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일항 속으로 파고들어 의식을 각성시킨다. 친숙한 세계가 뒤틀리면서 뜻밖의 모습을 드러낸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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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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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딸
#아니에르노
#김도연_옮김
#1984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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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에르노의 <다른 딸>은 그의 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언니 지네트는 에르노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이미 죽었다. 그러니 에르노와 언니 지네트 사이에는 흔히 말하는 자매애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직접적인 교감이나 접촉마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 12쪽
하지만 당신은 내 언니가 아니에요. 언니였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는 함께 놀거나 먹거나 잔 적이 없습니다. 난 당신을 만져보지 않았고, 껴안아 보지도 못했어요. 당신 눈동자가 어떤 색깔인지 모를뿐더러 당신을 본 적도 없지요. 당신은 몸도 목소리도 없이 고작 흑백사진 몇 장에 담긴 평평한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당연히 당신에 대한 기억도 없어요. 당신은 내가 태어나기 2년 반 전에 이미 죽었으니까요. 하늘의 아이이자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녀. 그 어떤 대화에도 등장하지 않고 누구도 당신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는, 그렇게 비밀이 되어버린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당신입니다.

.

✏️
작가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언니 지네트를 소환한다. 소환의 궁극적 이유는 에르노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언니의 죽음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운명적 질문이랄까.

📖 69쪽
하지만 당신과 나는 외동으로 살아갈 운명이었어요. 아이 하나만 갖겠다는 그들의 바람은 평상시 버릇처럼 하던 말속에 들어 있었으니까요. ‘아이가 하나니까 가능하지, 둘이면 힘들었을 거야‘라는 말이었어요. 이 말은 당신의 삶 혹은 나의 삶 하나만을 함축하고 있어요. 둘은 아닌 거예요.

.

✏️
그런데 그렇게 살아있는 유일한 딸로서 살아가는 에르노에게는 언니 지네트가 자신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래서 에르노는 언니를, 아니 그 존재성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 83쪽
당신 또는 나. 나는 존재하기 위해서 당신을 부인해야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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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에 작가 스스로도 고백을 하지만, 이 책의 제목 <다른 딸>은 에르노의 언니가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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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점점 어렵다고 느껴진다. 사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여느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그 분량이 적다. 대부분의 작품이 마음만 있다면 반나절도 필요없이 한 권을 뚝딱 읽어버릴 만한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나절도 안 걸릴 것같은 그의 작품은 이제 하루는 고사하고 이틀, 사흘도 모자라 일주일이나 걸리는 지경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가족 또는 사랑한 이성에 대한 경험과 기억의 이야기겠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적 작업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글쓰기적 작업에 대한, 그것이 향하는 어떠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점이 막연하다. 방향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방향이 향하는 지점은 막연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문득 문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럴 일은 만무할지라도 마음은 그렇다.

무튼...

이제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가볍게 읽어서는 안 될 일이란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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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 2022 제16회 나비클럽 소설선
김세화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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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무대위에서
#그날, 무대 위에서
#김세화
#나비클럽
#황금펜상수상작품집
#한국추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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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다. 김세화 작가님이 인친이기 때문. 이런 분과 인친이라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괜히 나의 사회적 위치가 급상승한 것같은 우쭐함마저 든다. 소소하게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만한 영광도 없다.

무튼 김세화 작가의 수상 소식은 그의 인스타를 통해 접했고, 문득 읽어봐야지 싶었다. 하지만 추리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어 그 낯설음을 떨쳐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어릴 적 TV에 방영된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추리 드라마를 한동안 애청했지만 이전이나 이후로 소설로는 읽어본 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낯설음에 대한 우려는 괜한 걱정에 불과했음을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를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누군가 추리소설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들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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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추리문힉상 황금펜상
한국추리문학상은 1985년에 제정되어 35년간 한국 추리문학의 성장을 견인해왔으며, 특히 2007년부터 단편 부문인 ‘황금펜상‘을 신설하여 최고의 추리적 재미와 소설적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을 선정하여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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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에는 수상작 1편과 우수작 6편,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를 선택적으로 읽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정혁용 작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소녀>도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다.

김세화 작품은 자살로 추정되는 젊은 연극 배우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과정의 진지함과 더불어 공간 설정이나 다양한 인물탐구과정의 섬세함이 더없이 좋았다면, 정혁용 작품은 연신 피식, 풋거리며 읽을 만큼의 재미와 무료하고 뻔한 삶의 중년 주인공이 미스터리한 소녀와의 만남 이후 소녀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이 다소 도식적이긴 하나 어렵지 않게 풀어내어 좋았다.

무엇보다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는 마치 희곡을 풀어 쓴 소설같다는 나름의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소설을 희곡처럼 묘사한 것 같다거나. 개인적으로 희곡읽기를 좋아하기에 희곡이 가지는 일반적 구성에 익숙한데, 김세화의 작품이 그 구성과 많이 닮아있어서다.

그리고 작품이 참 디테일하다. 특히 공간에 대한 설명, 즉 극장의 모습이나 자살한 젊은 배우의 집 등의 공간 묘사를 어찌나 섬세하게 그려놓았는지 마치 그 공간을 나조차 잘 알고 있는 듯, 한 번 본 적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공간 묘사마저 섬세한데 작품의 내용은 더 말해 무엇할까 싶을 정도다.

무튼, 김세화 작 <그날, 무대 위에서>를 통해 추리소설이 ‘참 재밌구나.˝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단편 작품들은 선입견적으로 거리를 두는 나인데, 추리소설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추리하는 것을 의외로 좋아해서 인지 개인적 선입견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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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용에 대한 소개는본 작품의 심사평에 나와있는 것으로 대신한다.)

📖
김세화 작가의 <그날, 무대 위에서>는 젊고 매력적인 남성 연극배우의 자살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죽음의 진실을 추적하는 수사 과정을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및 입체적인 조명을 통해서 구체화해나가는 섬세한 서사적 건축 과정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어쩌면 단순한 치정 살인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범행의 심리적 동기를 학창 시절부터 이어지는 과거의 재구성, 인물들 사이에 작동하는 정서적 차원의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사건의 단서에 제시만이 아니라 인물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여러 관점의 관찰과 기록을 통해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범행뿐만 아니라 서사적인 구성의 차원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 백영진과 살임범 ***(스포방지를 위해 *로 처리) 관계의 복잡성을 다양한 소설적 장치로 밀도있게 암시함으로써, 범인의 자백과 별개로 독자들로 하여금 추리해보게 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수준 높은 미스터리는 범인과 범행 수단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동기까지 독자들을 납득시킬 때 달성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본선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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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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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에공감한다는착각
#이길보라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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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뒷표지
우리의 공감은 훼손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느낄 때
당신은 가장 무지한 상태일 수 있다.

☘️
암스테르담 젊은작가상, 한국장애인인권상 수상 작가
이길보라가 그리는 공감과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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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평단에 참여하면서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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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은 제목부터 묵직한 무게감을 안겨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치켜뜨게 만든다. 보통 이러한 제목의 책들은 은근히 독자를 가르쳐 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선입견적 의심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 이길보라는 다르다. 결코 가르쳐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을 한다.

작가는 본인이 장애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장애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살아왔다. 즉 이길보라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다. 코다는 농인(수화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 청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의 자녀를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청인(음성언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신의 부모가 농인이기에 살아오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장애를 상대적으로 겪은 셈이다.

그래서 ˝장애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다˝라고 스스를 평가한다. 그리고 이것은 1부 첫 장의 소제목으로 이 책의 출발지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일반적으로 장애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제약을 의미하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문화적, 계층적, 정치적, 세대적 심지어 역사적 장애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작가에게 있어 장애란 ‘소외‘ 또는 ‘결여‘라는 개념으로 풀이되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장애인을 비롯하여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히며 살아가는 민족집단 또는 그 거주지), 미등록 이주아동(흔히 불법체류자의 자녀), 성소수자, 여성, 영 케어러(가족돌봄청년) 등이 작가가 바라보는 장애의 확장 바로 그것이다.

장애를 소외 또는 결여로 보는 것은 나열한 집단들의 공통점이 서로 다른 조건이라지만 결국에 불평등한 상황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되어 그 존재와 정체성을 부정당한다는 불편한 진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장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다름과 상실, 고통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이길보라는 오히려 미래지향적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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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전하는 작가의 말은 책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마지막을 장식할 만한 바람이 함께 제시된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이나 다음의 짧은 글을 통해서도 이 책을 읽어볼 가치를 충분히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 10~11쪽
다큐멘터리 영화와 르포•에세이 문학을 지도 삼아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익혀왔다. 좋은 작품들은 다름과 상실, 고통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고통을 납작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배웠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시각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게쁘게 소개한다. 나의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해내는 논픽션의 세계를, 논픽션을 통해 바라본 세계의 이야기를, 그로 인해 넓어질 우리의 세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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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 종국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래서 작가가 제시하고 함께 고민해보길 바라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 즉 연대의 소중함을 공감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공감한다는 것은 1차적인 반응이 아니다. 머리로 이해한다거나 또는 마음으로 헤아린다거나 하는 단발적인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단발적인 행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노력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대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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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은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것이 이 책을 추천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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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잠 -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 아무튼 시리즈 53
정희재 지음 / 제철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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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이 세 출판사가 의기투합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성 에세이 출판물이다.


📖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라는 타이틀로 지금까지 53개의 시리즈를 내놓았고, 이어 12개의 신작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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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재의 <아무튼, 잠>은 제목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잠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14개의 에세이를 통해 신변잡기적 경험에서 인문학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잠에 대한 폭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 책 뒷표지
˝잔다는 건 결핍과 욕망의 스위치를 잠깐 끄고 생명력을 충전하는 것. 잡념을 지우고 새로운 저장장치를 장착하는 것. 쓰라린 일을 겪고 진창에 빠져 비틀거려도 아주 망해버리지 않은 건 잘 수 있어서다. 잠이 고통을 흡수해준 덕분에 아침이면 ‘사는 게 별건가‘ 하면서 그 위험하다는 이불 밖으로 나올 용기가 솟았다. 잠은 신이 인간을 가엾게 여겨서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소제목은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이다. 작가는 잠이란 단순히 육체적 휴식에 그치는 행위를 넘어 우리 인간적 삶의 행복을 위한, 그리고 행복에 향한 의미를 무겁지 않게 잘 풀어낸다.


그리고 독자는 잠에 대한 개인적 사색에 충분히 잠식하게 될 것이다.


......


🎈
우연찮게 <아무튼 시리즈>를 알게 되었고, 나는 그 중에 유독 ‘잠‘에 관한 에세이를 탐독하게 되었다.


왜 잠이었을까?

나는 잠을 배척하는 경향이 심하다. ‘잔다‘는 자체를 인생에서 하나의 낭비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잠이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잠은 ‘죽음‘과 맞닿아있다. 사실상 둘은 별개지만, 내게 있어서는 동급인 것이다.

다만, 죽음은 그 자체로 완결이지만 잠은 유보된 완결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죽음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난 죽음을 잠과 연관지어버렸고 잠이 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망상에 깊이 젖어 있었다.

그래서 잠자리에 눕는 순간부터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애써 잠에 빠져들지 않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당시 취침시간은 부모님에 의해 정해졌고, 식구가 자리에 눕게 되면 자연스럽게 형광등 불은 꺼졌고, 이내 방은 어둠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 어둠 속에서 잠을 견딘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여간 버거운 행위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버틸만큼 버티다 뜬 눈으로 아침이 오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듣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버릇으로 나는 어두운 방에서 천정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왜 죽음이 그토록 끔찍했는지, 왜 죽음과 잠을 동일시했는지, 왜 그토록 잠들기를 고통스러워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


🎈
중학교 시절, 물리과목 선생님은 특이한 분이셨다. 그 분은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담당하는 과목이 물리라서 그런지 괴팍한 과학자에 더 가까운 이미지였다. 지금 그 선생님의 모습은 전혀 기억조차 없지만,

˝나는 하루에 1시간만 잔다. 1시간도 사치스러울 때가 있다.˝

라던 말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에 그 말이 어찌나 신비로웠던지, 그야말로 부러운 지경을 넘어 경이로움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하루 1시간만 자보고자 무던히도 시도하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코 해내지는 못했다. 아예 잠들지 않을 수는 있었는데, 1시간만 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1시간만 자고 싶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잠이 많다는 현실은 참 이율배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


✏️
정희재의 <아무튼, 잠>에서와 같이 잠을 찬양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아직은 거리가 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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