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열림원 세계문학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호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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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타인도 자기처럼 살아가고 있다 여기듯 

끈덕지게 살아내는 삶, 이게 어디 요조 뿐일까...


'실격'이라는 딱지를 스스로 붙인 요조의 삶은,

창착이 아닌 저자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삶이다.

그걸 모르고 읽었더라도, 독백처럼 흐르는 문체는 

소설을 회고록처럼 읽게 만드데 무리가 없다.


애초, 요조가 아닌 저자의 삶으로 읽어가며, 

그의 실제 삶이 어디서부터 틀어진 건지

정말 고전의 반열에 들만한 책이긴 한건지

스스로 찾고 이해하기 위해 집중했다.

고전으로써의 이유는 쉽게 명백해졌다.

1948년에 탄생한 책을 2023년에 읽는데 

시대적 정서적 격차가 안 느껴지기에.

다만 흔들렸던 삶의 이유는,

왜라는 의문으로 찾으려는 노력 대신

설명하고 싶었을 기억의 재구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편하게 접근해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주인공 요조의 행복과 불행.

불행의 이유는 너무도 많았고

행복의 지속은 항시 위태로웠다.

정작 행복도 불행의 전주처럼 느꼈다는 그였기에.


사진 속 원숭이 같았던 아이는

타인의 감정을 평생 의식하며

자신의 감정은 감춘 채,

실제 자신은 누구도 못 느끼게 연기 듯 살아낸다.

때로는 그걸 능력으로써 자랑스러워도 하며.

그러나, 어른이 된 그에게

어릴 땐 자부심이었고 비밀 무기였던

광대같은 익살 처세는

스스로의 감정 배출구를 막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삶의 희미한 원동력이 되어준 어린 부인 요시코,

우연인 듯 겁탈장면을 보게됐을 때 조차

그는 자리를 피하고 망상에 빠져드는데,

이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이 

가족에게 마저도 혐오함의 대상이었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고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던 애벌레를 연상케 한다.

오래된 친구 호리키에게 그렇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뺐겼으면서도,

누에콩과 2마리 동물의 환상이나 떠올리며

외마디 비명이나 분노조차 표현 못한 채

현실을 왜곡하고 삶의 희망을 놓아버리는 그.

부인을 대변하지도 친구를 탓하지도 않는 그다.

주어진 고민, 바꿀 수 없는 현실, 지나온 삶 

이 모두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모든 건 자초한 불행인 듯 느끼며 바스러져 간다.

소설 내내 말한 것처럼,

'못하는 삶'이 아닌 '안하는 삶'의 모습 그대로.


그런 요조에게 예상치 못한 불행은 하나 더 언져진다.

술로 의지하며 눈밭에 각혈까지 하고마는 그가

근처 약국을 찾아 들어가 만나게 된

미망인인 절름발이 약사.

그녀의 모든 처방을 권위와 호의로 받아들이며

알코올 중독자의 삶 대신 모르핀 중독자의 삶으로 

너무도 자연스레 한발을 내 딛고 만다.

몸에 안좋은 술말고 생각날 땐

모르핀을 해보라 권한 그녀에게 감사해 하며.

일순간의 약기운으로 활력을 찾은 그는 

기적같이 샘솟던 기운도 잠시였을 뿐,

결국 술이 아닌 약을 간절히 찾아 헤매며 

그런 자신의 모습 앞에 다시 좌절하고 만다.


그렇다면, 모르핀을 권한 약사는 

요조를 의도된 파멸로 이끈 악한 인물인걸까? 

설사, 의도하지 않은 파멸을 야기 했을지라도 

결과론적으로 모르핀을 술 대신 권한 

그 죄만은 반드시 물어야 했을까?


생면부지의 둘이 처음 만나게 됐을 때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마치 알아보듯 말없이 운다.

초췌한 요조를 보곤 이유도 모른채 울기 시작한 약사와

자신을 보고 울어주는 약사를 보며 우는 요조.

불행한 자는 다른 이의 불행을 민감하게 알아챈다는 것을 

불행했던 사람 요조는 육감으로 이미 이해하며 느낀다.

그래서인가, 어디에도 약사를 향한 원망은 없다.

친구 호리키에게 그랬던 것처럼.


몸의 고향이 아닌 마음의 고향이 없는 자.

그게 요조의 모습이자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


그에게 약사의 모르핀 또한 불행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요조에게 불행의 시작은 익숙하고 거절하기 어려운 

선의나 신뢰처럼 다가와 버린다.


그는 소설의 마지막, 

다시 가족에게 자신의 구제를 요청한다.

그때 찾아온 여럿 중에, 겁탈범 호리키가 끼어 있는 건

인간실격이 자서전이지만 소설처럼 읽힐 수 있는 역설의 장치로,

자신을 망친 자가 자신을 구하려는 자들과 섞여 다가오며

거부할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요조의 삶의 방식 그 자체를 이 순간에서도 보여주며 

독자마저도 좌절시키는 듯 보이게 했다. 


이 책이 '인간실격'이란 이름을 달게 된 건,

정신병원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자신을 인간실격이라 불렀기 때문인지

이전까지의 모든 삶 모두를 고려해

그리 이름부치게 된 것인진 정확히 알 순 없다.

하지만, 결국 해볼 수 있는 모든 발버둥 끝에

최종적으로 자신을 포기하듯 내려 놓으며

스스로를 실격이라 부르게 되는 요조.


소설 속 주인공 요조의 삶은 27살까지의 기록으로 담겼고

저자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삶은 38살에 끝이 났었다.


스토리의 진짜 마지막은, 

요조의 소식을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남긴 기록과 사진을 두고

작중 화자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요조의 마음을 대변하는 마무리인지

타인의 눈에 비춰진 본인의 삶이

이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이 또한 알 수 없지만,

매정한 아버지가 잘못했다며 

요조를 위해 대신 편들어 주는 듯한 말을 하며

'하나님 만큼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로 

요조를 기억해주는 마담의 모습에,

후일 실제 자살해버린 저자 다자이 오사무가

세상도 그리 자신을 바라봐 주길 원하는

간절한 바램이 담겼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유명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그의 책들에서 매번 '애착장애'로 고생했던 

대표적인 인물 3명을 등장시킨다.

부모로부터 기인했을 어린시절의 내적 불안정이 

평생을 고질병처럼 따라다닌 3명의 인물로써...

서머셋 모옴, 헤르만 헤세, 다자이 오사무.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아는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군가의 평가로써가 아닌

과거 속 그 스스로가 묘사해 낸 모습으로 보면서 

새롭게 이해되는 해석들이 많이 생겨났다. 


시게코 같은 어린아이에게 조차 

자신의 정체를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러워 자신을 방어해대던 요조.

그의 말 못할 외로움이 만들어 낸

오래된 습관의 고통들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하나님의 천국은 믿을 수 없지만

하늘이 내리는 단죄는 믿고 

그것만 곱씹는다던 요조의 내면의 목소리들.


다자이 오사무는 삶 내내 생각의 감옥에서 살다 갔다,

본인에겐 지옥이었고, 독자들에겐 선물로 남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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