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시를 읽은 이후로 여성이 자기그분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구에게도 쓰리고 아픈 속을 털어놓지 않으셨지만, 돌아가신후에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글쓰기와 기도로 삶의 의미를2014년 9월, 내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나는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뒤늦게 서울역으로향했다. 기차는 느리게 달렸다. 부산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처음으로 할머니의 시 「가시나니까」를 읽을 수 있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야 오랫동안 혼자서 글을 쓰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가지 못한 유년 시절의 아픔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셨다. 남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각자의 기량을 펼치며 살아가는 동안 할머니는 맏며느리가되어 대가족을 떠안으셨다. 나는 왜 할머니의 속마음을 단한 번도 헤아리지 못했을까? 할머니가 쓴 시를 읽고 나서야 - P5
2018년에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같은해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의 공저자로 참여하면서, 여성작가들의 삶과 글이 별개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았다. 었다. 나는 한다. 작가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나는 글을 써서 발표하는 사람을 작가로 정의하고,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독자를 가진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멋진 여성 작가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 페미니즘 고전 읽기 프로젝트의 첫 권으로 출간되고 난 직후부터, 민음사 인문교양팀과 후속 작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혜석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문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삶의 궤적을 남긴김일엽의 글과 사상을 소개해 보자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시대는 다르지만 나혜석 못지않은 글과 그림을 남긴 천경자의 생애와 예술을 담은 책을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지 이한솔 님, 양희정 부장님과 반년간 검토하기도 했다. - P6
이 책의 주인공들인 스물다섯 명의 여성들은 겉으로 보면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태어난 시기도 삶의 터전도 쓴 글들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로 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선, 스물다섯 명의 여성들은모두 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 취미로 글을 쓴 여성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썼다. 필사적으로글쓰기에 매달렸다. 또한, 여성 작가들은 모두 크게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있었다. 평생에 걸쳐 편견과 차별, 폭력에 맞서야 했다. 찬사만 받은 작가도 없었다. 혹평에 좌절하지 않았다. 근거 없는소문과 오랫동안 싸워야 했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난관을직접 돌파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살면서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다. 어떤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한 문장한 문장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무엇보다 스물다섯 명 모두 예외 없이 책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도서관과 서점은 그들에게 또 다른 집이자 학교였다. 치열하게 읽었다. 평생을 쓰거나 읽으면서 살았다. 여성작가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좋은 독자였다가 어느 날 멋진작가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결함과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조금씩 극복해 갔다. 흠결 없고 상처 없는 완벽한 인생을 - P7
살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사람이므로 일생 동안 수많은 실수를 거치며 성공과 실패, 성취와좌절을 오갔다. 결국 그들은 모두 좋은 글을 남겼다. 앞으로걸어갔다.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글과 말의 힘을 믿었다. 불행이나 불운이 반드시 살아서 글을 쓰겠다는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자신들의 삶으로 증명했다. 모든 글은 독자를 향하고 있다. 이 글 역시 많은 독자들을 만나 더 넓은 세상 속에서 떠다니길 바란다. 스물다섯 명의 여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P8
글 쓰는 여자는빛난다. + 마르그리트뒤라스 "나는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의 영화화 판권으로 노플르샤토의 이 집을 샀다. 내 소유의, 내 이름으로 된 집이다. 이 집을 사고 나서 미친 듯이 글을 썼다.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았다. 집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이 집은 나의 유년기 아픔들을 달래 주었다." 글을 써서 집을 사고, 그 집에서다시 "미친 듯이 글을 쓴 이 여자,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부럽다. 게다가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는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완성하고, 그 작품으로집을 사서 글쓰기에 몰두했다니 나는 그녀가 그저 존경스럽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은 멋지다. 하지만 대체로 멋진일들은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작가라는 직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글을 쓰다 굶어죽을 뻔했던 여자 혹은 굶어죽은 여자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 때문일까? 나는 글을 써서 생활의 기반을 닦은 여성들을 언제나칭송해 왔다. 그 기원을 누구로 둘까? 잠시 행복한 고민에 - P15
를 바랐다. 질투는 좀 더 복잡한 감정이었다. 딸이 자신처럼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만약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멋지게사는 딸을 보게 되면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질 것 같았다. 어머니와 딸은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뒤라스가좀 더 용감했다. 누구도 응원해 주지 않았지만, 뒤라스는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 버렸다. 뒤라스의 삶이 늦어버린 이유는 나이 많은 중국 부호가 약혼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구애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방탕하고 무능한 큰오. 빠가 수시로 뒤라스를 때리고 파산한 어머니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 딸에게 있는 듯 행동했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뒤라스는 생물학적 나이를 완전히 뛰어넘는 경험을 한다. 그녀는 글을 쓰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았고, 자신이만들어 낸 이야기가 자기 삶이 되는 황홀한 체험을 했다. - P19
작가가 되기 위해 1933년 프랑스로 돌아간 뒤라스는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후 식민지성에서 잠시 근무했지만 이내사직서를 제출한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뒤라스라는 위대한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때까지 세상에 뒤라스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3년, 마르그리트 도나디외는 『철면피들』을 출간하며마르그리트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박금이가 박경리로, 천옥자가 천경자로 되는 순간 역시 이와 다를바 없었다. 뒤라스에게 삶은 오직 두 시기, 작가가 되기 전과후로 나뉘었다. 스스로 이름을 바꾼 그때부터 뒤라스는 평생을 작가로 살았다. - P20
께 살아가던 뒤라스는 오랜 독자인 얀 앙드레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뒤라스의 표현처럼, "내 인생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60대 후반의 여성과 20대 남성의 사랑을 세상사람들은 함부로 이야기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자신들의사랑에 마지막 순간까지 충실했다. 무엇보다 뒤라스는 끝까지 글을 써 내려갔다.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 이게 다예요」는 글쓰기와 사랑만이 죽음의 반대말임을 알려 준다. 뒤라스가 병상에 누워 직접 쓸 수 없게 되자 그의 말을 얀이 대신 글로 정리했다. "난 삶을 사랑해. 비록 여기 이런 식의 삶일지라도." 식민지 베트남에서 태어난 가난한 프랑스 소녀는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글쓰기로 극복했다. 사랑을 감추지 않았고, 혁명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깊은 시선으로 인간을 응시했다. 1993년 뒤라스는 "문학은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는 말로 자신에게 글쓰기가 생의 전부였음을 시인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뒤라스는 세상을 떠났다. 1995년 출간된 『이게 다예요』는 뒤라스의 유서이기도 하다. "나는 글을 쓰고싶다."고 당당하게 외쳤던 뒤라스가 옳았다. 뒤라스의 어머니는 참으로 부질없는 걱정을 했다. 문학과 연극, 영화를 넘나들며, 뒤라스는 글 쓰는 여자가 얼마나 눈부시게 매 순간성장할 수 있는지 제대로 증명해 냈다. 과연 글 쓰는 여자는 빛난다 - P22
누구도 응원해 주지 않았지만, 뒤라스는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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