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게 "물을 언제 어디서 마시느냐"는 질문처럼 들린다. 그냥 아무 데서나 수시로 읽는다. (중략) 물울 안 마시면 목이 마르고 책을 안 읽으면 마음이 허하다. 그리고 책 정도면 포터블한 물건 아닌가? -p21


'인류를 사랑하는 건 쉽지만 인간을 사랑하는 건 어렵다'는 명언이 있다. 내 기억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한 말 아니면 <피너츠>에서 나온 스누피의 대사다.-p28~29


때로 읽기와 쓰기는 다른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의미의 세계, 혹은 나 자신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라고 여기기도 한다.-p44


'독서 권태기'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다. 들으니 무슨 뜻인지 바로 알 것 같기는 했는데, 나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비슷비슷한 스릴러를 연속으로 읽다 보니 물린다거나, 에세이를 계속해서 읽다 보면 진중한 논픽션이 고파지기는 한다. 하지만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권태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글쎄.... 책이 재미가 없어서 책장이 잘 안 넘어가면 그 책은 덮고 그냥 재미있는 다른 책을 읽으면 되지 앟을까? 아니면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자연스럽게 다른 활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p104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종이책의 물성이 아니라 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와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라는 행위다.-p113


결국 버키는 '암흑의 핵심'에 이르고,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정신적으로 파괴된다. 그런데 암흑의 핵심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도, 서 있던 자리보다 더 밝은 곳이 나온다. 그러기에 결말은 자연스럽게 어떤 희망과 구원을 제시하는 듯 보이게 된다.-p167


한편으로는 나 역시 스스로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전에 보지 못한 유형의 작가'라고 믿고 있기에 그들과 동지 의식을 (나혼자)느낀다. 이 말을 듣는 누군가는 어이없다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으나...... 그런데 그런 믿음 없이 소설을 쓰기는 어렵다.-p176


나는 읽고 쓰는 사람들 간의, 글자를 통한 대화를 원한다. 악평도 좋다.-p181


말하고 듣는 사람들이 읽고 쓰는 사람들보다 현재를 더 많이 사는 것 같다. 읽고 쓰는 부류만이 수십 년, 수백 년 뒤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게 된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읽고 쓰는 이들은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걸까? 대신에 우리는 외로움을 덜 탄다고 할 수 있을까? -p201


읽고 쓰는 우리도 소통을 원한다. 그런데 말하고 듣는 세계의 거주자들과 달리 우리의 소통 대상은 현재에 있지만은 않다. 우리는 읽으며 과거와 대화한다. 우리는 쓰면서 미래로 메세지를 보낸다. 그때 우리는 현재와 싸울 수 밖에 없다.-p228


이런 왕국을 각자 세우면 어떨까.우리 모두.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써보는 것만으로도 당신 한 사람을 위한 정신의 영토, 취향의 도서관이 탄생한다. 탐색하고 고르는 일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고, 해보면 꽤 즐겁다. 읽고 싶은 책들을 숙제가 아니라 가능성이라고 여기는 것이 시작이다.-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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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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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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