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여자는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도리스 레싱
"부모는 그녀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전보를 쳐서 책과 옷을 보내 달라고 했다. 걱정 마세요, 만사 잘됨.‘ 그리하여 하나의 문이 마침내 닫혔다. 닫힌 문 저편에 농장과, 그 농장이 만들어 낸 소녀가 있었다. 그것은 이제 그녀와 관계없었다. 끝난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잊을 수있었다. 그녀는 새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고 멋지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도리스 레싱은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났다. 지루하기만 한학교와 달리, 책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다행히 "책장에 항상책이, 고전이 꽂혀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대신 농장 일을해야 했지만, 시간을 아껴 가며 책을 읽었다. 소설에서 어떤책이 언급되면 그 책을 주문했다. 그런 식으로 도리스 레싱은 "책을 계속 주문했다.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로 오고 있을 책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80세가 훌쩍 넘어 생각해 봐도 "평생 제일 좋았던 날은 책이 도착하는 날들 이었다 - P25
어디론가 탈출하는 심정으로 1939년에 결혼했지만, 불행은 더욱 확실해졌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혼은 불가피했다. 도리스 레싱은 가치관이 비슷한 남자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로 한다. 다시 한 번 가정을 꾸렸지만, 현실은 견고했다. 도리스 레싱은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고 두 번째 남편과결별한다. 두 살, 일곱 살, 아홉 살이 된 아이 셋과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생계조차 불투명한 시절이었건만, 자꾸 멀리 떠나고 싶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도리스레싱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원고도 있었다. 도시에서 책을 내고 싶었다. 요하네스버그의 한 출판사가 손을 내밀었지만, 계약 조건이 지나치게 불리했다. 긴시간 다듬어 온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팔아 치우듯 세상에내놓을 수는 없었다. 도리스 레싱은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한다. 영국에서 책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소녀는 성장해 어른이 되었다. 이제 자기가 영국에서 책을 낼 차례가 되었다. 고 믿고 싶었다. 직접 부딪쳐 보기로 한다. 시작은 초라했다. 도리스 레싱은 『풀잎은 노래한다 원고만 쥔 채 1944년에 무작정 런던으로 향했다 - P28
인 『마사 퀘스트』(1952) 역시 큰 찬사를 받았다. 동시에 런던은 그에게 거대한 학교였다. 도리스 레싱은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1952년, 도리스 레싱은 영국 공산당 작가 모임에 가입했다. "우리가 충성을 바칠 철학이란 "없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선택치고는 기이했다. 도리스 레싱은 차가운 질문도 곧잘던졌다. "항상 슬픔과 눈물로 끝나는 정치 철학이 도대체 왜필요하겠어요?" 의아한 일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이유로공산당 작가 모임에 들어갔을까? 이번에도 책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읽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는 책을 읽는 문화였으니까요." 도리스 레싱은 "정치 집회에는 가지 않았지만, "아주 흥미로운 인물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공산당 작가 모임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 P30
1950년부터 2008년까지 도리스 레싱은 50편이 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거의 매해 책을 출간했다. 그는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미래가 달라질 리 없다고 단정 짓는 "도덕적 피로를 항상 경계했다. 도리스 레싱은 공상과학 소설, 신화, 자서전, 오페라 대본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단한 번, 자신에게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도리스 레싱은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집 앞으로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도리스 레싱은 심드렁했다. 노벨상부터 비판했다. 기자들에게도 친절하지 않았다. 도리스 레싱은 행여나 앞으로 글 쓸 시간이 줄어들까 봐 그 걱정만했다. 88세 생일을 맞이할 즈음이었다. 도리스 레싱은 94세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작가로 살았다.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기억이 작가로서의 자산이었다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런던으로 가기 위해 망망대해를 건너는 순간부터 도리스 레싱은 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글 쓰는 여자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 P31
가진 것 없이 아이 셋을 혼자키워야 했던 힘든 시절, 레싱은 작가가 되기 위해 과감하게런던으로 떠났다. - P32
레싱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듣고도 심드렁했다. 행여나 앞으로 글 쓸 시간이줄어들까 봐 그 걱정만 했다. - P32
글 쓰는 여자는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 버지니아 울프
"1928년 11월 28일 수요일. 아버지 생신. 살아 계셨으면96 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로 아버지는 96세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96세가 될 수 있었지만, 고맙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랬더라면 그의 인생이 내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 버렸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책도 없었을 터, 생각할 수 없는 노롯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였고 영국 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장을 역임한 레슬리 스티븐. 1882년 영국 런던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가 어떤 사건으로 아버지에게 억하심정을 품게 되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녀의 일기 속에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서가 있다. - P35
글을 쓰다 미쳐 버린 여자가 맞은 비극적 최후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가 글을쓰면 미치거나 불행해지거나 혹은 처참하게 죽게 된다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관점에 나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는 방 안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심한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훔쳐 갔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쓸 때만 "앞으로나아가는 자신을 느꼈다. 그러한 작가의 삶이 전쟁으로 중단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한 줄의 글도 읽고 쓸 수 없게되자 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한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가 된 이래 매일 열 시간 이상 읽고 쓰는 규칙적인 삶을 실천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쓰기에 모든 것을 건 작가였다. "천국, 그곳은 피곤해지지 않고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라고 상상했던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자신이 지상에서 맡았던 글쓰기라는 과제를 성실하게 마친 후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천국에서 책을 읽고 있으리라 믿는다. 글 쓰는 여자는 온전히 자기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위대한 작가였다. - P41
"나는 이제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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