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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의 호흡법 ㅣ 한국희곡명작선 76
강제권 지음 / 평민사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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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이런 내용의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소심한 바람을 꼭 맞춰주는 작품을 만날 때,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바라던 거야!‘ 하는 반가움과 함께 ‘나도 이렇게 쓸 수만 있다면...‘ 하는 질투의 감정이 뒤섞여 피식 웃고마는 묘한 기분이 좋은 그런 때.
정범철 작가의 <시체들의 호흡법>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희곡은 ‘시체들‘이란 극단의 단원들이 하나의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현재 대학로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가감없이 솔직하게 보여지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 희곡에서 기분 좋은 감정을 받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연극인들의 가슴 속에서만 묻히고 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질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극의 역할론으로써 ˝연극은 시대의 거울이다.˝라는 말에 나는 힘주어 방점을 찍는다. 다만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등등의 시대적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연극 안에서 벌어지는 특히 연극의 주체가 되는 연극인들의 보여지지 않는 삶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연극도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화려한 박수갈채 속에서만 살아갈 것같은 연극인들은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도 시대적 아픔을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가난하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특별히 대표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즉 스타성을 띄지 못하는 대부분의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기억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무대를, 연극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 77쪽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
나연
우리는 극단 시체들입니다. 우리는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무대에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어쩌면 죽어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시체들처럼요.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숨을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호흡할 것입니다. 우리만의 호흡법을 익힐 때까지 그렇게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하우스 음악 주세요!
서서히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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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철 작가는 극단 <극발전소301>의 대표다. 극작과 함께 연출도 겸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대학로에서 가장 왕성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연극인이다.
개인적으로 알기로는 매년 5~6작품을 공연하고 있을 만큼 바쁘게 살아가는 연극인이다. 연습하고 공연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쉴 틈도 없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희곡도 희곡이지만, 그의 연출력도 부족하지 않기에 <극발전소301>의 연극은 후회라는 단어가 개입하지 못할 만큼 관객으로서 칭찬할 만하다.
기회가 된다면, 꼭 대학로를 찾아 <극발전소301>의 연극을 관람해보시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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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은 관객을 통해 완성되는 예술이다. 연극의 3요소에 관객이 포함되는 것만큼 연극에서 관객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관객의 관심 또는 애정이 없다면 연극은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연극이라는 예술의 생명유지를 위해 관객으로서의 역할에 애정을 기울여야 함이 마땅한 것이기도 하다.
📖 60쪽
승진
그래. 그냥 버티는 거지. 꾸준히 하다보면 좋은 날이 있겠지.
🎈
오늘도 무대를 열정으로 가득 채우는 이 시대의 연극인들이 자조 섞인 일만의 희망에 연연하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아니라 늘 행복에 겨워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관객으로서의 온전한 관심이 꽃다발처럼 배우들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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