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사르르 비밀의 밤 밤이랑 달이랑 7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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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경 작가의 ‘밤이랑 달이랑’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다. 이번에 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와 일곱 번째 이야기가 함께 출간되어, 조금 더 성장한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밤이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졌다.
누나,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갑자기 배가 뜨거워.

 

누나 달이는 동생의 배를 만져보지만, 전혀 뜨겁지 않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밤이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이 녹을 까봐 걱정이 된다고, 아이스크림이 상하면 어쩌냐고, 벌레가 먼저 먹어버리면 안된다고 말이다. 누나 달이는 참을성 있게 밤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아이스크림은 냉동실에 있어서 녹지 않는다고, 얼어 있어서 상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준다.

 

그러자, 귀여운 밤이는 방법을 바꿔 본다.
그런데 누나는 어떤 아이스크림이 제일 좋아?
누나, 무슨 소리 안 들려? 냉동실에서 나는 소리 같아!
과연 밤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될까?

 

 

자야 하는 시간에 군것질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어린 밤이도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아이스크림이 너무너무 먹고 싶은 밤이의 모습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나 밤이와 달이의 엉뚱한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두 사람 만의 '비밀의 밤'은 그야말로 시원하고, 환상적이다.

 

한밤의 냉장고 앞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모험은 평범한 일상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꽁꽁 얼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여주는, 다정함이 가득한 '밤이랑 달이랑' 시리즈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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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도르르 마법 병원 밤이랑 달이랑 6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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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경 작가의 ‘밤이랑 달이랑’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이다. 귀여운 동생 밤이와 든든한 누나인 달이에게 이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느 날 밤이가 코끼리 인형을 보고 말한다. 누나, 코끼리가 아픈가 봐.
누나 달이가 봐도 어떤지 그런 것 같다. 그러게. 힘이 없어 보여.

 

그래서 밤이랑 달이는 코끼리 인형을 치료해주기 위해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코끼리 환자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코가 언제부터 이랬죠? 밤이와 달이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코끼리를 치료해준다.

 

 

이어서 등장하는 환자는 호랑이다. 호랑이는 잔뜩 화가 나서 말하는 것조차 싫다고 심통이다. 당근을 안 먹는다고 아빠한테 혼나서 기운이 없는 강아지도, 소풍날인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가지 못해 슬픈 새도, 밤이랑 달이 의사가 치료해주는 '마법 병원'에서 특별한 처방을 받게 된다.

 

동물 친구들은 밤이와 달이가 처방해주는 마법 휴지를 통해서 다 나을 수 있을까?

 

 

어릴 때 병원놀이는 누구나 해봤을 텐데, 그 기억들을 소환시켜주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아이들의 시점으로 아픈 환자를 낫게 해주는 방법이 너무도 귀여웠는데, 주사는 아파서 안 된다며, 환자들을 웃게 만들어주는 밤이와 달이 의사가 있는 병원이라면 누구라도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밤이랑 달이랑’ 시리즈는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게 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번에 훌쩍 자라서 돌아온 밤이, 달이와 함께 우리 주변의 존재들을 더 살피고,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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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증언 - 미제 사건부터 의문사까지, 참사부터 사형까지 세계적 법의인류학자가 밝혀낸 뼈가 말하는 죽음들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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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인류학자는 뼈의 주인을 평가하고, 배제하며, 확인하는 엄격한 과정을 따라야 한다. 경험과 진솔한 학문적 토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아하!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말이네, 왓슨, 이것은 다리를 저는 23세 여성의 제3등뼈의 왼쪽 상판 관절면 조각일세!' 슬프게도 뼛조각을 들고 이렇게 외치는 셜록 홈즈를 항상 불러낼 수는 없다. 이것은 1000피스 직소 퍼즐 중 한 조각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해부학적으로 똑같은 퍼즐 조각이 두 개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의 조각인가? 패턴이 보이는가? 그 패턴이 있는 위치가 한 곳 이상인가?       p.47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교외의 숲속 빈터에서 사이클을 타던 사람이 잠시 쉬던 중에 무심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다 땅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얼굴을 보게 된다. 놀라서 뒷걸음쳤다가 자신이 본 것이 얼굴이 아니라 그냥 나무뿌리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봤지만 역시 얼굴이 맞았다. 그렇게 그는 우연히 목과 손발이 잘린 여성의 시신이 숨겨진 얕은 무덤을 발견하게 된다. 유해 분석을 통해 피해자의 나이, 성별, 키, 둔기에 의한 외상, 목 졸림이 확인되었고, 신원 확인을 위해 컴퓨터를 이용해 초상화를 제작했다. 두개골 CT 영상 위에 근육과 연조직을 하나씩 겹쳤고, 뼈대 위에 피부를 덧씌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인상적인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 이미지는 아일랜드 전역에 배포되었고, 실제로 피해자의 가족이 뉴스를 통해 복원된 얼굴을 보고 스코틀랜드 경찰에 연락했다. 피해자는 아들을 보러 에든버러에 왔다가 살해되었고, 아들이 모친 살해 혐의로 체포된다. 이는 뼈를 통해 얼굴을 복원해 내는 기술로 사건을 해결했던 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어떻게 두개골 만으로 얼굴을 복원해낼 수 있는 것인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법의학 선진국인 영국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세계적인 법의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 수 블랙이 밝혀낸 뼈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법의인류학이란 의료법적 목적을 위해 인간 또는 인간의 유골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고고학, 인류학, 법의학 등 다양한 지식을 응용해서 뼈를 분석한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를 분석해 유골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의 종류와 원인을 관찰해낸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실에서 적용되는 해부학과 법의인류학의 렌즈를 통해 인체를 크게 머리, 몸통, 사지로 나뉘고, 세분화해 뇌, 얼굴, 척추, 가슴, 목, 손, 발 등으로 구분해 살펴본다.

 

 

 

법의인류학은 그런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어 범죄자를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일 때문에 범죄자들이 더 용의주도해지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체 해부학에서 피해자의 신원확인이나 범죄자 기소, 결백한 사람의 면죄를 위해 가치 없는 부분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의 일은 뼈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법과 기술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우리 몸에서 밝혀낼 수 있는 증거도 증가할 것이다.            p.327

 

자신의 집에서 태아나 신생아의 유해가 발견된다면 큰 충격일 수 있다. 스코틀랜드 섬의 외딴 지역에서 어느 부부가 작은 농장이 딸린 오래된 농가를 구입했다. 이 부부는 집을 대대적으로 개조하면서 마룻바닥을 뜯었는데, 흙으로 된 토대 아래에서 뼈를 발견한다. 이 섬에는 오래된 매장지와 유물이 풍부한 유적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근처 유적지에서 일하는 고고학자들에게 조사를 부탁한다. 아주 작은 그 뼈들은 동물의 것도 있었지만, 불행히도 사람의 뼈도 있었다. 그래서 경찰을 부르게 된다. 조사 결과 그 뼈들은 최소 세 명의 아기의 유골이었다. 신생아의 뼈는 300개가 넘는데, 발견된 것은 그 중 2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뼈들은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아주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였고, 그에 얽힌 이야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렇듯 뼈는 살아 있을 때와 세상을 떠난 뒤에 겪은 일을 모두 담고 있다. 그러니 뼈는 망자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잇는 다리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범죄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다. 언제 사망했는지도 모르는 채 발견된 시신을 비롯해서 대규모 참사나 테러로 인한 시신 등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쓰인 그만큼 놀랍고 생생하다. 저자는 범죄소설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한다고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는 사건들을 글로 쓴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그 내용은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될 것이라고 말이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비일비재한 하다는 뜻이다. 법의인류학자들은 억울하게 잊히는 죽음이 없도록 지금도 사건 현장에서 묵묵히 진상을 밝혀나가고 있다. 뼈, 근육, 피부, 힘줄, 섬유 조직에 상세히 기록된 이야기를 찾아서 이해하고, 슬픈 사건으로 최후를 맞이한 시신들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 시신과 그의 이야기가 영면하도록 연결시키는 다리가 되어 준다. 뼈를 통해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범죄과학 수사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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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와 아키라
이케이도 준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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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아키라는 저도 모르게 외삼촌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외삼촌은 어쩐지 겸허한 표정을 지었다. "아키라는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해. 즐거운 일도 있겠지만 괴로울 때도 있겠지. 하지만 거기에 맞서 싸워 이겨야만 해. 그게 인생이야."
"지면 어떻게 되는데?" 아키라는 물어보았다.
"지면? 외삼촌은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것 역시 인생일지 모르지." 아빠는 진 거야? 아키라는 그런 질문을 삼켰다.          p.60

 

태어난 곳도, 자라난 환경도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두 명의 아키라가 있다. 야마자키 아키라, 영세공장 '야마자키 프레스 공업'을 운영하는 공장주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공장이 도산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야반도주하듯 집을 떠났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이도 아키라, 대형 해운업 '도카이해운' 집안의 장남이다. 자연스럽게 후계자가 될 운명이었지만, 차기 사장 자리를 거부하고 자신이 관심가는 회사에 지원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아키라는 소위 흙수저와 금수저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의 환경은 능력이나 노력 여하에 따라 크게 바뀌지 못할 만큼, 정해진 운명처럼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의 파도에 휩쓸려 흘러가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두 삼촌과 아버지가 서로 미워하고 차갑게 견제하는 걸 보며 자란 가이도는 유복하다는 것이 동시에 그에 합당한 운명을 짊어진다는 뜻이라는 것을 보고 배웠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런 운명을 짊어진 것처럼 자신과 동생 또한 앞으로 그 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이도는 그러한 자신의 운명이 지독하게 싫었다. 야마자키는 아버지의 회사를 보면서 약한 자는 어째서 약한지, 항상 의문을 품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장사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과 아버지를 냉혹하게 대한 은행과 가차 없이 빚을 독촉하러 왔던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그만한 실력을 갖추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두 아키라는 일본의 대형 은행에 동시에 입사하게 되고, 야마자키는 돈이 아닌 사람을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가이도는 돈은 사람을 위해 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들 앞에 가혹한 시련이 들이닥치고, 두 아키라는 각자의 인생을 건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야마자키 아키라라는 걸출한 뱅커의 눈으로 본 하나의 우주였다. 마이크로 수준의 분석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쏘아올린 논리의 화살. 그것이 기상천외하면서도 의문의 여지 없이 마땅한 필연성과 결합해 화려하고도 대담한 결론으로 집약되어간다. 끝까지 읽은 뒤에도 간나는 한동안 그 품의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연하게 머릿속 어딘가로 제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적확한 업무 처리,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 그것은 매일 옆에서 보았으니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이것은...... 차원이 다르다.              p.566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비롯해서, <변두리 로켓> 시리즈와 <일곱 개의 회의>, <루스벨트 게임>,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직장인들의 통쾌한 반란과 도전을 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캐릭터로 그려냈었던 이케이도 준의 신작이다. 이케이도 준의 작품들은 언제나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이번에도 육백여 페이지 가까이 되었지만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두 명의 주인공이 경쟁 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 두 번을 거쳐 성인이 되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의 신입 사원 연수에서 파이널에 오른 두 팀으로 만나는 게 전부다. 그렇게 시종일관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후반부에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두 사람의 삶이 제대로 교차한다. 이름은 같은데 한 쪽은 풍족한 삶을 살아왔고, 나머지 한쪽은 힘겨운 삶을 헤쳐왔다면 라이벌 구도로 가는 서사가 대부분일 텐데, 이 작품은 보기 좋게 예상을 벗어나는 것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이케이도 준 특유의 현실적인 디테일들이 차곡차곡 드라마를 쌓아 가며 197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적인 혼란으로 얼룩진 시대를 그려가고 있기 때문에 그 몰입감도 대단하다.

 

이 작품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3년에 걸쳐 연재된 작품으로, 연재가 끝나고 8년 후 무카이 오사무, 사이토 다쿠미 주연의 TV 드라마 <아키라와 아키라>로 영상화되면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에는 다케우치 료마, 요코하마 류세이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가 제작, 공개되었다고 한다. 이케이도 준의 작품들은 영상화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많고, 캐릭터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누계 부수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작품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난하다고 마냥 불행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부유하다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점을 두 주인공을 통해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두 아키라가 30년에 걸쳐 성장하는 과정은 인물의 서사라는 관점에서도, 시대를 관통하는 경제적인 흐름으로 읽더라도 매우 흥미롭다. 부잣집 소년과 가난한 소년, 두 아이가 자신의 운명에 맞서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순응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수십년 뒤에도 여전히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맞섰고, 온갖 수라장을 겪으면서 성장해나간다. 이케이도 준은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가장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작가답게 이 작품에서도 극강의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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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책 - 서울대 박훈 교수의 전환 시대의 일본론
박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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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옛날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사실 한국인만큼 일본을 비판할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일본에 오랜 기간 고초를 겪었고 일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의식에 기초한 일본 비난은 더 많은 사람을 장기간에 걸쳐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일본 비판을 통해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 법치와 인권, 평화와 복지의 세상을 여는 담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일본도, 세계인들도 우리를 존중할 것이며, 한국인들도 그를 통해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고양될 것이다.         p.8

 

일본 근대사 최고 권위자 서울대 박훈 교수가 막연한 혐오와 적대감을 걷어내고 일본과 한일 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어 공분을 사고 있는 요즘 읽기에 좋은 책은 아닌 것 같지만, 마음을 다잡고 읽어 보았다. 저자는 한국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모르는 대상에 대한 공포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대상에 대한 비하가 콤플렉스'처럼 엉켜 자리하고 있다며, 먼저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장단점과 다른 점과 비슷한 점을 짚어 보고, 근대사의 성패를 살펴보며 반일을, 혐한을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치단결하는 지점이 바로 '반일'이라고 말한다. 식민지 된 지 110년이 넘었고, 해방된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반일 민족주의는 약해지기는커녕 더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일 담론들이 과학, 학문적 근거하거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하지도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이다. 그러니 목청만 높이는 대신, 차분히 앉아 생각하고 공부하고 조사해서 신중히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저자가 그동안 <경향신문>과 그외 몇몇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가깝지만 판이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두 나라의 상호 인식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한국 시민들만큼 일본에 '관심'이 많은 경우도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에 경쟁심을 불태우고, 그 동향에 신경을 쓰며 자주 비교한다. 젊은 세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본 여행, 일본 음식, 일본 문화가 우리의 일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러나 그 '관심'에 비해 일본을, 특히 일본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자문해보면,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관심'은 과도한데, 풍부한 지식과 정보에 기초한 체계적인 이해는 너무도 부족한, 그래서 무지와 오해가 난무하는 상황이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p.246

 

혼술도, 혼밥도 익숙하고, 기괴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일본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개인주의가 매우 희박한 사회라고 한다. 소속 집단보다 개인이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일본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개인주의 혹은 개인이 강한 사회로, 그것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만들어 냈다. 일본은 시위도 없고, 국민들의 정치 행동 또한 자주 일어나지 않는 나라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론 정치의 나라로 여전히 민심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일단 이것은 저자의 견해다) 한국이 민심의 나라라면 일본은 엘리트, 그중에서도 야쿠닌(관리 혹은 공무원)의 나라이다. 역사상 1000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은 한국은 지정학적 지옥이고, 지진을 비롯해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지질학적 지옥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해 강화도조약부터 메이지유신까지, 김옥균부터 사카모토 료마까지, 한일 근대사의 주요 장면과 인물들을 되짚어 본다.

 

저자는 무시와 두려움이라는 콤플렉스에 발 묶여 있는 한일 상호 인식을 역사와 현실에 비추어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인이 말하는 ‘반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아쉬운 점은 한일 상호 인식을 역사에 비추어 차근차근 들려 주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같은 시국에 '한국은 일본을 경시하는 맨 마지막 나라가 돼야 한다'는 외침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들이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담겨 있고, 막연한 반일과 혐한 대신에 상대에 대해 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맞다. 일본에 대한 비판은 무력한 공포탄이 아니라 뼈 때리는 비판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화를 거부하고 불편한 진실도 직시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는 없었던 책이다. 어쩌면 더 다양한 담론을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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