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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평점 :
전율이 오긴 했다, 뒷목으로.
이 소설의 장르는 전율주의라고 한다. 독자가 끔찍한 상황과 사건 인물들을 다루는 작품을 읽을 때 그 공포의 강도와 누적으로 인해 전율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의 끔찍한 살인들을 읽다보니 전율이 오긴 왔다. 뒷목이 땡겼다 ㅠㅠ 유전적인 면에서도 환경적인 면에서도 그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첫 결혼 후 의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했지만. 찬 바람이 앗아간 그의 아이들과 그런 그를 후벼파는 아내와 어머니의 말들이 슬픔을 넘어 분노와 증오로 스며들었다.
배경은 스페인 내전 , 1936년 총선거에서 인민전선파거 승리한다. 그러나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을 무신론자들인 공산주의에서 수호하겠다며 프랑코는 자신의 부대와 모로코 용병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고,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는다. 그 때부터 독재가 시작되었고, 유대인 학살 및 좌파쪽 인사들의 아이들을 납치하고 매매, 학살 고문등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프랑코는 사후 전범자로 칭해졌고 , 프랑코의 딸은 귀족 칭호를 받으며 호위호식한다고. 결말이 참 그렇다. 특히 공화파나 여성운동가 민병대 여성들에게 한 끔찍한 행위는 글로 쓰기도 끔찍하며, 이런 악행에 사제와 수녀들이 동참했다. ( 예전 프랑코의 독재시절 다큐를 보다가 넘 끔찍했던 기억이 ㅠㅠ )
작가는 프랑코편에서 싸웠던 인물이라고 한다. ( 20살 철없던 시절? 이라기엔 그 나이에 반대편에서 자유를 위해 씨운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은 프랑코 정권하에서 금서였고 출판이 금지되었다. 그 외 예술가들은 처형당하고 운 좋은 이들은 망명에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음사가 사용한, 그의 작품 표지를 그린 이는, 그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멕시코 3대 벽화 화가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다. ( 그의 출생지가 재미있다. 멕시코 치와와시. 멕시코는 스페인에서 망명온 많은 예술가들을 받아주었다) 그는 혁명군쪽이었으며 멕시코농민에 애정을 가졌다. 노동자의 단결과 힘을 그렸다. 단지 같은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라고 시케이로스의 그림이 표지로 실린걸까. 아니면 시케이로스가 그린 인물이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과 닮았다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야기는 그리 복잡지 않다. 폭력적인 부모밑에서 큰 파스쿠알이 세 번의 살인과 한 명에 대한 과실치상, 말과 개를 죽이는 이야기며, 이런 자신의 삶을 감옥에서 되돌아보며 스스로 글을 썼고, 그 원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약간의 교정과 검열을 거쳐 출판사로 보내진다.
야만적 폭력성을 보고 듣고 느끼고 온 몸으로 맞으며 커 온 파스쿠알이다. 그런 그가 배운 것 또한 폭력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증오가 자라면 그 끝엔 폭력이 있다.
비 맞은 성냥개비마냥 피시식 거리며 오물을 뒤집어쓴채 살다가도 분노로 메말라버린 가슴에 파박 하고 불길이 인다. 짧지만 잔인한 불은 차갑게 상대방을 찌르고, 오히려 파스쿠알을 태운다. 붉게 혹은 까맣게.
사카리아스를 홧김에 칼로 찌르지만 다행히 살아나며 아무 죗값도 치르지 않는다
말은 칼로 사냥개는 총으로 죽인다.
자신의 누이를 등쳐먹고 자신이 떠난 사이 아내를 임신시킨 파코를 죽인다. 끊임없이 독설을 내뱉고 자신을 말려죽이려는 듯한 엄마를 죽인다. 그리고 감옥에서 풀려나 백작을 살해한다. ( 작품해석에는 의도적으로 감옥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파스쿠알을 내보내 반대파인 백작을 죽이는데 도구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
그의 가슴은 분노로 일렁인다. 사랑받고 크지 못했고 증오만이 깔려있다. 폭력과 증오, 불안이 가득한 그는 그 당시 스페인의 모습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 < 판의 미로 > 가 있다. 아이들용인줄 알고 관람했다가 아이들이 경기했다는 ㅠㅠ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
그토록 불안에 내몰리고 알 수 없는 충동 속에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그의 말에 담겨있다.
< 삶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너무도 악했고 그런 본능에 저항하기에 나는
너무도 연약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 비록 그렇게 될 소지가 없진 않지만, 나는 나쁜 놈은 아니올시다. 우리 모든 인간은 매한가지 가죽을 쓰고 태어나지만, 우리가 성장할 때 운명은 마치 우리를 밀랍 인형 다루듯 주물러 대고 또 여러 오솔길을 통해 죽음이라는 동일한 종말로 향하게 하면서 즐거워하지요.>
<불행은 즐겁고 정겹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영혼의 일부가 되어 버린 불행을 넓은 유리 광장 위로 질질 끌고 가면서 아주 즐거워합니다. 암노루처럼 도망가거나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이미 악에 물들어 버린 겁니다. 그러면 이제 해결책도,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