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에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 앉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퇴근하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별 일 없지? 우리 라인 앞에 119 구급차가 와 있어서."
무슨 일일까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사람이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고,
수습하러 온거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엘리베이터에 갇힌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경험일터였고,
약간의 시간차로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만약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비행기를 탔다면, 그 다리를 지나가고 있었다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들을 경험한 사람들도 제법 있지 않을까?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 골짜기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인간이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인지,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죽는 것인지 알고 싶었던 수사가 다섯 명의 삶을 조사했다. 그들의 이야기다.
우연인지 정해진 운명인지 알 수 있을까?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싶다. 그렇지 않다면 공포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할 지도 모른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최대한 사랑하면서 현재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 심오한 질문에 부족한 대답임을 알지만, 다른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 말고 에스테반과 페피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카밀라만이 그녀의 아들과 피오 아저씨를 기억하고, 오직 이 여인만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