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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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사는 동안 그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날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얼마 전 작가 이반 일리치의 책을 찾을 때였는데 죽음에 관한 이야기여서인지 빌려 두고 읽지 않은 채 반납한 후 팟캐스트에서 이 책 소개하는 걸 듣고 다시 빌려 읽어보았다. 번역하신 분의 말처럼 얇은 책이지만 느리게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보다 남은 사람들이 더 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적나라한 모습에서 우리들 스스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두고 그걸 지켜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족의 모습도, 그럼에도 짜증 부리는 환자에게 마냥 친절할 수 없는 것도, 우리 자신의 미래를 비춰볼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법률학교를 함께 다녔던 가까운 친구도, 남겨진 가족도 자신에 대한 생각만 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쨌든 아팠던 친구와 동료의 집이 멀다는 핑계로 한 번, 혹은 가 보지 못했던 그들은 자기 나름의 삶을 사느라 바쁘다.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 옛날 톨스토이는 현재 우리에게도 들어맞는 인간의 내면 심리를 기록함으로써 시대를 지나도록 사랑받는 걸작을 남긴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갑작스런 승진과 이사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대수롭지 않았던 옆구리 통증이 죽음을 불러올 줄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도 어떨지 살아보지 않고서는 짐작할 수 없는 것과 닮아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고통이 심하고, 나아질 기미 없이 죽음이 목전에 있다면 수많은 후회와 회한이 떠오를 것이다. 원망할 동안에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그는 최후의 순간에 태도를 바꾼다. 아픈 동안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서글픔, 그리고 원망이 쌓이고 쌓였을까? 자신은 이렇게나 아픈데 옆에 있는 이들은 건강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했을지 모른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무조건 다른 이의 말과 태도를 받아들이며 서운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건강해 보이는 주변 인물도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다. 


  매일 한 번은 자신의 최후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읽은 시의 일부분이다. 하루 한 번씩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하루하루는 왠지 다를 것 같다. 절절한 고통과 죽음에 직면한 이반 일리치의 생의 마지막을 읽으며 마음은 아팠지만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https://www.podty.me/episode/15710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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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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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를 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가입한지는 더 되었겠지만 2013년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끄적이길 좋아하는 나를 보고 왜 그리 책을 읽느냐고 하는 남편에게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고 했더니 몇 권이나 읽어야 할 수 있겠느냐고 해서 '천 권쯤?'이라 대답한 것이 블로그의 이름이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매일 혹은 격일로 글을 쓰면서 가장 좋은 것은 신간 도서를 무료로 받는 행운이다. 책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받아 읽으며 행복하다. 이번에 받은 책도 너무 재미있었다.

 

  시시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노라는 우울증 증세가 있어 약을 복용 중이었는데 직장에서 잘리고, 키우던 고양이가 죽자 삶의 의욕을 잃고 만다. 한때 다양한 재능을 가져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도전을 해 보기도 했으나 남을 위해 사는 삶은 진정한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좌절하고 만다. 가족과도 오해로 멀어지고, 사랑하던 사람과도 결별하는 위기에 처했다. 총체적 난국을 맞이한 노라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은 우연히 지나가다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 이웃뿐이라는 것이 그녀를 더 슬프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엄청난 행운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생을 살 수 있는데 노라는 그게 꿈인지, 상상인지는 모르지만 자정의 도서관에서 실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을 경험한다.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 되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보기도 한다. 그러던 중 너무나 매력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건 사실 자신이 일군 삶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을 반추하는 이야기들은 그동안 여러 편 읽어 왔지만 이 책처럼 버라이어어티한 건 처음이다. 6학년 교사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 노라처럼 아이들도 수많은 갈림길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람도 될 수 있고, 그중 하나의 길을 가게 될 테니 잘 선택하라는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노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고 싶다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수많은 생을 살아보았다고 모두 다 노라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수많은 삶을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삶은 시간을 보내기는 하나 무의미한 하루하루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계획한다.

 

  우화 같은 이야기가 기분 나쁘게 다가오지 않은 것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작가의 능력이리라. 다양한 삶을 재미있게 따라다니며 경험했고, 결국 구질구질해 보이는 현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상인지 깨닫는 노라를 보면서 나도 역시 누추하지만 편안한 나의 집과 소중한 가족이 있음에 눈물 나도록 감사하게 된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5678661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솔직한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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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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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아주 오랫동안 찔끔찔끔 읽었다그래서인지 리뷰를 쓰려고 하니 다른 책들과 섞이기도 하고 앞부분은 잊기도 해서 정확히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오래전 다녀온 여행을 어슴푸레 기억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그런데도 책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은 이유는 읽는 매 순간이 행복했기 때문이다여행의 그것과도 비슷하다결국 책을 사 두었다언제든 어디든 펴서 읽기 좋은 책이다혼자 있는 게 이렇게 좋아도 되나싶을 때 읽으면 위로가 된다.

 

  한때 작가의 책이 좋아 나오기를 기다려 읽다가 한동안 잊고 지냈다얼마 전 저자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그를 다시 떠올리고 이 책을 빌리게 된 것이었다여행과 사랑에 대한 그간의 에세이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고 그가 말했기 때문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같은 게 있다면 멋진 사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본문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여행지 혹은 일상의 파편들이다읽다 지칠 때마다 눈요깃거리와 페이지 터너 역할을 충실히 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여행을 사랑하던 그는 이제 조금은 자기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리는 느낌이다허기진 사람처럼 여행을 하고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던 그는 혼자 있어도 꽉 차고때로는 여행도 지겹기도 한 나와 비슷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일까이 책이 그전 책들보다 더 좋았다.

 

  책을 읽다가 저자가 주인으로 있다는 카페를 발견하고지난주일 오후에 잠시 다녀왔다그동안 근처에 갔었지만 그 카페는 처음이었다이 책을 펴낸출판사 건물 1층에 있었다고즈넉한 그곳에는 널찍한 테이블 몇 개가 있었고사람은 별로 없었다아이스커피가 맛있었고잔잔한 재즈 음악이 책 읽기에 좋았다처음 들어갔을 때 한 테이블에 앉은 남녀 중 한 분이 나를 빤히 쳐다보기에 혹시 저분이 이병률 님인가하는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찾아보았다닮은 것 같기도 하고아닌 것 같기도 했다어쨌든 저자가 숨 쉬는 장소에 나도 함께 있다는 야릇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7시도 안 되어 문을 닫는다고 해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나왔다화장실 들르느라 올라가 보니 책이 많은 서재 같은 곳이 있고그 안에서 어떤 분이 책을 읽고 있었다느낌이 좋은 건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여행하는 것이 좋아졌다동행이 있으면 있는 대로 즐겁겠지만 혼자 다니면 있고 싶은 곳에 얼마든 있을 수 있고떠나고 싶으면 마음대로 떠날 수 있어 좋다많은 생각들을 쏟을 수 있고나 자신에게만 충실할 수 있는 것도 좋다저자도 혼자 여행하기를 권한다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면 나만의 보물을 발견하기가 더 용이하다혼자가 혼자에게 혼자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책의 조언들을 읽으며 위안을 받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일지도 모른다내가 느끼는 것을 독자가 느낀다는 건 저자로서는 무척이나 보람된 일이다그런 의미에서 책을 다 읽고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작가에게는 좋은 독자일 것 같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cast/20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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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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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분의 추천으로 이 책을 만났다. 인간에 대한 예의. 나의 마음속 깊숙이 항상 지니고 싶다고 생각하는 주제다. 제목이 너무 좋아 그분의 추천도서들 중 도서관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빌렸다. 제목이 유명한 듯하여 오래된 책인 줄 알았더니 코로나 이야기도 나오는 작년 6월이 초판 발행인 신간이었다. 기자 출신의 저자가 쓴 글이라 그런지 글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술술 읽히면서도 비판적 사고를 지닌 훌륭한 글이었다. 


  이 책에는 여러 책이나 영화가 등장하는데 공교롭게 몇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이미 내가 본 영화여서 이해하기 쉬운 면이 있었다. 영화를 보더라도 사회와 연결 짓는 저자는 기자정신이 투철한 것 같다. 보지 못했던 <트루스>라는 영화를 조만간 만나봐야겠다. 사회의 한 부분을 글로 쓴다는 것, 그로 인한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다는 것, 게다가 혹시라도 오보일 경우 책임져야 할 어마어마한 뒷감당에 아침이 두렵다는 것이 기자와 신문 방송계 종사자들의 숙명일까? 


  저자는 얼마 한 SNS를 탈퇴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프레임에 따라 어떤 사건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자신의 의견과 상반된 댓글로 상처를 받기도, 오해를 하기도 한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글은 조심스럽고,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소신껏 발언하고 그로 인한 파급효과를 감당하는 분들을 보면 용감하다는 생각에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똑같은 사실이 어떤 이에게는 죄악이 되기도, 또 다른 이에게는 누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책 제목과 같이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다. 저자의 경험처럼 우리는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게 자신도 모르게 소위 ‘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를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어떠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더라도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기를, 그런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 그때 내 마음을 문장으로 만든다면 아마 이런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나아갈 사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쁜 일’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차라리 불편한 사람이 되십시오. 불편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다시 말해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원칙이 없으면 여러분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도 편하게 느끼겠지요. 원칙을 지키다 보면 여러분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해고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히려 빛나는 경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편해지겠다는 각오만 있다면 여러분이 그 어려움들을 돌파해내리라 믿습니다."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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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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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모임 이달의 도서라 아주 오래전 눈물 흘리며 읽었던 이 책을 다시 만났다. 우리에게 쓰라린 역사인 임진왜란을 그린 책이다웬만한 전쟁 영화보다 재미있는 당시의 기록은 실제이기에 더 애통하기도통쾌하기도 했다유성룡은 원래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얻었다임진왜란으로 인해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했고도체찰사와 영의정에 임명되기도 했다하지만 평양에 도착해서는 반대파의 탄핵으로 파직당했다다시 서울에 들어간 후 영의정으로 복직되었고선조가 서울로 돌아온 후 훈련도감의 제조를 맡아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인재 양성과 군비 강화에 힘을 썼다정유재란 이후 다시 탄핵되어 고향에서 저술 활동에 힘썼다이 책도 그 시기에 썼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겪으며 지휘했던 그는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며 이 책을 썼을 것이다아마도 그때그때 메모를 했을지도 모른다본문 중간에 그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했던 공책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사람의 이름과 지명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메모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 같다이 책은 현재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서책으로서는 드물다고 한다전쟁을 가장 직접적으로 겪은 그가 다음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는 의미로 기록한 이 책 속에는 이순신 장군도 때때로 등장한다이번에도 장군의 활약을 읽으며 또 눈시울을 붉혔다나라만을 생각했던 그의 뛰어난 지략은 언제 읽어도 감동적이다.

 

  책의 초중반은 계속 패하는 이야기라 맥이 빠진다미리 대비하지 않은 우리의 군사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우수수 패하고 도망하고 죽임을 당한다그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나의 마음도 답답하고 힘들지만 결국 왜구를 몰아냈음을 알기에 그렇게 이어져 온 역사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계속 읽었다하지만 승리의 역사는 그렇게 길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그 중 결정적인 사건들만을 담았기 때문이리라.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안타까운 장면과 이웃 나라의 전쟁에 힘을 다했던 장수와 군인들그리고 그들을 도왔던 저자의 눈물겨운 투혼이 감동적이다이순신을 비롯한 수군의 승리로 보급과 군사 지원이 끊어지고의병과 명나라 지원군으로 패색이 짙은 일본이었지만 돌아가면서도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부산에 오래 머무르는 등 전쟁은 쉽지 않았다치질에 걸려 누워 지냈음에도 사신을 맞이하고 전국을 돌며 전쟁에 대비했던 유성룡의 노력과 애국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그가 애씀을 통해 많은 이들이 힘을 얻고마음을 모았으리라전쟁이나 난리로 영웅이 탄생하기도 한다수많은 의병장들과 이름 없이 죽어간 조상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다시 또 이런 외침이 있지 않도록 수백 년 전에 기록으로 남긴 저자의 경고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임진왜란 이전 두 개로 나뉘어 서로 다툼을 하며전쟁의 위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 큰 화를 불렀다지금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지 모른다외세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고나라는 분열되어 있다서로를 헐뜯기 바쁜 이때 조상이 경고한 메시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술잔을 기울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 귀신 장군이라는 말을 들었던 이순신 장군처럼 태평성대에 안일해지지 말고 늘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1633년 처음 출간된 후 일본에도 그 가치가 알려져 1695년 일본 교토에서도 간행되었고, 1712년 조선 조정에서 일본 수출을 엄금하는 명을 내리기도 했던 소중한 우리의 보물을 자랑스럽게 여겨야겠다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 나도 중국 병사들과 함께 들어갔는데 성 안의 백성들은 백에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조차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있어 얼굴빛이 귀신같았다. 날씨마저 더워서 성 안이 죽은 사람과 죽은 말 썩는 냄새로 가득했는데 코를 막지 않고는 한 걸음도 떼기가 힘들었다. 건물은 관청과 개인 집을 막론하고 모두 없어져 버렸고, 왜적들이 거처하던 숭례문에서 남산 밑에 이르는 지역만 조금 남아 있었다. 종묘와 세 대궐, 종류, 각 사, 관학 등 대로 북쪽에 자리잡은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재로 변해 있었는데, 소공주 댁은 왜장 히데이에가 머물던 곳이라 건재했다. 나는 먼저 종묘를 찾은 다음 엎드려 통곡하였다. (173-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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