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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예항 / 짐승들의 유희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82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2023-41.오후의 예항/짐승들의 유희-미시마 유키오
*이 서평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호오’의 감정이 있다. 누구나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고, 반대로 무언가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불행하게도 ‘호’가 아니라 ‘오’에 가깝다. 그가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탐미주의, 예술지상주의는 그냥 ‘그럴 수 있다’고 하자. 이미 철지난 데카당스, 예술지상주의에 목매다는 것도 나는 넘어갈 수 있다. 그의 탐미주의를 포장하는 아름다운 미문은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읽는 묘미를 더한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오후의 예항/짐승들의 유희>를 읽으며 아름다운 문장과 표현에 감탄한 적이 꽤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미문이 내 눈을 끌어도, 그의 책은 나에게 참을 수 없는 불쾌함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누구나 자기정당화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한다면, 미시마 유키오도 자신의 생각이나 이념을 문학을 통해서 자기정당화 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기정당화의 내용은 나에게 당혹을 넘어서, 불쾌함만 불러온다, 예를 들어보자. ‘오후의 예항’ 속 주인공인 소년 노보루는 똑똑하고 부유하지만 어딘가 허약한 친구들과 함께 일종의 패거리를 만든다. 그들은 세상의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들은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데, 그 의식이라는 게 길거리에 있는 약하디약한 새끼고양이를 데려와서 산채로 참혹하게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니체 철학의 아류 같은 철학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자신들을 다른 이들과 다른 천재로 포장하며, 강자를 존중하고, 약자들을 멸시하는 ‘강자의 철학’을 말하며. 강자의 철학을 주장하기에 당연히 그들에게 길거리의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고? 자신들은 길거리의 새끼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다른 존재이니까.
여기에서 그친다면 미시마 유키오가 아닐 것이다. 노보루는 더 나아가서 아버지가 죽고 홀로된 어머니가 새롭게 맞아들여 자신의 새아빠가 된 류지를 싫어한다. 원래 자신이 동경하는 뱃사람이라서 좋아했지만, 그가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남아서 어머니와 함께하며 새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에, 자신의 패거리들이 증오하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아버지의 한 부류가 되었다는 사실에, 강자의 행동이 아닌 약자의 행동 같은 친절함과 이해심을 보였다는 것 때문에, 노보루는 류지를 증오한다. 아이의 증오는 패거리의 응원을 이끌어내고, 아이들은 함께 14세가 되지 않으면 처벌 받지 않는다는 형법상의 특권을 이용해 류지를 죽이는 행동에 나선다.
읽다 보며 느낀 것이지만, 정말로 공감이 1도 안 되고, 불쾌함만 가중된다. 자신들에게 특권이 있다는 생각을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들로 정당화하는데, 그 문장들은 아름답다. 이 괴리가 나를 미치게 만들고, 괴롭게 만든다. 아름다운 문장들로 적어내려가는 게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권리이자 친절한 새 아빠 살해의 정당화이니까. 아름다운 포장지 안에 든 내용물에 썩은내가 물씬 풍긴다고 해야하나. 결국은 나는 작가에게 가닿을 수밖에 없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아름다운 문장들로 적어내려간 게, 파시즘과 군국주의와 유사한 약자를 멸시하고 강자를 숭배하는 강자의 철학이라는 걸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