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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타킹 한 켤레 - 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세라 오언 주잇 외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19,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이 시대의 여성작가라고 하면 버지나아 울프, 이디스 워튼, 캐서린 맨스필드등 떠오르는 몇몇 이름이 있지만, 그다지 잘 알지는 못한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면서 내 시야가 얼마나 좁은 곳에 머물러 있었는지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엮은이는 이 시기의 여성작가들을 세기 전환기의 여성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문학에서 그들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남성에 대한 복수라는 주제가 등장하는 세 작품이 있다고 해서 후다닥 그 작품들을 먼저 읽었다. 인과응보, 권선징악 좋아한다.
아내가 남편을 죽였다는 심증은 있는데, 동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집을 돌아보던 이웃 여자 두 명은 동기를 찾아냈지만 말하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남자들이 그 장면을 봤을 때, 과연 그것을 살해 동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여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싶었다. <여성 배심원단-수전 글래스펠> 유령의 짓일까? 실수였을까?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제 3의 그림자 인물-앨런 글래스고>아내를 철저히 무시하고 협박하던 남편, 자신이 뿌린 씨앗을 그대로 거뒀으니 얼마나 통쾌하던지. <땀- 조라 닐 허스턴>
표제작인 <실크 스타킹 한 켤레-케이트 쇼팽>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15달러를 손에 쥐게 된 서머스 부인의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그녀가 막상 선택한 것은 실크 스타킹이었다. 스타킹에 어울리는 부츠, 예쁜 장갑, 옛날 즐겨 읽었던 잡지 두 권을 샀다. 평소 보는 것으로만 만족했던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연극도 한 편 봤다. 서서히 변해가는 그녀의 감정 선을 따라가며 공감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서머스 부인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었다. 커다란 사치가 아니어도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은 필요할듯했다.
새 스타킹과 부츠와 딱 맞는 장갑이 그녀의 태도를 기적처럼 바꿔놓았다. 그것들로 인해 그녀는 자신감이 생겼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 무리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 118
비혼으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던 <뉴 잉글랜드 수녀- 메리 E.윌킨스 프리먼>는 현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생활이 힘들어 질 수 도 있지 않을까? 시대를 앞서간 주인공이었다. <폭풍우- 케이트 쇼팽>는 로버트 제임스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를 떠올리게 했다. 당사자들은 한 순간의 격정에 휩싸여서 만족했는지 모르지만 배우자들은 어떡하지?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해야하나? <누런 벽지-샬럿 퍼킨스 길먼> 와 <벽의 자국-버지니아 울프> 두 작품은 흡인력이 대단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게 된 한 여성이 히스테릭하게 변해가는 과정 , 벽의 자국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펴가는 과정에 한껏 몰입할 수 있었다. 작가이니 당연하겠지만 정말 잘 쓰는구나 그런 느낌 .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떠했는지 등 시대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단편소설집을 읽으면 맘에 들지 않는 작품들도 있기 마련인데, 소개한 작품 외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좋았다. 새로이 알게된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