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설은 오직 칼비노만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주를 배경으로, 과학적인 전문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F가 아니고, 그렇다고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소설도 아니고. 동화같고, 우화같고, 철학서같고, 패러디문학 같고, 환상문학같고. 무엇이라 정의하기도 어렵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문학. 모든 것을 초월한 문학이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칼비노만의 문학.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우주이야기이자, 지구 생명체가 등장하는 지구문학이자, 인간들이 등장하는 인간들의 문학까지 포괄하는 이 전우주적인 규모의 문학은, 시간적으로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 우리 시대까지 모든 시대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한번도 본 적 없고, 읽은적 없는 유니크한 소설의 세계를 헤매며 다시금 칼비노는 유일무이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다른 누구도 쓸 수 없는 자기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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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0-01-1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이탈로 칼비노 전집 읽는게 목표라... 이번달에 이 책 읽을 예정인데... 빨리 읽어야겠네요. 어떤 느낌인지.^^

짜라투스트라 2020-01-17 11:22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칼비노만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소설들이 꽤 있을 겁니다^^
 

'브라운 신부'는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와 더불어 세계 3대 탐정으로 통하는 캐릭터이다.(이 세계 3대 탐정은 누가 정하는건지 궁금하다.^^) <브라운 신부의 순진>은 '브라운 신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단편집으로 '브라운 신부'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 캐릭터 자체가 갖춘 반전매력, 말도 안 되는 사건의 수수께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황에 대한 잘 정리된 인식을 바탕으로 풀려나가는 미스터리 퍼즐 해결의 쾌감까지. <브라운 신부의 순진>이 갖춘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매력과 더불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이 책을 감싸고 있는 가톨릭적인 세계관이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아무 생각없이 처음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가톨릭적인 세계관은, 다른 문학 관련서와 체스터턴의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동시대 다른 문인들과 문학비평가들이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문학적인 '가톨릭 선교'라는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하지만 이 정도의 재미와 위트,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춘 문학적인 가톨릭 선교라면 충분히 들어줄만하지 않는가. 이렇게 재미와 매력을 가진 소설이 주는 가톨릭 선교라면 듣고 충분히 공감할만하지 않는가. 신을 믿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는 신없는 인간의 허무와 좌절, 그에 비해 신을 믿는 이들의 안정과 조화가 대립되는 형태로서의 문학적인 가톨릭 선교로서. 거기에 덧붙여 나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진짜로 연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벌어진 연극적인 사건을 해결하는 느낌으로서. 이곳과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의 사건을 해결하는 느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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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이성애'라는 글자에서 '한 글자'만 바꾼 단어이다. 하지만 한 글자만 바꾸었는데도, 20세기 초반 영국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아무 문제 없는, 또 하나는 금기시되고 발각되면 법적인 처벌을 받는. 다른 말로, 하나는 사회적 수용의 대상이고, 다른 또 하나는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애'를 긍정하는 소설을 쉽게 발표할 수는 없었을 터. 당연하게도 작가인 E.M. 포스터는 1914년에 이 소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여 발표하지 않았고, 소설은 작가 사후인 1971년에야 발표된다. 이 사회적인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바라보면 <모리스>는 많은 장점을 가진 소설이다. 밀도 높은 구성, 길게 늘여쓰지 않고 단문 위주의 짧은 호흡임에도 충분히 문학성과 섬세한 표현력을 갖춘 글과 표현들, 섬세하게 주제를 펼쳐나가는 스타일까지. 사실 내 개인적인 의미에서도 <모리스>는 충분히 좋은 소설이었다. 딱 내 스타일에 맞는 문학이자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로서. 그러나, '동성애'라는 주제는 읽으면서 나로 하여금 어떤 머뭇거림을 느끼게 했다. 이 머뭇거림이 나에게 넘어설 수 없는 금기의 벽인건가. 책을 덮고 나서, 앞으로는 종종 이 금기의 벽을 넘는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야 나라는 인간이 가진 인식과 생각의 폭이 넓어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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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을 읽게 됐다.

(의도적으로 이 책을 선택한 건 아니고, 선택하고 보니 '동성애' 주제의 책이었다.)

생각보다 읽을만 했다. 단문 위주의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소설이라,

읽기가 편했고, 순간순간 드러나는 문학적인 표현들은 책의 문학성과 품격을 더해주고 있었다.

모르는 영역에 대한 이질감만 아니라면 충분히 좋은 소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건 읽고나서야 파악될 수 있는 법. 결국은 '읽기'밖에 내가 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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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을 읽는 것만으로는 스타브로긴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마치 인물의 윤곽선만 바라본 느낌이랄까. (중),(하)권을 읽는 것으로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게 됐지만, (상)권의 느낌만으로도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은 내게 소름을 돋게 했다. 또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인물들의 장광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는 인물들의 장광설이 많은데, <악령>은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광적인 느낌의 인물들이 펼쳐내는 (상)권의 장광설, 요설만으로도 이미 나를 압도하는 상황. 압도는 나로 하여금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철학자로 불리는지 이해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그 모든 험난한 고비를 넘어서 나는 <악령>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일단 읽었으니 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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