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문학을 읽으면서 소위 유부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5대 유부녀 소설(??)을 반드시 다 읽으리라는 다짐을 한적이 있다. 그게 <보봐리 부인>,<채털리 부인의 사랑>,<안나 카레니나>,<에피 브리스트>,<테스> 였는데,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내가 읽은 건 <에피 브리스트> 한 작품밖에 없었다. 작년 말부터 나머지 작품들도 다 읽을 것을 다짐했고 그 다짐의 일환으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어나가게 됐다. 5대 유부녀 소설 중에 유일하게 배드엔딩이 아닌 작품인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명성대로 '문학적인 에로티시즘'의 경지를 보여준다. 자극적이면서 문학적이고, 문학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경지. 동시에 저자의 강렬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도 이 소설에 가득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오직 자극을 위해서만 읽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극을 위해서 읽기에는 이 소설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소설을 읽으면서 자극이 되는 소설이라는 말도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문학의 무거움과 대중 소설의 가벼움이라는 양극단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소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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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스타브로긴은 수수께끼에 쌓여 있다. 그러나 무언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은 중편을 거치며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무신론과 유물론, 서구 근대 사상을 맹신하는 젊은 이들이 신이 없는 세상의 허무주의에 빠져 저지를 말도 안 되는 일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그리고 스타브로긴은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러시아적인 것, 러시아주의를 강조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결말을 제시할까. 장광설과 광인들의 광기 섞인 언변을 꾹꾹 참고 읽어나가면서 내가 떠올린 건 그런 질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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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을 기반으로 세상의 어둠, 폭력을 응시하는 냉정한 눈을 가지고 있는 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의 영국 기행문. 저자답게 책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영국의 표면이 아니라, '영국의 표면'을 둘러싼 맥락에 가닿고 있다. 영국의 부와 힘이라는 게 '대영 제국'이 식민지 국가에 행한 착취와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이런 맥락을 깔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영국의 예술이나 영국 지식인들의 삶이나 지성을 단순히 그것 자체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이 '대영 제국'이라는 맥락과 필연적으로 연관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영국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대영 제국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형성된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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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박스>는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 작품이다. 초반부의 작품들에서 해리 보슈는 베트남전의 트라우마, 어린 시절의 상처 같은 과거의 극복하지 못한 것들과 대면하며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의 작품들에서 그는 정치적인 압력, 극악한 연쇄 살인마, 범죄자와 대결하며 범죄자처럼 어두워지는 자기 자신 같은, 현재의 사건들과 맞부딪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해나간다. 노년에 이르면, 해리 보슈는 미제 사건 전담팀에 들어가 과거의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과거를 거쳐 자신의 현재, 타인들의 과거로 나아가는 셈. <블랙박스>는 타인의 과거와 만나며 그 과거의 어둠을 파헤치는 해리 보슈의 모습이 그러져 있다. 그가 이번에 맞부딪친 사건은 1992년의 LA폭동의 와중에 살해된 덴마크 여기자 사건. 그 사건의 초기 수사를 담당했다 폭동 때문에 사건과 멀어져 이 사건이 미제 사건이 됐다는 자책감이 있는 해리 보슈는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사건의 진실'에 이르기 위해 모든 난관을 견디어내며 오로지 직진한다.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지면서. 우리가 할 일이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해리 보슈를 응원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행동이 이 사회의 어둠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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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은 오직 칼비노만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주를 배경으로, 과학적인 전문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F가 아니고, 그렇다고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소설도 아니고. 동화같고, 우화같고, 철학서같고, 패러디문학 같고, 환상문학같고. 무엇이라 정의하기도 어렵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문학. 모든 것을 초월한 문학이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칼비노만의 문학.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우주이야기이자, 지구 생명체가 등장하는 지구문학이자, 인간들이 등장하는 인간들의 문학까지 포괄하는 이 전우주적인 규모의 문학은, 시간적으로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 우리 시대까지 모든 시대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한번도 본 적 없고, 읽은적 없는 유니크한 소설의 세계를 헤매며 다시금 칼비노는 유일무이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다른 누구도 쓸 수 없는 자기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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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0-01-1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이탈로 칼비노 전집 읽는게 목표라... 이번달에 이 책 읽을 예정인데... 빨리 읽어야겠네요. 어떤 느낌인지.^^

짜라투스트라 2020-01-17 11:22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칼비노만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소설들이 꽤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