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나는 내 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중독성이 강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