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 - 세계 미술관 기행 3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음, 김현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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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꿈, 다시 같은 그림 앞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헤매다가 아이들과 만나 웃으면서 잠이 깼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 전 같기도 하고, 잠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파리에 루브르가 있다면 마드리드에 프라도가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험이었다. 오늘날의 프라도 미술관은 명실상부한 회화작품의 보고다. 1819년 '왕실 박물관'으로 문을 연 이후, 왕실과 수도원 소유 작품들의 국유화와 구입으로 회화 소장규모는 압도적이다. 2(3)까지 방들로 이어지는 전시실을 채운 작품들은 경탄을 불러 일으켰다. 프라 안젤리코, 벨라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 무리요,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히에로니무스 보스, 티치아노, 루벤스, 램브란트, 알프레히트 뒤러……. 무지막지한 작품들의 연속, 골라서 보는 것도 벅찬 곳이다. 몇 번을 방문해야 다 볼 수 있을까?

 

미리 공부하고 갔음에도 아이들이 2(3)부터 내려오면서 지도에서 볼 작품을 픽하고 작전을 짜지 않았다면, 0(1)부터 군중들과 함께 움직이다가 마지막에는 지쳐서 놓친 작품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것도 봐야 돼를 외치며(조그맣게^^) 멈추었고, 작전대로 움직이는 아이들과 헤어졌다가 겨우 따라잡곤 했다. 발바닥이 불이 나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0(1)까지 도착하는 동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ninas>,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 강하>,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등의 작품들 앞에 조용히 앉아 선생님 얘기를 듣고 있는 열 명 남짓의 유치원 아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딸이 ! 처음으로 부럽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막내와 달리 미술 감상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둘째도 이번 여행 중 프라도 미술관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 하나 보기 위해 마드리드에 가도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바르셀로나를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경외에 가까운 감상으로 본 후에도 여전히 프라도를 아쉬움으로 기억했다.

 

이 책에는 프라도 미술관의 탄생과 왕가와 귀족들의 작품 수집 열정, 역사적인 배경, 궁정화가들과 스페인에 머물던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시된 중요 작품에 대한 해설과 역사적 배경 설명도 자세히 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벨라스케스와 펠리페 4세의 관계, 그가 그린 당시 스페인 왕가의 그림 들은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 네덜란드의 역사를 소환한다. 또한 궁정화가였던 고야와 알바공작부인 그리고 고도이의 관계 역시 작품에 대한 해설을 통해 알게 되는 이야기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려고 한다면, 이 책과 함께 스페인 예술로 걷다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스페인 예술로 걷다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다. 서로 보완되는 점이 있다.(나중에 페이퍼로 쓸 예정)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 미술사의 세 인물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엘 그레코 작품을 위해 전시실로 여러 개의 방이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품들도 걸려있다. 하루에 다 감상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브레다의 함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고야의 <180853>과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 강하>는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춤동작과도 같은 팔 모양과 기울어진 몸의 포즈는 시리도록 푸른색과 함께 다른 형태의 '피에타'로 다가온다. 책으로만 공부했던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서의 소실점은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제단화의 형태로 그려진 히에로니무스보스의 <쾌락동산>의 기괴함은 눈을 돌리고 싶은데 자세히 보게 되는 이중적 감정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여기서 뒤러의 그림 <자화상><아담과 이브>를 만나는 게 얼마나 행운으로 느껴지는지! 인상적이었던 전시실은 고야의 귀머거리 집에서 뜯어온 작품들로 이루어진 검은 그림'들의 방이다. 벽지에 그렸던 작품들이라 훼손이 된 자국이 있다. 여기에 <파묻히는 개>가 있었다.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이런 그림을 그렸던 고야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한참 생각하게 했었다. 개의 절망적인 상황과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던, 그러나 무시무시한 적막만이 둘러싼 그 고독에 전율했었다. 그리고 <사투르누스>도 있었다. 자식을 잡아먹는 그의 눈에 서린 고통과 공포! 몸의 쇠락과 상실의 고통으로 인한 난청(청력상실)을 겪으며 자신을 이 어두운 집에 가두던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작품들이었다.

 

미술관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사진 찍느라 감상에 방해되지 않아 좋았다. 건물 주위에는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무리요의 동상이 서있다. 스페인에서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화가인가를 의미한다. 고야는 공사 중인 입구에 서 있어서 가려져 있었고, 무리요는 패스, 벨라스케스 동상 앞에서 잠시 사진을 찍었다.

1128일 마드리드는 아직 가을이었다. 초록의 상록수들 사이에 낙엽수들이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고, 벨라스케스의 하얀 동상 앞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전시실 벽을 채운 그림들이 떠오른다. 꿈속에서 나는 그 방들을 오가며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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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12-06 0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방금 돌아오셨으니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쓰신 기록이라 더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곧 스페인 여행을 할 참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레이스 2023-12-06 06:32   좋아요 1 | URL
아!
그러세요?
제가 다시 설레네요^^
계절은 여기보다 한달정도 늦다고 보면 됩니다.
행복한 여행되시길 바래요~~

새파랑 2023-12-06 0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다녀오셨군요~! 완전 부럽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즐거운 관람이 되셨을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3-12-06 08:16   좋아요 2 | URL

좋았습니다.
넘 바쁘다가 간 여행이라... 마드리드를 넘 짧게 다녀와서... 언제 다시 갈지, 아예 못 갈지 모르지만 마드리드에는 한번 더 가고 싶네요.

호시우행 2023-12-06 0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족여행으로 2008년 스페인에 갔을 때 들렀던 프라다 미술관이 생각나게 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

그레이스 2023-12-12 10:27   좋아요 1 | URL
다녀오셨군요.
다른 계절의 마드리드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3-12-06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루브르에 갔을 적에는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
찍어도 된다 했는데...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물론 사진 찍지 말라고 해서 모
두가 안 찍는건 아니었지만요.

프라도 뮤지엄에 다녀 오셨다니
고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 나도 가고잡다 에스파냐~!

그레이스 2023-12-06 09:58   좋아요 3 | URL
^^
마드리드 왕궁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사진 찍다가 엄청나게 큰소리로 창피당하는걸 봤어요.
게다가 프라도에는 거의 전시실마다 한사람씩 안내원이 앉아있어서^^
전 사진 못찍게 하는게 더 좋은 듯요.
오롯이 감상만 하다 나올 수 있어서...!

언젠가 꼭 가시길!

페넬로페 2023-12-06 1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라도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군요.
여행 다녀오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오래 전 같기도, 또는 내가 거기 갔다 온 건 맞나, 하는 기분~~공감합니다.
근데 제게 지금 아련한 정취로 더 오래 남아 있는 건 그냥 여행지에서의 공원 벤치, 카페 테라스같은 멍때렸던 공간이더라고요 ㅎㅎ
사그리다 파밀리아, 가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3-12-06 12:01   좋아요 3 | URL
^^
사그라다 파밀리아!
감동이었습니다.
갑자기 오르간 연주 음악이 울리는 바람에 울뻔했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장소에 있는듯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