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은 국맛을 모른다는 법구경(法句經)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국맛을 느끼는 것은 숟가락이 아닌 혀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시골 교회를 떠나며 함께 했던 청년회원들에게 쓴 것이니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교회를 떠난 것이기보다 신앙을 떠난 것이라 해야 옳지만 요지는 교회든 신앙이든 잘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나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무지하고 영적인 것 즉 신앙에 대해 무감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상하게 은총이나 은혜 등의 말은 싫어한 반면 영성(靈性)이라는 말은 즐겨 썼다. 오독인지 모르지만 영성에 모종의 반체제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한 결과이다.

하지만 은총이나 은혜 같은 말과 영성이란 말은 통한다 해야 옳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여서 내가 은혜나 은총이란 단어들을 싫어했던 것 같다.

내 독서의 목적지 같은 것이 있을까마는 시를 잘 이해하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최근 어떤 문인의 페북에서 시인을 알려고 하지 말고 시를 알려고 하라는 글을 읽었다.(정확하지는 않다. 대략 이런 의미이다.)

나에게 들려주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를 읽으려 애쓰기도 했지만 한 번 읽고 쉽게 이해되는 시들을 주로 읽었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시들을 두 번, 세 번 그리고 그 이상 읽어서 이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구를 잃고 속상해 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친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라 말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자신을 떠난 사람은 친구가 아니니 잃은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나에게 적용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애써 읽어 이해한 경우가 거의 없으니 (진정으로) 읽었다 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최근 정신과 의사 서천석 님의 페북에서 강연을 하면 수입 면에서 훨씬 유리하지만 상담이 주는 치열함과 강렬한 상호작용, 그 속에서의 배움이나 발전이 없다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과학자 홍성욱 님의 페북에서는 이공계 수업 시간에 교수들이 칠판을 이용하던 옛날과, ppt를 만들어 와서 강의를 하는 요즘을 비교한 글을 읽었다.

양자역학을 가르쳤던 어떤 교수의 경우 속기를 배워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진도가 빨랐다고 한다.

강의 노트 없이 들어와 바로 바로 문제를 푼 교수도 있었다고 한다.

결론인 즉 ppt로 강의하면 강의에 즉흥성이 떨어지고 interactivity도 절반 이하로 격감될 것 같다는 것이다.

두 전문가의 글은 맥락이 같다. 치열함과 강렬한 상호작용, 그 속에서의 배움이나 발전 vs 즉흥성, interactivity(상호 대화, 쌍방향성)의 구도이지만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나의 문제의식에 적용하면 시에 대한 깊은 이해란 말이 된다. 나와 시인이 내 해석을 매개로 대화를 하는 것이니 상호 작용인 셈이다.

시인들의 강의를 자주 들으러 다니는 편인데 인상적인 경우는 지난 5월 31일 용산 도서관에서 들은 권현형 시인의 강의이다.

자기 시를 몇 편 골라 세부적으로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시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권현형 시인과 같은 경우이다.

물론 모든 시를 이렇게 배울 수는 없고 그렇다 해도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 내 문제의식으로 시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이론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편의 시를 거듭 읽는 것이다.

이론을 염두에 두고 읽는 것과, 느낌으로 읽고 이해한 뒤 이론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좋을까?

어려운 문제이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의 말을 생각하면 내가 시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고르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다가가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한 저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의 최상을 생각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대상이기를 그만 두게 하는 것이고 박학과 친숙함의 이중적 불명예를 피하는 것 등이다.(진은영 지음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에서 재인용)

이 말 특히 박학과 친숙함의 이중적 불명예를 피해야 한다는 말이 이론과 느낌 사이의 딜레마를 풀게 할 열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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