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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갇힌 사람들 - 화면 중독의 시대, 나를 지키는 심리적 면역력 되찾기
니컬러스 카다라스 지음, 정미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8월
평점 :

디지털 기기, 디지털 컨텐츠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장점이 아닌 단점을 논하고 있다.
공감하는 바가 컸고 주위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얼핏, 문화비평서 같은 책일거라 속단하기 쉽지만
매우 통찰력 있고, 박학다식하며, 사회변화에 관심이 많은
그리스 출신의 미국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며
실제 인간관계와 자유, 올바른 정신을 깨워주는 내용들이다.
정신을 깨워주는 책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방송 풍조나 문화흐름을
유사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견해가 많았고,
단순 심리학 정보가 아닌 삶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선별적 이야기들이 이를 뒷받침 해 주어서다.
대중화 된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은
오래된 생활패턴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이걸 가장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저자의 설명방식이 인상적인데,
독자에게 오히려 물어오는 질문으로써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세상 중심으로 개인이 부속처럼 돌아가고 있는지'
아님 '본인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지'
그 어떤 쪽이겠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자동반사적으로 답변을 생각해 본 난 틀렸다.
저자는, 세상이 개인 중심적으로 돌고있다고 했으니까.
얼핏 이해되지 않았다.
이 얘기에 앞서, 자유롭고 편한 사회적 분위기가 아닌,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혹 심기를 건드릴까
의견 하나도 편하게 내보이기 어려운
강요된 디지털 문화풍조를 느끼며,
저자와 주변인들은 본능적으로 세상이
잘못 되어가는 걸 감지하고 있단 말을 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것과 앞선 질문은 서로 다른 의미였다.
디지털 세상에서 소수가 분위기로 만들어가는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위험성과 별개로,
자신의 세상에만 과몰입 하게 만드는
앱과 플랫폼의 사업지속 의지는,
단순히 그 환경에 익숙해지는 걸 넘어
사용자를 중독되게 만들고 붙잡아두기 위해,
개인별 관심과 요구사항을 맞춤 서비스 제공하며
마치 세상이 개인을 중심으로 돌듯 느끼게 해서
세상이 나에 맞춰 돌고있다는 착각까지 가능케하는
맞춤형 서비스의 폐해를 언급하는 거였다.
이 책은 큰 틀로써 이런 류를 많이 다루지만
여러 이야기가 액자형 구조처럼 많이 들어있기에,
벗어난 듯 연관된 듯, 꽤 많은 부수적 이야기가 있어서
정보와 재미를 모두 주는 책이라 보는게 더 좋다.
예를 들면,
가성 BPD(경계선 성격장애),
팽창하고 있는 심리상담 시장의 유해성,
자연치유적인 심리 회복능력,
조지 브라운의 우울증 발병에 관한 연구,
2008년 팔레츠니 신부의 배 만들기 기사,
가짜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전문가의 인터뷰 등
대부분 일반적이라고 알려진
이론이나 풍조를 뒤집는 글들도 많았는데,
단순주장이거나 저자의 견해가 아닌
독자로써 수긍하고 인정할 만한
근거와 논리를 가진 전개라,
다양한 이야기들임에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일관성 있는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조지 브라운의 우울증 연구를 보면,
화학적 불균형(내인성 우울증)과
외상적 사건경험(반응성 우울증)에 관해
의외의 우울증 연구결과를 실었는데,
친구나 힘이 되는 사람이 없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겪던 사람은
나쁜 일이 발생하면 우울증 발생가능성이 높으며,
지지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안좋은 일이 발생하면
모든게 한꺼번에 터지듯 누적된 게
우울증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결과였다.
이게 시사하는 바란, 우울증이란
단순 비합리적 반응이 아닌
뇌의 역경에 관한 정상적인 반응이란 점이었다.
신경학적 문제가 아닌, 한 인간의 삶에서
심각하게 잘못된 무언가의 결과로 야기됐고,
평생에 걸친 장기적 스트레스 요인이
지치게 만들고 절망을 일반화 시켜버린 사고가
우울증을 만들어버린 거란 설명.
즉, 스트레스 자체가 아닌 만성적인 유해한 환경을
더 원인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연구 결과였다.
저자는, 이 연구를 조금 확장시켜 설명하면서
디지털의 유해한 환경도 결국
개인의 우울증을 비선택적으로 발병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다른 이야기 중, 팔레츠니 신부의 이야기는
마치 실화가 아닌 소설같기도 하다.
그가 중독치료소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삶에 의욕이 없었다, 흐린 눈동자, 비슷한 태도들까지.
그들을 향해 신부는 심리상담치료가 아닌
뜬금없는 계획 하나를 제안했다.
우리 다같이 배를 만들어 세계여행을 가보자는.
배, 세계여행...
저자는 이 기사를 읽으며 노아의 방주 같은
발상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느꼈다.
허황되고 불가능해 보이는 발상 같았으니까.
물이 있어서 배를 띄워보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다같이 배를 제작하고
그걸 가지고 여행 가보자는 계획이라니.
팔레츠니 신부와 25명의 중독자들은
그걸 실제 계획에 옮겼다.
저자같은 정신과 의사 겸 심리치료사에게
이 기사가 신화창조처럼 보였던 이유는
신부가 낸 아이디어에 있지만은 않았다.
그걸 만들어 갈 동안, 25명의 중독자들이
각자 중독원인을 끊고 일에만 몰두했다는 것.
저자는 이걸 목표의식의 좋은 예로 소개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신부는 배가 완성되기도 훨씬 전
심장마비로 돌연사 했고, 상당한 기간 후
조그만 기사로 배의 완성을 알리는 기사를 읽게 된 저자.
이런 얘기만 보면 자기계발서라 해도 믿겠다 싶었다.
이 이야기로 저자는, 심리상담이나 정신치료 대신
목적의식 자체가 얼마나 각자의 삶에
더 필요한 세상인지를 피력하고자 했다.
거기에, 미국식 뉘앙스로 이런 말도 한다.
상담은 결국 돈을 주고
누군가와 필요한 대화를 통해 치유과정을 겪는 것인데,
사실 진짜 필요한 건
돈 없이도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또는 친구가 필요한게 본질이라는 것.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수많은 상담사, 특히
좋은 결과를 내온 상담사들이 발끈 하겠지만,
자신도 같은 일을 해온 사람이란 걸 부각시키며
현대사회의 인스턴트식 인간관계와
유료 심리상담이 갖는 한계점을 언급했다.
읽다보면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아쉬워질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