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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당통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9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평점 :
자정까지 레포트 제출인데, 9시에 내용을 봐달라고 한다. 독일 희곡 한편을 보고 비평을 써서 제출하는 과제라고…. 읽지도 않은 책 비평을 어떻게 봐주란 얘기인지. 암튼 읽었다. 뭔가 설득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만 지적하고 마무리 했다. 이미 레포트는 제출했겠지만 읽어보기로 했다.
희곡에는 당최 손이 가지 않는다. 파우스트 읽을 때도 몰입하는데 까지 오래 걸렸다. 셰익스피어 읽을 때는 그나마 많이 알고 있던 내용이라 그런지 조금 나았지만, 희곡은 여전히 재능 없는 배우의 연기처럼 덜그덕 거리면서 읽혀진다. 유진 오닐의 희곡도 미뤄두고 있는 상태인데, 결국 딸내미 때문에 희곡을 읽게 되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24살에 일찍 죽어서 세 개의 작품밖에 없다. 「보이체크」는 1837년에 뷔히너가 죽은 이후 1879년에야 비로소 상연되었다. 그리고 이 희곡이 출간될 때는 상당히 손질된 상태로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서로 인과관계가 아닌 개별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장면들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인간들과 사건들이 주인공 보이체크에게 영향을 주고, 보이체크 또한 각각의 장면마다 심리상태가 급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이체크」는 실제로 당시에 있었던 살인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한다. 1824년 살인죄로 공개 처형된 가발장이 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를 모델로 하고 있다. 뷔히너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형집행의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본다. 보이체크의 정신이상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인간을 정신이상으로까지 몰고 간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보이체크는 대위의 이발사다. 산업사회에서 최하위층의 삶을 살고 있는 보이체크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벌기위해 3개월 동안 의사의 임상실험 대상이 된다. 보이체크를 중심으로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의사, 도덕과 명예를 강요하며 보이체크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대위, 돈과 육체의 욕망을 채워줄 남자들에게 몸을 주는 마리-마리는 보이체크가 사랑하는 여인이고, 그의 아들을 낳았지만 아이를 사생아처럼 키우고 있다. 가난 때문이다. 마리와 같은 여인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차지하는 군악대장. 대위와 의사는 보이체크의 몸과 정신을 착취하는 이들이다. 그들과 함께 마리와 군악대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심리 상태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소외, 박탈감, 수치심, 질투, 분노, 좌절 등의 감정 상태에 빠진 보이체크는 결국 마리를 죽이고 미쳐버린다.
각각의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화와 사건들은 그 시대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봉건적인 가치관과 계급사회로부터 온 권위주의는 여전히 유물로 남아있다.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으로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고, 새로운 계급이 탄생되었다. 환원주의 시대인 것이다.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여인을 살 수도 있고, 사람을 당나귀로 바꾸는 실험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돈을 얻기 위해 마리는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보이체크는 의사에게 몸을 판다. 두 사람의 모습은 당시 하층민의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이 보이체크가 정신이상을 보이도록 한 원인이라는 게 작가의 진단인 것으로 읽혀진다. 보이체크가 대위에게서 받은 멸시나 의사로부터 받은 모욕은 몸 그 자체에 새겨지는 것이다. 이성이 작동할 수가 없다. 그의 인격이 박탈당하는 장면에서 모욕과 수치가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질투 때문에 몸서리치는 보이체크의 분노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의 한 감정을 짧게 한 장면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사람에게는 덕이 있어야 한다며, 보이체크를 비난하고 가르치는 대위에게 보이체크는 말한다.
보이체크 : 네, 대위님, 덕 말입니다! 저에겐 아직 그게 부족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같이 천한사람들에게 덕이란 게 없어요. 그러니 그저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죠. 하지만 제가 신사라면, 모자며 시계며 예복이 있고, 고상하게 말한다면, 그땐 저도 예의 바르게 행동하겠죠. 덕이란 참 멋지지요. 하지만 전 가난한 놈인걸요.
-27p
보이체크의 말을 통해 하위계층의 보편적 가치관을 보게 된다. 신사처럼 입고 고상하게 말하는 사람에게서 덕이 나온다. 돈에서 덕이 나온다는 이야기. 지금은 우리가 이 말을 부인하겠지만, 그 시절의 비참한 가난 속에 살던 하층민의 삶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단정 짓기 힘들 것 같다. 그들이 도덕이나 이성에 의해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힘들다고 뷔히너는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환경이 개인의 윤리와 도덕성을 이런 식으로 지배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는 아니어도 한 인간이 이런 모욕적인 삶을 살고 존재할 자리를 잃게 되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필경사 바틀비」 역시 자본주의와 기계주의 사회에서 마음이 고장 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오래 전이나 현재나 인간이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을 생각하게 된다. 사회 안전망이라는 것이 복지에 있다는 것, 개인이 삶을 영위하고 그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