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위안싱페이는 중국 고전문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도연명집전주陶淵明集箋注』, 『도연명연구陶淵明硏究』가 눈에 띈다. 도연명의 작품 전체를 주해하고 도연명 연구에 권위가 있는 학자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에서는 후대 화가나 선비들이 도연명의 시를 제재로 그린 그림들, 그림에 붙인 발문들, 그 그림을 감상한 사람들의 글들, 그리고 도연명에 대한 추화시인 화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소명태자 소통이 그의 작품을 모아 『문선(文選)』에 몇 편 선록한 뒤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도연명을 활발히 그리기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 부터이다.

송(宋)의 이공린(李公麟)이 그린 2폭 「귀거래혜도(歸去來兮圖)」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그린 것이다. 이공린의 이 작품은 후대에 그려질 그림에 도연명의 모습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현존하는 도연명 관련 그림의 화법은 대체로 이공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202p) 이공린의 작품으로 알려진 모사본 미국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 소장 7폭 연명귀은도(淵明歸隱圖)는 많은 사람이 이 그림의 배경이나 도연명의 모습을 따라 그렸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국화, 소나무, 술은 도연명을 나타내는 것들로, 그림에서도 도연명을 이미지화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귀거래사(歸去來辭)와 관련된 그림은 원, 명, 청 시대로 가면서 그 원형을 따르다가 자유로워지고 다양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도연명 관련 그림의 화법은 대체로 이공린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서화가 중국 본토 보다는 타이뻬이와 미국에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워싱턴 프리어 미술관과 타이뻬이 고궁박물원이 그 소장지의 예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언젠가 가서 직접 보고 싶은 그림들이 보인다.

이 책을 보는 즐거움은 그림을 통해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 흥취(興趣)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림과 함께 그림의 제재(題材)가 된 시구를 옆에 써놓고 낙관을 찍는다. 글씨도 한 편의 예술이었으니 그 글씨가 흘러간 자취와 낙관의 모양과 찍힌 자리, 남겨놓은 여백은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을 완성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낙관의 주인은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힘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그림에 붙인 발문들을 보며 시대를 흘러 유명한 문사들을 거쳐 간 오딧세이를 상상하게 된다. 옹방강, 소동파 등의 감상자들의 이름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고, 수장인(收藏印)을 남긴 여러 후대인들의 손길과 숨결도 느낄 수 있다. 건륭감상(乾隆鑑賞)이라는 수장인은 청대(淸代)에 도연명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분명 닭이 그려져 있지 않은데 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림, 술 취한 사람과 취하지 않은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데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 모습, 세 사람이 고개를 젖히면 웃고 있어 그들의 옷차림과 신발까지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는 발문이 붙여진 그림, 도대체 지필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과 글을 읽는 아비의 모습, 술 취해 부축을 받는 도연명의 모습.……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들이 많다. 한편 망중한을 즐기고, 농사일 하고, 벗을 그리워하는 그림에서도 도연명의 자태는 표표하다고 말한다.

「도화원기(桃花源記)」는 도연명은 진나라의 유민(流民)이 산속에 들어가 마을을 이룬 것으로 썼으나 후대로 갈수록 사대부들에 의해 이상향으로 바뀌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역시 그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이 책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림뿐만 아니라 많은 문사(文士)들이 도연명의 시에 화운(和韻)한 화도시(和陶詩)를 소개하고 있다. 눈에 띈 사람들은 소동파나 이백, 조맹부, 건륭제였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도연명의 시를 좋아했고 배우고 많은 화도시를 남겼다고 한다. 건륭제가 도연명의 빈사(貧士)에 화운한 시를 보며 과연 한 나라의 황제가 가난한 선비의 마음을 알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나라의 선비였던 조맹부가 청나라에 출사한 자신을 향한 비난에 도연명을 그려 대답했다는 것을 보니 모든 시대와 사조, 모든 처지마다 공감되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동파(東坡) 이후로도 도연명의 작품 수보다 훨씬 많은 화도시들이 창작되어져 왔다.

다음은 소식의 화도시이다. 참으로 도연명의 신운(神韻)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손님 하나 내 집 문 두드리고
마당 앞 버들에 마을 매었네.
텅 빈 마당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닫힌 문 앞에서 한 참 서 있네.
주인은 책 베고 누워
꿈에 평생의 벗을 만나고 있네.
갑자기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술잔을 쏟아버렸네.
허겁지겁 옷 입고 일어나 손님께 사과하니
꿈에서 깨어도 모두 실례하여 민망해라.
그예 고금사를 이야기하니
답하지 않아도 얼굴 정다워라.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 하기에
무하유의 땅에서 왔다고 말해주었네.

-264p


1,600여년이 지나도록 많은 도연명을 그린 그림과 화도시가 창작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당연히 그의 글 안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의 정서를 끌어올리고 마음을 달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귀거래사」와 「도화원기」는 화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학 제재이다. 출사한 선비들에게는 동경할 만한 내용일 것이다. 복잡다난한 생활 속에서 망중한의 한 때를 동경하는 것이리라.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이 겹쳐진다.)

도연명은 명말 청초의 유민화가에게 인기가 많았다는데, 그 역시 도연명이 두 왕조를 섬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여 추숭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이 그런 길을 가지 못한 것을 덮으려 오히려 도연명을 앞에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도연명의 시를 읽으며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림을 보면 그 곳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노래하지만 거기에 배어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이 그 많은 그림과 화도시로 공명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잊은 작가는 분비물에 대해 쓸 뿐’이라고 했던 윌리엄 포크너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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