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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끼리는 돈 이야기를 하고 부자들끼리는 예술 이야기를 한다.. 톨스토이가 한 말이라고 한다. 삶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 같은 것이 돈이 아니겠는가? 문화방송 김소영 아나운서가 '예술 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에서 이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돈 이야기에 이런 저런 화제들이 생각난다.

...

1) 2004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인 황인숙 시인이 한 말; "내게도 생전의 김수영 선생과 닮은 데가 있다. 일상적 고민의 반 정도는 돈 문제라는 것. 약간의 물질적 보상에 문득 우화등선하는 느낌이다."

2) 그림 재테크; 예술에 관심 있는 부자들이 하기에 적당한 것일까, 아니면 돈에 관심 있는 예술가들이 하기에 적당한 것일까?

 

3) 정신분석 이야기: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의 한 꼭지인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서 필자 성미라는 19세기 말 신경증에 걸린 귀부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이 등장했다는 말을 했다.

 

귀부인 역시 돈과 관련이 있다. 필자는 시간당 7만원의 돈을 지불하며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다.

 

시간당 7만원은 상당한 액수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고액만을 문제삼는다면 문제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증상을 소멸시키는 데 있지 않고 주체가 증상과 화해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백상현 지음 '라깡의 루브르' 98 페이지)

 

그러니 인내는 필수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긴 세월을 견디는 참을성의 문제이지만 그것 역시 돈과 긴밀히 연관된 것이다. ‘라깡의 루브르’에는 오귀스틴이란 15세의 소녀 이야기가 나온다. 19 세기 말을 살았던 그는 성적 피해를 당해 마비와 발작을 겪게 되어 샤르코 박사의 최면술 치료를 받는다.

 

그 결과 완치되지만 완치 이후로도 16 개월간 병원에 머물며 히스테리를 재현한 대가로 월 15 프랑의 돈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병원에서 도망치듯 사라지는데 그 이후의 삶은 알려지지 않았고 사망 날짜마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히스테리 재현은 자기 소멸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4) 영화와 건축; 영화가 제작자(감독이 아닌 돈을 대는 사람)의 재력 및 안목 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장르이듯 건축도 건축주의 재력과 안목, 추진력 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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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독지 절문근사(博學篤志 切問近思)는 넓게 배우고 뜻한 바를 돈독히 하며, 간절하게 묻고 알기 쉽게, 실생활에 가깝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성복 시인의 수미재(守微齋)에 절문근사(切問近思)라는 말이 쓰여 있다는 글을 읽고 그 의미나 기원, 내력 등을 찾다가 절문근사 앞에 박학독지(博學篤志)가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희의 ‘근사록(近思錄)’에 있는 근사(近思)가 이 말에서 비롯되었다. 박학독지 절문근사의 출처는 논어(자장 子張)이다.

수미재란 작은 것을 지키는 집이라는 뜻이겠다. 지킨다는 것은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이겠다. 배워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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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旌善)에서 발원한 동강(東江)이 흐르는 곳, 영월(寧越). 이 가운데 청령포(淸泠浦). 이름이 참 좋다. 맑을 청, 깨우칠 영/ 물 이름 영을 쓴다. 청령포 세 글자는 모두 물 수(氵)가 들어 있는 단어들이다. 내 사는 곳을 흐르는 연천의 한탄강(漢灘江)도 세 글자 모두 물 수(氵)가 들어 있다. 주지하듯 한탄강의 한탄은 원망이나 한스러움을 뜻하는 恨歎이 아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한스러운 기록을 뜻하는 恨中錄이 아닌 한가한 가운데 쓴 기록이라는 의미의 閑中錄이듯.

 

북한 지역인 강원도 평강군 장암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김화군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들어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을 차례로 흐르는 한탄강. 지난 금요일에서 일요일인 그제까지 모친(母親)께서 단종(端宗)이 한스런 세월을 보낸 청령포, 그리고 단종이 묻힌 장릉(莊陵)에 다녀오셨다.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에 있고 장릉은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데 그 두 곳에서 단종의 한(恨)과 억울(抑鬱)을 생각하시고 분명 우셨을 것이다. 나 역시 단종을 생각하면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 생각이 나 마음이 참 많이 아프다. 창덕궁에서 칠일만에 청령포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한스러웠을까?

 

너무도 억울하고 황망하게 남편과 헤어지고 노비가 되어 팔십을 산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은 또 어떤가. 모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죄인의 귀양지를 뜻하는 유형지(流刑地)라는 단어를 단종이 살았던 청령포에 대해 써도 되는 것일까? 죄인이 아니라 억울한 희생자일 뿐인 그가 살았던 그곳에 대해 말이다. 내가 만일 영월에 살아 단종을 해설할 기회가 생긴다면 슬픔을 누르기 위해 많이 애를 쓰게 될 것이 틀림 없다. 세종(世宗)대의 안정과 위업(偉業)은 부왕 태종이 벌인 유혈극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세조가 흘리게 한 피는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거의 예외 없이 가족 중의 누군가를 죽인 조선시대의 왕들을 패륜 군주로 표현한 인류학자 김현경이 생각난다. 김현경은 선거의 미덕을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본다. 조선 왕들의 친족살해를 왕의 개인적 품성과 무관한 구조적 문제로 본 김현경의 말은 참고 할 만하다. 하지만 세조의 패악에 대해서까지 그런 시각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구조적 문제 이전에 세조의 품성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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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것은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니체가 한 말이다. 한 페친이 올린 글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출처까지 명기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저 말이 니체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어떻든 방향에 대한 니체의 저 말은 행복론을 읽는 나에게 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행복론이란 미술치료를 전공한 마이케 반 덴 봄이 ‘행복한 나라의 조건‘에서 한 말이다.

그는 행복지수가 반드시 10점일 필요는 없고 8점만 되어도 충분히 훌륭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데 다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마이케 반 덴 봄의 책은 OECD가 선정한 가장 행복한 나라 13개국에 근거해 쓴 책이다.

사회적 조건과 물질적 토대 등에 근거를 둔 책이다. 13개국이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코스타리카,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파나마, 룩셈부르크, 멕시코, 콜롬비아 등이다.

우리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몇 점이나 될까? 점수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방향 설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케 반 덴 봄의 말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곳에서는 불평등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많이 불평등하고 고루 존중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아프게 인식하게 하는 말이다. 양성평등지수 1위인 스웨덴, 노동시간이 1위이면서 매일 축제를 여는 멕시코,

학업 성취도가 1위인 핀란드, 세금이 50퍼센트임에도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않는 덴마크.. 등등 모두 부럽다.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행복하다는 정서에 근거하는 나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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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거처(居處)에 몇 명의 인물들이 다녀갔다. 한 명의 포스트맨과 몇 명의 작가, 한 명의 화가, 몇 명의 작곡가가 그들이다.

포스트맨은 몸으로 왔고 몇 명의 작가와 한 명의 화가, 몇 명의 작곡가는 대화에 호출된 사람들이다.

클래식 LP 200여장을 가져가라는 말을 듣고 휴일에 맞춰 내 거처에 온 박**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해 자신의 명함을 조르바와 관련된 것으로 장식한 우체국 택배 담당 직원이었다.

간색(間色)인 자색(紫色)이 순색(純色)인 적색(赤色)을 빼앗는 것을 경계한 공자(孔子)의 후예인가, 생각될 만큼 그가 건넨 명함은 순수하게 붉은 색이었다.

‘soul bar(장차 차릴 것이라는 재즈 카페) 우체부, 박 조르(조르바의 그 조르)‘라는 그의 소개 문구가 약간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처럼 우체부 일을 했던 작가 찰스 부코스키를 호출했고 나는 그의 선택에 영향을 받아 소방수, 자동차 외판원 등의 일을 하며 글을 쓴 커트 보네거트를 호출했다.

그가 가고 난 뒤 나는 19세기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중요한 풍경화가인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불러냈다.

너무도 유명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란 그림이다. 이 그림은 페친의 페친인 한 프랑스 시인이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그림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제목 그대로 방랑하는 한 남자가 안개로 채색된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물리학자 레오나르도 콜레티는 ‘명화로 보는 32가지 물리 이야기’에서 이 그림을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일화와 겹쳐 설명한다.

콜레티에 의하면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하이젠베르크는 대학 연구원으로 일하던 괴팅겐에서 ‘꽃가루와 문명의 이기(利器)로부터 벗어난 헬골란트 섬’으로 가 수소원자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시도했던 공식들을 되새기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 섬은 자신만의 의미와 영감을 찾는 데 맞춤한 곳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할, 원래로 돌아가야 할 출발점이기도 했다.

떠나야 할 때와 돌아가야 할 때, 머무를 때와 움직일 때를 잘 알아야 할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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