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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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메데이아-에우리피데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봤습니다. 송혜교가 연기한 문동윤이라는 인물이 잔혹한 학교폭력을 당하고, 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자신의 평생의 삶을 바치는 이야기로서. 드라마를 보다보니 저도 모르게 저 자신을 문동윤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 다음으로 그 사람의 복수를 응원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게 흡입력 있는 드라마의 힘이겠죠? 그런데 <더 글로리>를 보다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가 떠올랐습니다. 똑같은 복수극이지만 <더 글로리>와는 어딘가 다른 복수극으로서.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더 글로리>의 복수는 어떤 점이 다른 걸까요? 저는 이걸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복수. <더 글로리>도 그렇지만 <메데이아>도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복수극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무언가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일을 당하거나 큰 배신을 당합니다. 배신 이후에 각성한 주인공은 사력을 다해 복수를 하며 자신이 당한 걸 상대방에게 되돌려줍니다. 이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응익주의는 뿌리가 깊습니다. 고대 합무라비 법전부터 고조선의 8조법까지 뿌리 깊은 이 응익주의는 복수극의 사고방식의 원형을 이룹니다. 응익주의에 기반한 복수극은 몬테크리스토 백작부터 무협소설의 다양한 복수이야기까지 무수한 이야기를 변주해냅니다. <메데이아>도 일반적인 복수극에 충실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아손을 따라나선 메데이아. 시간이 지나 성공을 위해 메데이아를 버리는 이아손. 그에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아손을 파멸시키려 나선 메데이아의 복수극. 이아손과 결혼하는 여인을 죽이고, 죽인 것도 모자라 여인의 아버지까지 죽이면서 이아손을 파멸로 몰고가는 메데이아의 행동. 여기까지 보면 <메데이아>는 일반적인 복수극에 충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다릅니다. 왜냐구요? ‘메데이아의 복수는 더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복수. <메데이아> 속 메데이아의 복수는 더 나아갑니다. 이아손의 배신에 대한 복수로서 당한 만큼 돌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메데이아는 또다른 행동을 합니다. 바로 이아손과 메데이아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으로. 물론 메데이아가 이아손과 결혼할 공주를 죽이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독 묻은 예쁜 옷과 황금 머리띠를 공주에게 주는 도구로서 사용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후 상황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손수 죽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주의가 공고한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더 쉽게 이해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저는 이 상황을 나름의 오독으로 이렇게 해석해봅니다. 메데이아가 아이들을 죽이는 행위는 완벽한 복수에 가깝다고. 복수가 뭡니까? 당한만큼 돌려주는 겁니다. 당한만큼 돌려주는 행위에 숨겨진 복수자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요? 어쩌면 복수자는 복수라는 행위를 하며 자신이 당하기 전의 삶을 갈구하거나 그때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죠. 이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복수자의 복수는 어쩔 수 없는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메데이아는 당한만큼 갚아주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아이들마저 죽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의미입니까? 어쩌면 메데이아에게 아이는 자기 삶에 미친 이아손의 흔적이자 그림자였겠죠. 위의 글을 떠올려보세요. 복수자에게 복수라는 행위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벌이는 어떤 몸부림에 가까운 것입니다. 메데이아에게 복수의 완성은 자기 삶에 남은 이아손의 흔적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데이아는 아이들을 죽이면서 자기 삶에서 이아손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죽인 것이라고 해도. 과거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으니 이것이 완벽한 복수가 아닌가요? 물론 과거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웠다고 해도 메데이아가 이아손을 만나기 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상황으로 자신의 삶의 상황을 만든 것도 맞습니다. 이 정도면 저에게 메데이아의 복수는 완벽에 가까운 복수로 여겨집니다.

 

저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죽이면서까지 복수를 행하는, 완벽에 가까운 복수를 하는 복수극을 본적이 없습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이야기도 그렇고, 무협소설의 다양한 복수극에서도 그렇고, 메데이아의 단계까지 복수를 밀어넣는 복수극은 없었어요. 그래서 저에게 <메데이아>는 누구도 달성한 적이 없는 복수를 달성한 유일무이한 복수극처럼 여겨집니다. 어느 누구도 달성한 적이 없는 복수를 행한 복수자이자 완벽하게 주체적인 복수자가 나오는 복수극으로. 아마도 저에게 <메데이아>속 메데이아는 복수의 극에 도달한 복수자의 표상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또다른 완벽한 복수자가 나오는 복수극을 보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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