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크, 첫 키스, 재회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 시리즈 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윤순식.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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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모크>


1912년 3월, 나폴리항에 정박 중인 대형 횡단여객선 '오세아니아'호에서 일어난 사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진실을 짐작할 수 있는 화자인 '나'는 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로부터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독일에서 유능한 의사였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렸고 그것을 만회하는 방법으로 식민지로 가게되었다. 유럽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있던 그에게 백인 여성이 찾아왔고,낙태를 원했다. 충분한 돈을 주겠다는 그녀에게 그는 다른 요구를 했다. 차라리 더 많은 돈을 원했다면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았을까? 왜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고 몰아세웠는지. 그의 비뚤어진 욕망이 여자의 인생도 그의 인생도 하루 아침에 무너뜨려버렸다. 그녀의 비밀을 지켜주기위해 했던 마지막 행동은 죄책감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전략) 어차피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권리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자유뿐이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온전히 혼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는 다시 한번 나를 비웃듯, 아니 도전하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느꼈다.그것은 단지 부끄러움이었다. 끝없이 깊은 절망적인 수치심을 뿐이었다.-p115



요구하지 말아야했던 한 마디가 불러온 파국은 '나'의 말처럼 조금 늦게 깨달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첫키스>


어둠 속에서 신체적 접촉을 한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면서도 열정에 휩싸여버리게 된 15살 소년의 이야기였다. 안톤 체호프의 <입맞춤>을 떠올리게도 했다. 그 나이의 소년에게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나중에 자신이 단정짓고 사랑했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충격까지 얹어졌다. 


그는 이제 사랑이나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삶의 어느 순간에 사랑하고 사랑받는 두 감정을 함께 경험했던 그로서는 불안하게 내미는 그의 떨리는 손안에 너무 일찍 굴러 떨어진 사랑의 열매를 더는 갖고 싶은 동경이 없었기 때문이다.-p 176~177



성장기의 그러한 경험이 가치관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약간은 무거운 진실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재회>


사랑하는 사람과 9년 만에 재회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23살의 루트비히는 사장의 개인비서로 저택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서, 사장 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루트비히는 사업차 멕시코로  떠나게 되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2년만에 돌아가기로 한 계획은 무산되었고,다시 만나기까지 9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재회한 루트비히는 헤어지면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를 요구했다. 과연? 오래 전 그녀가 들려주었던 시에서 예언적 의미를 떠올린 루트비히는 현실을 깨우쳤다.


그녀와 그는 이제 더는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건만,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발아래 드리워진 저 검은 유령처럼 그들은 헛된 노력에 힘을 낭비하며, 달아나고 멈추는 유희를 계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p258



츠바이크는 그들을 신파의 주인공으로 내버려두지 않아서, 과거의 기억 속에 그들을 잡아두지 않아서 좋았다.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을때면 매번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 편의 짧은 소설이 끌어당기는 힘은 대단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저렇게 파헤칠 수 있는지.어쩌면 그래서 더 히틀러가 일으키는 만행을 지켜볼 힘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예언의 목소리가 다시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네려고 하는지, 과거를 통해 그에게 현재의 어떤 진실을 들려줄 것인지에 귀를 기울였다.-p258



<재회>의 마지막 문장이다. 츠바이크는 긍정적인 메세지를 얻지 못했던 것일까? 그의 소설 속 문장이지만 현실에서 희망을 가져보려했던 몸부림으로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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