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네 몸에 걸치지 마라” 레위기 19장 19절
줄무늬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우린 언제부터 줄무늬에 익숙해진걸까.
자연에선 만날 수 없는 줄무늬.
처음으로 두 발을 내딛던 그 시절, 우리 인류가 걸음마로 만들어낸 무늬는 두 줄이었다.
돌쟁기로 땅을 파며 농사를 시작했던 그 시절에도 우린 엉성한 밭에서 줄무늬를 만난다.
이런 줄무늬가 왜 악마의 표상이 된걸까.
백치, 유대인, 이단자, 어릿광대, 나환자, 망나니, 창녀, 반역자, 비기독교인, 유다, 악마관련자, 범법자....
중세인들에게 줄무늬는 두려움이자 혼돈이었다.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도 어디에서도 끝나는지 알 수 없는 무질서의 무늬이자 다양함이 섞여 순수와 대척점에 서는 줄무늬였다.
거기다 이슬람인들이 주로 입는 줄무늬는 비기독교인에 대한 혐오와 함께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 눈에 띄는 줄무늬 옷을 입힘으로서 일반인들과 섞이는 것을 막기도 했다.
카르멜회 수도사들은 빗금 쳐진 수도복을 입었다고 한다.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승천할 때, 제자 엘리사에게 흰망또를 주었는데 불에 그을리면서 줄무늬가 생겼고, 그 전통을 따른다는 설이다. 그러나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1295년 교황 보니파시오8세에 의해 모든 수도사들에겐 줄무늬옷 착용금지령이 내려진다.
중세의 멜랑콜리는 광기와 질병이었다. 다양성은 지옥과 죄악을 의미했으며 부도덕과 속임수일뿐이었다. 그런 인물들은 어김없이 줄무늬 옷이 입혀져 있다. (줄무늬 동물도 마찬가지 취급을 당했다.)
그럼에도 가문이나 왕가를 나타내는 문장의 줄무늬에는 너그러웠다.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의 아라곤왕의 줄무늬 문장이다. 바르셀로나 백작이 황금방패를 들고 전장에 나가 사망하면서 황금방패에 그 피를 묻혔고, 그것이 줄무늬 문장의 상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왕자들이 백마를 타고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줄무늬에 대한 경멸 때문이다.
민무늬는 고귀하고 순수해서 가치를 드높인다. (그 당시엔 실제 균일한 색상을 내기가 아주 어려워 민무늬 천이 가장 만들기 곤란하고 비쌌다고 한다.)
그러니 고귀한 왕자들은 백마를 타고 올 수 밖에 없다. 적갈색 혹은 줄무늬나 반점이 있는 건 동물이든 인간이든 음탕함, 욕심, 불신을 의미했다.
이런 악마의 옷이 시대가 흐르면서 노예나 하인들의 옷이 되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가 오리엔트 지방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슬람은 오리엔트, 오리엔트 하면 줄무늬란 공식에 의해, 흑인 노예들이나 하인들에게 줄무늬 옷을 입힌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줄무늬 옷들은 주로 하인들이 입는 제복, 집사를 상징하게 되었다.
(줄무늬가 벽지나 가구에 쓰이면서, 하인들의 옷도 줄무늬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 언제나 필요할때면 옆에 있어야 하는 벽지나 가구같은 존재가 바로 그 당시 상류층들이 생각하는 하인의 위치였다.)
그러나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국기에 줄무늬를 넣으면서, 줄무늬는 자유와 평등이나 혁명을 상징하게 되었고, 프랑스 등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로베스피에르 등 혁명파들은 줄무늬 프록코트를 즐겨 입었다.)
또한 감옥의 쇠창살과 죄수복의 줄무늬는 합쳐져서 격자나 골조의 무늬를 나타내면서 격리된 느낌을 한층 강화시켜주었다.
언어에서도 줄을 긋다는 특권박탈이나 제거를 의미했다.
이런 격리의 의미가, 보호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격리하는 것, 즉 줄무늬 잠옷은 스스로를 격리해 각종 질병이나 악마의 위협에서 지켜준다 믿었다. 그러면서 위생이나 혹은 사회의 도덕적 분야에 자리잡게 되었다.
해군들의 마린스프라이트는, 선원들의 채찍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눈의 황홀 중)
배 위에서 선원들에게 매질을 가하면, 몸에 붉은 줄무늬가 생기는데, 채찍질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행운의 줄무늬라 여겼다고 한다.
이런 마린스프라이트는 스포츠와 레져, 거기다 어린이용 의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프루스트나 사르트르는 어릴 적 세일러복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아니 입혀졌다고 하는게 맞겠지.)
지금도 줄무늬는 다양하게 사용된다.
세상엔 좋은 줄무늬와 나쁜 줄무늬가 있다고 한다.
배신의 줄무늬가 이제는 신뢰와 성실함을 상징하기도 하며, 느림이 배제되는 스포츠에선 빠름이란 긍정적인 형태로 사용된다.
두 발을 내디딘 인류의 첫 줄무늬는 삐뚤했겠지. 그들의 첫 삽질도 반듯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내는 무늬, 악마와 배덕의 상징에서 가문의 영광까지 인간의 삽질 속에 줄무늬는 온갖 감정과 상징들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줄무늬에 대해 궁금하거나 애정이 있다면 이 두 권의 책이 흥미롭지 않을까싶다. 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