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박덕률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일전에 자신의 스승께서 전시회 소식과 함께 책을 소개해주셨던 이웃께서 귀한 사진 산문집 책을 선물로 받았다.

책을 받아 들고 네이버 검색을 먼저 해보았지만 사진 산문집에 대한 이렇다 할 감상문이나 책을 읽고 난 소감문 내지, 리뷰 등이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못내 아쉬웠길래 귀한 선물을 받은 겸으로 책의 감상문 정도는 써 드리는 게 도리는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사진가는 많은데 사진 평론서나 사진 감상기가 적은 이유는 또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으며 서평을 적을까 한다.

책을 받아 들고서 산문 글은 그리 길지도 않고 어려운 이야기도 없으니 부담 없이 저자의 담담한 서술에 빠져들기 충분했으며 사진가로 활동하셨던 만큼 사진에 있어서 깊이를  꾸준하고도 농도가 진함으로 퍼져있음을 느낀다.

 

제목이 겨울나무였다. 봄나무도 있고 여름 나무도 있고 가을 나무도 있는데 작가는 유독 겨울나무를 찾았다. "조바심 내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며 사는 겨울나무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라고까지 했다. 겨울의  나무는 온몸으로 표현하는 테마에서 연상되듯이,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나무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작가적 시선의 답을 도출한다. 겨울이라는 추위에서 나무는 봄에 피웠던 나무를 가을에 떨구고 나신의 가지를 들어 낸 채 나뭇잎 없는 빈 가지로 시간을 견딘다. 벌거벗음에 대한 무채색의 가지와 가지들 사이로 겨울의 바람을 홀연히 맞았을 나무는 결국은 작가 자신의 관념적인 형성을 이룬다고 봐야 한다. 겨울의 숨죽임으로써 스스로가 봄을 새롭게 잉태하려는 곳곳한 외로움의 자태는 겨울나무의 특징이었다. 화려한 계절의 나무가 아니라 "차가운 눈보라를 온몸으로 이기며 침묵으로 외치는 겨울나무가 작가는 자신의 테마"라고 했다. 이내 급기야 겨울나무는 "죽은 듯 살아 있는" 자화상이었다고 간절히 고백한다.

(물론 작가의 주장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었다.)

허허로운 겨울의 빈 들판에 잎사귀 하나 없는 빈 가지로 충분히 넓은 여백에 작가의 사진은 고독하게 보였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홀로 떨어질수록 더 애처로울 것이며, 애잔한 고독을 겨울바람에 날리운다. 가지 끝으로 스치는 겨울바람의 공명되는 소리는 허허롭고 스산하게 벌판을 매운다. 그런 겨울나무를 향하여 셔터를 눌렀다는 것은 겨울나무의 이입이 별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작가 자신의 사진에게로의 또 다른 투영이었다.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은 겨울나무로 된 흑백과 공간의 빈 여백의 이미지는 장소를 달리할지라도 흐르는 레퍼토리는 일관되어 있다. 작가의 큰 테마로 삼고 있는 주제의식이 곧 작가의식과 연결된다.

사진이 참 진중하면서도 진득하다. 보통 이런 무채색으로 표현된 흑백사진에서 여백의 일관성에서 작가의 내면적 진공상태에서 흐르는 백열등의 필라멘트처럼 빛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또한 겨울나무의 전체적인 선이 단순하고 간략하게 생략되어 있다. 즉, 사진의 뺄셈을 사진가는 제대로 이입시켰다는 말과도 같다.  단순한 선과 넓은 공간을 메우는 것은 결국 작가와 독자 간의 시선의 교집합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런 시선의 교집합이 백열등처럼 빛을 발하도록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사진이 시라고 했다. 현실의 사물을 피사체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미지를 시처럼 은유의 바다로 인도한다.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서 여간 간절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의 능동태로 보려 했다. 결국 이 보려는 의식이 은유적인 비유로 전이되는 까닭이다. 물론 이에 동의한다. 사진을 좋아해서 카메라를 사기 보다 시집이라는 책을 더 많이 사게 된 이유가 작가의 사진이 시라는 은유와 정의에 결합됨을 느낀다. 이는 바로 책을 통하여 모종의 접점을 찾아가는 사진의 감상적인 샤머니즘이며 원시적인 맥락과 비슷한 거라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떡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가요라는 질문에 작가는 되받아 질문한다. 책은 얼마나 읽으시는지를 역설적인 질문으로 답을 내놓는다. 사진 잘 찍고 싶다는데 책은 얼마나 읽는지 묻는 의도가 무엇을 말하는지 직설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대목은 아니었던가! 결국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의 내면의 압력일 테다. 내부에서 압력이 높아 끓어 넘쳐나는 사진. 내부의 공력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진 감성론을 운운하면서 은유의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 감성을 따지는 사진은 표표히 공허하다. 내공이 충실한 사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 내부 압이 넘쳐 나오는 저주파의 낮고 잔잔한 내면적 시선이 결국 시선을 멀리 가져가게 하고 심도를 깊이 가져가는 것에서 다른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사진을 오래 이어 가고자 한다면 내면에 충실하라는 뜻이 이와 같은 의미였으리라.

작가 프로필을 보면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음악 중에서도 교향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따라서 사진의 이미지가 흐름의 멜로디로 보인다. 이런 작가의 음악적인 소양으로써 사진에 대입함으로써 빈 여백의 흑백 이미지가 일련의 음악 악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겨울나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꼭 이 책을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감상한다면 바로 이입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은 시공간의 음악 연주와도 같은 것이리라. 음악의 음표라는 피사체에 높고 낮음의 소리로 빛의 많고 적음으로 음영을 입히고 기교로 색을 덧칠하는 사진. 그래서 단 한 번의 연주에 감정을 묘사하듯이 사진은 음악의 흐름에 이미지가 따라다녀도 어색하지 않는 하모니였다. 간혹 사진에 음악이 덧대지면 이 또한 그렇게 어울림이 어색하지 않는 화음을 나타내는 것도 역시 사진과 음악은 같은 족속이었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겨울나무의 철학자를 만나고 철학자에게서 시편을 읊조리며 시에 멜로디를 첨가한 것이 작가의 사진이라 정의 내리고 싶었다.

 

 

모름지기 사진가는 사진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의 철학적인 고유한 프로파간다가 있어야 한다. 평생에 자신이 정한 주제에 매달린다는 것. 이것이 작가정신으로 연결된다. 선방의 스님이 면벽을 하며 화두 하나 붙들고 참선의 고역과 다를 바 없는 일과 마찬가지는 아닐까? 무수한 사진 중에서 딱 한 가지를 품고 이 한 가지의 일관된 자기표현의 방식은 사진을 긴 호흡으로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추진력이다. 이 게 어쩌면 사진을 찍게 만든 근력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사진적인 화두 하나, 이거 하나 없으면 사진도 예외 없이 시류에 떠돌고야 마는 데면데면하게 부유된 떠내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높고 화려한 고주파의 귀가 아픈 사진보다는, 중저음의 우퍼 같은 깊은 음을 섬세하게 발현하는 사진이 그래서 끈질기게 이어 나가는 상대적인 이유는 아닌가 한다.

따라서 작가의 자기만의 내면적인 프로파일 같은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 사진의 긴 호흡으로 마라톤 같은 자기와 치열한 사진.

난 이런 사진이 좋다. 이런 사진가의 겨울나무에게 손을 내밀었다.

PS : 오래전에 받고 사진 블로그에 포스팅한 리뷰를 알라딘에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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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2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집을 읽는 사람이 적고, 읽었어도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yureka01 2016-09-27 13:33   좋아요 0 | URL
일반인들이야 사진책 읽을 기회 거의 없거든요.

문제는 사진 작가랍시고 나서는 사람들이 사진 책을 안본다는 거....

몇백만원 짜리 카메라와 랜즈는 질러도 사진책은 마땅한 소비처가 없다는 거...

공급자만 넘치는 게 사진 이바닥이라서요..ㅎㅎㅎ

감은빛 2016-09-27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사진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는다는 말씀에 절대 공감합니다.
예전에 일했던 출판사에는 종종 사진책을 내자고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대부분 비슷한 컨셉의 사진들.
사진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작품으로서의 사진에 뭐라 할 수 없지만,
마케터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사진책은 시장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며칠 전 책 정리를 하다가, 사놓고 비닐도 뜯지 않은 사진책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비도 오니, 집에가서 그 책의 비닐을 벗기고 펼쳐봐야겠습니다.

yureka01 2016-09-27 15:39   좋아요 0 | URL
사실 사진 관심없는 분들이 사진책 안보는 거야 당연한데.

사진찍고 작가하려드는 사람이 책을 멀리하니..이게 문제죠...

그러니 사진 들이 그냥저냥 자신의 사진 세계 구축할지도 못하고 쫑나는 게 많겠지요...

생산하고 소비하고 이런 선순환이 참 아쉽죠..

세실 2016-09-27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가는 사진이 곧 시가 되는군요.
사진만큼 글도 간결하고 깊이가 있어 보입니다.
책 읽는만큼 사진도 많이 찍어야하고, 평생 자신이 정한 주제에 매달려라...알겠습니다!

yureka01 2016-09-27 23:51   좋아요 0 | URL
아,, 이건 사진의 비밀인데요..
사진이 시와 음악에 대하여 찰떡궁합이라는거^^..
시에 사진이 붙으면 서로 교감하게 되고요..
사진에 음악이 붙으면 기막힌 앙상블이 나오죠..

네 자기 중심에 자신의 주제..하나는 붙들어야 구도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