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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의 시집 ‘조용한 개선’에는 가는 것 또는 떠나는 것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떠남에 대한 시들이 마음에 전해지면 파문이 인다.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 모든 것은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나도 꽃으로 서서‘), ˝우리는 깨끗이 직각으로 서로 꺾여져 가자˝(‘해부학 교실 1‘), ˝나의 사소한 기억도 언젠가 저 흰 꽃잎처럼 날아가 버리겠지.˝(‘기억의 하늘‘),

˝나는 나를 지켜준 모닥불의 온기를 이 들길에 고이 묻고 떠나리.˝(‘저녁 들길에서‘),˝갈 길은 지천이어도 마음은 때없이 나그네로다.˝(‘다섯 개의 변주‘), ˝오래 기다리다 이제 떠납니다˝(‘비망록 1‘),

˝나를 기다리던 골방의 친구는 멀지 않아 새로 푸르른 젊음을 장만할 것이고, 신대륙을 향한 경건한 소녀의 기도는 옛날에 나와 함께 나누던 꿈을 깨고 길을 떠날 것입니다.˝(‘제3 강의실‘), ˝나도 한때는 거기서 얼어 죽고 싶었다.˝(‘자유주의자‘)

시인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떠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들을 지은 것일 테다.

미국의 인지 심리학자 라파엘 뉴네즈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안데스 산맥의 인디언 부족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들에게 과거를 물으면 시야의 앞쪽을 가리키고, 미래를 물으면 등 뒤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는 이미 경험한 것들이어서 볼 수 있는 앞쪽에 있고, 미래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어서 등 뒤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슈테판 클라인 지음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7 페이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귀환에 대한 꿈은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귀환은 불발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궁금한 것은 안데스 인디언들에게 그리움은 없을까?란 것이고, 고칠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는가?란 것이다.

마종기 시인의 다른 시집들을 읽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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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은 국맛을 모른다는 법구경(法句經)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국맛을 느끼는 것은 숟가락이 아닌 혀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시골 교회를 떠나며 함께 했던 청년회원들에게 쓴 것이니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교회를 떠난 것이기보다 신앙을 떠난 것이라 해야 옳지만 요지는 교회든 신앙이든 잘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나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무지하고 영적인 것 즉 신앙에 대해 무감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상하게 은총이나 은혜 등의 말은 싫어한 반면 영성(靈性)이라는 말은 즐겨 썼다. 오독인지 모르지만 영성에 모종의 반체제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한 결과이다.

하지만 은총이나 은혜 같은 말과 영성이란 말은 통한다 해야 옳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여서 내가 은혜나 은총이란 단어들을 싫어했던 것 같다.

내 독서의 목적지 같은 것이 있을까마는 시를 잘 이해하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최근 어떤 문인의 페북에서 시인을 알려고 하지 말고 시를 알려고 하라는 글을 읽었다.(정확하지는 않다. 대략 이런 의미이다.)

나에게 들려주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를 읽으려 애쓰기도 했지만 한 번 읽고 쉽게 이해되는 시들을 주로 읽었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시들을 두 번, 세 번 그리고 그 이상 읽어서 이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구를 잃고 속상해 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친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라 말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자신을 떠난 사람은 친구가 아니니 잃은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나에게 적용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애써 읽어 이해한 경우가 거의 없으니 (진정으로) 읽었다 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최근 정신과 의사 서천석 님의 페북에서 강연을 하면 수입 면에서 훨씬 유리하지만 상담이 주는 치열함과 강렬한 상호작용, 그 속에서의 배움이나 발전이 없다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과학자 홍성욱 님의 페북에서는 이공계 수업 시간에 교수들이 칠판을 이용하던 옛날과, ppt를 만들어 와서 강의를 하는 요즘을 비교한 글을 읽었다.

양자역학을 가르쳤던 어떤 교수의 경우 속기를 배워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진도가 빨랐다고 한다.

강의 노트 없이 들어와 바로 바로 문제를 푼 교수도 있었다고 한다.

결론인 즉 ppt로 강의하면 강의에 즉흥성이 떨어지고 interactivity도 절반 이하로 격감될 것 같다는 것이다.

두 전문가의 글은 맥락이 같다. 치열함과 강렬한 상호작용, 그 속에서의 배움이나 발전 vs 즉흥성, interactivity(상호 대화, 쌍방향성)의 구도이지만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나의 문제의식에 적용하면 시에 대한 깊은 이해란 말이 된다. 나와 시인이 내 해석을 매개로 대화를 하는 것이니 상호 작용인 셈이다.

시인들의 강의를 자주 들으러 다니는 편인데 인상적인 경우는 지난 5월 31일 용산 도서관에서 들은 권현형 시인의 강의이다.

자기 시를 몇 편 골라 세부적으로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시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권현형 시인과 같은 경우이다.

물론 모든 시를 이렇게 배울 수는 없고 그렇다 해도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 내 문제의식으로 시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이론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편의 시를 거듭 읽는 것이다.

이론을 염두에 두고 읽는 것과, 느낌으로 읽고 이해한 뒤 이론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좋을까?

어려운 문제이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의 말을 생각하면 내가 시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고르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다가가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한 저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의 최상을 생각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대상이기를 그만 두게 하는 것이고 박학과 친숙함의 이중적 불명예를 피하는 것 등이다.(진은영 지음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에서 재인용)

이 말 특히 박학과 친숙함의 이중적 불명예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 이론과 느낌 사이의 딜레마를 풀게 할 열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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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박식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정색을 하고 말하고 싶다. 지식이 많지 않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다듬고 조합하고 내 생각으로 정리해 창의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물론 나는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 내 성(姓)인 박을 활용해 ‘제가 하는 인식을 박식(朴識)이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박식(朴食)합니다‘나 ‘박식(朴息)합니다‘란 말도 가능하지 않을지? 박식(朴食)은 내 식사 습관이고, 박식(朴息)은 내 호흡 방식이다.

사실 모두 중요한 것들이고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 중 한 구절인 ‘함부로 쏜 화살‘이란 구절을 참고해 말하자면 절대 함부로 화살을 쏘듯 할 수 없는 것들이다.

헤르만 헤세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은 모두 가볍고 부담없고 무심히 넘길 수 있는 것들이지만 시간이 바뀌고 생활의 흐름이 달라질 때 무엇 하나 단순하거나 쉬운 것은 없으며 심지어는 호흡마저 힘들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바뀌고 생활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순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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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알라딘 종로 중고 서점에서 시집 한 권과 시인론집 한 권을 샀다. 시집은 고옥주 시인의 ‘다시 목련’이고 시인론집은 김 ** 시인이 동료 시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책이다.

고옥주 시인은 ‘청령포’와 ‘녹차 한 잔’을 통해 알고 있는 시인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샀다. “그대에게 녹차 한 잔 따를 때/ 내 마음이 어떻게 그대 잔으로 기울어 갔는지 모르리./ 맑은 마음 솟구쳐 끓어오를 때 오히려 물러나/ 그대 잔을 덥히듯 더운 가슴 식히리...”로 시작하는 ‘녹차 한 잔’은 성악곡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어제 산 책들 모두 저자가 지인 또는 선배 시인에게 증정한 책이다. 그러니 두 권 모두 책을 받은 사람이 중고 서점에 내놓은 것이다. 이런 계기로 나는 싸게 책을 사고 어떤 이야기거리라도 알게 된 듯 해 좋다.

고옥주 시인이 증정한 책에 기록된 이름은 남 **란 분이다. 시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을 받은 분은 남 **란 분보다 훨씬 지명도가 높은 시인이다. 김 ** 선생님께 2009. 6. 15 김 ** 올림이라는 글이 선명하다. 왜 책을 처분한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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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신사동이란 동이 은평구(新寺洞)와 강남구(新沙洞)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강준만 교수의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를 통해 관악구에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관악구의 신사동은 新士洞이다.(新寺洞, 新沙洞, 新士洞...) 강준만 교수에 의하면 관악구 신사동은 달동네 인상을 줄 수 있다며 관악구가 2008년 신림 4동을 새 이름으로 고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관악구는 신림 6, 10 동은 삼성동으로 바꾸었다. 이 삼성동은 三聖洞이라 쓰는데 이는 구(區)에 있는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산에서 따온 것이다.

강남구에도 삼성동이 있는데 이 동은 三成洞이다. 관악구 삼성동은 삼성산에서 따온 이름이라지만 이 산이 없었어도 삼성동이라 지었거나 강남의 다른 동의 이름을 한문을 달리 해 썼을 것이 분명하다. 관악구 신사동이 강남을 따라 지은 이름이듯.

한편 양천구는 신월동과 신정동을 신목동으로 바꾸려 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기존 목동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는 어느 동네에 사는지가 계급을 나타내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런 동명 변경은 단순히 강남을 지향하는 데서 나온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갑질이다. 본문에 나오는 한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강남에선 중학생부터 회사원들까지 자기들이 사는 동네를 엄청 내세운다.

이 공인중개사는 강남에 이사 오는 사람들의 60 ~ 70 퍼센트는 과시 욕구와 교육 문제로 오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했다.

오늘날 교육은 갑질을 가르치는 일선에 서 있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1897년경 매관매직(賣官賣職)은 국가 시책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를 폐지해버린 탓도 있었지만 황실은 세원(稅源)이 없어 벼슬을 팔아서라도 국고를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탐관오리들이 득실거렸는데 벼슬을 돈 주고 샀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본전은 물론 이익까지 남겨야 했음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갑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오늘날 양반 족보는 학력, 학벌 증명서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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