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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 서평입니다]
얼마전 읽은 책도 그랬는데 이 책도
실제 저자가 도스토옙스키가 아니라
그의 책들을 읽고 소화해 낸 사유를
누군가가 쓴 일종의 에세이다.
그 누가 누군지는 알 수 없다.
시베리아 유배지에서 돌아온 도스토옙스키는
더는 세상과 인간을 낭만적이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세상은 선하지도 않은데
자신의 손해와 이익됨도 정확히 분별 못하는
그저 영악하게 살아내는 존재들이 인간이며
배경이 되어 준게 세상일 뿐이라는 설득.
하지만 저자가 보는 도스토옙스키의 이런 면엔
되려 인간을 더 사랑하게 된 시각이 담겼다고 평했다.
한꺼풀 망상을 걷어낸 자리가 아프긴 할지라도
비로소 진실을 알고 진짜 사랑을 품을 기회가 되준다는 것.
그리 달갑진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맞는 정의.
이걸 문장으로 잘 표현해 낸 부분은 이거다.
'가짜 희망에 기댄 사람은
상대가 배신할 때 무너질 수 밖에 없다.
환상을 걷어낸 사랑은
상대가 무너져도 본인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헛된 희망을 버리라는 말인지
진짜 희망만은 발견해 내란 말인지
저자 스스로도 다소 혼란스럽다고 말한 부분이기도.
막연한 낙관을 강제하는 뉘앙스가 아니라
토스토옙스키 같은 회의적 인간관이라도
희망은 존재함을 전제하는거라 기술하면서.
책은 시작부터 암울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독자는 자신만의 혼란스럽던 답을
책 안에서 만나게 될거라 저자가 약속했는데
난 그 약속이 지켜질지 궁금했다.
결국 답이 뭐라 적혀있는지 만남.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는 것'
누구는 허탈해 할 이 답이
내겐 맞는 답으로 다가왔다.
매일 다녀왔냐고 웃으며 반겨주던
아버지를 잃고나니 더 와닿는 진실 같다.
사실 누군가를 잃기 전에도 난 알고는 있었다
내가 누리는 모든게 기적같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안다고 하면서 실은 번뇌하며 살았고
그 끝을 사실적으로 상상해보지 않은채
산것에도 원죄는 있겠다.
알던 누군가가 계속 내 곁에 있을거 같던 날들과,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하고,
아직 만날 사람과 연락할 곳이 있는 시간들이
사실 매우 소중하다는 그런 사실들을 잊었던 원죄.
칫솔을 잡는 매일 아침,
입으면 결국 빨아야 하는 빨래가 될 옷들,
코드만 꽃으면 연결되는 TV 속 컨텐즈들까지,
사소한 듯 공유하지만
그리 존재해왔고 제공되는 많은 매일의 순간들.
저자는 여기에 필수로 주체성을 언급한다.
어떤걸 내가 원해서 했는지
그냥 하게 됐는지 구별하는게 중요하다고.
남의 답을 배끼듯 살아가서는 그런게 몸에 밴 채로는
어느날 필요해진 자신만의 답은 찾을 수 없을거라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범사엔
너무 많은 무의미한 의미들이 소비된다.
가치를 매번 규정하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소중하지 않진 않은 그런 것들도 비일비재하다.
책에서처럼 비효율적인게 불필요하더라도
그걸 만난 이상 일단 그에 합당한 노력은 하려한다.
다만 평범하게 살되
주체성인지 아닌지 구분은 해보려는 노력도 하고싶어 졌다.
애쓰며 살지 말라했으나
애쓰지 않으며 살되
소중함을 알아챌 수 있는 것들은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줄 알면서 말이다.
저자가 마무리로 "운명"을 향해 쓴
멋진 문장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네가 와서 내가 많이 아팠다...
그런데 니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