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안진: 세 번의 봄-강화길
책을 읽다 다시 책표지를 들여다본다. 흠, 분명히 안전가옥 출판사가 맞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다시 발휘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나는 안전가옥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다 장르문학을 다룬다고 생각했다. 아작이나 허블처럼. 내게 안전가옥은 장르문학의 다른 이름이었고, 장르문학이 아닌 다른 문학이 나온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내가 너무 고정관념에 갇힌 건가.
<안진: 세 번의 봄>에 담겨 있는 건, 섬세한 심리묘사, 묘사가 드러내는 삶의 보편성 같은 것들이다. 장르문학에서 느껴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라거나 상상력의 향연이 아니라. 물론 장르문학의 느낌이 잠시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순문학 (혹은 문단문학) 계열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출판사 이름을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라고 해도 이 책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너무 장르문학과 장르문학이 아닌 것의 구분이라는 것에 갇혀 있는 것인가. 사실 장르문학과 장르문학이 아닌 문학의 구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재미있게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을. 그러나 내 안의 고정관념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으로 구분을 해버린다.
내 머리는 다시 내달린다. 한국에서 순문학 혹은 문단문학이라고 불리는 장르문학이 아닌 문학장르는 ‘사실인 척 하는 허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문학장르는 분명히 허구다. 하지만 이 문학장르는 자신이 사실인 척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프랑스의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 졸라, 러시아의 톨스토이, 영국의 찰스 디킨스 같은 이들이 개척한 이 문학장르는 허구이지만 ‘리얼’한 척 하는 장르이다. 물론 이 장르에는 사실인 척 하는 허구만 있는 게 아니다. 실험적인 영역도 있고, 심리 묘사에 치중하는 장르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하나의 문학장르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장르문학은 사실인 척 하는 허구가 아니다. 이 영역은 자신이 당당하게 허구인 걸 밝히는 것에 가깝다. 말도 안 되는 상황들, 현실보다는 상상력의 개화를 통해서 빚어내는 가상과 환상적인 사실들에 기반한. 나는 이 장르를 내 나름대로 작위의 장르라고 이름 붙인다.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상황들이 상상력을 통해서 구현되는.
그런데 생각해보니 장르문학이 아닌 장르도 작위적인 면이 있다. 위에서 적은 실험문학의 영역에 가면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등장하고, 상상력의 향연 같은 일들이 마구 벌어진다. 마술적 리얼리즘에 속한 문학들은 어떤가. 이 문학들에서는 현실적인 일과 더불어 초현실적인 현상들이 현실인 척 작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 쓰다보니 장르와 장르가 아닌 문학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이미 고정관념이 가득한 내 머리 속 문학 구분은 알아서 굴러가기 시작한다. 그 구분은 <안진: 세 번의 봄>을 장르문학이 아닌 문학에 위치시켜 버린다. 모녀 관계의 다층성과 다양성을 섬세하고 세밀한 심리묘사와 삶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그려내는 문학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