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박덕률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일전에 자신의 스승께서 전시회 소식과 함께 책을 소개해주셨던 이웃께서 귀한 사진 산문집 책을 선물로 받았다.

책을 받아 들고 네이버 검색을 먼저 해보았지만 사진 산문집에 대한 이렇다 할 감상문이나 책을 읽고 난 소감문 내지, 리뷰 등이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못내 아쉬웠길래 귀한 선물을 받은 겸으로 책의 감상문 정도는 써 드리는 게 도리는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사진가는 많은데 사진 평론서나 사진 감상기가 적은 이유는 또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서평을 적을까 한다.

책을 받아 들고서 산문 글은 그리 길지도 않고 어려운 이야기도 없으니 부담 없이 저자의 담담한 서술에 빠져들기 충분했으며 사진가로 활동하셨던 만큼 사진에 있어서 깊이를  꾸준하고도 농도가 진함으로 퍼져있음을 느낀다.

 

제목이 겨울나무였다. 봄나무도 있고 여름 나무도 있고 가을 나무도 있는데 작가는 유독 겨울나무를 찾았다. "조바심 내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며 사는 겨울나무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라고까지 했다. 겨울의  나무는 온몸으로 표현하는 테마에서 연상되듯이,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나무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작가적 시선의 답을 도출한다. 겨울이라는 추위에서 나무는 봄에 피웠던 나무를 가을에 떨구고 나신의 가지를 들어 낸 채 나뭇잎 없는 빈 가지로 시간을 견딘다. 벌거벗음에 대한 무채색의 가지와 가지들 사이로 겨울의 바람을 홀연히 맞았을 나무는 결국은 작가 자신의 관념적인 형성을 이룬다고 봐야 한다. 겨울의 숨죽임으로써 스스로가 봄을 새롭게 잉태하려는 곳곳한 외로움의 자태는 겨울나무의 특징이었다. 화려한 계절의 나무가 아니라 "차가운 눈보라를 온몸으로 이기며 침묵으로 외치는 겨울나무가 작가는 자신의 테마"라고 했다. 이내 급기야 겨울나무는 "죽은 듯 살아 있는" 자화상이었다고 간절히 고백한다.

(물론 작가의 주장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었다.)

허허로운 겨울의 빈 들판에 잎사귀 하나 없는 빈 가지로 충분히 넓은 여백에 작가의 사진은 고독하게 보였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홀로 떨어질수록 더 애처로울 것이며, 애잔한 고독을 겨울바람에 날리운다. 가지 끝으로 스치는 겨울바람의 공명되는 소리는 허허롭고 스산하게 벌판을 매운다. 그런 겨울나무를 향하여 셔터를 눌렀다는 것은 겨울나무의 이입이 별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작가 자신의 사진에게로의 또 다른 투영이었다.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은 겨울나무로 된 흑백과 공간의 빈 여백의 이미지는 장소를 달리할지라도 흐르는 레퍼토리는 일관되어 있다. 작가의 큰 테마로 삼고 있는 주제의식이 곧 작가의식과 연결된다.

사진이 참 진중하면서도 진득하다. 보통 이런 무채색으로 표현된 흑백사진에서 여백의 일관성에서 작가의 내면적 진공상태에서 흐르는 백열등의 필라멘트처럼 빛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또한 겨울나무의 전체적인 선이 단순하고 간략하게 생략되어 있다. 즉, 사진의 뺄셈을 사진가는 제대로 이입시켰다는 말과도 같다.  단순한 선과 넓은 공간을 메우는 것은 결국 작가와 독자 간의 시선의 교집합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런 시선의 교집합이 백열등처럼 빛을 발하도록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사진이 시라고 했다. 현실의 사물을 피사체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미지를 시처럼 은유의 바다로 인도한다.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서 여간 간절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의 능동태로 보려 했다. 결국 이 보려는 의식이 은유적인 비유로 전이되는 까닭이다. 물론 이에 동의한다. 사진을 좋아해서 카메라를 사기 보다 시집이라는 책을 더 많이 사게 된 이유가 작가의 사진이 시라는 은유와 정의에 결합됨을 느낀다. 이는 바로 책을 통하여 모종의 접점을 찾아가는 사진의 감상적인 샤머니즘이며 원시적인 맥락과 비슷한 거라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떡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가요라는 질문에 작가는 되받아 질문한다. 책은 얼마나 읽으시는지를 역설적인 질문으로 답을 내놓는다. 사진 잘 찍고 싶다는데 책은 얼마나 읽는지 묻는 의도가 무엇을 말하는지 직설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대목은 아니었던가! 결국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의 내면의 압력일 테다. 내부에서 압력이 높아 끓어 넘쳐나는 사진. 내부의 공력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진 감성론을 운운하면서 은유의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 감성을 따지는 사진은 표표히 공허하다. 내공이 충실한 사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 내부 압이 넘쳐 나오는 저주파의 낮고 잔잔한 내면적 시선이 결국 시선을 멀리 가져가게 하고 심도를 깊이 가져가는 것에서 다른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사진을 오래 이어 가고자 한다면 내면에 충실하라는 뜻이 이와 같은 의미였으리라.

작가 프로필을 보면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음악 중에서도 교향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따라서 사진의 이미지가 흐름의 멜로디로 보인다. 이런 작가의 음악적인 소양으로써 사진에 대입함으로써 빈 여백의 흑백 이미지가 일련의 음악 악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겨울나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꼭 이 책을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감상한다면 바로 이입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은 시공간의 음악 연주와도 같은 것이리라. 음악의 음표라는 피사체에 높고 낮음의 소리로 빛의 많고 적음으로 음영을 입히고 기교로 색을 덧칠하는 사진. 그래서 단 한 번의 연주에 감정을 묘사하듯이 사진은 음악의 흐름에 이미지가 따라다녀도 어색하지 않는 하모니였다. 간혹 사진에 음악이 덧대지면 이 또한 그렇게 어울림이 어색하지 않는 화음을 나타내는 것도 역시 사진과 음악은 같은 족속이었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겨울나무의 철학자를 만나고 철학자에게서 시편을 읊조리며 시에 멜로디를 첨가한 것이 작가의 사진이라 정의 내리고 싶었다.

 

 

모름지기 사진가는 사진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의 철학적인 고유한 프로파간다가 있어야 한다. 평생에 자신이 정한 주제에 매달린다는 것. 이것이 작가정신으로 연결된다. 선방의 스님이 면벽을 하며 화두 하나 붙들고 참선의 고역과 다를 바 없는 일과 마찬가지는 아닐까? 무수한 사진 중에서 딱 한 가지를 품고 이 한 가지의 일관된 자기표현의 방식은 사진을 긴 호흡으로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추진력이다. 이 게 어쩌면 사진을 찍게 만든 근력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사진적인 화두 하나, 이거 하나 없으면 사진도 예외 없이 시류에 떠돌고야 마는 데면데면하게 부유된 떠내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높고 화려한 고주파의 귀가 아픈 사진보다는, 중저음의 우퍼 같은 깊은 음을 섬세하게 발현하는 사진이 그래서 끈질기게 이어 나가는 상대적인 이유는 아닌가 한다.

따라서 작가의 자기만의 내면적인 프로파일 같은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 사진의 긴 호흡으로 마라톤 같은 자기와 치열한 사진.

난 이런 사진이 좋다. 이런 사진가의 겨울나무에게 손을 내밀었다.

PS : 오래전에 받고 사진 블로그에 포스팅한 리뷰를 알라딘에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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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2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집을 읽는 사람이 적고, 읽었어도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yureka01 2016-09-27 13:33   좋아요 0 | URL
일반인들이야 사진책 읽을 기회 거의 없거든요.

문제는 사진 작가랍시고 나서는 사람들이 사진 책을 안본다는 거....

몇백만원 짜리 카메라와 랜즈는 질러도 사진책은 마땅한 소비처가 없다는 거...

공급자만 넘치는 게 사진 이바닥이라서요..ㅎㅎㅎ

감은빛 2016-09-27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사진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는다는 말씀에 절대 공감합니다.
예전에 일했던 출판사에는 종종 사진책을 내자고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대부분 비슷한 컨셉의 사진들.
사진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작품으로서의 사진에 뭐라 할 수 없지만,
마케터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사진책은 시장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며칠 전 책 정리를 하다가, 사놓고 비닐도 뜯지 않은 사진책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비도 오니, 집에가서 그 책의 비닐을 벗기고 펼쳐봐야겠습니다.

yureka01 2016-09-27 15:39   좋아요 0 | URL
사실 사진 관심없는 분들이 사진책 안보는 거야 당연한데.

사진찍고 작가하려드는 사람이 책을 멀리하니..이게 문제죠...

그러니 사진 들이 그냥저냥 자신의 사진 세계 구축할지도 못하고 쫑나는 게 많겠지요...

생산하고 소비하고 이런 선순환이 참 아쉽죠..

세실 2016-09-27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가는 사진이 곧 시가 되는군요.
사진만큼 글도 간결하고 깊이가 있어 보입니다.
책 읽는만큼 사진도 많이 찍어야하고, 평생 자신이 정한 주제에 매달려라...알겠습니다!

yureka01 2016-09-27 23:51   좋아요 0 | URL
아,, 이건 사진의 비밀인데요..
사진이 시와 음악에 대하여 찰떡궁합이라는거^^..
시에 사진이 붙으면 서로 교감하게 되고요..
사진에 음악이 붙으면 기막힌 앙상블이 나오죠..

네 자기 중심에 자신의 주제..하나는 붙들어야 구도가 되니까요.^^..
 

오늘 저녁에 네이버 사진블로그에 큰 봉분을 하고 있는 묘를 포스팅했거든요.

링크 참조(http://blog.naver.com/yureka01/220821371954)


때마침, 알리딘 서재 이웃인 서니데이님의 묘에 대한 퀴즈가 있었습니다.

뭐 검색 조금해봤는데요.


분묘기지권이 있더군요.

25년이상 점유한 묘지는 타인의 소유 토지에 대하여

묘가 그대로 있을 권리 즉 분묘기지권이 성립한다고 나오더군요.


그렇다면, 링크 사진에서 처럼 한 2000년전에서 1600년 전의 분묘기지권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미칩니다.


물론 포스팅에서는 분묘기지권이라는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요.


문제는 왕들 지배자들의 묘에는 많은 순장품도 나오고,

순장한 사람들도 함께 출토되곤 합니다.


직전 포스팅에서 중세 권력의 핵심인 황제와 교황, 귀족들의 권력자에 반해서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 노예들, 또는 가야국에서 처럼 순장 당하는 사람들의 인간성 부재에 대하여,

오늘날에 과거의 역사를 배우며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존재의 가치의 평등성을 고민해 봅니다.


로마시대에 자료를 보면 노예들이 평균 연령이 30세를 넘지 못하고,

중세시대에도 일반 백성들도 40세를 넘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세 도시국가들에서 도시에 하수도 하나 변변하지 못해서 콜레라가 습관적으로 창궐 했거든요.왕들은 이런거 하나 해결 못한 머저리같은,지들끼리만 배부르면 그만이었던 기생적 존재들이었죠.

왕들이야 깨끗한 물 마시고 궁중 하인들이 써비스하고 놀았지만 백성들 수명은 무릎과 손이 다 달아 빠지도록죽어라꼬 일하며 착취당한게 봉건사회였거든요.


하여간 오늘은 이래저래 생각해볼 것들이 많네요.


가을이 깊어가는지 시간을 제촉하는 밤비가 추륵추륵 뿌립니다.

중세에는 태어나지 않은게 다행이죠.


아마 지금 기준이라면 까무러 쳤을지도요. 뻬엑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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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26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블로그도 하시는군요. 두 개 하시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yureka01 2016-09-26 22:45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 블로그가 한 10배는 더 어렵습니다..ㄷㄷㄷㄷㄷ

네이버 사진 블로그야 사진만 달랑 포스팅해도 되거든요.


알라딘은 책도사야하고 읽어야 하고 또 글을 써야하는 과정이 있으니
몇배나 더 신경 쓰이는 게 비교가 어렵겠지요..ㅋ..

서니데이 2016-09-26 22:46   좋아요 1 | URL
^^; 저는 요즘 수다만 쓰고 있는데. 괜히 찔려요.^^;;

yureka01 2016-09-26 22:49   좋아요 1 | URL
서재블로그라고 오로지 책이야기만 있어도 블로그 맛이 단조롭죠.
아마 서재블로그 활동하시는 유저분 가입자에 10%도 안될겁니다.
뭐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거든요...

책읽는나무 2016-09-26 23:39   좋아요 2 | URL
수다 페이퍼도 쓰지 않는 저도 찔리네요ㅋㅋ
그저 읽은 책만 겨우 겨우 등록시키고 여기 저기 이웃분들 글 읽고 댓글만 종종 달아도 시간은 금새 훌떡!!!

알라딘 서재 돌아다니면 내 책 읽을 시간이 없으면서도 읽을 책은 자꾸 쌓여가고 참 기이한 현상이죠?^^

소소한 이야깃거리 페이퍼도 쓰지 않으면 것도 영~~써지질 않더라구요!!!

암튼 열심히 활동하시는 알라디너분들 존경스럽습니다^^
특히나 유레카님 말씀처럼 알라딘 서재는 타블러그보다 10배,20배는 더 어렵고 힘든데 말이죠^^

yureka01 2016-09-27 09:14   좋아요 0 | URL
네 물론입니다.

서재형 블로그는 일반 여타 불로그보다 어렵죠.

책이란 주제에 글쓰기가 더해져야 가능하거든요..ㅎㅎㅎ

2016-09-26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6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6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6-09-27 09:12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에서 분묘기지권 배우게 될줄은 몰랐어요 ㅎㅎㅎ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 - 근대 유럽을 만든 중세의 모든 순간들
페르디난트 자입트 지음, 차용구 옮김 / 현실문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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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구 유럽의 중세 기간을 다룬 역사서이다. 역사서이기는 하나 저자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주관적인 관점은 쉽게 느끼지 못하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죽 나열해 놓은 인상을 받았다. 따라서 저자의 의견이 배제된 기분이 들어서 뭐라 딱히 부언하여 왈가왈부할 거리는 없는 거 같았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하여 몇 가지 의문점이 들어서 리뷰라는 형식을 빌려 따져 보고 싶었다. 중세 역사에 대해 그리 깊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중세 역사 전반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이해가 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였다.


책의 경과 과정 :

이 책은 오래전 알라딘 유저의 소개가 있었고 근대를 지나 현대 오늘날은 사회가 중세에 그 당시의 사회에서 비롯되고 태어난 결과였으므로 중세의 사회적 환경에 대해 상당히 궁금했었던 적이 있있다. 따라서 그런 일환의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하였고 작년에 이 책을 구입하고 책장에 처박아두기만 했었다. 알게 모르게 사놓고 읽지 않아서 뭐랄까, 일종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작용한 탓도 있다. 읽지도 않는 책을 사놓고 장식용처럼 취급하기는 싫었던 이유에서 이번에 밀린 숙제하는 기분으로 책을 펼쳤고 문장 위를 달려 보기로 했던 것이다. 물론 딸아이가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라 옆에서 대기하라는 모드를 요구했고 이왕 옆에서 지켜보느니 아빠도 함께 공부한다는 자세?로 책을 들었다.

 


특히 이 책의 뒷날개 부분( 위 사진 참고)의 홍보성 문구가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읽기를 자극하기까지 했다. 휴일 오전에 잠깐 사진 찍고 들어와서 오후 내내 이  책을 읽었는데 역사서 치고는 첫 페이지부터 흥미가 점점 떨어지는 경우였다. 하여간 두께가 두꺼운 책의 일반적인 특징은 내용이 중구난방 같은 기분이랄까, 하여간 뭔가 정리되지 못한 복잡한 황제들의 사설만 들입다 흩어 놓았구나라는 걸 느꼈다. (저만의 기분이 그랬다는 거니 오해 없기를...)



위 사진을 보시면, 이게 첫 페이지이다. 아 대체 중세를 누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을까? 게다가 신비의 중세라고까지 하니 조금은 의아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중세를 살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는 않다고 토로한다. 이때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중세의 이미지는 암흑기라고 알고 있었고 역사적으로도 가장 비참한 천년의 시기가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비극적이지도 않았다는 논지를 견지한다. 그럼 살아 볼 만도 하지 않을까라고 하고 해도 저자도 역시 살아보지 않아서 아쉽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게 나의 첫 번째 의문스러움이다.



책을 읽으면서 첫번째 챕터에서는 중세 유럽의 시작을 "황제권"이라고 하는 절대 군주의 권력에서부터 출발한다고 규정하였다. 로마시대로부터 이어진 황제라는 권력의 서술이 첫 번째의 챕터를 전부를 할애했다. 여기서부터 읽기가 상당히 꺼려지기 시작했다. 흥미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다. 참고로 저자에 대해 찾아 본 바, 왜 중세의 황제, 왕들의 이야기가 주야장천 나오게 된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중세사 연구에서 권력자들의 연구자였던 거다. 그러니 황제와 왕들의 이야기가 줄기차게 나오는 이유이다. 중세의 역사가 황제들의 권력. 왕들의 지역분할 영주와 영지로써 만으로 중세 역사를 다 아우를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이게 나의 두 번째 의문이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황제와 왕들의 중심으로 기록한 글이 꽤 나온다.




변혁의 시작은 인간이 살기 너무 어려울 때, 그리고 어려워 도저히 견디기 아주 힘들 때 혁명은 일어난다. 마치 불씨가 불똥을 튀울만한 임계점 아래에서는 불이 일어나더라도 번지기 어렵다. 그러나 중세는 르네상스라는 불씨를 튀우고 종교개혁을 이루고 급기야 근대로 넘어갈 수 있는 산업혁명의 밑거름이자 토양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만큼 중세는 암흑기라는 극한의 비등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한 반영이 결국은 중세의 봉건의 반 휴머니즘를 허무는 혁명의 시기로 이어진 것이다.


중세의 페스트, 즉 전염병이 온 유럽을 휩쓸 때마다 인간의 생과 사에서 변화의 바람은 시작되는 것이고, 교황의 권력으로부터 발생된 교회의 권력은 타락하고 급기야 천국에 가는 면죄부까지 파는 등의 물질적 정신적인 횡포가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또한 십자군 전쟁 등으로 유럽은 이교와 싸움에서 백성들은 착취당하고 심지어 무엇인가에 잠재된 사회적인 불만이 유대인의 학살과 마냐 사냥, 종교재판 등으로 야기되면서 그 억제된 세태의 불만이 수백 년간 누적되어 텨져 나오는 것도 이런 여러 가지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장황하게 긴 황제와 왕들의 이야기에 비해 세가리 좃마나게 언급되고 지나쳐 버린다. 역시 사진에서처럼 왕들의 이야기가 주구 장창이다. 이게 세 번째 의문. 자꾸 이야기가 반복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자주 나오니까.

 


이 책의 주 제목이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이다. 중세 천년의 빛은 무엇이고 그림자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저자가 중세의 권력자를 연구한 사람임으로 빛이란 당연히 권력자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자를 빛에 비해 더무니없이 적게 다루었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결국 사회의 변혁과 개혁은 그림자를 통해서 빛을 갈아치우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두께가 780페이지이다. 왕들 이야기 빼면 남는 게 얼마 없다.


네 번째 의문이다. 빛의 이야기는 너무 디테일하고 장황하고 길게 서술 되었지만 기사들, 영주들,농민들,농노들, 여성들, 어린이들.교회와 수도사와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르네상스에 대해 주마간산 겉할기 식으로 서너장씩만 언급하고 지나쳐 버렸다. 왕들의 이야기는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나온다. 차라리 중세의 왕으로 태어난지 못한 일반 백성과 주민들의 삶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중세의 세계관이 황제들만의 세계관은 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아 자주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중세의 일대의 사건들의 원인과 사건을 통하여 나타난 난 결과, 그리고 그런 결과가 또 다른 원인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지 등의 전체적인 맥락과 의미는 전혀 집약되지 않게 보였다. 그저 황제와 왕들의 권력자들 이야기만 여름철 장맛비 내리듯 문장을 적시고야 만다. 다 읽고 나면 대체 내가 뭘 읽은 거냐 되묻게 되더라. 이거 봐서 중세의 의미를 되짚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단적인 예로 페스트라는 질병이 중세 국가 전반에 미치게 된 영향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기에 접어들고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가는 도저히 개념이 잡히지는 않았다.


참고로 아닌 게 아니라, 저자는 카를 4세를 연구도 많이 했다고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되었다.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역사서가 아니라 자기 연구를 토대로 황제들의 연대기에 집중되어 상당히 편중되어 있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이 책은 2000년도에 절판된 책을 2013년도에 다시 복간해서 표지 디자인을 달리했고 출판사가 바뀐건지 출판사 이름만 바뀐건지, 다시 출간한 책이었다. 네, 이 책 역시 비추이다. 아 책보면 중세의 전반적인 흐름과 이 흐름으로 인해서 역사적인 스토리와 의미, 및 그 영향과 진행 양상으로써의 정리가 어렵다.


우리가 왜 지난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알아야 하고 배우려 하는가? 에 대한 역사 배움의 본질을 꼭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되묻는다. 이게 다섯 번째의 의문이다.


딸아이가 옆에서 "아빠, 참 고생하시네요. 그 책 보기만 해도 경끼 나겠어요." 라고 한마디 던졌다. 아 깨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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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26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왕권 황권 위주 서술은 정말 제일 싫어하는 역사관이에요.....

yureka01 2016-09-26 21:47   좋아요 1 | URL
왕들의 기록과 비등하게 귀족(영주),기사, 수도사,영주민,농노에 관한 기록도 균형을 맞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랄까요..

syo 2016-09-26 21:52   좋아요 1 | URL
식상하게도 역사서술에 개입할 힘도 있고 동기도 있는 대상을 중점적으로 다룰거면 관점이라도 특출나야 될텐데요. 읽어보지 못해서 평하긴 그렇지만 읽을 생각도 안들어서 어짤 수 없는 부분이네요 ㅎㅎㅎㅎ

yureka01 2016-09-26 21:56   좋아요 0 | URL
뭐라고 할까요.중세의 전체적 세계관에 대한 통찰력이 아쉬웠던 책입니다.
자신의 연구분야이외엔 일반적인것만 다룬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나 할까요.
별로 권하고 싶지 않는 책입니다.

아무 2016-09-26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모든 것은 빛난다> 앞부분을 읽는데, 중세 시대에 한 사람의 정체성은 기독교 사회에선 신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나옵니다. 자신의 실존에 대한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았다는 건데, 꼭 그걸 참고하지 않더라도 중세를 이야기하는데 종교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건 좀 그러네요..

yureka01 2016-09-26 22:01   좋아요 1 | URL
종교문제에서 황제와 교황의 권력과 서열에 대한 문제가 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거든요.

교회의 역할, 신앙의 기독교적인 윤리적인 변화,진행과정..이런 것도 좀 약해습니다.

중세가 기독교를 빼면 이야기가 안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십자군이야기도 깊이 다루지도 안았더군요.
중세 도시의 발달사 이런 것만 봐도,
도시가 커지고 팽창하는데 있어서 종교와 수많은 관련이 있고, 교회당이라는 건축양식의 변모과정등등...중세의 특징이 나오는데 ...
아고..황제이야기나 주야장천하니...좀 지루했습니다.

아무 2016-09-26 21:57   좋아요 0 | URL
<장미의 이름>에서도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교황과 황제 사이의 대립 문제니까요 ㅎㅎ.. 중세를 다룬 책도 얼른 하나 장만해야 할텐데...

yureka01 2016-09-26 22:09   좋아요 0 | URL
왕권이냐 신권이냐,,이 다툼이 중세의 역사관일런지도 모르니까요.

문제는 오늘날의 휴머니즘관점에서
역사를 보려들지 안은 게 치명적으로 걸리는 부분입니다.

왕권도 신권도 인간은 없었으니까요.

중세에 관한 통찰할 수있는 다른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아무 2016-09-26 22:38   좋아요 0 | URL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을... ㅎㅎ 사실 저도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서^^;; 나중에 찾아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겠습니다 ㅎㅎ

yureka01 2016-09-26 22:50   좋아요 0 | URL
앗 야무님의 심도 깊은 리뷰가 자극되기를 기대합니다..오오!~

2016-09-26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6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6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6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9-27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이 책 추천자인 `오래전 알라딘 유저`가 저 인거 같아 맘이 매우 불편합니다.

yureka01 2016-09-27 22:52   좋아요 0 | URL
얼마든지 다를 수 있잖아요..그러니 전혀 죄송하거나 불편해 하실 것도 없습니다.
책도 저마다의 궁합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책이라도 견해에 따라 맞을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북다이제스터님도 자신의 견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참 참고로 옴베르토 에코 작가의 기획으로 만든 책 중세라는 기획시리즈가 있던데,
이걸 사볼까 고민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권 책값이 8만원,3권이면 24만원이던데 이게 중세 전반을 집대성한건가..싶어서요..

2016-09-29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 하나만큼은 근사하다. 커피의 역사가 단 두 개의 단어로 압축하면 매혹과 잔혹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과유불급이었다. 커피에 관해 너무나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매혹과 잔혹이라는 큰 주제에 온갖 커피의 무역 과정과 가격적인 수요 공급, 커피 브랜드의 활동까지 다 버무려 집어넣었으니 과연 커피의 역사라 하더라도, 누가 이걸 다 읽고 커피의 역사적인 의미까지 되짚을 수가 있겠는가라는 의문이다.


이 책을 골라서 읽은 이유는 워낙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그윽하게 퍼지는 한약처럼 쓴 맛에 향기는 감미롭게 젖어드는 기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 였지만 결국 600페이지 분량에 460페이지만 보고 접을 수밖에 없었다.


커피의 산지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가격 싸움은 잔인하다기보다는 자본의 몰두이자 커피라는 농산물의 투기장의 역사를 책의 반이나 할애하는 지루함이었다. 무슨 사건으로 가격은 폭락하고 무슨 가문의 누구가 어떤 브랜드로 커피사업으로 대박 돈 벌었다 하던가, 이런 건 커피가 아니더라도 자본시장에서는 늘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커피만의 특징으로 인하여 발생한 특이한 사건을 알고 싶었지만 일일이 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사건들의 자료 수집하여 단순히 집대성하고 취합한 책에 불과하다. 


너무 재미없는 책. 누가 이 책을 읽고 줄거리만이라도 기억을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급적 역사 책을 읽을 경우는 직접 메모해 가면서 하나하나 정리 차원에서 읽는다만은, 이 책은 정리하면서 읽다가 도중에 포기하게 되는 드문 책이다.


차라리 커피에 관한 문학책이나 읽어 볼 것은 권한다. 아니라면 커피학 개론이라는 책도 있다. 차라리 이런 책을 읽는 편이 오히려 커피를 맛나게 즐기고 마시는 방법이고, 커피의 이야기가 맛깔나게 될 것이다.


리뷰 길게 쓰고 싶지도 않다. 커피 협정, 무슨 위원회, 커피 판매 기업의 소송사건, 등등 이걸 다 모으고 자료를 조사한 것이 커피의 매혹적인 역사인가. 아니면 잔인한 역사인가? 책이 쓸데없이 길어 잔혹이었던건 아닐까 싶었다.


커피의 매혹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사회적 경제적인 측면, 세계사적인 그리고 일상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것도 아니고, 잔혹이라함은  커피가 노동집약적 산업이니 이익의 욕망에 대하여 생산에 따른 노예의 착취와 남미와 아프리카의 소작농, 계급적인 잔혹성과 피지배계급의 학대 등등 구체적인 이야기들 사소한 일부분만 언급되고 지나쳐 버린다. 왜 우리가 공정 무역으로 커피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고찰은 너무 부진하게 다루었다.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나열한 것이 커피의 부조리와 조리의 이야기가 매혹과 잔혹이라는 주제에 더 다가갈 수 없었다는 판단이다. 커피가 돈벌이 수단, 욕망의 수단에서 벌어지는 사고와 사건이라면 너무 지엽적이기도 하니까.


지루한 나열된 이야기는 기억에 거의 남은 게 없다. 이 책을 읽어도 읽지 않는 거나 진배없다. 읽어도 읽었다 말할 수 없는, 몇 안되는 책.


에잇 커피나 한잔 마실란다그만 쓰겠다. 리뷰 쓰다 보니 짜응나서요. 스톱.!!~!

640페이지나 되는 책 두께에 비해 머리에 남아 있는 게 칼리가 커피 먹은 염소가 신나게 논다는 것만 기억난다.

아 뭐냐....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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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6-09-25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날의 아메리카노는
과거 인도 사람들이 마시던 커피 찌꺼기라고 하던데 맞나요?
커피향은 좋은데 커피는 못 마시는 사람 여기 있네요.
카페인 알러지...까지는 아니고 아주 예민해요.
빈 속에 마시면 간이 벌렁벌렁하다니까요 ㅎ

yureka01 2016-09-25 19:1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메리카노 너무 즐겨 마시긴 하지만
이책에서 각 커피의 종류와 특성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안나옵니다.ㅎㅎㅎㅎ

특히 커피와 카페인간의 지루한 논쟁들은 너무 단순하게 기술되어서
인상깊게 읽을 주제가 없어요.

카페인에 알러지 있으면 무카페인 커피도 있습니다..
이걸 애용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stella.K 2016-09-25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잇, 커피나 마실란다.ㅋㅋㅋ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죠. 문학으로 읽으면...ㅋ

근데 역사책 잘 쓰기가 쉽지 않잖아요.
전 역사책을 재밌게 읽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잘 안 읽게되더라구요.ㅠ

yureka01 2016-09-25 19:14   좋아요 0 | URL
너무 지루한 책이었습니다..
커피의 역사가 다른 정치적인 연대와 궤적을 같이 하는 것은
커피라고 예외가 아니거든요.

자료정리를 두서없이 뒤섞어 놓은 느낌이랄까요..
참 재미없게 읽다가 후반부쯤 포기하게 되더군요..

2016-09-25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5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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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사무실에는 한두 달 간격으로 할머니 한 분이 "조금만 도와 달라"면서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방문했다. 처음 한두 번 정도는 늙은 나이에 모친도 생각나고 측은지심이 발동했었다. 문제는 몇 달이 지나고 일 년이 가다 보니 거의 정기적으로 오는 거 같았다. 몇 년이 흐른 후 그렇게 계속 오는 걸 보고 답답해서 물었다.

 

"할머니, 어쩌시다가 이렇게 계속 다니면서 도와 달라 하십니까? 형편이 정히 어려우면 동사무소 복지과도 있고 여러 기관이라든가 각종 복지 서비스를 하는 단체도 있는데 이렇게 다니지 마시고 그런 여러 기관에 도움받으셔야죠. 어떤 형편이길래 이렇게 나이 많은데 기력도 없고 힘들게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어찌어찌 살다 보니 이렇게까지 왔네.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는 소설책 몇 권으로 다 말도 못 혀. 그런 곳 찾아갈 입장도 못되고..."라고 말꼬리를 흐리고 만다.

 

구체적인 형편을 극구 밝히지 않으니 어떤 도리 없이 지폐 몇 장으로 점심이라도 드시라고 하고는 말았다. 뭔가 밝히기를 극구 거절하는 통에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다음부터 이렇게 다니시면 일부러 다니는 거라 생각하고 사무실 못 다니도록 경비실에서 막을 겁니다. 정말 어려우면 전화번호라도 갈켜 드릴 까요?"라고 하니 그런 다음부터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형편이 어지간했구나' 싶었고 혹시나 그 나이에 자존심 굽히며 형편을 읍소할 만큼 기력이 쇠약한듯 보이긴 했으나 딱히 거절하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노인네가 많고 장차 더 많아질 것이란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또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사무실 패지를 얻으러 정기적으로 찾아오는데 이것도 사무실에서 나오는 박스와 종이는 모아서 주곤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도 버거운 살림을 어렵게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시대이다. 오래전에는 우리네 할머니들은 사정이 곤궁하게 다니지는 않았다. 사회가  노인네들에게 점점 야박해지는 현상이 심해진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 1위라고 오명을 쓰고 있다고 한다. 괜히 1위가 아니다. 그야말로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퍽퍽한 것인지 살 만큼 살았던 늙은이가 가만 있어도 서서히 죽어가는 시간일진데, 이제는 오래 살 수도 없는 삶의 시간에 자살로 더 단축시키려 한다. 이것은 통계로 잡히는 객관적인 수치이다. 경제적인 환경, 열악한 주거환경, 관계의 단절에 대한 환경, 무관심과 방치된 환경, 공동체가 무너진 도시의 고독한 환경 등등에 처해 있는 노인네들이 너무나도 많다. 젊었을 때 자신의 노후에 대한 대비는 아무래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여건이었을 테고 대책 없음에 무방비에 노출되었던 자신의 삶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다. 특히 다가오는 중장년 층의 노후 대비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 무대비로 노출된 당면한 노인들의 문제를 보고서도 대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 책 노후 파산은 현재 일본이 노인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을 취재한 사례를 기사화 시키고 엮은 책이니 만큼 우리들의 노후에 대한 지혜를 찾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현실은 일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의 파산은 더욱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는다는 불길한 생각이다. 이게 일본보다 더 나쁜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제 6.25이후 50년대 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가 본격 은퇴가 닥쳤다. 그런데 베이비부머 세대가 저마다의 노후의 대책은 과연 가지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해보면 앞으로 감수해야 할 일들이 일본의 초고령 사회에 비추어 더 좋아질 가능성은 없다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책을 통해서 우리들의 노후를 대비하고 이를 반면 교사로 삼아 마지막 삶이 곤란한 환경에 처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앞으로의 대책과 지혜를 모으고, 스스로가 준비하지 못하면 노후가 얼마나 고단하고 삶 자체가 피폐해질 것인지, 방지해야 할 당면 과제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실로 무섭게 진행되는 노령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당면한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노후의 경제적인 파산이 단순히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어서 있다. 초고령 사회는 아직 우리 사회가 겪어 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현상을 노골적이고도 치명적으로 들어 내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망가져가고 급기야 자신의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파괴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인지, 대체 어디서부터 원인과 진단의 문제를 짚어야 할 것인지 난감하기만 했다. 공동체 사회가 무너진 도시의 삶이라는 것이 철저히 고립화시키고 개별화시켜 버리다. 이런 개별적 독단의 문제는 당장에 자신이 아프고 병들어 육신을 움직이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런 케어를 받을 수 없을 때 비극은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당장의 은퇴자의 삶도 문제이고 특히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삶은 존엄한 삶이 아니다. 살아 있는 형벌,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은 이런저런 사회보장제도가 일정 부분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나온 몇몇의 사례에서는 참극 수준으로 나오는데, 과연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의 대비는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차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의 초고령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출산과 맞물려 초고령 사회는 그 비극적 궤적이 평행선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람은 각자가 존엄하게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존엄은 커녕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가는 문제에 개개인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노후 파산이라길래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국한된 파산이란 것으로 선입견으로 받아들였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노후 인생 파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경제적인 파산이 인생 자체를 파탄으로 전염시켜 버리는 결과에 대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당면할, 앞으로의 초고령 사회는 정말로 사회 근간을 흔들 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금 지진 때문에 난리인데 초고령 사회는 삶의 지진으로 난리가 날 거 같다는 거다.

 

이런 인생 파탄까지 내몰릴 정도로 절박한 노후 문제가 닥치게 될 것이라고는 차마 상상도 하지 못 했다고 한결같이 진술하고 있다. 은퇴를 얼마 남지 않는 지금 현재도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비슷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경제적인 상황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분해로 이어지고, 독단적으로 단절되어 개별적인 세포화되어 가면 각자도생만이 남을 것이고, 언제까지 내 몸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누군가로부터 케어 받을 수 없게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꼬꾸라져 고독사로 마무리될 것을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고통 속에서 병이 심각한들, 혼자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해 병원 한번 갈 수도 없이 통증에 시달리며 빨리 죽지도 않는 상태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참극이다. 나 자신이 그러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우스께 소리로 나는 절대로 벽에 똥칠할 때까지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더라도 이 또한 자신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 때나 생각할 수 있지, 막상 자신의 생명조차 어쩌지 못하여 똥 쌀 때는 어떡하겠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생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신의 장례비용 때문에 예금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일본의 자존심 강한 노인네는 그렇게 강고한 성격이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대부분이라면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사례는 거의가 노인 혼자만 남았을 때가 문제가 된다.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지냈거나, 혹은 부부 중에 아내이든 남편이든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았을 경우는 노후 파산이란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늙어감에 따라 언젠가는 반드시 홀로 남는다. 부부가 한날한시에 세상 하지 하지 않는 이상, 아내가 일찍 떠나든지, 남편이 일찍 떠나든지 결국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서로가 의지가 될 수 없어 케어가 없고 부부간에 서로 받는 연금이 반 토막으로 줄어들 때, 남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유지시키고 원만하게 자신의 생을 무리 없이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 이건 나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문제였다.

 

겪어 보지 못한, 그저 개념적인 문제가 실체적으로 부각되는 점을 이 책은 정확하게 직시하게 해주고 있다는 거다. 아직은 젊어 힘 있고 다리에 기력이 남아 있을 때는 이것은 전혀 생각의 범주에 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보면, 이걸 미리 겪어 볼 수도 없으니 절박하게 마땅히 미리 대비해 둔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의 현실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자식들과 함께 살거나 혹은 지근거리에 살면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고 자신의 입지가 굳건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늙을 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비슷한 보호받으면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홀로 남는다. 가장 결정적이 차이가 가족이란 테두리의 존속 유무 차이이다. 이제는 원하든 원치 않든 홀로 남을 가능성이 많은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몸을 움직여 밥 한 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마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24시간 간병 지속적으로 간병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면 그대로 감내하든가 그동안의 예금을 헐어야 하고 또 언제까지 그렇게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나온 일반적인 사례들을 특징들은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특별히 무슨 재산적인 부를 모으지는 못했으나 평범하게 직장을 열심히 잘 다녔고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큰 부를 일군 것은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삶을 충실히 살았던 사람들이 늙어서 파산이란 지경에 이르게 되는 자본주의적인 모순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공동체가 없이 개별적인 삶은 오로지 늙어서는 오로지 자신이 자신에게 밖에 기댈 때가 없게 된다. 지역사회의 공공적 서비스로는 모든 것을 다 도맡아 해결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고 일일이 세심한 케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젊어서는 홀로 산다 해도 특별히 문제가 없지만 늙고 병들어 운신하기 어려워질 때는 결국 혼자가 아닌 공동체가 매일 찾아야 하는데, 이런 공동체가 사라지고 나면 도시에서 버티기도 불가능하다.

 

다음은 은퇴 후 노년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결론을 몇 가지 내보기로 하자.

1. 은퇴한 남자들은 집안에서 자신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은퇴하고 바로 느끼는 부분이라고, 은퇴하면서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모 정당 지역 당원 한 분의 설명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과 연관 지어서 읽어보니 그래서 더더욱 실체적으로 와 닿는다. 직장, 사회 등으로 나돌아 다니다가 은퇴 후에는 갈 곳이 사라진다는 현실이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갈 곳이 마땅한 곳이 사라지고 없다. 물론 돈이 많아서 어디 빈 사무실이라도 얻어서 출퇴근하듯이 일이 있으면 모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갑자기 오리무중의 발길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에 반해 여자는 부엌이라는 자신의 공간이 있고 안방을 차지하게 되고 자식들도 각자의 자기 방의 공간이 있는데 은퇴한 남자의 공간은 집안 어디에도 없이 걷 돌게 된다고 한다. 마냥 거실에서 머무를 때 자신의 고유 공간의 점유성 부재가 가져다주는 무력감은 은퇴자가 만나게 되면 젖은 낙엽처럼 소외된다고 했다.

집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읽어 버리지 않는 독점적인 공간. 즉 서재라도 좋고 좁은 창고라도 좋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고독을 누리지 못한다면 집안에서조차 부유되듯 떠돌아다니는 꼴을 면치 못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에서도 일본이 상황은 다소 나아 보이나 자신의 공간 부재는 자신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2. 다음은 경제력인 부분이다.

이때까지 일부 선배들을 보면 자식에게 올인해서 사업 자금 대주고 주택 얻어주고 하다가 빈 개털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간간이 지켜보게 되면 멀쩡하던 은퇴자가 일순간 빈곤 가정으로 급진 추락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신의 노후에 최후까지 보루로 삼아야 할 생활비조차 탕진당할 때 그 이후는 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답이 없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 주택연금이나 일반 국민연금, 사보험 연금 등의 노후 보장 포트폴리오를 수립하고 꾸준하게 적립시켜 온 사람이라면 한 달에 생기는 수입이 일정 수준이 되어야만 생활이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가진 거 다 털려도 매달 자신의 삶에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힘은 일하지 않고도 보장되는 수익원이 있어야 한다. 자식들에게 한 달 얼마씩 용돈 받는 것으로는 체면도 서지 안을뿐더러 언제까지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의 앞가림은 필수이다. 고정적인 연금 수익이 없을 때 노인들의 활동 영역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인간관계의 심각한 단절과 소외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디 가더라도 커피 한잔 교통비와 점심값조차 없이 나돌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사회적 시스템은 자본주의적인 체제에 절대적일 만큼 확고하다. 그런데 자신의 운신할 자본적인 여력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개인적, 사회적인 문제를 양산한다는 점이다. 늙어서 돈이 없으면 서럽다. 누군가에게 빌붙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부조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구걸해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협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자식들이라고 요즘 그렇게  넉넉한 삶을 물려주지 못 했던가 자신과 비슷한 가난한 처지의 삶을 산다면 분명히 보조가 있을 수 없다. 비록 큰 재산을 이루지 못 했다 할지라도 반드시 이런 자본적인 대비는 해결 해냈어야 하고 대비해 두어야 할 일이다. 남은 인생을 굴욕적이지 않고 자립적이고 자신의 의지와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삶.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기반과 능력이 없으면 굴욕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늘상 나를 도울 사람을 찾아서 헤매야 하고 지인으로 부터도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 모욕적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 뻔하다. 젊은 시절의 대비하지 못 해서 그 순간만 올인한다고 해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살다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노인 자살률이 치솟고 억지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시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신의 마지막이 비굴해진다는 게 참 불행한 일중 하나일 것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더라도 적절히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 및 민간에 가입한 치료 보험, 중대한 질병에 대한 고액 보험, 그리고 연금 등 경제적이 포트폴리오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앞으로 자식에게 기대할 수 있기가 어렵다. 자식이 없어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 강화가 반드시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3. 자신만의 취미와 배움을 추구하는 삶이다.

젊을 때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미친 듯이 정신 차리지도 못할 만큼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은 상대적 시간의 급속 방전 소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마땅한 일이 없이 은퇴를 하고 나면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즉 그렇게 빨리 가던 시간도 흐름이 갑자기 멈춘 듯 시간이 지겨워진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어디 경제력이 빵빵해서 주야장천 여행 가겠다는 욕심은 욕심으로 끝난다. 게다가 기력도 젊을 때 돌아다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도 딸리고 피곤하고 지친다. 어떻게 매일매일 그렇게 온통 여행 가고 여기 가고 저기 갈 수가 없다. 시간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문득 발견하게 될 때는 이미 늦다. 은퇴하고 나면 그동안 읽지 못 했던 책이라도 왕창 읽을 수 있겠다 싶지만 막상 젊을 때 독서의 탄탄한 근육이 발달되지 못 했다면 갑자기 책을 들고 펼친다고 하루아침에 없던 독서력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당최 뭘 읽어 봤어야 이력이라도 붇고 재미라도 생기는 법이다. 어디 영화에 취미를 갑자기 가진다 한들, 이 또한 역시 영상에 대한 미학적인 추구나 발견이 없이는 하루 이틀의 시간 소모는 가능하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즐김은 도저히 어렵다. 음악도 듣는 사람이나 좋아서 듣지 평생 클래식 한곡 들어 보지 못하고 클래식의 진수가 뭔지 음악의 역사도 전혀 모르고 갑자기 음악이 귀에 속속 들어와 마음의 현줄을 울리기도 어렵다. 젋을 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것인지 소위 할 수 있는 소재 거리를 만들어 두지 못한다면 시간으로부터 낙오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내면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이 또한 윤택한 삶은 없다. 남아도는 시간에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낭비의 시간을 어떻게 요리할 셈인가. 아무거나 만들다고 뚝딱 맛날 수는 없는 것이 시간의 요리가 아니었던가. 공원에서 하루 종일 멍하게 하늘이 뚫어져라 바라봐도, 흐르는 구름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심리적 배경을 가지고서는 무료함으로 스스로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젊을 때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정적인 취미와 전문적인 스킬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 이것을 가지지 못한 아둔함으로 앞으로 남은 노년의 시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지겹고 심드렁한 일상의 무력감과 무기력, 무료함은 삶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뭐라도 만들어 가져야 한다. 독서 영화 음악같은 심미성에 눈을 떠야 한다. 특히 예술적인 취미야말로 자신의 고상함에 날개를 달아주고 이와 비슷한 동질감 가지는 분들과 고고한 교류는 또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는 심심하다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한다. 책 한 권으로 며칠을 때울 수 있고 책을 읽고 다시 며칠의 글을 쓰다 보면 심심할 틈이 없다. 이것은 늙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자신의 내적인 힘으로 연결된다는 거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영상 미학 시대에 이미지의 발견과 이미지의 확장성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만날 수 있는 현대의 감각적인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늙어서도 얼마든지 좋은 취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이와 함께 관련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토론과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 결국 자기의 소외는 자기가 만들어간다는 것. 인생이 고독할지언정 소외당해서 외롭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은퇴하고 죽을 때까지 남은 시간은 어쩌면 제2의 인생을 개척하는 길인데 은퇴시점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곳이 없다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는 이유이다.

 

4. 집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져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집안의 고유한 자기 공간과 더불어 집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당원 동지 분의 언질 중 하나가 남자가 요리를 배우라고 조언했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음식을 대령했던 아내에게 은퇴 후에는 근사한 요리라도 선물하라고 했다. 참 공감되는 이야기이다. 평생을 펴주는 밥상만 받기만 했을 텐데 은퇴 후에 자신이 그 상 위에 근사한 요리를 디스플레이 한다면 이 또한 감동이 아니겠는가. 어디를 가더라도 요리 잘하게 되면 반드시 환영을 받는다. 얻어먹기만 하고 자신이 해줄 수없다면 역시나 뒷방으로 내몰린다. 대체할 줄 아는 게 뭔가 없다는 것도 인생 참 잘못하는 거 아닐까 한다. 어느 집 가장은 은퇴 후에 요리 학원을 등록해서 자격증에까지 도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어디론가 일거리를 스스로가 만들어 낸다. 그럼으로써 몰랐던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언제까지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만 의존할 것인가. 꼰대질 하는 남자치고 요리 좀 한다 싶은 사람이 없는 이유가 차려주는 밥상에 아주 익숙해 있고 늙은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다 온갖 타박성 맛 타령하는 것은 상당히 저질이다. 그렇게 맛을 안다면 직접 해보고 직접 차려주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늙어서 꼰대질 만큼 볼썽사나운 것도 없고 꼴불견의 자신은 발견하질 못한다. 요리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모르는 탓이다. 여자는 요리에 감동하는 존재인 것은 분명한 것 정도는 그 나이 먹도록 모른다면 진짜 재미없는 영감탱이가 될 뿐이다. 늙어서 황혼 이혼 당하는 노인네들 보면 어떤지 대충 감이 돋는 이유. 뻔하잖는가. 은퇴하기 전에는 그나마 돈이라도 주면 모를까 은퇴하고 나서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요리로 뭔가 하나 베풀어 본 적이 없는 쫌생 스타일을 계속 같이 살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니까.

 

5. 아름다운 노년은 건강을 담보로 잡는다.

젊어 이룩한 화려함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늙어서 병상에 침대 위에서 골골거리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자신도 물론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간호를 강요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 또한 참 못할 짓이다. 젊어서 몸을 함부로 굴리고 술과 담배로 늘상 찌들려 있다 보면 건강하지 못한 채로 병상에서 오래 시들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정갈함과 간결함, 단순한 삶의 정적인 힘과 외적으로 운동으로 다부져야 할 것은 노년이면 더더욱 필요로 한다. 누군들 잘 죽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게 살다 잠자는 길로 호상을 누리는 행복도 다 건강이 마련해 준비가 되었길래 가능한 것이겠다. 아파서 병들고 하루 생활도 근근이 이어가는데 덜컥 아프기라도 해서 병원 보험으로 어림없을 중병이라면 집안 거들 내기 딱 알맞다는 이야기다. 물려주지는 못할 망정 무일푼의 가난을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나 또한 요즘 무지하게 반성 중이고 반성 곱절 중이다. 자학적인 성격으로 과잉의 술로 매일 보낸 적이 많았다. 하루 이틀에 걸친 발병의 현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십 년 이상을 술과 담배로 몸이 많이 망가졌다. 회복되는 것도 자각하고 나서도 어려울 수도 있다. 더이상 악화되지 않을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홀로 골골거리다 가도 그만인데 책임질 사람이 있다는 무게감은 건강을 유지시켜야 할 의무로 남았다. 열심히 운동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 늙기 전에 시작해야 할 일이다.

 

6. 노년은 반드시 더 외로워진다.

고독할 수는 있어도 외로울 수는 없어야 한다. 외로움은 자신의 역량에서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배우는 노년, 시도하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새롭게 가져갈 때 일하는 것 이상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살며 넋 놓고 먼 산 바라본다고 누가 말 걸어 줄 사람이 없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노인들에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더 소외된다. 새 대간의 몰이해는 세대 간의 분리적 현상을 일으키고 이 세대분리는 서로에게 갈등을 야기하고 급기야 외면을 낳게 된는 이유이다. 그러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와 새로운 유행에 둔감하지 않는 스타일을  끊임없이 내면으로 불어 넣어야 한다. 그런데 이거 평소에 준비되어 있지 않고 훈련되어 있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없던 이해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관계란 서서히 다져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먹은 것이 벼슬이 아님을 즉각 알아차려야 한다. 오히려 대화에는 나이가 걸림돌이 된다. 나이를 버려야 비로소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의 꼰대 짓이 얼마나 질타의 대상이 되는지 눈치 없는 노인네는 되지 않아야 한다. 나이 먹고 냄새나고 소리만 버럭버럭 지를 줄만 알고 다른 게 아무 것도 없는 맹탕인 노인네는 반드시 외로워질 것이라고 내 장담한다. 외로운가? 자기 스스로 늙어 외로움을 만들지는 않았나 성찰 정도 못하면 그냥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리뷰는 주제가 다소 무거웠으므로 길었다. 인터넷 시대에 짧게 쓰는 것이 오히려 미덕인 시대인데 글이 장문이 될수록 읽기 어려워지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당면한 조만간 닥칠 장례의 삶에 대한 문제는 준비되지 않으면 삶의 윤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반드시 늙어가고 죽어간다. 젊을 때야 멋도 모르고 지랄 발랄 생떼 부리고 까불어도 다 늙어 간다. 기분 내키는 대로 대가리 몽디 구불리고 다녀도 어차피 다 늙는다. 시간 앞에 거슬릴 수 있는 놈 아무도 없다. 그러나 늙어서 얼마나 쿨하게 살고 있는가 찌질하게 살고 있는가는 젊은 날의 증명서와도 같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자라는 법이다. 인간이란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서 뿌리지도 않고 아주 근사한 삶의 결실을 얻고자 하지만 역시 늙어서 인생의 오묘한 선물은 젊을 때 제대로 자신의 인생이란 밭에 얼마나 잘 경작을 했는지 판가름 난다. 또 무슨 작물을 어떤 기술과 열정으로 심었는지 지혜롭게 관리가 되었는지에 따라서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늙어서 우줄 끈 하면 볼품없는 노인네는 인생의 비극의 끝이다. 슬프지 말자. 우울하지 말자. 늙어서 늙음을 웃을 수 있는 자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태어나 누려야 할 최종 마지막 권리이자 의무이다. 

 

- 며칠 저녁마다 책 읽다가 졸다가 적었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 쓰기 오류 난 곳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무만 보지 말고 넓은 숲을 봐주시고 손가락만 보지 마시고 달을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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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09-23 2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로서 유대관계를 쫀쫀하게 유지한다면 늙어서도 외롭지 않을 것같단 결론도 살포시 넣어 봅니다^^

yureka01 2016-09-23 22:05   좋아요 1 | URL
책 읽기의 근육을 키워주는 트레이너 분들이 알라딘에는 빼곡히 포진되어 있는 곳이라서 ^^..ㅎㅎㅎ

감군 2016-09-23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이 와닿네요.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보시길 바랍니다...
잘 읽고 갑니다

yureka01 2016-09-23 22:09   좋아요 1 | URL
젊을 때일수록 노후의 인생보험같은 거 고민해봐야죠..
일찍준비하면 느긋해지거든요^^ 감사합니다..달보는 거라야 됩니다.^^.

세실 2016-09-23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도 훌륭한 취미생활이지요.
책 읽고, 쓰고, 소통까지 하니...
고독한 노년!
두개의 독서동아리만 만들어도 아마 바쁠걸요? 전 책 소믈리에 하려구요~~~

yureka01 2016-09-24 08:56   좋아요 1 | URL
알라딘은 독서단련장 영업장이고
알라딘 유저는 열심히 독서의 체력을 키우는 운동장.ㅎㅎㅎ

책 소물리에..이거 완전 멋찝니다..
저도 지지 보냅니다..

겨울호랑이 2016-09-24 0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들어가면서 정치권에서 노인들을 의식하는 정도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노인들의 수명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기에 눈앞의 이익과 필요에 표가 움직인다는 점이라 생각됩니다. 대표적인 문제로 지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기초 연금문제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장기적 대책보다 단기적 처방이 인기를 얻고, 집권을 위한 정치권은 이를 위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드네요..

yureka01 2016-09-24 08:59   좋아요 2 | URL
현재 인구 분포상 41세연령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한다고 하더군요..
이분들이 점점 초고령사회가 되었을 때,,,어떨지 상당히 비관적이거든요..
지난번 선거때 노인연금 때문에 지지했던 분들...
선거 끝나니 정책을 바꿔 버려서 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다음 선거때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겁니다.

사탕발림에 정작 사탕은 못먹었던....

나이가 쌓인다고 현명하게 산다는게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더군요..

감사합니다^^..

꿈꾸는섬 2016-09-24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생각하던 부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서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노년은 아직 먼 이야기가 아니라 점점 다가오는 미래라 좀 더 알차게 삶을 꾸려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yureka01 2016-09-24 10:28   좋아요 1 | URL
늙어가는 사람들이라면 꼭 다져 놓아야할 시간들이겠지요..
안늙는 사람은 빼고 ^^..

반드시, 필수적으로, 기필코, 확실하게, 절대적으로, 늙고, 죽어가야 하는 존재에서,
예외없는 우리들이거든요.

감사합니다.

stella.K 2016-09-24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 살까 봐 걱정이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살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은데
그렇 가능성이 없으면 적당히 살다 가면 좋겠어요.
죽을 때 아무도 없어 고독사할까 봐 그것도 걱정이고.ㅠ

전 아직 이 책을 읽을 자신이 없더라구요.
뭐 더 이상 젊다고는 생각 안하는데 그렇다고 아주 늙은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있다 읽어 볼까 합니다. 뭐 제가 늙을 때까지 살겠습니까?ㅋㅋ

이 리뷰 앉은 자리에서 뚝딱 쓰신 게 아닌가 봐요.
며칠 걸려 쓰신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6-09-24 12:36   좋아요 1 | URL
오래살면 재앙이 되면 안되는 거니까요..
지금 당장에서 버거운 삶도 많은데
늙어서 좀 아름다운 마무리가 더더욱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나 봅니다.

네 며칠간 졸다가 읽다가 쓰다가 고치다가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2016-09-24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6-09-24 19:00   좋아요 2 | URL
내일은 선데이( 서니데이) 입니다..^^ 즐거운 선데이 되시구요//.^^..


2016-09-24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09-24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인들이 대우 받지 못하는 팍팍한 시대가 된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yureka01 2016-09-25 07:47   좋아요 1 | URL
늙어갈수록 빈곤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미래가 참 암울하게 진행되고 있는듯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09-25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5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5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5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9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