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갈치작업이 늦어져 홍이는 학교에서 바로 가게로 와서 저희 작업이 끝나는 동안 컴게임하고 TV보고 하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요. 알림장을 보니 숙제가 있길래 10칸공책 챙겨줄려고 공책을 열어봤더니 "연필 2개, 지우개 1개....." 이렇게 적혀 있어서 "홍이야, 10칸 공책에 쓴 이거 뭐?" 했더니 "응~. 수학책이 없어서 10칸 공책에다 핸" 하고 대답합니다. "야, ㅇㅇ홍! 무슨 소리하맨? 오늘 아침에 엄막 가방챙긴 거 확인하면서 수학책 어디갔냐고 물으니까 학교에 있다고 했잖아" 했더니 "응. 근데 학교 서랍장에 없언" 합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월요일에 수학시간 있어서 엄마가 분명 월요일날 가방에 있는 거 확인했는데. 왜 월요일에 챙겨간 받아쓰기랑, 일기랑, 수학책이 한꺼번에 없어지냔 말야". --- 화요일날에도 받아쓰기랑, 일기 공책 없다고 해서 새로 사서 보냄 --- "잘 생각해봐. 월요일날 너 자리 바꾸면서 전에 앉았던 책상에 있던 거 다 안 챙긴 거 아니? 분명 월요일 아침에 엄마가 가방 확인했으니 잃어버릴데가 없잖아. 네가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디 들른적도 없는데" 하면서 혹시나 워낙 정리가 안 되는 우리집이니 다시 한번 집안 구석구석 다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엄마 생각엔 홍이 학교에 다 있을 것 같다. 아빠랑 같이 학교가서 찾아봐" 했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아빠랑 함께 나갔다.
그리고, 잠시후 홍이가 손에 받아쓰기 공책이랑, 수학책을 들고 돌아왔다. "있었네? 어디에 있언?" 하고 물으니 대답이 없다. 대신 옆지기가 " 수학책은 선생님 책상에 있었고, 잃어버렸다는 일기도 선생님 책상에. 그런데 받아쓰기 공책은 쓰레기통에서 찾아 오더라." 한다. 엥~ 이건 또 뭔 소리래. "ㅇㅇ홍, 왜 받아쓰기 공책이 쓰레기통에 있어? 친구가 버렸어? " 했더니 고개를 젓습니다. "그럼? 네가 버렸어? 왜? " 했더니 "그냥.", "왜 그냥 버려. 다 쓰지도 않았잖아. 너 아나바다 몰라?" 했더니 "알아. 근데, 마귀할멈의 나쁜 씨가 내 맘에 뿌려져서 그랬어" . "엥?" --- 잠시, 예상치 못한 대답에 멍해짐 ---.
"마귀할멈이 어떤 나쁜씨 부렸는데~. 혹시 홍이 받아쓰기 00점 -- 아직까지 중에 제일 낮은 점수 --- 맞아서 버렸어?" 했더니 "아니. 그냥. 그냥 마귀할멈의 나쁜 씨가 내 맘에 뿌려져서 그랬어" 라는 말만 반복한다. 에구구.
"너 그럼 마음에 계속 마귀할멈이 뿌린 나쁜씨가 자라게 나둘거야? 그래서 나쁜사람 될거야? 나쁜 사람되면 어떻게 되?" 했더니 "감옥가" 한다. "알면서. 너 그럼 감옥갈거야? 거기가서 엄마랑 같이 안 살거야?" 했더니 울기 시작합니다. "홍이야. 세상에서 제일 나쁜게 뭔지 알아? 바로 거짓말이야. 거짓말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네 마음이 썩어 들어가. 마음과 함께 몸도 같이 썩어 들어가. 그리고 죽어. 홍이 너만 썩어 들어가는 줄 알아? 엄마도, 아빠도, 홍이 주변 사람들 마음도 몸도 함께 썩어. 너 엄마가 몸과 맘 썩어서 죽어도 좋겠어?" 했더니 고개를 저으면 이젠 아주 크게 울어 댑니다. "또 거짓말 할거야? " 했더니 아니랍니다. "그럼 엄마랑 약속해. 다신 거짓말 안 하겠다고" 했더니 울면서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싸인에 복사까지 합니다.
홍이가 울음을 그칠때 까지 안고 기다리다가 "홍이야, 낱말공부 숙제 해야지" 했더니 알았다면서 책상겸 밥상을 끌어다 놓고 앉습니다. 그러더니 "엄마, 아이스커피!!!" 합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피식 났습니다. 속으로만 '그새 우울모드 끝이냐? 에구, 이 웬수' 라고 생각하며 홍이랑 나를 위해 2잔의 달달한 아이스커피를 타고 마셨다지요.
그나저나, 홍이때문에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