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旌善)에서 발원한 동강(東江)이 흐르는 곳, 영월(寧越). 이 가운데 청령포(淸泠浦). 이름이 참 좋다. 맑을 청, 깨우칠 영/ 물 이름 영을 쓴다. 청령포 세 글자는 모두 물 수(氵)가 들어 있는 단어들이다. 내 사는 곳을 흐르는 연천의 한탄강(漢灘江)도 세 글자 모두 물 수(氵)가 들어 있다. 주지하듯 한탄강의 한탄은 원망이나 한스러움을 뜻하는 恨歎이 아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한스러운 기록을 뜻하는 恨中錄이 아닌 한가한 가운데 쓴 기록이라는 의미의 閑中錄이듯.

 

북한 지역인 강원도 평강군 장암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김화군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들어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시, 연천군을 차례로 흐르는 한탄강. 지난 금요일에서 일요일인 그제까지 모친(母親)께서 단종(端宗)이 한스런 세월을 보낸 청령포, 그리고 단종이 묻힌 장릉(莊陵)에 다녀오셨다.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에 있고 장릉은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데 그 두 곳에서 단종의 한(恨)과 억울(抑鬱)을 생각하시고 분명 우셨을 것이다. 나 역시 단종을 생각하면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 생각이 나 마음이 참 많이 아프다. 창덕궁에서 칠일만에 청령포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한스러웠을까?

 

너무도 억울하고 황망하게 남편과 헤어지고 노비가 되어 팔십을 산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은 또 어떤가. 모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중죄인의 귀양지를 뜻하는 유형지(流刑地)라는 단어를 단종이 살았던 청령포에 대해 써도 되는 것일까? 죄인이 아니라 억울한 희생자일 뿐인 그가 살았던 그곳에 대해 말이다. 내가 만일 영월에 살아 단종을 해설할 기회가 생긴다면 슬픔을 누르기 위해 많이 애를 쓰게 될 것이 틀림 없다. 세종(世宗)대의 안정과 위업(偉業)은 부왕 태종이 벌인 유혈극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세조가 흘리게 한 피는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거의 예외 없이 가족 중의 누군가를 죽인 조선시대의 왕들을 패륜 군주로 표현한 인류학자 김현경이 생각난다. 김현경은 선거의 미덕을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본다. 조선 왕들의 친족살해를 왕의 개인적 품성과 무관한 구조적 문제로 본 김현경의 말은 참고 할 만하다. 하지만 세조의 패악에 대해서까지 그런 시각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구조적 문제 이전에 세조의 품성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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