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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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히가시노 게이고/바움/280페이지

 

-책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옆의 도로에서 갑자기 꽝 소리가 들리며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거에요.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누군가는 다쳐서 피를 흘리고,그 사람들이 탄 자동차는 크게 파손된 상황인거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신고 먼저 해야할까요? 아니면 달려가서 사람들을 구해야 할까요?

이런 일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저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지네요. 웬지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굉장히 당황할 거 같아요.

어어어~~ 하며 갈팔질팡 하다가 상황을 망치는 거 아닐까요? 아유, 상상만으로도 두려워지네요. ㅎㅎㅎ

 

소설의 기능 중 하나로 이런 상황을 직접 겪지 않아도 간접적으로나마 겪게 해준다는 것을 들 수 있겠죠.

우리 대신 작가가 그런 상황을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 한 다음에 나름대로 고민해서

(분명히 심각하게 고민할 것입니다. 작가니까요^^)

자신만의 교통사고를 만들고, 거기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읽는 독자는 간편하게 작가가 만든 상황을 보면서 자기 식대로 깨달아가는 거죠.

아, 저장면에서는 저렇게 해야 겠구나, 저장면에서는 저렇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요.

물론 직접 경험한 것보다는 효용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도 안 하거나

교통 사고에 대한 아무 대응도 안 되어 있는 것보다는 낫겠죠.

설사 크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무언가는 얻어갈 수 있겠죠.

뺑소니를 하면 안 된다,불법 주차를 하지 말자,운전 중에 창밖으로 담뱃재를 털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 같은

기본적인 메시지들을 다시금 가슴속에 각인시키는 효과는 얻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최소한의 효과라고 생각하세요. 최대한의 효과로는 교통사고 때 가장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조금 힘들겠지만... ^^;;)

 

자, 어쨌든 소설로도 교통사고의 간접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런 책이 나왔고요. 모두 눈치채셨겠지만 지금 소개하려는 <교통경찰의 밤>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우리 대신 교통사고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교통사고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해준 답니다.

 

하나의 교통사고를 둘러싼 각 인간들의 대응.

즉 피해자로서 가해자로서 제3자로서 교통경찰로서 하나의 교통사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떤 결말을 이끌어내는지 히가시노 게이고가 머릿 속으로 그려낸 그림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조금은 과장될 수도,극단적이거나 엉성할 수도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답게 품고 있는 메시지는 강력하고, 때로는 반전에 깜짝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수도라는 글자에 주목해 주세요. 반드시가 아닙니다.)

 

천지개벽할 반전이나 놀라운 트릭, 박진감넘치는 액션활극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교통 법규 준수의 중요성이 가슴 속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연쇄살인이나 심각한 사회파 미스터리,미궁에 빠진 사건 해결이 아닌 교통사고를 둘러싼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만난다라는

측면에서 <교통경찰의 밤>은 색다른 경험이기도 하고요.

 

기본을 강조하지만 그게 도식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하지마, 하지마'가 아니라 '누가 이렇게 하다 그렇게 되었더라.'라는 이야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이

이 책은 기본의 중요성을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강조하는 것이죠.

 

재미도 있고, 거기다가 기본의 중요성을 새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경험이었죠.

(이 재미라는 요소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어쩌면 쉽게 이 책의 메시지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서 운전을 하거나 도로를 걸을 때

이 소설 속 내용이 어느 순간 떠오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그 사람에게는 성공한 것이죠.(일단 1명에게는 성공했습니다. 바로 저입니다.^^) 

 

기본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쉽게 기본을 어기는 이 시대에 새삼 소중한 책이라고 여겨집니다.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남에게는 엄청난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니까요.(교통사고의 나비효과입니다.~~~~)

 

앞으로도 팬으로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을 계속 쓰기를 바래봅니다.

 

이상 책 읽고 나서의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옵션격인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목에 대해서

교통경찰의 밤은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각 편마다 교통경찰이 나오기는 하지만 항상 그들이 주인공이라고 볼 수는 없거든요.

정확하게 여기 나오는 소설들은 교통경찰이 주라기 보다는 교통사고와 연관된 사람들이 주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교통경찰의 밤>보다는 <교통사고의 밤>이라는 제목을 강추합니다.

 

-각 단편들의 짤막한 소개

<천사의 귀>. 신비한 능력으로 교통사고를 해결해나가는 아름다운 맹인소녀의 이야기. 읽고나서 한참동안 소녀가

증명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분리대>. 여기 나오는 단편 중 가장 가슴 속에 깊이 남았습니다. 법이 반드시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법은 방황하는 칼날이고 양날의 검이며 경계를 왔다갔다 하니까요. 때로는 우리가 법의

분리대를 넘어설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위험한 초보운전>. 초보운전이라고 놀리지 마세요~~~ 어쩌면 큰코 정도가 아니라 큰 다리를 다칠지 모르니까요.

 

<불법주차>. 내가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듯이 내가 한 불법주차가 어떤 일을 벌일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무 일 없기를 바랄 뿐이죠.

 

<버리지 마세요>. 운전 중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저는 그것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운전 중에 창 밖으로 담뱃재 털지 좀 마라~~~(반말을 써 봅니다. 존댓말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여겨져서요.)

 

<거울 속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운전자. 그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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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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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옥타비오 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중남미 문학의 3대 작가로 알려진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장편소설.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쓴 환상소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아득한 먼 옛날부터 인류가 염원해 온, 영원히 죽지 않는 삶과 죽음도 뛰어넘는 사랑의 끝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소설로 부활한 아우라

 

아우라:예술 작품에서, 흉내 없는 고고한 분위기.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저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복제품이 아닌 원본이 뿜어내는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하고 고고한 기운을

아우라라 말한다.

 

모사품이나 복제품이 따라갈 수 없는,

오리지널의 신비한 기운인

아우라는 그 자체로 원본을 후광처럼 감싸며

흉내낼 수 없는 원본만의 신화를 만든다.

 

그러나 책에서도 말했다시피

현대에 들어서면서 기술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서

고전적인 의미의 아우라는 사라진다.

사진과 영화같은 현대의 예술작품들은

원본과 복제품의 구분 자체가 힘들고,

원본의 아우라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순수예술이라고 부르는

분야에세도 그 영향은 이어진다.

마랄린 먼로를 대량복제한 작품을 전시한

앤디 워홀을 주축으로

이제 원본과 모조품,복제품의 구분은 사라졌다.

자본주의 사회와 기술발달이라는 사회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예술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아우라를 찾아 볼 수 없다.

 

언제나 사람들을 설레게 한 아우라는

사장되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중남미 3대 작가 중 하나인 푸엔테스는

그 아우라를 자신의 소설에서 부활시켰다.

 

그것도 어둡고, 음습하며,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간들의 욕망이 스며있는

저택에서.

 

아우라에게 반하다!!

(*이 작품은 2인칭 소설이다.

독자는 '나'가 아닌 화자가 '너'라고 지칭하는

인물의 행동과 내면을 들여다본다.)

 

너의 이름은 펠리페 몬테로다.

너는 젊은 역사학자로, 지금은 일이 없어 쉬고 있다.

빈둥거리던 어느날 너는 광고를 하나 발견한다.

젊은 역사학자를 찾는다는 그 광고는

후한 보수만큼이나 너에게 딱 맞는 것이었다.

'바로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광고다.'

 

너는 과거의 기억이 스며있는 구시가지를 건너서

쇠락한 저택으로 찾아간다.

어둡고,음습하고,불길하며,이 세상의 집같지 않은 그 저택에서

너는 백살이 넘은 늙은 미망인 콘수엘로를 만난다.

그녀는 너에게 자기 남편인 죽은 요렌테 장군의 원고를

정리해달라고 부탁한다.

너는 많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이 어둡고 불길한 저택에서

기거해야 한다는 조건을 보고

거절을 선택하려 한다.

 

그때, 아우라가 들어온다.

콘수엘로의 조카로 그녀를 돌보는

젊은 아우라를 보는 순간

너는 사랑에 빠진다.

 

아우라가 품고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함과

웬지 모를 불길함,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에

빠져서 너는 그녀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너는 이 집에 남는 걸 선택한다.

남아서 그녀와 사랑하는 걸 선택한다.

 

그렇게, 너는 아우라에게 반해서

그녀에게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너는 아는가? 바로 그 순간이 너의 운명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을?

 

너는 이제 불길한 운명과 사랑의 불꽃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마라.

그건 너가 선택한 사랑의 길이자

인간 욕망의 어리석음이 저지른 신비하고, 어두운 길이니.

 

인간 욕망이 빚은 신비하고,불길한 사랑의 그림자

 

소설 곳곳에 스며있는 어두움과 불길함은

책 표지의 소개대로 이 소설을 고딕소설(공포소설)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 있어 이 소설은

고딕소설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 이 소설은 인간 욕망의 어리석음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자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인간들이 부르는

어두운 마법의 주문이자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자 하는 이들이

발버둥치며 부르는 애가였다.

 

내게 있어 <아우라>는 신비한 사랑의 소설이었다.

낭만만 가득한, 사랑의 아름다움만 표현한 소설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인간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이

어둡고, 신비하게 표현된 흑마술 같은 사랑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과 분위기를 품은 채

인간욕망의 어두운 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현실 깊숙이 아우라가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신비함을 풍기는 그녀가 있다.

우리는 그 신비함에 끌려 그녀에게 다가간다.

다가가서는 그녀의 가면을 벗기려 한다.

 

그리고 그녀의 가면을 벗기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아우라가 숨기고 있는 것이 우리 욕망의 어두운 모습임을.

추악하고,어리석은 우리 마음의 어두운 괴물이 그녀였음을.

 

이 고통과 슬픔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의 사랑과 욕망이란 이토록 어리석고 어리석음을.

 

그 신비하고 불길한 사랑의 그림자 앞에서

콘수엘로의 젊음을 향한 끝없는 열망과

몬테로의 불명의 사랑을 향한 열정은

가능성없는 하나의 부질없는 몸부림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끝없이 아우라를 향해 달려가고,

그 가면을 벗기려 한다.

그 행위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지라도

우리는 계속 그짓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욕망과 사랑의

흑마술에 걸려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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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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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가장 돋보이는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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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알렉산더 페히만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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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상정해 사라진 책들의 서지학과 밝혀지지 않은 미시사를 써내려간 책. 풍부한 문학사 자료와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사라진 책들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바벨의 도서관 안에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있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세상 모든 책들이 머무는 그 도서관은
지금까지 모든 언어로 써온 모든 책들과
앞으로 모든 언어로 써질 모든 책들을 가지고 있다.
우주를 형상화한 이 바벨의 도서관에는
세상 모든 책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곳에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있으리라.

알려졌지만 전해지지 않는 작품들,
알려지지도 않고 알아낼 수도 없는 작품들,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작가의 머리에 아이디어로만 존재하는 작품들,
어딘가에 있지만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작품들,
그 사라진 책들을 모아놓은 곳을 알렉산더 페히만은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라 명했고,
당연하게도 그곳은 우주의 일부이기에
바벨의 도서관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실날같은 존재의 개연성만 있어도
그 책은 얼마든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눈을 돌려 바벨의 도서관 어딘가에 위치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속으로 들어가보자.

 

*알렉산더 페히만은 책에서 바벨의 도서관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를 형상화한 바벨의 도서관을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이 글에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이
바벨의 도서관 안에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사라진 책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생각해보자.
힘을 쏟아 열심히 쓴 책들이
자기 발로 달려서 사라질리는 없다.
그 책들이 어느날 갑자기 저절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리도 없다.
우리는 사라졌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것은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사라짐은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 사라짐이 만든 이야기들이 모여서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을 이루니만큼
이 도서관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작가와 출판업자,작가 주변인들의 부주의로 사라진 책들,
전쟁과 정치권력의 횡포,종교의 검열 때문에 사라진 책들,
오해를 불식시키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책들과 원고들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작가 스스로의 강박관념 때문에 사라진 책들,
작가의 질병,사망,자살 등으로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작품들,
쓴다는 말만 해 놓고 쓰지 못한 작품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소설 속 가상의 책들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고대와 중세의 책들,
작가의 허풍과 거짓말 속에서만 써진 책들,
눈앞에 존재하지만 풀 수 없는 암호로 기록된 문서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작가 자신을 위해서 쓴 책들.

또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는 그 책을 쓴
작가들(허먼 멜빌,메리 셸리,바이런,정화...)의 기구한 인생사와
맞물리며 이야기의 깊이와 재미를 더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깨닫게 될 것이다.
이야기가 사라진 책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에 생기를 가득하게 했음을.

'도서관에 보관된 자료들은 살아 숨 쉬고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

 

책들은 사라진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의 책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남아있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현존재는 사라졌지만
역사에,자료에,인간들에게 남긴 흔적들이 있기에
그들은 죽지 않고 남아 있다.

사라진 책들을 살리려는 알렉산더 페히만의 불가능한 시도
또한 그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김으로서
사라진 책들을 복원하려 했다.
근데 그것이 진짜 그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그의 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사라진 책들을 선택한 것들이 아니고,
사라진 책들이 그를 선택한 것이다.
사라진 책들이 그를 불러서 자신들을 책속에 남김으로서
독자들 마음 속에 살아남게 한 것이다.
그는 사라진 책들에 선택당해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을
남긴 것이다.

페히만이 남긴 불씨는 이제 독자들의 마음으로 넘어왔다.
아마도 그 독자들 중에서 미래에 사라진 책들의 선택을 받아
또다른 책을 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책을 쓰지는 않더라도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사라진 책들의 이야기를 재미삼아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책들은 사라졌지만 자신들의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력은 바벨의 도서관에
불이 꺼지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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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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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드라마 선덕여왕의 악역 미실



 

mbc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미실.

 

극중에서 고현정이 연기하는 미실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하고 비정한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은 미실이 악으로서

선덕여왕과 대립하는 구조로서

드라마가 흘러갈 것을 예시한다.

 

나는 여기서 소설 미실이

느껴졌다.

 

'분명 이 드라마는 소설 미실을 참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 미실은 어떤 내용이고.

미실은 어떤 인물인가?

 

야사 속의 인물이 되살아나다.

 

미실은 정사의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야사 속에 기록된 인물로

<화랑세기>에 등장한다.

 

거기에서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성적능력으로

신라사회를 쥐고 뒤흔드는 배후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미실이 등장하는 부분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군다나 <화랑세기>라는 책 자체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에

미실이라는 인물이 실존하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에 작가가 개입한다.

김별아는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야사 속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여인을

소설로 되살려낸 것이다.

 

거침없는 사랑하는 그녀, 미실

 

미실이 살았던 신라시대는

지금의 윤리나 가치관으로는 잴 수 없는

시절이다.

 

유교적 윤리나 서구적 사고가 있지 않았던 그 시절,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가 남성간의 동성애를 권하고,

인도에서 성관계를 신성시하던 것처럼

그 시절 신라에서는

왕족간의 근친혼과 혼외정사,동성애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특히 왕족과 왕에게 봉사하던 신하중에는

색공지신이라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색공으로,

다시 말해 자신의 몸과 성적인 능력으로

왕과 왕족을 받드는 존재들이었다.

 

미실은 색공지신 중에서

대원신통의 혈맥으로 태어나

왕과 왕족에게 평생 몸을 바치고,

쾌락을 선사하는 임무를 띈 존재였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숙명.

미실은 거기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신라 최고의 완소남 사다함과의

슬픈 사랑은 그녀의 그런 운명을 가속화시킨다.

 

사랑하지 않은 남자와의 성관계과 결혼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그녀는 수동적인 성관계가 아닌

스스로 성관계의 주체가 되는 인물로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녀는 남성의 힘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남성들을 조종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켜 나가는 인물이 된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정치적인 권력까지 얻는 미실.

 

그녀가 나쁜가? 그녀가 음탕한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한 것일 뿐이다.

 

그녀는 성을 사랑했고,

자신을 거쳐간 무수한 남자들을 사랑했으며,

권력을 사랑했고, 정치적인 힘을 사랑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사랑하는 것 자체를 사랑했다.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사랑하고 또 사랑한 행동의 결과일 뿐이다.

 

지금은 나올 수 없는 그녀, 미실

 

우리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보다 훨씬 좋은 삶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 우리의 삶은 그들보다 경직되어 있다.

현대라는 그물이,

유교윤리와 서구적 가치판단이 만들어낸 그물이

우리의 사고를 움켜쥐고 있고,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실은 현대라는 그물을 벗어난 존재였다.

그녀는 그물을 벗어나 자유롭게 노닌다.

 

자기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다간

그녀의 삶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과 다른 삶을 살다간 이의 표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현대라는 시간속에

미실이 살아있다면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남성위주의 역사학이 지워버린,

남성 역사학자들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으로

덧칠된 미실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의 미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정녕 그대는 자신을 거쳐간 그 모든 사람을

사랑했나요?

 

그러면 그녀는 뭐라고 대답할까?

 

'넌 누구와도 같지 않아. 미실!

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야.'

'소녀는 뭇 별들처럼

수 많은 사랑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단 한번도 그 사랑을 후회해본 적

없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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