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 -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이끄는 입보리행론
산티데바 지음, 하도겸 엮음 / 시간여행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한구절 버릴 곳이 없었다.

불교 신자만이 보고 느낄 책이 아닌

대다수에게 받아들여질 내용을 담고 있다.

보리심이란 자애.

그것으로써 전하려고 하는 

지혜의 확대와 발현을 

불교적 의미로써 풀이하는 책.

이런 책은 사실 서평이 불가능하다.

그냥 문장 하나하나가 물안개처럼

가슴과 뇌속에서 피어나고 스며드는데

이를 스토리처럼 전달한다는게 어려우니까.

불교의 윤회라는 말을 예전엔

그나마 단어적으로는 공감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냥 사전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러나, 이 말을 꺼내는 건, 윤회의 의미를

거짓이나 믿기 어렵단 의미로 꺼낸 건 아니다.

그저, 윤회란 단어마저도 자꾸 깊게 생각한다는 건

개인적으론 미련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뿐.

책이 나름 심도있게 불교적 지혜를 전하는 책이라

그냥 에세이처럼 읽히는 부분들만 있는건 아니지만,

그중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진중한 느낌으로 남는

그런 부분들을 소개해 보려한다.

선업과 악업.

선업을 쌓았다, 악업을 쌓았다.

그럼 이 둘은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선업은 쌓아도 그 발자국의 흔적을 지속시키기가 어렵다,

하지만, 악업은 잠깐의 일탈 정도일지라도

그 흔적을 오래 그리고 깊게 남긴다.

맥빠지는 얘기다, 좋은게 오래가고

나쁜게 쉬이 증발해야 희망적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아쉬운 표현은 살다보니 

참으로 진리임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선업은 공기와 같다.

하지만 악업은 미세먼지와 같다.

공기는 그냥 마셔지고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존재감은 너무 미비하지만,

악업은 미세먼지처럼 오감을 자극하고

그 악영향이 치명적이고 할퀴듯 흔적을 남기는 거 같다.

그렇기에 책속 악업과 선업의 표현에 있어 

난 공감의 고개짓만 끄덕일 뿐.

현대적 감각으로 잘 풀이된 불교서적이라

전혀 불교적인 내적동의 없이도 

매우 잘 읽히는 신기함을 경험할 수 있을 책이다.

다시 돌아가 만나기가 어렵다는 책 제목도

이미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어야 할지

이리 오라 손짓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나가면 그만인 한 순간이니 현재를 탓하지 말고 

누군가와 어긋나지 않게 그 인연을

잘 누리라는 충고같은 글귀들.

글들을 읽으며 계속 생각이 정화되고 있다는 

구도적 편안함에 그 감사함을 지울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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