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평점 :
2023-6.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김영민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p.10~11)
독서 모임 때문에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펼쳐 읽었습니다. 읽는데 초반부에 저 문장들을 만났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느끼는데 문장을 읽으면서 어떤 인상들이 남습니다. 어떤 문장은 아무 인상도 없이 내 정신에서 흩어져 가고, 어떤 문장은 내 영혼에 스며들어 매력을 남기고, 또 어떤 문장은 참을 수 없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인상을 남깁니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으면서 만난, 저 문장은 제게 매혹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문장을 만난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으리라는 걸.
‘돈이 많으면 잘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잘사는 것은 다르다. 나는 잘생긴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잘생기기를 바라며, 건강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건강하기를 바라며, 지혜로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지혜롭기를 바란다. 나는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기를 바란다.’(p.292~293)
독서 모임에 나오신 분들도 이 책이 인상 깊었나 봅니다. 모임에 나온 분들이 서로 합의한 것도 없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자발적으로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모임의 흐름이 흘러 갔습니다. 자신이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분들의 대화 속에서 저는 독서 모임의 빛을 본 것 같습니다. 책에게서 좋은 것을 보고 그것을 남들과 나누고자 할 때 생겨나는 대화에서 생겨나는 빛. 그렇게 모임에 참석한 우리들은 독서 모임의 시간을 찬란한 성좌의 빛처럼 빛내고 있었습니다.
‘목적 없는 삶을 바란다고 하면, 누워서 ’꿀 빨겠다‘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큰 오해다. 쉬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 아니던가. 소극적으로 쉬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쉬어야 쉬어진다.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 목적 없는 삶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야 목적 없이 살 수 있다. 꼭 목적이 없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목적도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으므로.’(p.291)
저자는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을 주제로 산문집을 내겠다고 마음먹었고, 그에 관련된 생각의 편린을 다양한 지면에 발표하고 그 글들을 모아 이 책을 냈다고 합니다. 어쩌면 모임에 모인 우리는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을 주제로 모인 글들을 보면서, 삶의 허무에 대항하는 어떤 몸부림을 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몸부림이 책을 읽는 독자의 삶과 겹쳐 보인 게 아닐까요. 겹쳐 보였기에 우리가 이 책과 공감했던 게 아닐까요. 공감했기에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좋았고, 좋았기에 독서 모임에 나와서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시간을 가진 게 아닐까요. 너무 좋은이라는 말을 많이 해서 거짓말 같겠지만(^^;;) 실제로 좋은 독서를 하고 좋은 경험을 하고 좋은 독서 모임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좋은이라는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좋은 이외에 다른 말을 덧붙이는 건 과장이라고 저는 생각하니까요. 어쨌든 좋았고, 좋아서 다음에도 좋은 독서 모임 시간 가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아, 어쩌면 이 모든 게 저자처럼, 허무에 대항하는 우리만의 방식이 아닐까요. 허무에 대항하는 우리만의 바식이 독서모임이라면, 우리는 삶의 허무에 대항하기 위해 독서 모임을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허무에 대항하는 좋은 방식이니까요.
‘무릇 천지간의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소.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도 취해서는 아니 되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취하면 소리가 되고, 눈이 마주하면 풍경이 되오, 그것들은 취하여도 금함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소.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진장(고갈되지 않는 창고)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바이외다.(부록인 소식의 <적벽부>중에서, p.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