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영어 습관 - 영어가 입에 착 붙는 4단계 학습법!
최근영(에린)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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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가장 먼저 세우게 되는 계획 중 하나가 영어 공부아닐까 싶다. 그런데 어느 새 11월, 한 해의 끝이 성큼 다가온 시점이 되었다. 새해 초에 계획했던 대로 제대로 되었는지 돌아보면 그 중 가장 실패 확률이 높은 것 또한 영어 공부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이 책 한 권이면 올해를 제대로 마무리하고, 다가올 2024년 새해도 가뿐하게 시작하게 될테니 말이다. 


지금부터 이 책과 함께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 1월 중순쯤 끝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올해의 마지막과 내년의 처음을 영어 공부를 하면서 보내게 되는 것이니 올해의 계획을 잘 마무리하고, 내년의 계획을 먼저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운동이든, 외국어 공부든 뭐든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기 전에, 어떻게든 미루고 싶어 생각을 하기 전에,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매일의 습관이 된다면, 그거야말로 장기적으로 계획을 성공할 수 있게 되는 첫걸음이 될테니 말이다. 특히나 영어는 몇 시간씩 하다 말다 하는 것보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매일 조금씩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60일 동안 매일 영어 공부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가 습관이 되면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시간과 그것을 입 밖으로 뱉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짧아지게 된다. 하루에 두어 시간 공부하고 며칠 또는 몇 주 공부하지 않으면 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가게 되니, 조금씩 매일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대부분의 영어 학습서는 분야별로 특화되어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은 문법과 말하기, 듣기, 쓰기를 동시에 학습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좋다. 1단계는 문법이다. 핵심만 간결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회화에 필요한 필수 문법 개념을 짧고 굵게 학습할 수 있다. 특히나 QR코드로 저자 무료 음성 강의가 제공되어 있는데, 강의 또한 단 몇 분짜리 아주 짧은 분량이라 집중 력있게 공부하기 딱 좋다. 2단계는 말하기인데, 단어를 먼저 익히고, 바로 문장을 말하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QR코드로 제공되는 원어민 MP3가 천천히, 빠르게 두 가지 버전으로 되어 있어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말하기 훈련을 할 수 있다. 


3단계는 듣기인데, 먼저 배운 그날의 문법과 말하기 문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에피소드의 대화를 듣고 빈칸을 채운 뒤, 우리말 대화를 보고 영어로 말해보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러 상황에 따른 아주 짧은 대화문이라 외우기도 쉽고, 반복 연습해보기에도 좋다. 마지막 4단계는 쓰기로, 앞서 연습한 문장들을 직접 써보면서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고 학습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4단계를 하는데, 딱 3장 분량이다. 매일 3장씩만 공부하면 되는 거라, 누구라도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받고 며칠 동안 공부를 해보니,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저자 직강 음성 강의였다. 시원스쿨의 에린 선생님 강의는 쉽게 설명해주어서 이해하기 좋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꼭 필요한 내용만 알려 주어 지루할 틈 없이 문법 공부를 하게 만들어 준다. 말하기와 듣기 코너의 원어민 MP3가 두 가지 버전으로 제공된 점도 마음에 들었고, 각각 네 번씩 읽는 연습을 하고 직접 체크할 수 있도록 확인할 수 있는 체크박스가 있는 것도 편리했다. 여러 번 반복학습이 필요한 거라 읽을 때마다 체크를 해서 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좋고 말이다. 


쉽고, 재미있게 영어를 매일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영어가 입에 착 붙는 4단계 학습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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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 내 마음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그림 50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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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어 '이 사람이 중년이 되어 좀 더 성숙하고, 무사히 노년기를 맞아 좀 더 오래오래 작품활동을 했다면, 얼마나 훌륭한 걸작이 나왔을까' 하는 슬픈 상상을 하게 만드는 작가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조르주 쇠라를 사랑한다. 쇠라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풍경 속에서 인간이 번쩍, 찬연하게 빛나는 한순간을 포착해낼 줄 알았다. 그림을 가지고 소설을 써볼 수 있다면 가장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만 같은 그림들, 많은 사람의 천변만화한 사연들을 작은 화폭 속에 마치 '압축된 소우주'처럼 담아낼 줄 알았던 화가가 바로 조르주 쇠라였다.              p.43


정여울 작가가 '내 심장을 꿰뚫은 그림들'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택한 50편의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격 미술 에세이집이다. 무엇보다 '오직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미술사적인 중요도나 배경 지식이 없어도 그림 그 자체를 사랑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해주니 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 조르주 쇠라 〈서커스〉, 살바도르 달리 〈창가의 소녀〉, 에드워드 호퍼 〈호텔 방〉, 빈센트 반 고흐 <죄수들의 보행>,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피터르 얀센트 엘링가 <책 읽는 여인> 등 유명한 그림도 있고, 낯설게 느껴지는 그림들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모든 그림들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에 미소를 짓게 만들어 주고, 안전한 곳에서 꿈꿀 권리를 되찾게 해주고, 처절한 외로움을 위로 받고, 세상을 바꾸는 힘을 깨닫고, 악몽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용기를 배운다. 클림트가 그린 아델의 초상화를 통해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그 모든 장애물에 맞서는 눈부신 자유를 느끼고, 샤갈이 아내를 향한 사랑을 담아 그린 그림을 통해 우리를 아래로 잡아끄는 마음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환희를 경험한다. 





형태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오직 색채만이 지닌 아름다움이 있다. 클림트의 이 그림은 보라색이 과연 어디까지, 얼마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너무 미워 용서가 잘 되지 않는 날, 애써 용서를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날, 클림트의 보랏빛 위로를 떠올려보자. 그 그림 속 소녀의 싱그러운 느낌을 떠올려보자. 금방이라도 저 카펫을 가볍게 박차고 어디론가 날아오를 것만 같은 사뿐한 느낌, 이 세상 어느 권력 다툼에도 끼어들 필요가 없는 충만한 영혼, 그 순수한 깨어남을 닮아보자. 보라색의 위로는 조화와 용서, 화해와 너그러움, 우아함과 격조에서 우러나오기에.            p.162

~163


정여울 작가는 미술관에 가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낯선 도시를 찾아 헤매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들을 발견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전 세계 낯선 도시들의 미술관을 탐험하며, 아주 특별한 큐레이션을 만나게 된다. 내밀하고, 사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내는 그림 컬렉션은 명화를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느껴지게 해준다. 친근하고, 다정하게, 나랑 상관없는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곁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내 얘기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준다. 피터르 얀센스 엘링가의 <책 읽는 여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라는 작품 속 소녀와 여인은 17세기의 세상 속을 살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강력한 연대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만 있다면, 그 어떤 스트레스와 고민과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마음이 이 그림들에서도 느껴졌던 것이다. 어떤 그림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우리 마음속에 '자기만의 독립적인 방'을 만들어 준다고, 이 책은 말한다. 나를 치유해주는 공간이 지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뿐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곳, 주소조차 없는 곳, 그러나 마음속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은 나만 아는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다.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이 세상이 생각보다 따스하고 친절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마다, 바깥세상이 시끄럽고 충격으로 가득할 때도 '내 마음의 치유 공간'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면 되겠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책 속에 담긴 그림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 작품은 카라바조의 <글을 쓰고 있는 성 제롬>이다. 해골을 앞에 두고 (그러니까 다가오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글 쓰기와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너무도 공감이 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나만의 인생 그림'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주저 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림 하나가 내 마음속에 치유 공간을 만들어 지친 어느 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세상 끝에 혼자인 것 같은 날 외롭지 않도록 도와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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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X 렛츠런 1 : 프랑스
김덕영 그림, 김정욱 글, 강경수 원작, 사이드9 만화 / 시공주니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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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X> 시리즈가 지난 4월 열 번째 이야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 아쉬워하는 어린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코드네임 X> 시리즈는 2017년 7월에 《코드네임 X》를 시작으로 《코드네임 K》, 《코드네임 V》, 《코드네임 R》, 《코드네임 H》, 《코드네임 I》, 《코드네임 J》, 《코드네임 C》, 《코드네임 S》, 그리고 《굿바이 코드네임》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으며 사랑을 받아 왔다. 


이번에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학습만화 시리즈로 재탄생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게 되었다. 




코드네임 시리즈는 '판타지 첩보액션'이라는 어린이 문학에서는 드문 장르를 가지고 있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그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페이지터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스케이트 보드와 랩 연습하는 걸 즐기고, 로켓맨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 강파랑은 어느 날 책장에서 우연히 일급비밀 노트를 발견하게 되고, 엄마가 자신의 나이 때 첩보원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첩보원이라니. 너무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파랑은 노트를 읽다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엄마가 전설적인 첩보원으로 활약하던 과거로 가게 된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비밀리에 첩보 활동을 하는 정부 기관, MSG의 첩보원으로 발탁되어 또래의 소녀인 엄마와 파트너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 이 시리즈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코드네임 시리즈를 읽어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번 작품을 읽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기본적인 사실 관계만 파악한 채 새로운 코드네임 학습만화를 시작해도 전혀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자, 그렇게 MSG의 첩보원으로 활약하는 열두 살 소년 파랑과 파랑의 엄마인 이순심 여사의 어린 시절이자 MSG의 수석 요원 바이올렛과 함께 첫 번째 미션을 하게 될 나라는 바로 프랑스이다. 두 사람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30년전으로 타임슬립해서 1886년의 파리에 도착한다. 최고의 변장술을 지닌 악당 카멜레온과 역사를 어지럽히려는 그림자 군단을 막고,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원래대로 지켜내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강파랑과 바이올렛, 그리고 현지의 알파 요원은 역사에 영향을 미칠 사건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악당들의 계획을 막아야 한다. 이들을 따라 프랑스의 곳곳을 다니면 역사와 문화 지식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지도와 사진, 그림 등의 다양한 자료와 프랑스의 최신 뉴스까지 수록했고, 의미 있는 장소와 각종 정보들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곳곳에 배치했다. 숨은 요원 찾기, 퍼즐 암호 찾기, 암호 해독 등 다양한 첩보 퀴즈를 통해 사고력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이다. 


특별 한정 부록으로 게임과 학습이 결합된 '렛츠런 미션 카드'도 받을 수 있다. 프랑스 국기의 세가지 색깔은? 원래는 프랑스 왕족의 궁전이었던 '박물관'의 이름은? 1815, 나폴레옹이 벌인 '전투'는? 프랑스 혁명 이후 황제가 된 '인물'의 이름은? 등등 책만 읽으면 맞힐 수 있는 질문들이 카드로 되어 있어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 자, 새로운 코드네임 유니버스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는 파랑과 바이올렛이 또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다음 번에는 어떤 나라로 향하게 될지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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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세계 위대한 도시들 2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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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 도시가 추락하고 있다. 나무의 몸통을 향해, 그리고 불가능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는 뿌리를 향해. 죽은 도시에서 느꼈던 평화로운 감정은 이제 없다. 파드미니는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내러 황급히 전화기를 꺼낸다. 손가락이 땀에 젖어 키보드 화면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바람에 도저히 문자를 칠 수가 없어 결국은 음성 인식으로 전환해 소리 내어 말해야 한다. "저기요, 여러분? 우리 전부 다 곧 죽을 거예요.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요."               p.215

 

<우리는 도시가 된다>에 이어 <우리가 만드는 세계>로 N. K. 제미신의 '위대한 도시들' 판타지 2부작이 완결되었다. 이 시리즈는 N. K. 제미신의 첫 단편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 수록되었던 '위대한 도시의 탄생'에서 비롯되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거대한 촉수를 가진 도시의 침입자를 막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화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 이미지처럼, 이야기는 거침 없는 활극으로 시작되었던 이 시리즈에서 도시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유기체이다. 다른 모든 생물처럼 말이다. 도시는 자신을 대변하고 보호할 대리자 '화신'으로 구성원 중 누군가를 선택하고, 맨해튼, 브롱크스, 퀸스, 브루클린, 스태튼 아일랜드 등 뉴욕의 다섯 개 자치구를 수호하는 화신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각성하고,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하려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는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까지 뉴욕 시의 다섯 자치구의 화신들이 각각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뉴욕에 막 도착한 남자, 전직래퍼이자 현직 변호사인 시의원, 수학천재 대학원생, 미술관 관장, 외딴 섬에서 일하는 사서는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화신이라는 것을 각성하고, 각자의 도시에서 촉수의 형태로 곳곳에 등장하는 '적'을 목격했다. 스태튼 아일랜드를 제외한 화신 넷이 모여 뉴욕 전체를 대표하는 화신을 찾아가는 여정까지가 <우리는 도시가 된다> 였다면, <우리가 만드는 세계> 에서는 전작에서 3개월 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같은 속도로 다중우주 아래로 계속 추락한다면 한 달도 못 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할 거예요."
웃음소리가 점차 옅어진다. 아직 몇 군데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파이윰이 지루함과 멸시, 그 중간 어딘가쯤의 표정을 지으며 짙은 아이라인이 그려진 눈가를 가늘게 좁힌다.
"아주 극적인 표현이군. 돌이킬 수 없는 지점?"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는 시점이요... 우린 지금 물질과 에너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게 산산조각 나는 임계점을 향해 접근하고 있어요."              p.383

 

전편에서 벌어진 소동으로 생긴 피해는 아직 복구되지 않았고, 스태튼 아일랜드는 여전히 적인 ‘하얀 여자’에게 포섭되어 다른 화신들과는 단절된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을 향해 사람들이 느끼는 ‘혐오’라는 감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과 시장 선거의 배후에도 적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화신들은 브루클린의 뉴욕 시장 출마를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그렇게 ‘시장 선거’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 인종 차별, 제노포비아, 인터넷 여론 조작 등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차곡차곡 묘사하며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적'과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도시라는 공간이 자의식 있는 생명체라는 것도, 도시의 대리자이자 보호할 화신이 평범한 시민 중에서 선택된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살고 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도시를 지키기 위해 적에 맞선다는 것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처럼 느껴지기도 했었고 말이다. 도시가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유기체라는 것, 하나의 세계에선 평범한 사람이지만 공간과 물리학의 법칙이 다르게 작용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라는 존재가 수많은 세계가 하나로 합쳐진 거라는 설정만으로도 너무 매혹적인 작품이다. 제미신 특유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서 있는 SF적인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버무려진, 이 스펙터클하고 박진감 넘치는 판타지를 만나 보자. '부서진 대지' 3부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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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클래식 리이매진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티나 베르닝 그림,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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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를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목격자인 하녀의 주인조차 그를 고작 두 번 봤을 뿐이고, 그의 가족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으며, 그가 찍힌 사진 한 장 없었다. 그의 생김새를 설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보통의 목격자들이 그렇듯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 점에서만은 모든 이들의 진술이 일치했다. 그 도망자는 어딘가 모르게 기형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한 번 보고 나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p.67

 

균형 잡힌 거구에 얼굴에는 수염 자국 하나 없는, 유능하고 다정한 인상의 남자와 창백하고 난쟁이처럼 작달막하고, 어딘가 기형인 듯한 인상을 주는 흉악한 인상의 남자가 동일 인물일 수 있을까. 이는 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두 인격의 한 모습이다. 도덕적이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지킬 박사와 괴물 같은 외모로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작품은 타락을 향한 욕망으로 터질 듯한 내면을 철저히 억누른 채 겉으로는 점잖은 척 교양과 아량을 두른 지킬의 이중적 면모를 분열된 두 인격 간의 갈등으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 톨의 연민도 없는 인간의 얼굴, 한번 내비친 것만으로도 마음에 오래도록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한 하이드의 모습은 누구나의 내면 한 켠에 가지고 있는 약하고, 추악한 부분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도 같다. 물론 대부분은 그러한 면모를 깊숙이 넣어 두고, 도덕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말이다. 그 감춰진 욕망이 현실로 발현되어 실제로 활동을 하고 다닌다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지옥을 향해 갈지도 모른다.

 

 

누구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외에 또 다른 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두 인격은 다소 극단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대비를 보여주기에 이만큼 매력적인 선택도 없었을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불분명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사소한 욕망이나, 나약한 이기심에 굴복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고, 태어날 때부터 선한 것이 인간이라 하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어 조금은 물들게 되는 순간도 올 수밖에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선과 악이 너무도 자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물론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이 오랜 시간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싹한 고딕 추리소설이자 뛰어난 심리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선과 악의 대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지킬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 말을 뱉자마자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지더니 더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의 표정이 뒤따랐다. 창문 아래에 있는 엔필드와 어터슨의 피까지 얼려버릴 듯 했다. 순식간에 창문이 확 닫혔기에 그 표정을 목격한 건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으로도 충분했기에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몸을 돌려 안뜰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눈빛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p.102~103

 

이 작품은 1886년에 처음 출간되었지만, 영화와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을 통해 수없이 변주되어 오면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기면서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니 말이다. 나 역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여러 버전으로 만나 왔는데, 이번에 만난 버전은 정말 특별하다. 세계적인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알려진 티나 베르닝이 시각적으로 해석해내는 컬렉터용 버전으로 강렬한 일러스트들이 너무 흥미로웠다.

 

 

티나 베르닝의 그림들은 각각의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내거나 은근슬쩍 감추기도 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독특하고 세밀한 터치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이미지들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색채와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텍스트에 담기지 않은 부분까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 독특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소소의 책에서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로 나오는 첫 번째 작품인데,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독특한 시각적 해석을 담은 컬렉터용 하드커버 에디션이다. 앞으로 이어질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의 작품들도 매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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