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추락
스티브 포브스 외 지음, 방영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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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화폐의 추락-스티브 포브스, 네이선 루이스, 엘리자베스 에임스

 

책을 읽기 전에 저자들의 약력을 보다가 스티브 포브스라는 저자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에 나간 적이 있다는 글을 봤습니다. 그래서 혹시?’ 라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 였습니다. 한때 미국 공화당의 정치적 흐름을 주도한 신자유주의 담론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공화당 대선후보 출마 경험이라는 글자를 보니 갑자기 미국 공화당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원래라면 이 책의 장르대로 경제학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라는 말에 꽂혀서 공화당의 정치적 흐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가적으로 말하자면 어차피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글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밝혀드립니다.

 

우선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 공화당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적인 흐름은 무엇일까요? 누가 뭐라고 해도 트럼피즘이 아닐까요? 도날드 트럼프가 주도하는 일종의 정치적 흐름을 나타내는 트럼피즘은 고립주의, 반세계화, 미국 우선주의, 백인우월주의 같은 정치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건 1990년대나 2000년대의 공화당과 차이가 느껴집니다. 1990년대 2000년대만 해도 미국 공화당을 주도한 정치적 흐름은 세계화와 자유 무역, 규제완화에 근거한 신자유주의였거든요. 이 신자유주의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수상이나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도 당이 다르지만 비슷한 성향의 정책들을 쏟아냈습니다. 시대의 대세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로 세계를 주도하던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꺾이기 시작합니다.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론>의 세계적 성공은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꺾였다는 걸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죠.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꺾이기 시작한 이후로 어느 순간 트럼프라는 인물이 나타났고, 그는 당당하게 반세계화, 보호무역, 미국 우선주의를 입으로 외치며 공화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는 그림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트럼프는 신자유주의에서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부분만 씁니다. 신자유주의는 트럼피즘에 밀려 공화당의 주도적 흐름이 되지는 못한 상태이고요.

 

제가 왜 이야기를 했냐면 <화폐의 추락>이라는 책에서 과거의 신자유주의의 그림자를 봤기 때문입니다. 양적완화 같은 정책을 정부 규제로 말하면서 정부 규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케인즈와 케인즈학파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하이에크의 이론을 띄우고, 레이건을 영웅시하고. 과거에 이런 류의 책을 참 많이 봐서 익숙했는데 다시 이런 책을 오랜만에 보니 왠지 희미한 과거의 향수에 젖어드네요. 물론 이 책은 인플레이션을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보고 거기에 대한 대책으로 금본위제를 내세우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고 있는 게 신자유주의 담론이라는 건 명확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이 책은 신자유주의 담론을 설파하는 책의 흐름에 속한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미국 공화당으로 돌아가봅시다. 다음 대선 때 트럼프는 당연히 출마할 겁니다. 트럼피즘을 외치며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은 트럼프를 따를 것이고요. 공화당의 다른 유력한 대선 후보는 어떨가요? 2022년 중간선거 때 트럼프의 대항마로 떠오른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를 한번 보죠. 사고치지 않는 트럼프로 통하는 론 드산티스는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쿠바계, 니카라과계, 베네수엘라계 같은 플로리다의 히스패닉들에게 강성한 정책들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동성애 입막음 법이나 깨어 있는 교육 금지법 같은 문화전쟁용 정책들을 통해서. 어쩌면 트럼프 못지 않은, 아니 강하면 강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스탠스를 가진 론 드산티스가 과거처럼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주도적인 정치적 흐름으로 가져갈까요? 어떤 특정한 정책을 사용하거나 일종의 자세는 가질 수 있겠죠.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자신의 주도적 정치적 흐름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화폐의 몰락>의 저자들이 거품 물고 외치는 신자유주의가 지금의 미국 공화당의 정치적 흐름 속에서는 주도적이지 않을 거라는 말이죠. 마치 책의 저자들이 외치는 금본주의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흘러가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흐름으로서. 그리고 책에서 들려오는 과거의 멜로디는 제 귓가에 20세기 클래식처럼 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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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1-21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럼프가 론 드산티스에게 여기까지만 하라고, 대선 출마 하지 말라면서 견제하던 게 생각납니다. <화폐의 추락>이 그런 내용이었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남의 나라 정치는 엉망이어도 우리나라가 아니어서인지 재미있네요. 그런데 어떻게 금본위제로 돌아가죠? 제 짧은 지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책도 어려울 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짜라투스트라 2023-01-21 21:29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내용에 따른다면 인플레이션을 막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화폐 가치를 안정화 시키는 것인데, 그걸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금본위제라고 합니다. 지금 눈높이에 맞춰서 과거의 금본위제를 변형시켜서 쓰자고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긴 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