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복자네 집에서 자면서 복자가 잠든 모습을지켜보았다. 어떤 그리움이 생겨나는 순간에 불려들어오던풍경은 언제나 복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부끄러움이 생겨날 때 불려들어오던 풍경도 역시 복자와 관련된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는 지금 이 방, 싸워야 할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같이 이겨내야 하는 슬픔이 있고, 그러기 위해 모으는 자료들로 가득찬 이 방과 복자의 새우잠을기억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 P139
살흙처럼, - "그래, 세상이 그럴 수 있지. 세상이 그렇게 보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영초롱아, 너가 보는 것이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다고 네가 내게 멋진 말을 알려주지 않았니. 그렇다면 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한 거야. 회사는 자본이니까 너가 말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란 사람도 그렇게흘러간다고 너가 말할 수 있니? 주민들 중에 이참에 땅이고집이고 다 비싸게 팔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섬을 지키기 위해 연륙교 착공을 힘 모아 저지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거니? 몸 지지러 갔다가도 섬의 고넹이돌을 단번에 알아본 그 마음은 어떻게, 싹 무시하면 되는 일이니? 너는 최소한의 도덕을 다루지만 나에게는 너가 최선의 사람이라서 나는 늘 너가 좋았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한번 기울어진 채로 시작된 관계는 복구가 되지 ‘‘‘ 않을지도." - P220
"아니,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욕을 좀 못 참았거든요. 재판을 거칠게 몰았죠." "욕은 나쁜 건데." 준욱이 끼어들었다. "나빠, 하지만 하는 수 없었어." "왜요?" "그들이 나빴으니까." "나빠서 내가 나쁘게 하면 안 나빠요?‘ - P153
법률문장론 교수에게 들은 말을 해주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메스를 든 의사와 같다‘는 말이었다. 의사들에게 인체를 찢는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삶을 찢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익숙해지지 않았다. - P110
복자야 안녕, 오늘 붓글씨 수업은 잘했니? 오늘 너가 벼루를 가져오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빌려주고 싶었는데 네짝이 빌려주었더라. 복자에게, 복자야 안녕, 성탄절에 요기 해왕선사에서 선물을 준다는데 거기를 갈 생각이 있니? 그런데 왜 절에서 성탄절에 선물을 준다는 것인지 아니? 정말 웃기고 웃긴 농담 같지. 복자야 안녕, 가게 될 중학교는 마음에 드니? 너가 엄마가 있는 제주시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기뻐, 이제 엠비시 공개방송 매일 갈 수 있겠어. 복자야, 안녕? 복자에게, 복자야, 할망이 너가 잘 안 온다고 뭐라 하시더라. 제순이는 이제 눈썹이 없어, 다 지워지고 안 특별해졌어.. 복자야. 복자야, 안녕, 복자에게, 복자야, 나는 이제 서울로 갈 것 같아. 그 많은 편지들은 부쳐지지 않고 모두 폐기되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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