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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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만으로도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어서 그녀의 책을 읽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 친구에게 추천을 받았을 때는 엄마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었다.해설에 있던 저자의 의도를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기에  의미가 있었다.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 그런 죽음이 있기나 한걸까? 이 제목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해야할 것같다. 

혼자 살고 있던 엄마가 집에서 넘어져  대퇴골이 부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몬. 그건 회복가능한 것이라 맘을 놓았는데  검사결과 암이 발견되었다. 수술은 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엄마에게는 복막염 수술을 했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해두었는데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시몬은 엄마와 어릴 때부터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엄마가'난 네가 무서워'라고 말할 정도로. 소원한 관계였던 엄마의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시몬은  기억 속에 있는 엄마의 모습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엄마의 삶을 바라보면서 화해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시몬과 같은 마음이 되어 엄마를 떠올렸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집안에서는 쇼파와 화장실만을 오가시고, 치매가 시작되어서 화장실 가는 것도 잊어버리셔서 실수를 하신다. 밖에 나갈 때는 휠체어를 가지고 나가야한다. 큰 병은 없지만 생활 범위가 너무 좁고, 단조로운 생활밖에 되지 않아서 보고 있으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엄마를 케어하면서 노년의 삶,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소설은 보부아르의 자전적인 소설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도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마에게서는 삶을,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으로는 죽음을, 그리고  엄마와 딸이 화해의 과정을 보면서 죽음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소설 초반에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문장을 만났다.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p19

죽음 이후는 어차피 모를테니 두렵지 않지만,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을 한다. 병이 육체를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어 힘들었다.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저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하는걸까? 그 고통을 보고 있는 딸들은 안락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 하지만,  모르핀을  맞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오늘 하루를 살지 못했구나.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라고 말했다. 

엄마에게 매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엄마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를 대신해서 나는 체념하지 않고 있었다. -p119

앞서 완전히 늙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무덤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책장 하나 하나를 알뜰히 넘겨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루. 


시몬은 엄마 곁에서 엄마의 삶에 대해서 되짚어봤다. 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엄마등, 동생과 자신과의 관계등. 각 생의 단계에서 맞닥뜨린 엄마의 모습들은 많은 부분 부정적이었다. 

내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이 말은 사실 엄마에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엄마의 욕망이 그 자체로는 인정받지 못해 왔다는 걸 보여 주는 말인 셈이었다.  53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과연 내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심코 하는 말이 나약함, 열등감, 아니면 반대로 자신감, 용기등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테니까. 시몬에게 부정적으로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시몬을 향한 사랑의 따스함도 있었음을, 삶에 대한 열정도 있었음도 알게 되었다. 


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오랫동안 속에 담아 둔 후회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된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너무나 닮은 탓에 끊어진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엄마와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이다. 엄마가 몇가지 단순한 말과 행동 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식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엄마를 향한 내 오랜 애정이 되살아났다. -p109

죽음의 형태는 여러가지겠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길 바라게 되었다. 고통스러울지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서먹서먹하게 관계를 이어오던 모녀가 함께 했던 30여일은 전혀 다른 시간이었다.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 보부아르는 어머니를 애도하기 위한 목적을 이루었을 것같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생각났다. 문학에서 죽음을 많이 다루긴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작품이었다. 이 소설에서 그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생을, 죽음을 이렇게 맞닥뜨리고 반추해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읽게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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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8-30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몬 드 보부아르 책은 거의 못 봤네요 오래전에 사르트르하고 나눈 편지가 나온 적 있는데, 그 책 사기는 했는데 다 못 봤어요 그때 잘 봤다면 지금도 아는 작가가 됐을지...

제목은 《편안한 죽음》이어도 그런 건 없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편안하게 죽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어딘가 아프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건 힘든 일일지도... 자신도 그렇지만 부모도 어딘가 아파서 죽으면 마음이 아프겠지요 갑자기 죽는 것보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는 게 조금이나마 낫겠습니다


희선

march 2024-09-05 20:21   좋아요 1 | URL
엄마도 몸이 안좋고, 시어머니도 연세가 많으셔서 기운이 자꾸 떨어지고... 노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요. 보부아르의 책은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은 괜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