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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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내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여기에 물질의 차원으로, 말라서 갈라지는 시냅스 덩어리 차원으로 축소된 의식이 있었다. 형은 단어들의 사용법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사물과 제대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그 사물들과, 에너지장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져가는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형은 새로운 이름들을 발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형의 자리는 나무랄 데 없는, 심지어 시적인 자리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곳이었다. 형은 죽음을 만져봤지만, 혹은 죽음이 형을 건드렸지만, 형에게 삶이란 심지어 그런 것도 가능한, 여전히 흥미로운 어떤 것인 듯이 보였다.             p.85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는다. 사실 그의 계획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대충 이야기를 나누다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의 뻔한 이야기를 적당히 받아적다가 올 예정이었다. 밤이 되면 자신이 몰고 간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있다가 분위기를 좀 느끼고 나서,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 취재는 그의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급기야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와 울기 시작한다. 이 여행을 장난처럼 생각하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이였던가부터 시작해 형편없이 무너져버리게 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하다면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 '이 반석 위에서'를 읽어 보자.

 

이번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대피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글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에서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풍해일을 만들어 냈는데, 파도 높이가 무려 9미터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거대한 해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어닥쳤기 때문에 미시시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는 인근 초등학교에 마련된 적십자 대피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낮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2미터가 넘는 물이 집 안에서 넘실대고 있었다는 사람부터, 바람이 휘몰아쳐 나무에 부딪히고, 주변에는 뱀들이 헤엄치고 있었다는 이도 있었으며, 대부분 자신이 곧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말은 바로 '사라졌다'는 거였다. 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산책로들이 사라져버렸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미래는 강제로 뜯겨나갔고 거대한 공백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생생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 세상의 진짜 마지막의 시작'을 그려낸다.

 

 

 

이런 식의 과열된 선언은 모두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무시해버리기 전에, 우리는 그 노래들에 표현된 느낌이나 표현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단순하고 기술적인 설명이 하나도 없는지 질문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젊은 소비자들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를 장악해버린 로큰롤에 블루스의 서사를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 분리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다른 요소 또한 존재한다. 더 깊고, 더 농익은 근원이다. 이 음악에 대해 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주목했다. 로버트 파머는 이걸 '깊은 블루스'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는 중압감 속의 중압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p.420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글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에 수록된 다소 장황한 서문으로 처음 만났었다.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끈이론>에서 테니스 경기를 둘러싼 모든 철학적, 정치사회적, 심지어 수학적 맥락들을 깊이 쑤시고 건드리며 테니스의 시간을 경이로운 산문의 언어로 옮겨냈다. 그리고 그 독특한 에세이만큼이나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서문 또한 유려한 언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그는 다수의 매체에 글을 발표해왔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그 중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에세이라는 카테고리의 책 중에 이렇게 두툼한 분량의 작품이 있었나 싶은데, <펄프헤드>는 무려 564페이지에 달한다.

 

이 벽돌 에세이집에는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비롯해서,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와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체험기 등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글은 현란하지만 어렵지 않고, 날카롭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며 놀라운 세계를 보여준다.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방식의 글은 저널리즘 역사 속에서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뉴 저널리즘'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런 형식의 글을 우리 저널리즘 역사나 문학사에서는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이번에 출간된 <펄프헤드>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훌륭한 저널리즘이 갖춰야 할 덕목을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인디언 동굴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의 깊이 있는 이면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라 불리는 뛰어난 저술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탁월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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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8
강화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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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신체조건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체력은 어느 정도 좋아질 수 있었다. 힘과 유연성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을 배운 지 겨우 한 달 반이었지만, 지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수의 몸이 변화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매일 새벽 지수를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건 바로 그 감각이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삶의 다른 것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p.69

 

서른여섯인 지수는 어머니의 오래된 빌라의 문간방에서 지내는 중이다. 5년 전만 해도 엄마와 함께 살게 되리라고는,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 있는 낡은 '무궁화 궁전'에 살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겨우 모든 돈 천만 원을 전세 사기로 날리고, 대출 빚을 지고,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그러느라 엄마 집에서 손님처럼 지내고 있다. 동생인 미수는 결혼을 해 가족들과 살고 있으며, 약국을 운영하고 육아도 하느라 늘 바쁘다. 지수가 어린 시절부터 늘 엄마인 영애 씨에게 꾸중을 들었더라면, 다방면에서 뛰어났던 미수는 자랑스럽고 기대할 일이 많은 자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세 사람의 관계는 지금도 여전했다.

 

2년 전 겨울, 지수는 마침내 대출금을 다 갚아서 꽤 행복했다. 그러기 위해서 먹는 것, 입는 것, 그 외 모든 것을 아껴왔고, 빚을 갚느라 모아둔 돈은 다 사라졌지만 괜찮았다. 마음먹고 산 차를 팔았고, 약속은 잡지 않았으며, 회사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차렸다. 그리고 한동안 자신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마이너스 부호를 함께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날 지수는 혼자 영화를 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집에 가보니 미수와 제부가 와 있었고, 분위기가 이상했다. 영화 보느라 좀 늦었다는 지수에게 미수는 자신은 시간이 없어서 극장에도 못 간다며, 책망하는 듯한 말투였다. 알고 보니 엄마가 실수로 끓는 물을 손에 부어 화상을 입고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수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엄마가 다쳤다는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그럼 대체 뭘 책망하는 것일까? 퇴근하고 바로 집에 오지 않은 것? 엄마를 챙기지 않아 다치게 된 것? 지수는 반발심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두 자매와 엄마 사이의 갈등은 작지만 티나지 않게 쌓여 간다.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났고, 잘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얘를 이렇게 미워했었나. 이렇게 많이 화가 났었나. 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골랐다. 모든 걸 망가뜨리는 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말. 그런 말. 지수는 동생에게 그런 말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때가 다가온 그 순간, 지수는 (놀랍게도) 서글픈 목소리로 천천히 진심을 말했다.
"엄마가 너만 보고 있을 때...... 부담스럽지?"
그리고 지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밤, 지수의 꿈에는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p.111~112

 

지수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얼굴 없는 인간들이 풍선처럼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꿈에 시달리느라 밤새 소리를 지르다 깨곤 한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그렇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던 지수는 꿈에서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하고, 때리기도 하며 상대에게 맞섰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얼굴은 없지만, 익숙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 그녀의 전재산을 들고 사라진 집주인, 그녀가 가장 힘들 때 헤어진 전 남자친구.. 그래 미워해도 된다고 치자. 하지만 매일 밤 잠을 설쳐가며 굳이 소리 지르고, 분을 이기지 못해 깨어나 허망하게 시간을 보낼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사실 지수의 꿈에는 엄마인 영애 씨와 동생 미수도 나왔다. 지수는 엄마인 영애 씨가 어린 시절에는 서운했고, 함께 사는 지금은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리고 뭐든 잘했던 미수가 언니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일정 부분 책임져왔던 것은 고마웠지만, 지수는 자신 역시 힘닿는 대로 자신의 몫을 감당해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매는 엄마의 진심을 알 수 없고, 동생 역시 언니가 모르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채 진심을 숨기고, 점점 멀어져 간다.

 

이 작품은 평생 동생에게 밀리고, 타인에게 험한 말 한 번 해보지 않은 채 살아온 지수가 어느 날 새벽 늘 같은 시간에 러닝을 하는 한 여자를 보게 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서사를 그리고 있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거들떠본 적도 없던 지수는 여자가 다니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하며 조금씩 활력을 갖게 되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가꿔나가게 된다.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다해 미워할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 아닐까. 극중 지수가 '가족이란 절대 헤어질 수 없는 관계라 생각했지만, 결국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고' 깨닫게 되는 것처럼, 가족이라고 해서 꼭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며 애써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지수가 자신의 목소리와 존재를 드러내는 과정을 Pull-up이란 운동을 통해 몸의 감각을 익히면서 소외와 자기혐오를 극복하게 된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금보다 더 크고 강한 몸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와 마음, 생각들을 스스로 낯설게 느끼며 앞으로 무슨 일을 겪든, 어떤 일이 일어나든,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은 힘을 바라보며 지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아래에서 위로, 조금씩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그녀의 새로운 서사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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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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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 사실 천재적 발상이지. 그 게임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야, 왜냐면 내가 탐험하는 세계가 현실 세계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게 해주니까. 현실 세계에 있는 게 아니니까 현실에서처럼 이동할 필요가 없는 거야. 난 우리 게임을 그런 식으로 만들고 싶어. 지지처럼 됐으면 좋겠어. 다만 <콜로설 케이브>처럼 두 장소를 왔다갔다하는 게 아니라, 두 세계를 왔다갔다하는 거지. 가령, 한쪽 세계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인데, 다른 세계에서는 히어로야. 그리고 게임에서는 양쪽 세계를 다 플레이할 수 있어. 아직 구체적으로 설정을 완성한 건 아니야. 초기 아이디어 상태지."             p.233

 

열한 살 소녀 세이디는 항암치료로 예민해진 언니 앨리스의 병실에서 쫓겨나 대기실에 혼자 있다가 친절한 간호사를 만나 휴게오락실에 가게 된다. 그곳에는 웬 남자애가 게임을 하던 중이었는데,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샘이었다. 세이디는 샘은 그렇게 함께 게임을 하며 아주 잘 맞는 게임 파트너가 된다. 샘은 큰 교통사고를 당해 6주 동안 두 마디 이상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세이디를 만나면서 비로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간호사의 부탁으로 세이디는 매일같이 병원에 가서 샘과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을 봉사활동 시간기록지에 서명을 받으며 기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지만, 14개월 동안 지속된 그들의 우정은 샘이 시간기록지의 존재를 발견한 날로 끝났다.

 

그리고 6년이 지난 뒤, 세이디는 MIT 컴퓨터과학과에 다니고, 샘은 하버드대학교 수학과에 다니던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만나게 된다. 짧은 재회 후 세이디는 샘에게 자신이 만든 게임이 담긴 플로피디스크를 건네고, 샘은 집으로 돌아와 룸메이트인 마크스와 함께 그 게임을 플레이해본 뒤 그녀와 함께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어린 시절 게임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당시에 무시무시한 통증에 시달렸던 어린 그가 죽고 싶다는 마음을 누를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바로 게임이었고, 현실의 문제를 잊은 채 플레이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세이디와 샘, 그리고 마크스까지 프로젝트에 합류해 일년 여의 시간 동안 게임 <이치고>를 완성시키게 되고, 그것은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겨우 이백여 페이지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육백삼십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을 가지고 있고, 그건 이들의 성공 뒤에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 그 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과 사랑, 실패와 성공, 절망과 구원, 상실과 치유에 이르는 놀라운 드라마는 그렇게 계속 된다.

 

 

 

너는 게이머이고, 그 말은 곧 ‘게임 오버’가 하나의 구성 요소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얘기다. 게임은 네가 플레이를 그만둘 때에만 끝난다. 언제나 또다른 생명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죽음이라도 끝이 아니다. 독살당할 수도 있고, 염산이 든 대형 통에 빠질 수도 있고, 목이 잘릴 수도 있고, 총을 백 발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시작을 클릭하면 너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음번엔 제대로 해낼 것이다. 다음번엔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p.483~484

 

게임의 좋은 점은 인생보다 공평할 수 있다는 거다. 훌륭한 게임은 어렵긴 해도,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의 보상을 반드시 돌려 준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노력이란 것이 항상 정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열심히 산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애초에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은 것이라 대부분 태어난 그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예상되는 지점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몇 번이고 죽고 패배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은, 무한한 재시작의 세계인 것이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무한한 부활과 구원의 가능성, 계속 플레이하다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개념이 바로 게임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여기, 이러한 버추얼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버추얼 세계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 대학생들이 있다. 이 작품은 소꿉친구였던 두 사람이 하버드와 MIT를 다니는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다시 만나 의기투합해 기발한 아이디어와 플로피디스크 하나로 게임계를 뒤집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해 신체적 장애를 가지게 된 아시아계 미국인이자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샘과 부유한 배경을 가져 자유롭게 살아왔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게임계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세이디, 두 사람의 관계는 여타의 러브스토리와는 굉장히 색다른 서사로 진행된다. 그들의 관계는 친구보다는 더 가깝고, 결코 연인이 되진 않지만, 서로의 비밀을 아는 가장 가까운 존재로 오랫동안 함께 한다. 왜냐하면 옛날에 내가 바닥을 쳤을 때 네가 나를 구했으니까, 왜냐하면 인생에서 합이 딱 맞는 협업 파트너는 아주 희귀하니까..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은 서로를 존중한다. <섬에 있는 서점>, <비바, 제인>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개브리엘 제빈의 신작은 마스터피스로, 롤플레잉 게임(RPG), 이인칭시점, 인터뷰, 게임 채팅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해 현실과 픽셀을 넘나드는 청춘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어쩌면 사람을 절망에서 구원하는 것은, 기꺼이 놀고자 하는 의지'라는 것을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마구잡이식 재난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는 현실 세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당신에게, 놀랍도록 생생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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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꼬미 동물병원 2 -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 공식 동물 만화 백과 쪼꼬미 동물병원 2
김강현 지음, 황정호 그림, 최영민 감수 / 서울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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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 하나인 '쪼꼬미 동물병원'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병원을 찾은 소동물 친구들의 치료 이야기를 담고 있어 1권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생각보다 소동물에 대한 정보가 많은 편이 아니라서,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소동물에 대한 팁도 얻을 수 있어 더 좋아하는 책이다.

 

1권에서는 펫테일 게코,와 고슴도치를 시작으로 미어캣, 골든햄스터, 페닌슐라쿠터, 스컹크, 코뉴어 앵무새, 공비단뱀, 라쿤, 프레리도그까지 10종의 동물 친구들을 만났다. 2권에서는 또 어떤 소동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쪼꼬미 동물병원> 2권에서는 역대급 예민킹 쪼꼬미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다람쥐 '짱아'였다. 실제로 숲에서 나무들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는 다람쥐를 목격한 적이 있기에, 그렇게 빠른 동물을 집에서 키울 수도 있구나 놀라웠다. 다람쥐처럼 예민한 소동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데 말이다. '하루'의 쪼꼬미 일지를 통해 실제 다람쥐 '짱아'의 치료 사진을 보니 너무 안쓰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번째로 등장한 것은 아마존 청머리 앵무새 '바다'였는데, 사람들과 함께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 앵무새의 사연은 뭉클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의 털을 뽑아대서 그걸 막기 위해 넥카라를 씌웠는데, 그 모습은 너무 귀여웠지만 말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건 엄청나게 작은 비어디드 드래곤 '비비', 다이어트가 필요한 드워프 햄스터 '콩콩'이 였고, 이어 돼지코거북, 피치스롯도마뱀, 슈가글라이더, 달팽이, 타란툴라, 친칠라까지 총 10종의 소동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는 바로 사이좋은 달팽이 남매 '핑핑'이와 '퐁퐁'이의 이야기였다. 보호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열린 뚜껑 밖으로 나갔다가 바닥에 떨어져 달팽이 집이 부서져 버리고 만다. 달팽이 껍데기 수술이라니 너무 신기했다.

 

요즘 집에서 물고기 구피 몇마리와 달팽이 한 쌍과 햄스터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 중 달팽이는 아프리카 백와 달팽이로 개체가 상당히 큰 편인데, 지켜보면서 늘 궁금했었다. 혹시라도 어딘가 떨어지거나 해서 달팽이 집이 부서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쪼꼬미 동물병원을 읽으면서 너무 심하게 깨진 건 안 되지만, 어느 정도는 껍데기를 임시로 봉합해주는 수술을 통해서 속살이 다치지 않도록 조치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연체동물의 껍데기는 다시 자라기 때문에 그 동안만 속살을 안전하게 해주면 된다고 한다.

 

 

곤충과 동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 덕분에 다양한 반려동물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사실 관련 정보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기본 정도밖에 없고 대부분은 일반인들이 키우면서 얻게 된 정보들이라 여러 사례에 대한 맞춤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 특히나 소동물들에 대한 정보는 딱히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쪼꼬미 동물병원 시리즈 덕분에 다양한 정보를 재미있게 얻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습 만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어 더 친근하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데다, 각 장의 마지막에 해당 동물에 대한 실제 사진과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실제로 활용하기에도 훌륭한 팁이 되어 준다.

 

이 책을 통해서 동물과 제대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귀여운 쪼꼬미 동물 친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수십만 종의 동물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장난감처럼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키우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으로 동물을 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사람과 동물의 세계를 더 가깝게 연결해주는 <쪼꼬미 동물병원>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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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상인가 - 평균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류와 차별들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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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접어들면서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를 비롯한 다른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감정을 측정하려고 시도했다. 이들은 감정을 느끼는 수위가 어느 정도여야 정상인지, 그리고 그 수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의문시하기 시작했다. 만약 누군가가 지나치게 많이 느낀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 너무 적게 느낀다면 걱정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반드시 느껴야만 하는, 아니면 반드시 느끼면 안 되는 특별한 감정들이 있을까? ... 감정을 판단하는 기준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정상적인 신체나 정신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p.206

 

Am I Normal? 나는 정상일까? 내 체형이나 신체 사이즈는 정상일까? 혈압은 정상인가? 표면상으로는 아주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이 질문은 내가 다른 사람과 비슷한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자문할때 왜 우리는 남들과 비슷한지, 내가 사회적으로 평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일까. '평균'이 정상이라는 오해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책은 정상성이란 개념 뒤에 숨은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밝히며,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항상 주변 사람에 비춰 자신을 평가하거나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해 오곤 했다. 하지만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게 뿌리 내리기 시작한 것은 겨우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리 끊임없이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일까. 이러한 정상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저자인 사라 채니는 '정상성'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과 통계적 연구를 토대로 우리의 몸과 마음, 성생활, 감정, 그리고 아이들과 사회는 정상인지 심도 있는 고찰을 보여준다. 사회의 표준을 벗어나거나, 기준을 해치는 것들을 정상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으며, 정상이라는 무기로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 정상이던 것이 내일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닐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개인에게는 병적인 것이 사회에는 정상적일 수 있다." 에밀 뒤르켐은 이렇게 숙고했다. 은밀하게 숨어 있는 '정상성'을 찾아낼 수 있을 때만이 우리는 현상 유지를 위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는지 알 수 있다. 서구 산업 사회의 정상성이 구성되는 방식은 개인의 정상성이 구성되는 방식과 같다. 즉 정상성은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그것도 '일부'가 아닌 '대부분'이 마주하는 현실과 상충한다.         p.319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대략 1820년 전까지만 해도 정상이란 말은 수학에서 각도와 방정식, 공식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였다. 선과 연산은 정상이지만 자신이나 상대방을 묘사하기 위해 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말이다. 이후로 '노멀 스쿨', '노멀 시' 라는 이름이 쓰이면서 은근슬쩍 노멀이라는 단어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케틀러가 통계 분석을 근거로 '평균인'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고, 그의 '평균인'은 최초의 '정상적' 인간이 된다. 그렇다면 정상이 평균을 의미한다면, 정상의 반대는 무엇일까? 의학 용어에서 정상의 반대는 병리적 상태이다. 이후 골턴의 유전생물학에서 우생학 이론 등이 '정상성'이라는 개념을 점점 더 확립시켜 나간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서구 사회를 뒷받침하는 이상적인 정상성 개념은 신체에 결코 장애가 없는 중산층의 백인 남성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 사회는 식민주의와 인종차별, 성차별을 옹호해왔고, 지금은 ‘위어드(WEIRD)한 사람’을 기준으로 나머지를 평가한다. ‘평균’에 대한 집착이 데이터를 조작해 오류를 낳았고, 잘못된 모집단 설정은 잘못된 대표성을 낳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관점과 배경이 다 다르고, 정상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살면서 하게 되는 경험이라는 것도 사실은 정상성을 두고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기대에 따라 구성된다. 이러한 기대들이 우리의 일상과 사회 제도 속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우리가 '정상'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 정상이던 것이 내일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닐 수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정상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상이란 관념 자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획일화되고 고착화된 기준에서 벗어나, 각자의 다른 모습 그대로 수용하며 다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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