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의 온 가족은 전번제(全燔祭)의 제물로 멸족을 당했다.(사랑의 이야기16p)” 그가 누구인지 강렬하게 알려주는 문장이다. 모든 것을 태우는 전번제로 그가 당한 인류의 비극적 역사를 환유한다. 번제(burt offering), 제물(祭物)을 모두 태우는 것, '()'은 그들이 당한 비극의 참혹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싱어의 소설 주인공 아론(쇼샤) 허먼(사랑의 이야기) 주위에는 항상 여인들이 존재한다. 적어도 3. 그 사이에서 주인공은 갈등하고 안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대인의 관습에 의해 맺어진 여성, 욕망의 대상인 여성,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여성, 이념 때문에 그를 떠난 여성 등. 그녀들 사이에 있는 주인공의 갈등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꼭 페미니스트적 시각으로 볼 필요도 없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의미들로 볼 필요가 있다. 그녀들은 그와 신앙, 관습, 이념, 자본, 도의 등으로 묶여 있고, 그것들을 상징한다. 그가 떠나지 못하던 유럽 유대인 공동체, 그에게 구원이 되지 못하는 이념이나 자본, 저버리고 떠나면 배덕을 저지르는 게 되는 지켜야 할 도의, 육체의 욕망을 상징하고 있다. 무너져 가는 공동체, 고립, 전쟁, 수용소, 그리고 이주의 서사를 가진 주인공의 불안과 공포와 정체 상실을 읽는다.

 

쇼샤에서 당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유럽의 상황과 부패하고 고립되어가고 있는 폴란드의 유대인 공동체를 보여주고 있다. 아론은 항상 금지된 것을 배우고 지키며 살아야 했던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희곡 작가다. 이디시어로 작품을 쓰는 그는 신문에 글을 기고함으로 그의 공동체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유대인 철학자 모리스 파이텔존의 위선적인 모습에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조차 모순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눈치 채게 된다.

 

그에게 미국 배우 베티, 어릴 적 좋아했던 쇼샤가 등장한다. 결혼을 종교적 광신주의의 흔적”이라고 말하는 도라와 육체적 관계만을 맺고 있었다. 베티와 샘 드라이만의 호의에 의해 미국에서 올릴 희곡을 쓰지만, 그의 작품은 흥행과 자본이 목적인 제작사를 설득하지 못한다. 히틀러의 점령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쇼샤와 결혼함으로 폴란드에 남는다. 쇼샤의 순수함을 사랑했다기 보다 그가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그녀에게서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그가 미국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그곳에서 작가로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게 첫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또한 당시 많은 유대인들처럼 그 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918년에 끝난 전쟁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 자신의 뿌리를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 순수성을 지키려는 열렬함과 부패가 이율배반적으로 공존하는 민족, 그들을 고립시키는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 유럽, 자신을 오라고 손짓하는 미국,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론은 약하고 여린 쇼샤와 결혼하는 것으로 공동체를 선택한다. 그는 과연 선택한 것일까? 당시 유럽의 많은 유대인들의 혼란과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던 막막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고 생각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그 혼란과 막막함은 지속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사랑의 이야기의 주인공 허먼은 폴란드 농가의 헛간에 숨어서 살아남았다. 그를 목숨 걸고 숨겨준 야드비가는 그의 부모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였다. 전쟁이 끝나고 뉴욕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헌신적이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마샤와는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마샤와 그녀의 어머니 시프라 푸아 역시 유대인으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러시아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그의 전처 타마라도 그를 찾아온다. 허먼 역시 이 세 여인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는 모두에게 배덕자이며 계명을 어긴 배교자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랍비에게서 돈을 받고 글을 대필하는 것이다. 그가 속한 유대인 사회는 유럽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여전히 하시디즘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본에 잠식당하고 은밀히 부정에 가담하고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드비가, 마샤, 타마라 세 여인에 둘러싸인 허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 사이에서 질식해 가고 있는 그는 유대인 공동체에도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도 속할 수 없는 길을 잃은 존재다. 살아있으나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쇼샤의 아론이 쇼샤를 선택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붙들려고 했던 것과 달리 전쟁 후 사랑의 이야기의 허먼은 사라져버린다. 어느 다락방에서 여전히 자신을 찾고 있는 적에 대한 공포로 인해 악몽을 꾸고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소설에서 싱어는 유대인 사회의 전쟁 전과 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후(戰後), 살아남은 자들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 라는 질문에 아무 답도 얻을 수 없는 공허를 본다.

고통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죠. 특히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는요.(쇼샤396p)

인생에는 무엇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피에 젖은 땅을 읽고 있다.


<『쇼샤사랑의 이야기는 이전 출판된 오래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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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3-03 0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싱어의 신작 <노예>는 안 읽으셨기 바랍니다. 저는 곧 개봉할 독후감에 작가 싱어한테 대고 푸짐하게 욕설을 퍼부어놨습니다.

그레이스 2023-03-03 08:21   좋아요 1 | URL
ㅎㅎ
집에 없어서 읽지 않았습니다. ^^
비판하는 리뷰 보면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골드문트님 리뷰는 골라서 읽지 않는데 도움이 되요^^
기다리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3-03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득 오래 전에 만난 아트 슈피겔만
의 <마우스> 생각이 나네요.

혹독한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지만,
결국 더 살 수가 없어서 극단적 선
택을 했던.

<쇼샤>는 구판으로 구해 두었는데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

그레이스 2023-03-03 09:04   좋아요 2 | URL
저는 슈피겔만의 쥐 어디다 뒀는지 찾고 있는데,,, ㅎㅎ
쇼샤 새로 출간된 책 부분부분 비교해봤는데, 더 좋은 것 같아요.^^

서곡 2023-03-03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적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만) 봤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연기가 대단했던 기억이...헤르만이 왜소하고 불쌍해보일 지경으로요 3월 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3-03 13:55   좋아요 1 | URL
아!
영화 봐야겠네요.
소설에서도 허먼(헤르만)이 불쌍해 보이긴 했어요.;;

페넬로페 2023-03-03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내용이네요.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그들 내부의 이야기인 것 같네요^^

그레이스 2023-03-03 23:49   좋아요 1 | URL

정통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자본과 영합한 자들 모두 혼란을 겪고 있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전후에도 역시 비슷한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죠.^^

페크pek0501 2023-03-1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에 젖은 땅을 읽고 있으시다니 제가 사 놓은 책,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이 생각납니다. 아직 못 읽음.ㅋㅋ
왜 책은 그때그때 읽지 못하고 한참 후에나 읽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한꺼번에 많이 구매해서 그런가 봐요.
욕심을 줄여야 할 것 같아요.ㅋㅋ

그레이스 2023-03-10 14:3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피에 젖은 땅도 사놓은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펼쳤습니다.
지금은 중단 사태 ㅠㅠ

페크pek0501 2023-03-10 14:51   좋아요 1 | URL
나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ㅋㅋ 1년이 넘어 펼치셨다니...
아마 저도 1년이 넘어야 펼칠 모양입니다.ㅋㅋ

그레이스 2023-03-10 14:5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냥 일상입니다.^^

2023-03-19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9 0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